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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성당 축성식 무렵, 배신부님과 사목위원들과 함께...
12월9일(화) 그동안 신축 중이던 “안나의 집” 開所 祝福式에 다녀 왔습니다.
지난 몇 개월 공사 중 일때 가진 건 시간 밖에 없는 편이라 지나는 길에 몇 차례 들려 예정보단 조금 늦었지만 어려운 여건
중에도 공사가 진행되는 모습과, 신부님이 현장에서 바삐 오가시는 모습을 뵙긴 했지만, 워낙 소심한 편이라 인사 한번 못 드리고,
신부님과 후원자들의 염원과 기도로 뜻하는대로 이루어지길 멀리서 빌어 보기만 했습니다.
開所式에는 예상외로 많은 참석자들이 함께 하셨는데 아마도 300여명은 족히 되 보였고,
개소식을 執典 해주신 이용훈 마티아 副 교구장님, 駐韓 敎皇廳大使이신 OSVALDO PADILLA 大主敎님(?),
駐韓 이태리 대사관 관계자, 城南 代理區長 신부님, 이기수 신부님, 그 외 20여분의 신부님, 20여분의 수녀님,
지역 국회의원 심 모 의원, 시청 사회 복지국장외 관계공무원, 지역 각종 민간 단체장들, 工事 관계자 여러분,
후원자 및 봉사자들, 특히 옛날 신흥동 성당에 계셨던 배 로제리오 수녀님은 포항에서 올라오셔서 축하의 자리를 함께 하셨고,
그 외 많은 분들의 축하속에 성대하게 치루는 현장을 지켜 보다가 그동안10여년 동안에 602,000여명에게 급식을 제공했다는
부주교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신부님의 열정과 노고에 경외감과 함께 처음 신부님을 뵙던 시절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80년대 후반 영세를 받은 무렵, 본당 보좌신부님으로 오셨을 때 처음 뵈었는데 첫인상은
(지금도 그렇지만 신심도 별로였던 때의 느낌을 회상 하는것 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유럽인치곤 아담한 체구에 파란 물감을 들인 듯 한 눈동자와 아주 깨끗하고, 선한 인상에 마치 잘 다듬은 조각상을 대하는
듯 해서 고국의 처녀들의 흠모깨나 받았을 것 같고, 뭐가 부족하고 아쉬워서,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수 없는 고행의 길인
사제가 되셔서 이 먼 이국땅까지 오셨을까 하는 다소 미련한 상상도 잠깐 해봤습니다.
우리말 이라곤 간신히 인사말 정도밖에 못하시고, 서강 대학교 어학원에서 우리말 공부를 하는 중 이라며,
메모장과 볼펜을 꺼내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발음과 뜻을 묻고 적기도 했는데, 보통의 사제들처럼 권위적이지도 않고,
겸손한 자세로 진지하게 대해 주시던 모습들이 먼저 기억이 나네요.
당시 강론 하실 땐 원고를 준비해서 간신히 더듬더듬 읽는 정도인데. 밤새워 준비 했는데도 잘 하지 못했다며 자책 하시기도 했고,
그 후 몇 개월 지나 부활절 미사 후, 갈마터널 지나 좌측에 있는 “정일품”식당에서 사목위원과 제 단체장들과 보신탕으로 회식을
하게 #46124;는데 (저는 보신탕 소리만 들어도 뱃속이 부글거리는 정도로 비위가 약하고 적응력이 좀 떨어지는 그런 편인데...)
마침 신부님이 제 앞에 자리해 맛있게 잡수시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이해가 잘 안되어“신부님 그게 무슨 고긴 줄이나 아세요?
하고 어쭸더니 웃으면서 잘 알아요 하시며 들려준 애기가 이태리에서 어머니가 식사때면
“너는 외국에 나가 해외선교를 할 텐데 자기나라 음식조차 가려 먹으면 외국에 나가 어떻게 적응하며 선교 사업을 하시겠냐“
며 혼내시기도 했고, (띠용~~강한 장수아래 약졸이 없다고,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로고!!)
