|
2004년 2월4일! 이날은 원래부터 양력으로 지내오는 내 생일이자, 광주에 사시는 남천 송병완 시인님의 초대를 받고 일주일 전에 무궁화호 열차표를 예약하고 즐거운 광주 여행을 기다려 온 가슴 설레이던 날이다.
아들은 새벽에 출근했고 생일 날이지만 밥을 같이 먹을 사람도 없어 미역국과 아침밥도 생략하고, 8시 45분에 집을 나서 슈퍼에서 다섯 사람의 간식거리를 사고 버스를 타고 수원 역에 도착하니 9시15 분이다.
일행 다섯 사람 중에 여류시인 김재란님과 홍정희님은 서울서 출발하고, 김광한 소설가님과 도송 송병훈 시인님은 9시 30분까지 수원 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일러서 아무도 안 오셨을 줄 알고 2층 대합실로 올라갔다.
대합실에 들어서니 먼저 오셔서 의자에 앉아 계시던 송병훈님이 일어나시면서 인자하신 웃음으로 반겨 주신다. 잠시 후에 김광한님이 오셔서 우리는 대합실내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광주행 10시차를 기다렸다.
예약된 시간에 열차가 도착하여 2호 차에 올라타니 서울에서 먼저 타고 온 김재란님이 좌석을 마주 보도록 자리까지 준비해 놓고 우리를 반겨 주었고, 같은 카페 회원이면서도 초면인 김재란님, 홍정희님과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열차를 타고 가는 동안 백두대간(김구 일대기)을 집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훌륭한 작품과 에세이와 수필집으로 주옥 같은 이야기 거리가 많은 김광한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4시간동안의 긴 여행을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1시49분에 우리는 광주 역에 도착했다.
우리를 초대하신 송병완 님과 가사문학관에서 해설가로 계시는 정승님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고 잠시 후에 작년 9월에 역시 송병완님의 초대로 광주에서 처음 만나서 구면인 여류시인 김명선 님이 들어서니, 우리는 모두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송병훈 시인님의 초대로 진주에서 온 등단시인 서외남 님과 초면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정승님의 봉고차에 올라타고 한참을 달려 어느 음식점에서 순두부 백반으로 점심을 먹는데 순두부를 직접 만들어서인지 참으로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봉고차를 타고 다시 한참을 달려 금성산성 아래 위치한 대잎차 공장으로 갔다. 그곳 사장님의 사무실 소파에 둘러 앉아 여직원이 내온 대잎차를 마셨다. 대입차가 처음 한 모금 마실 때는 마치 미원 물 같이 니글니글한 느낌이더니 세 모금 마시니까 맛이 고소하고 오히려 녹차 보다 더 부드러운 맛이 났다.
대입차를 마시면서 사장님의 대잎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대입차 제조 과정을 구경하기 위하여 현장에 들어서는데 풀잎 냄새이면서도 고소하고 풋풋한 냄새를 맡으며 현장 구경을 잘 하고 이제 시판 계획이라는 25개짜리 대잎차 티백 두개씩이 담긴 쇼핑백을 선물로 받았다.
그곳을 나와 이번에는 용흥사로 가는데 미쳐 다 녹지 않은 눈 때문에 길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차가 못 올라간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중간에 내려서 걸어올라 가야만 했다. 용흥사는 기대와는 달리 명승고적다운 사찰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 신축중인 건물만 눈에 들어오고 저녁 무렵의 어두컴컴한 산중에 둘러싸인 군데군데 눈덮힌 산을 바라보며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도는 쓸쓸한 산속 풍경만 바라보고 다시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내려 왔다.
원래 용흥사는 오래 전에 지은 고찰로 당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절이었는데 몇 번의 재화로 소실이 되고 지금 다시 신축을 한다고 한다. 절의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할 것 같다.
용흥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 메뉴로 그 음식점에 명물이라는 버섯 죽이 나왔는데 처음 먹어 보는 버섯 죽이 버섯향이 너무 짙어서 처음엔 먹기가 부담스러웠다. 몇 술 뜨고 나니 향긋하면서 고소하여 국물도 남김없이 먹을 정도로 매우 맛이 있었다.
버섯죽을 다 먹고나서 송병완님과 김재란 님이 같이 앉아있는 옆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저녁 식사 후 나오는 여러 가지 꽃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다가 송병완님이 내 정확한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시기에 부담이 될까봐 생일이라는 말을 안 하려 했는데 사실은 오늘이 양력으로 따지는 내 생일이라고 했더니 못 들었다면 모를까 들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않으냐며 마주 앉은 김재란님에게 숙소로 가다가 케잌을 하나 사가지고 가자고 하신다.
숙박지로 가다가 담양 시내에서 차를 멈추고 김재란님이 케잌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 송병훈님이 웬 케익이냐고 물으시니 오늘이 백숙자 님의 생일이라 하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시더니 김재란님에게 케잌을 하나 더 사오라고 하신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서외남님의 음력 생일이 다음날이니까 한꺼번에 생일 파티를 하면 된다고 하시니 외지에서 두 사람이 같이 생일을 받게 되니 더욱 반갑고 기뻤다.
담양 한적한 시골 마을 바로 산 밑에 자리 잡고 있는 럭키 하우스에 들어가 우리를 초대하신 남천 송병완님 비롯하여 남자 3분, 여자 5분이라 방 두개를 잡고 우리는 여자들 방에다가 짐을 풀었다.
나는 재빨리 세수를 하고 다시 화장을 하는 동안 다른 여자 분들은 모두 남자 분들 방으로 건너가고 나는 맨 나중에 건너갔다. 티타임 원탁 위에 케잌 두개를 나란히 놓고 촛불을 붙이고 우리는 생일 축하 노래를 하는데 마치 우리 두 사람의 생일을 축하 하듯 대형 유리창 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 했다.
