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개 시인 약력
1941년 일본 출생
본향 창원시 의창구 봉덕동
1964년 시동인지 《잉여촌》 창간동인
1965년 월간 《시문학》 등단
1966년 시동인지 《시법》 동인
1988년 시동인지 《시와 자유》 동인
2022년 별세(향년 81세)
●저서
1970년 제1시집 《영원한 평행》
1985년 제2시집 《만남을 위하여》
1990년 제3시집 《흐르는 마음 하나》
1994년 제4시집 《떠다니는 말뚝》
1997년 제5시집 《분명한 약속》
1999년 제6시집 《김씨의 허리띠》
2006년 제7시집 《파도 꽃잎》
2009년 제8시집 《탱글탱글》
2009년 제9시집 《일본×파일》
2010년 제10시집 《시 난중일기》
2013년 제11시집 《강나루 하나》
2015년 제12시집 《시간 박물관》
2017년 제13시집 《단풍 드는 나이》
2020년 제14시집 《산 너머 산》
2001년 시선집 《소금을 뿌리며》
●수상
1988년 봉생문화상
부산시협상
2010년 창릉문학상
2015년 부산펜문학상
2017년 부산시문화상
2017년 한국현대시인상
2018년 김민부문학상
●경력
도서출판 빛남 대표
부산시인협회장
│이상개 시인 대표시
영원한 평행 외 9
사는 것이 낙일 수 있지만
사는 것이 낙일 수도 없는
허기진 세월을
땡볕에 못 이겨선가
한 아름의 사상들이
꽃잎을 떨군다.
우러러
사무친 한을
풀 길 없는 이 하늘
차갑고 더러운
배신의 강물 위로
노을이 번지는데,
아, 살아서 눈먼 사람들이
죽음인들 바로 보일까.
통곡의 벽에까지 달려가
피울음을 쏟아 붓고도
번갯불이 갈래갈래 끝에선
번쩍이는 핏방울들.
모든 흔적까지도 삼키고도
오히려 태연할 수 있는 목숨들을 위하여
살아나는 의지의 무덤가에서
죽음을 일깨우는 바람이 인다.
우리에겐
영원한 평행으로 다스리는 형벌이란
세월을 누빌 사랑의 물살이 친다.
만남을 위하여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내, 그대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는 별이 되는
하나의 이름으로 반짝이면서
그대와 내가 만난
최초의 아픔과
최초의 굶주림을
뼈 속 깊이깊이 새기면서
이 세상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 하나 이루리라
이루리라 다짐하면서,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내, 그대를 만나야 한다.
만나야 한다.
섬 하나가
어디서
이름 없는 섬 하나가 태어나는지
혹은 사라지고 있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 아래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곳,
섬 하나가 옷을 벗고 있는지
아니면 입고 있는지
이따금 민망한 듯이
안개가 가려주곤 했다.
저 섬에는
어떤 슬픔의 보물이 있을까
혹은 기쁨의 선물이 있을까
끝내 축축해진 시선 끝에서
들릴 듯 말 듯한 웃음소리,
세상 밖으로 오가는 길이
보일 듯 말 듯한 바다.
분명한 약속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나서
무슨 약속을 분명히 할 수 있으랴
천 년 만 년 혹은 몇 광년의 세월을
스트롱을 꽂아놓고 빨아 마실 수 있으랴
빛과 어둠의 중간에서 남몰래
몇 겁의 허물을 벗을 수 있으랴
형체도 없는 얼굴을 그리워한들
성운이 폭발하듯 달려올 수 있으랴
허허로이 우주공간을 떠돌다
선한 눈동자의 불꽃으로 살아나는
우리들의 분명한 약속을
구태여 발설할 필요 있으랴.
시인詩人
시인은 시를 쓰지만
시는 사람을 만든다.
사람이 시를 만드는 게 아니고
시가 사람을 만든다.
시인은 사람이지만
시는 결코 사람이 아니다.
요즈음은 잘못된 시가
잘못된 사람을 만들고 있으니.
시를 쓰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하다.
불효
해방 맞았을 때만 해도
다들 부모님 뫼시고 살았는데
한 차례 전쟁도 치르고
두 차례 혁명도 치렀더니
요즘에는 등급이 말해준다나?