처음 선교사로 파견되신 곳이 아프리카의 세네갈인데, 환영식 때 나온 음식이 무슨 벌레로만든 음식이어서 주저했더니,
현지 책임 신부님이 하신말씀이 “이런 낙후된 지역의 선교를 하려면, 먼저 자신이 現地人化 되어야 하며 그곳의 문화와
전통을 받아 드려야 하는것도 선교사의 소임이라며 , 못먹는 음식을 환영식에서 차려 내오겠냐며,
현지에 하루 빨리 적응키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그들과 같은 생각과 같은 생활을 하는것이 現地語를 빨리 익히는
지름길 이라고 하셨다며, 젓가락을 뱅뱅 돌리기만 하는 저에게 웃으며 자꾸 권하는데, 부끄럽기도 했지만 차원이
다른 신부님의 생각과 자세, 그리고 우리들에게 다가서는 그분의 모습에서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기도 했고요, 생각이 짧고 부족한 저에게 큰 교훈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서점에서 본 책이 있었는데, 작가와 제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베네치아의 韓人 巨商에관한것 인데 대충의 줄거리는
“임진왜란 당시 총포수로 참전했던 비천한 신분의 한 남자가 전투중 생포되어 일본으로 끌려가서, 이태리 상인에게 노예로
팔려 베네치아의 어느 巨商의 종으로 비참한 생활하다가, 그의 성실함과 영민함에다 수치에 밝은 모습이 巨商의 눈에 들어 무역과
장사를 배우고 돕다가 독립하여, 이태리에서도 손꼽히는 巨商이 되가는 애기와, 당시의 이태리의 문화와, 서민들의 삶,
상인들이 全世界를 향해 무역을 통해 富를 이루는 과정등을 그린 상, 하권으로 되있는 그런 소설인데
“ 신부님의 우리말 공부도 되시고, 母國인 中世 이태리의 흥미진진한 당시의 모습도 느껴 보시라고 신부님께 드리고,
식사라도 대접할 요량으로 어렵게 뵙기를 청했더니, 혼쾌히 응하시며, 식사는 다음에 하시자며 드라이브나 하자시는데
저야 不敢請 이지만 固所願 이지요.
그렇게 해서 약 4시간여를 굳은비가 내리는 빗길을 오가며 많은 말씀을 듣게 되는 영광을 갖었습니다.
그 중 기억나는 말씀으론 유럽에서는 신부님이 지나가면 침을 뱃으며 모욕을 주는일이 흔히 있으며,
물질문명의 발달로 온 세상에 즐거움이 가득한 현재의 세상에 적응을 못하고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낙오된 그런 사람으로
보기도 하고, 남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갈수록 성직자가 되고자 지원 하는 젊은이가 적어저서
종교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한국에 와서 느낀점과 부러운것이 사제가신자들의 존경과 대우을 받으며
사목활동을 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과 예우를 크게 받고 있다며 김수환 추기경의 예까지 들어주시며,
세계적으로 신학교 지원자가 늘어가는 몇 안되는 특별하고 축복받은 나라라는 말씀 끝에 ,누이동생이 얼마 후 결혼을 하게 되는데
혼배성사를 오빠가 있는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는 얘기까지 듣고 저녁 미사시간이 다되어 사제관에 모셔드린지,
몇 개월 후 신흥동 성당 교중 미사시간인 11시에 이태리어로 진행하는 결혼식을 올리게 지요.
교중 미사시간에 혼배를 이탈리아어로 하는 경우는 전후,후무 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조 신부님이 크게 배려 했었다는 후일담도있었지요.)