생일 당사자인 나와 서외남 님은 생각지도 않은 잊지 못할 생일 추억을 갖게 되었다고 서로 얼싸 안으면서 어린아이들 같이 기뻐 뛰기도했다.
저녁을 먹은 뒤여서 케익과 간단한 음료와 과자를 먹으면서 창 밖에 눈 오는 광경을 감상하기 위해 불을 끄고 모두들 쏟아지는 함박눈 구경을 하는데 함박눈이 바람을 타고 넘실넘실 춤을 추면서 X 자로 방향을 틀면서 날리는 광경에 모두들 "와아~" 하는 감탄의 함성이 터졌다. 이제까지 보아 온 눈 내리는 풍경이지만 함박눈이 내리는 광경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한참을 함박눈 날리는 광경을 보다가 누군가가 불을 켜기에 잠깐만 더 보자고해서 다시 불을 끄고 눈 오는 광경을 감상 하고 불을 켜니 10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그냥 이대로 방으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내가 노래방으로 가자고 하자 모두들 일어나 지하 노래방으로 가서 2시간을 흥겹게 노래를 하고 서투른 춤도 추워보고 올라오니, 밤 1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세수부터 하고 나는 자리에 누워 금방 잠이 들었다.
이튿날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서있는 호텔 뒷산의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데 온 세상이 온통 하얀 것이 또한 너무 고요하다 못해 이번에는 우~웅~하고 울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당일 생일인 서외남님이 내는 아침 식사 후, 전날 밤에 송병완 님이 모텔주차장에 세워놓은 승용차가 추운 날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차를 움직일 수 없었다 녹을 때를 기다리자니 시간이 촉박하고 모두들 걸어 가다가 버스가 오면 타기로 하고 막 내린 눈이라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행여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눈길을 걸었다. 둘씩 셋씩 짝지어서 걷는데 이런 기회도 일부러 만들려면 힘들 텐데 우리는 고된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30여분을 걸어 소쇄원 입구에 들어섰다.
가파른 언덕길 양쪽으로 있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지난 9월에 보았던 똑 같은 대나무 숲인데 밋밋하고 볼품없던 대나무 숲이 하얗게 눈 옷을 입으니 아름답게 보였다. 눈에 덮힌 아름다운 소쇄원의 겨울 풍경을 감상하고, 소쇄원을 배경으로 우리 일행은 기념사진 찍고 내려와서 다시 한참 눈길을 걸어 모두 한 시간 반을 걸어 이번에는 가사문학관에 들렸다.
가사문학관에서 담양 정자 문화와 면앙 송순, 송강 정철,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제봉 고경명, 하서 김인후, 김윤제, 기봉 백광홍 등의 가사 문학에 관한 영화 관람을 하고 이층 전시실을 돌아보며 이정옥 해설사가 이 분들의 시 낭송을 하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지루 하지도 않고 또한 설명하는 그 모습이 일품이었다.
가사문학관의 관람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어제 운전하느라 수고하셨던 정승님이 봉고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봉고 차에 올라 이번에는 담양호수를 지나서 한국 죽물 박물관으로 갔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대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대바구니, 쌀 까부르는 키, 돗자리 등의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쓰이는 단순한 대나무인줄만 알았는데 대나무로 만든 모든 공예품이 신기하기도 하고 조그만 곤충 모양의 죽물 공예품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눈앞에 다가왔고 이곳 사람들의 혼과 열정이 스며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죽물 공예품을 감탄을 하면서 관람을 했다.
우리 일행은 죽물 박물관을 나와서 남천님 댁에 가서 차 대접 받고 광주 역으로 와서 열차표를 끊으니 오후 6시5분차여서 아직 두 시간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중국집에서 간단한 요기로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면서 차 시간을 기다렸고 우리는 또 다시 만날 것을 기약 하고 광주 역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상태에서 만나 생일을 같이 보냈던 서외남 님도 우리 카페 회원인 것을 몰랐다가 광주역으로 오면서 우리 회원인 것을 알았다. 생일 파티 때 우리 회원인 것을 알았다면 더욱 반가웠을 텐데 조촐하지만 평생에 잊지 못할 생일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며 돌아오는 발걸음도 즐거웠다.
만일 내가 생일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서외남 님도 생일 축하도 못 받을 뻔 했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거리도 없이 그저 평범한 여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게 만들어 주신 남천 송병완님과 이모저모로 수고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김광한 선생님과의 첫 만남의 인연으로 한결같이 인격 있고 아름다운 마음들의 시인들을 만나 친분을 나누며 열등감 속에 대인 관계를 피해 온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며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신 김광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길목인 입춘!
오늘이 내 생일인 아침, 문득 쓸쓸하다고 느끼다가는 일년 전 온세상이 하얗게 눈 덮힌 생일날의 그 아름다웠던 추억을 그려보며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띄어본다.
2005.2.4
스마일
첫댓글 그날이 생생하게 보여집니다 스마일님이 좋게 봐주어 담양인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천님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을 간작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하세요
보고문 자세히 쓰니, 안 가도 가본 것처럼 환해집니다. 그날의 추억을 가슴으로 담아놓기보다 글로 표현해 놓으면 나중 좋은 자료가 되겠지요. 스마일님, 잘 보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저 벅찰뿐, 예쁘게 포장해서 마음깊이 간직했다 두고두고 꺼내볼 작정이랍니다..^^*
스마일니므 이글 한겨레문학 봄호 원고로 시려주세요
스마일님 이글 퍼갑니다 양해하여주시기바랍니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