우리 부모님 급수는 당연히 무급이지만
예나 제나 등급 없이 살았는데
요상하게 변질된 이놈의 세상 보게
죽음에도 버젓이 등급이 있다는구나
어허 정녕 나는 불효했구나
소나기
소나기 한 무더기 난타를 치고 달아나자
황소입김 붉으락푸르락 땅김조차 뜨거운데
산등성 걸터앉아서 휘파람 날리는 흰 구름
꽃이슬 꽃향기
새벽 꽃밭 길을 걷다가
싱싱한 꽃이슬 따먹는
환한 그대 얼굴 보았네
어느새 내 가슴은
꽃이슬 꽃향기를 풀어놓아
만 평의 바다를 일구네
무심히
어쩌다 무심히 하늘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형벌이 혹독하나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정당이 뭔지 정치가 뭔지 돈이 뭔지 권력이 뭔지
먼지 먼지 먼지 먼지 먼지보다 더한 독종 인간
웃기네, 헐벗고 굶주려도 모조리 쓸어버리자고
별꼴 나라 벨꼴 나라
코리아는 꼬레아
동방의 빛
꼬리아
코리아
꼬리 치는 꼬레아
동방예의지국이면서
동방예외지국
별난 나라
별 단 나라
별꼬라지 나라
이왕이면
꼬락서니도
들고 나와라
별짜, 별순검아
별의별 놈까지 나서라
‘별아 내 가슴에’
너도 나서라
벼락같이 나서서 뒤통수쳐라
벨이 울리고
벨이 꼴린다
별꼴 나라
벨꼴 나라에.
-이상개 추모 글
고故 이상개 형 영전에
―어느 별에서, 지금 큰 침묵으로 계십니까?
김성춘
이 형,
형을 많이 보고 싶은 밤, 잠에서 깨어 노트북을 폅니다
작년 가을이던가요. 나는 전라도 땅끝 어느 오지 마을에서 몸을 좀 쉬다가 형의 뜻밖의 비보를 들었습니다. 변명 같습니다만 하루에 버스가 서너 번밖에 안 다니는 그 오지에서 나는 꼼짝도 못하고, 형께 마지막 손도 잡아주지 못하고 부산 쪽 하늘만 멍때리게 바라만 보았었지요, 용서해 주십시오.
상개 형,
생각을 하면, 형의 따스했던 인간적인 목소리가 그 미소가 떠오릅니다. 형은 참 따스했습니다. 언제나 다정다감한 소탈한 부산 사나이었습니다. 문학이, 인생이,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우린 젊은 객기 하나로 만났지요. 잉여촌이란 고독한 인연의 별에서, 서로 마음을 주며 꽃 피웠지요.
아, 이제 떠오릅니다.
고독한 잉여의 숲에서, 삶과 문학을 꽃 피웠던 젊은 날, 그 섬 이야기가…….
말은 좀 더듬거렸지만 눈과 정신이 맑았던 정대현 시인이 떠오르고, ‘빛남출판사’ 그 부산의 자랑스런 열정 간판이 떠오르고, 출판사 구석에서 뜨겁던 여름날 고스톱 한 판 벌이던 추억 속의 흐릿한 사진들 떠오르고, 울산 방어진의 안개와 울기등대, 그 파도소리 떠오르고, 시집들 속, 저음의 뱃고동 소리가 광복동 뒷골목 가파른 그 계단들이 떠오르고 진해의 바다, 마산 앞 바다 돗질 섬이 방창갑 오하룡 조남훈 유자효 박종해 이준웅 장승재 잉여촌 시인들, 제주도의 김용길 시인, 그 풋풋했던 얼굴들 떠오르고 “김 형 잉여촌 원고……” 독촉하던 형의 목소리 자갈치 어시장 바닷바람과 함께 떠오르고 파도소리 둥둥둥 안개 속에서 바람 속에서 오, 둥둥둥…….
상개 형,
작년 어느 날, 울산의 조남훈 시인과 마산의 오하룡 시인의 전화를 받고, 나는 형의 안타까운 근황을 알았습니다. 무슨 말을 더 하리까. 살아서 슬프고 상처 받아서 슬프고 슬프지 않은 영혼, 어디 있겠습니까. 이승의 슬픔과 상처, 예수도 부처도… 누가 막겠습니까. 삶과 죽음은 강과 바다가 하나이듯 한 몸이지요.
저는 요즈음, 젊은 시절 농땡이 쳤던 시간 빚 갚느라 가까운 대학 도서관에 갑니다 백팩을 메고. 80줄이라도 즐겁습니다. 침침한 눈이라도 아직 쓸 만합니다. 어제는 페터 한트케의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종일 읽었습니다. 어떤 날은 장자와 카프카도 부르죠. “골키퍼는 공이 라인 위로 굴러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의 불안이 곧, 나의 불안인 것을 확인하지요.
상개 형,
나에게도 이제 시간은, 악마처럼 흘러서 어느덧 황혼 녘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온 저 황혼, 무릎 꿇고 사랑하기로 합니다. 기적 같은 오늘, 겸허하게 받습니다. 문득 슬픔이 안개처럼 저 심장 바닥에서 밀려옵니다.
이 형,
언젠가 우리, 다시 먼 우주, 그 어느 별에선가 큰 침묵 하나로 만나겠지요? 창밖은 눈부신 별의 봄날입니다, 새들이 신록과 함께, 형께 안부를 전합니다.
상개 형……!
