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섭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접해 듣는 마음이 참으로 허망하고 슬프다. 선생님을 이제는 아주 뵈옵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속절없는 허망함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내 소년기 고단한 현실의 와중에서도 이런저런 꿈과 용기를 심어 주시던 분, 내게는 소중한 학은의 인연 깊은 어른 한 분을 여의게 된 것이다. 슬픔이 아프게 져미어 온다. 선생님의 운명 소식을 맞아 더욱 송구한 것은 근황 조차도 모르고 지내온 나의 불민스러움이다. 오래도록 그냥 마음으로만 그렇게 모셔 두고 있었을 뿐, 찾아 나아가 뵙지 못한 세월이 여러 십년이 되었다. 내가 선생이 되어서 달리 제자의 도리를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 선생님 불초한 이 제자를 용서하시옵소서.
선생님께서는 1964년 중학교 3학년 시절 나의 담임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의 영어 강의는 선생님 특유의 퍼포먼스가 효과적으로 수반되는 것이어서 지금도 아련한 향수 속에 떠올린다. 완료시제에서 'since'나 'for' 같은 말들이 어떤 시간 개념을 가지는지를 설명하실 때는 칠판 전체를 가로지르는 선을 그리시던 모습이 어제인듯 떠오른다. 선생님께서는 열정과 박력이 넘치셨고 우리들에게 '야망'을 가지고 미래에 도전할 것을 설파하셨다. 'Boys Be Ambitious!'를 외치실 때의 모습은 지금도 가슴에 선연히 남아 있다. 그것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공부로 흔연하게 입문하는 즐거움 같은 것을 선생님에게서는 은연중에 가르쳐 주신 것이다.
호랑이처럼 엄격하시고 무서우셔서 숙제로 낸 영어 단어 숙어를 외워 오지 못하면 아주 엄하게 닥달하셨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었고 가차 없이 회초리를 드셨다. 선생님의 테스트를 100% 통과하기란 어렵다. 두 세번 선생님의 회초리를 경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실로 나는 그 중3 시절에 가장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런 열정을 당신 스스로 일종의 교수 철학으로 정립시켜 계셨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엄격하셨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따뜻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짐짓 호된 기합을 주시고서도 격려와 고무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으셨던 분이셨다. 이상적 모형을 소개하여 노력의 한 지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생에 대한 애정 없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대범한 규범으로 다루시려 하셨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浩然之氣의 철학 같은 것을 가지고 계셨다. 당당하지 못하거나 책임감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준렬하게 꾸짖으셨다. 그러나 가능성에 대해서는 흡족한 피드백을 구사하시는 분이셨다. 그런 모습들이 지금의 내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아울러 양양한 풍류의 멋도 지니고 계신 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영문학 공부 과정을 자랑삼아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셨다. 세익스피어를 원어로 공부하는 과정의 어려움 같은 것을 어린 우리들에게 설명할 때, 나는 문학 공부의 공간을 내 나름대로 꿈꾸어 보고 그것의 가치에 대한 내 나름의 상상력을 마음껏 확장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는 내 나름의 문학에 대한 정체감 같은 것에 눈뜰 수 있었던 것이다. 후일 내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일생을 꾸려가게 되는 정신적 자양을 얻을 수 있었다고나할까?
선생님이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세속 마음을 내려 놓고 망연한 심회에 들게 된다. 소년기 마음의 뜨락, 그 한 모퉁이를 엄정한 어른으로서 지키고 계시던 분! 우리들 김천중학교 시절 온갖 희로애락의 추억을 일거에 환기시키는 어떤 근원으로서 계셨던 분! 선생님, 비록 이 세상에서 선생님을 여의지만, 이제 우리들 마음에서 멸하지 아니하는 표상으로서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 이제 세상 근심 다 내려 놓으시고 편히 잠드시옵소서.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