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변명을 빌리자면 차린 반찬이 줄지 않아 자꾸 데우고 끓여서 그렇단다. 아니다. 아내의 기억력 때문이다. 아내는 금방 간한 것을 까먹고 여러 번 간을 한다. 그러니 간이 짜질 수밖에, 매번 똑같은 변명을 하는 아내가 측은하기 그지없다. 날이 갈수록 해마(뇌)가 줄고 알약 숫자는 늘어난다. 의사는 유전인자 때문이라 하는데 실은 내 탓인 것 같아 죄스럽다. 군인이었던 나를 따라 전후방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삿짐을 수도 없이 묶고 푸는 사이 내조의 병이 돋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든다.
모처럼 같이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 노점상 할머니가 파는 봄나물 냉이가 보였다. 서너 발자국 뒤따라오던 아내가 뜬금없이 나싱개를 캐러 가잔다. 아내가 말하는 나싱개란 냉이를 말한다. 냄새라는 말에서 파생하여 나생이라 하였고 충청, 전라도에서 나싱개라 부른다. 아내와 나싱개를 캐러 나섰다. 자유로 천변을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강바람은 차가우면서도 시원했다. 조선시대 청백리라는 황희 선생의 돌담길을 지나 고려 때 여진족을 정벌했다는 윤관 장군의 고향 파평을 지났다. 아내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6,25 전적지 고량포를 지나니 민통선이 가깝다. 지척이 이북인 백학면 노곡리에 차를 세웠다. 아내는 꽃삽을 들고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 밭두렁에서 나싱개를 찾아다녔다. 아내는 나싱개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다 만나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화들짝 반가워했다. 나싱개는 바람보다 낮은 곳에 납작 엎드려 있어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더디 오는 봄을 살피며 실눈으로 몰래 허공을 재고 있었다. 휘휘 둘러보는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나물이 아내의 눈엔 잘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참 해찰하다 나무 밑에 앉아 책을 읽었다. 봄볕에 책을 펼치니 눈이 부셨다. 책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 아내를 찾으니 봄볕에 아내 머리가 희끗희끗 보였다. 얼마나 있었을까.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둔덕 아래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할 아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승숙아! 승숙아!”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아내 이름을 불렀다. 아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도 없는 이곳에서 아내는 어디로 갔을까? 바로 코앞이 민통선인데. 조금 있으니 한 병사가 총을 메고 나타났다. 여기는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인데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당황한 나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내가 없어졌다 하니 병사는 곧바로 무전기로 연락을 취했다. 까치발을 들고 지형을 살펴보았다. 밭 위에 있는 야산 수풀 지역 말고는 갈 곳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쪽으로 가보려 하니 병사가 그곳은 포사격장으로 피탄 지역이며 지뢰도 매설되어 있다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지난가을에 포탄 고물을 찾다가 민간인이 죽었다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때 안 보이던 아내가 짙은 산그늘에서 불쑥 걸어 나오지 않는가. 아내는 태연한 얼굴로 나싱개가 많아 실컷 캤다며 검은 봉지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나는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보다 난데없이 슬펐다.
아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병사는 여러 가지 다짐을 받아낸 후 인적 사항을 꼼꼼히 기록했다. 한참 뒤 우리를 돌려보내 주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싱개를 캤다는 만족감에 아내는 연신 나물을 만지작거렸다. 어제 일도 까먹고 아침 일도 까먹는 아내에게 나싱개를 알아보는 기억은 어찌 남았을까. 아내 얼굴을 곁눈으로 힐끔 보았다. 평소의 눈빛과는 사뭇 달랐다. 얼굴에 생기가 가득했다.
돌아오는 길 자유로 서쪽에는 구름 사이로 붉은 노을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당위와 필연으로 살림을 살고 아내는 섭리와 종부로 자식을 낳아 키워오지 않았던가. 차창 밖에는 여우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식탁 위에 풀어놓고 다듬는다.
조강지처 모양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았느냐? 어쩌다 내 손에 잡혀 온 거냐? 너는 오는 봄도 다 찾아 먹지 못했구나, 왜 이렇게 홀쭉하냐! 혼잣말을 하면서 나물을 다듬는다.
첫댓글 짠한 수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