2023. 봄날
대작對酌
―송재 이상개 시인과의 만남
김용길
어느 해 늦은 봄날
제주 섬 촌놈 나는
부산의 영도다리를 건넜다
중앙동 빛남출판사 상개 형의
붉은 얼굴을 보기 위해서
빛남은 우리를 들뜨게 한다
세상 인생길 손잡고 걸어보자고
문학예술의 한 뿌리 캐어 들고
잉여촌 마을 만들어 보자고
손 내밀던 그 고마운 마음 뜻 동조하면서
기쁘고 고맙게 그와 마주 앉았다
부산 자갈치 시장 입구
포장마차 횟집
드럼통 엎어놓은 술상 위
꿈틀거리던 낙지발이
손등을 타고 올라왔다
“술이 코로 들어갑니다”
“까짓것 코든 입이든
뱃속으로 들어가면 고만이지”
이빨 사이 고춧가루 묻어나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반주 삼아 술잔을 부딪쳤다
술은 가슴으로 마시는 것이라고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마시며
부산의 정情풀이 밤을
하얗게 지새운 날이었다.
상개 형과의 한 추억
유자효
이상개 형을 처음 만난 것은 1966년으로 기억한다. 부산 양정의 안장현 선생 댁에서 정대현과 함께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뒤, 대현 형과 함께 부산의 상개 형 직장으로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무직 청년이었던 우리에게 상개 형은 국밥과 소주를 사주는 든든한 스폰서였다.
그런 와중에서 상개 형은 대현 형과 나에게 잉여촌 동인 얘기를 했고, 가입을 권유했다. 문학청년이었던 우리는 시인의 권유가 영광이었고, 그때부터 잉여촌 동인이 되었다. 잉여촌 동인이 됨으로 해서 나는 오하룡 형과 조남훈 형, 방창갑 형, 김성춘 형, 박종해 형, 장승재 형, 김용길 형을 비롯한 시인들을 알게 되었으니 나의 복이었다. 그러고 보면 잉여촌 동인은 전국 규모다.
내가 대학에 다닐 무렵 종로의 오하룡 형 댁은 정대현과 나의 영양센터였다. 부인께서 정성들여 마련해주신 요리들을 허겁지겁 흡입하던 굶주린 청년들은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런 우리들을 하룡 형은 시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환대하셨다. 친절하고 아름답던 부인께서 와병 중이란 소식을 들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부디 쾌유하시길 빈다.
상개 형은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분이었다. 언제나 나를 따뜻이 맞아주었고, 그의 앞에서는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그가 부산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자주 만나진 못했으나 마음은 가까이 하고 있었다. 그는 늘 동인의 중심이었으며, 그가 있는 한 동인지는 끊임없이 나올 듯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내게는 잉여촌의 조종弔鐘처럼 들렸다. 상개 형이 없는 잉여촌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고를 보내라는 장승재 형의 연락에도 오랫동안 멍하게 시간만 축냈다. 그러다가 이번이 마지막 호가 될 듯하다는 오하룡 형의 말씀에 졸시들을 추슬러 이 글을 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늙었다. 누가 우리를 기억해줄까? 설사 기억해준다 한들 그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
분명한 사실은 나는 60년 가까운 시의 생애를 잉여촌과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소박한 잉여촌의 주민으로서…….
상개고담祥介古談
장승재
부산에서 살다가 울산에 온 이듬해
잉여촌이란 동인지가 우송되었다.
잉여촌 - 남아있는 촌락? 그런가.
동인지를 펼쳐보니 젊은 시인들 싱싱하다.
그 해 가을, 이상개라며 찾아왔다.
오래 사귄 문우처럼 다가왔다.
-장 시인, 우리와 함께 동인이 됩시다.
예, 남은 자리 있으면 함께 하지요.
그날 울산 시장터에 나가 고래 고기 소주 한잔
울산 이준웅 시인을 소개하고 함께 했네.
세월 흘러 그날 고래 고기로 한잔했던
그리운 두 문우, 동인들 먼저 가버렸다.
함께 시를 쓰고 이야기 꽃 피웠던 동인아
먼저 갔으니, 이제 내 자리도 잡아 줘.
촛불은 제 키를 낮추어 세상을 밝힌다
―송재 이상개 벗에게
조남훈
누군가의 배경으로만 살아오며
불꽃의 눈물을 받아내며 세상을 밝히던
넌, 촛대의 역할을 잘해냈다
어둠을 밝히려
불꽃을 밀어올리며
눈물로 눈물을 업고
세상을 떠나면서도
탓 한 번 없이
순명하듯 살아온
넌 성자의 삶을 살았다
스러진 그믐달이 초승달로 살아나듯
네가 다시 태어나도, 넌
촛대 아니면
꽃을 받쳐든 수만의 침봉을 택했을 것이다
오순도순 모여있는 불빛을 찾아갈
“내 집이 없다”했지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까지 비워주고 떠났다
죽어서도 가난한 시인이었으면 한다
지상에서의 축제를 끝내고
너는 내 곁을 떠났지만
결코 난 너를 보낸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