특히 인형같이 조그마한 신부가 너무 예뻐 너도나도 다가가 축하인사로 악수를 청하며 앞사람이 하는데로 저도 뜻도 잘 모르면서
Congratulation 이라며 혀도 잘 안돌아가는 인사도 드렸고 전 신자들의 축복속에 성대한 결혼식을 마치고,
빈첸시오 신부님의 아버님,어머님,이모님,남동생,신랑신부,신부님은 각자 맞춰둔 한복을 곱게 차려들 입으시고, 단대 쇼핑 앞의 조그만레 스토랑에서 간단한 식사 후, 견진 대부님인 김평창(안토니오)님의 권유와 추천으로 약 6시간여에 걸처
신행 겸 관광을 하게 되었는데, 야고버 등과 함께, 제 차에는 통역 한분, 양 부모님을 모시고 한창 개발중인 분당 신시가지를
거처 ,남한산성엘 들렸을 때는 한복입은 외국인들이 신기했던지 등산객들이 권하는 막걸리를 사양치 않으시고 쭉쭉
들이키시며 어깨춤을 따라 추시던친 화력이 뛰어나신 아버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특히 기억 나네요.
(신랑신부가 귀국 후 감사인사를 우리말로 써서 보내준 글씨가 놀랄만큼 잘 썼더군요. 옛 사진첩을 뒤저 찾은 사진을 스캔해서
맨앞에 올려보는데 선명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혜량 있으시길...)
그 후 보좌신부직을 그만 두시고, 세곡동쪽에 단독주택을 개조해 오브라띠 수도회 건물을 구입하신 후 활동 하실 때
주공 형제회 피정을 그곳으로 갔는데 5개국 성서(이태리어, 영어, 불어, 그리스어, 한국어.) 를 쭉 펴시고는, 번역의 차이등으로
복음 전달이 덜 되는 부분들을 지적하시며,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이라며, 그리스성서로 해설해 주시는 모습에
저희 모두가 경악했던 기억과 함께, 학자가 되려 했던 때가 있었다는 말씀도 들려 주셨지요.
그 다음해 주공 형제회 송년회를 “안나의집”에서 신부님의 특강으로 예전의 술파티를 없애고, 경건한 한해로 마무리 하기도 했고,
“안나의집”에서 무료급식 준비중에 갑자기 단수조치가 되서 물이 없어 음식준비를 못 하고있다는 연락을 받고,
마침 지인이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어 신부님 전용차인 다마스로 있는 용기마다 물을 담아 수없이 실어 날라 급식을
차질없이 마친일도 있었고, 수정 노인회관에서 안나의집을 운영하실 때 연락을 받고 찾아뵈었더니 성남동 성당
복지 분과장 형제가 외진 주택가를 한채 빌려 노숙인, 알콜 중독자등을 보살피는데 혼자힘으로 감당을 못해 많이 힘들어
한다며 십만원 수표 한 장 내미시며 남성속옷을 사가지고 가보라 하시기에 큰 부담없이 그곳엘 들렸더니 지옥이
따로 없더군요. 입구에서부터 술에 만취한 사람들이 시비를 걸고,
방이 3개인데 방마다 오물과 배설물에 아무데나 널부러저 있는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고는 할말을 잊었습니다.
그곳을 운영하는 형제님에게대충의 현항을 듣고 겨울이 었는데 당장 필요한 옷가지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쥐뿔도 대책도 없으면서 우선 퀴퀴하고 구토가 나 참기 힘든 그곳의 냄새를 견디지 못해 알았다고 하고선 뒤도 안돌아보곤
줄행낭을 치려는데 , 어떤분이 파지와 박쓰종이를 이고와 그 집앞에 내려놓는 그분이 절 붙잡고 리어카 한대만 있으면
더많은 파지를 수거해서 그곳식구들과 이겨울을 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듣곤 함께 눈물을 흘리며
사흘 후 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비탈길을 내려 왔습니다.(성호시장 건너편 교육청뒤 주택가)
주변머리와 능력이 한참 모자라는 제가 어떻게 도울수나 있을까 하고 밤새 고민하다가 다음날 마침 이발할 때가 되어
자주 가는 이발소엘 갔더니, 평소 알만한 분들이 5-6명이 모여있고, 거의 다 신자가 아닌 분들인데, 그분들께
어제 다녀온 얘기를 들려 드리며 리어카 한대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분이 십여만원 정도라고 알려주어서
도움이 절실한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 주자고 권유했더니 너나 없이 동참해주어120,000원을 모아 다음날 형제님에게
전달하고, 돌아와 겨울옷은 어디서 구하나 궁리끝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파트 각동마다 헌옷이나, 입지않는 겨울 방한복들을 수거해서추위와 굶주림에 힘겨운 겨울을 지내는 불쌍한 이웃에게 전하려 한다는 취지의 안내문을 써 부치고 큰 박쓰를 각동마다 비치하고는, 주공 형제님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상가에서 배달 가시는 분들에게 수거를 당부 드렸더니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셔서 일주일 만에 18박쓰를 수거해 분류 작업 후
빈첸시오 신부님께 전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담이 맞긴 맞나봐요.)
그 무렵엔 신부님은 한동안 턱수염을 기르시던 시절이었는데, 서양분이라 그런지 잘 어울리시기도 했었는데,
어느날 깔끔이 면도를 하셔서 연유를 여쭸더니 노인분들이 동양에서는 나이 많은 분 앞에 젊은 사람이 수염을 기르면 건방지고,
나이 많은 분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 할수 있다는 충고를 받고 면도를 하셨다는 말에 순진하시기도 하시지 하며
한참동안 웃었던 기억도 떠 오르네요.
그 무렵 자전거를 이용 수정회관을 오가셨는데, 어느 날 자전거타고 나오시다 1,5톤 화물차에 치여 삼성병원으로 후송되셔서
입원치료 중이실 때 수많은 문병객이 찾아오자 그들에게 페를 끼친다고 잠시 잠적하시기도 했고요.
그때 맺은 인연으로 삼성의료원의 이강우박사를 위시한 삼성 의료진이 안나 의 집에서 의료봉사를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네요.
수정회관 운영을 타의에 의해 그만두신 안타까운 일도 있었구요.
그렇게 그리스 조각상같은 꽃미남이 개소식때 뵈니, 눈가의 잔주름이 자글자글해 지신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과 함께,
그동안의 노고가 얼마나 크셨는지 가히 짐작 되어지고 숙연함을 느껴지기도했고,
속 터놓고 지내는 교우들 끼리는 빈첸시오 신부님은 " 살아있는 성자다 " 라고 얘기할 때도 있습니다.
이세상에 모든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저 “안나의집”이 필요치 않는그런 날들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도드립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 (개신교 성서)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 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성경 욥기8,7.)
*오래전에 주제파악도 못하고 대부를 선적이 있는데, 그 영세자가 세레 명을 뭘로 할지 고민타가 제게 의논 해 와서
안나의 집에 들려 신부님의 모습을 보여 드리며 “빈첸시오”성인을 권해 그 대자의 세레명은 “빈첸시오”입니다.
회장님! 우리회장님 회장님이 계셔 더욱 빛났어라!
부주교님, 교황청 대사님, 이태리대사관 관계자,들이 빈첸시오신부님에게 축하인사를.....
천사의 미소를 지닌 안젤라, 한복입은 자태가 곱기도하지 ! 아들 있으면 며느리 삼을텐데...
수녀님이 포항으로 떠나시기 몇메타 전.... 사무국장 안나 자매님과 함께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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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시는 성자같은 빈첸시오 신부님. 함께 하지는 못하였으나. 축하드리옵고, 참석하셔서 축복하시고 그림까지 담아오셔서 장문의 글과함께 올려주신 스테파노 형제님의 정성과 수고하심으로 잠시동안 또다시 축억속에 다녀왔습니다. 결혼식부터 남한산성 드라이브 ... 그외 에프터 일까지도... 죄송스럽고 감사드립니다. 안나 자매님은 물론 천사같은 안젤라님도. 반갑습니다.
이 많은 일들을 그리도 다 기억하세요? 대단하시네요. 오늘 안나의집 사무실 이사를 하였습니다.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내용도 차근히 보고 이렇게 답글 올리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복한 하루 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날 참석해주신분들과 신부님을 알고 계신 모든분들께 주님의 은총 충만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