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날....성령이 강림하는데.....
궁금한게...그전에도 성령은 함께 계셨을텐데.....
왜??다시 부어주셨는지... 아니면... 요엘서에 예언된것을 이루기 위함인지
그렇다면. 원래 함께 하셨는데 다시 부어준다는 애긴지
아니면. 이제 부터 함께 한다는애긴지
본래 구약때에도 성신을 거두지 마소서라는 그런 말으라 쓰는데,,,,즉 함께 하시는데 다신 오순절에 부어주시는 이유를 알고 싶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잖습니까??
거기서 물이 왜 나오는지....그리고 물이 중생과 관계가 있는건지..??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알겠는데...왜 물이라는 단어 까지 썼는지 궁금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님이 알고자 하는 본 질문에 답변해 나가겠습니다. 님의 질문의 요지를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서의 성령의 사역과 임재 방식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잡고 답변해 나가겠습니다. 님께서 언급하였듯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있은 오순절에 성령 강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단순하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이 갖는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함께 하시며 이들의 구원을 위해 일해 나가시는 성령님의 사역의 원리를 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으로 베푸시는 세례 곧, 성령 세례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 세례가 갖는 중요한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택한 자들에게 죄 사함과 함께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일인 중생입니다.
그런데 님이 궁금해 하고 있듯이, 중생시키시는 성령의 사역은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은 후인 신약 시대에서만 있는 일은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서도 당연히 있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에서도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중생시키시는 일하심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신약 시대와 구약 시대란 시대적 구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전 시대에 걸쳐서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임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 것인데, 무엇 때문에 오순절에 성령 강림이란 이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만 했던 것인가 하는 것이 님의 마음에 궁금증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구약 시대에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의 사역이 갖는 특성의 이해입니다. 님께서도 알고 있는 것이겠지만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삼위로 표현되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대한 자기 계시로서 창세 전의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이로 말미암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때 삼위일체로 표현하여 묘사되어지는 하나님은 항상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함께 일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 안에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같이 일하신 것이지 성부 하나님만이 일하시거나 성자 하나님만이 일하시거나 성령 하나님만이 홀로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부 하나님의 일하심에서는 성자 하나님의 일하심이, 또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 병행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중요한 사역으로 있는 중생에서도 그렇습니다. 기독교에서 중생 교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참 생명으로 새롭게 생명을 주신 은혜의 사역입니다. 이때 이 중생의 사역은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 성령님의 호칭이 "성령"(또는 성신)이란 단 하나의 호칭으로 불려지지 않고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란 호칭 외에도 하나님의 신, 여호와의 신, 하나님의 기운, 주의 성신, 주의 선한 신, 성신, 지혜의 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영 등으로 참으로 다양한 것입니다.
이 성령님께서 중생케 하시는 사역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지배 아래에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새롭게 생명을 주시는 일이기에 이것이 가령 신약 시대라든지 하는 어느 한 시대에 한정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시대에 걸쳐서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서도 중생시키시는 성령님의 사역이 있어왔다는 것은 결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생의 사역과 관련하여서 구약 시대에서의 성령님의 중생의 사역은 신약 시대의 중생의 사역과는 구분이 되어집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의 방식과 관련하여서 언약에 의한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하여 드러내시며 이를 온 세상에 구원의 원리로 알게 해 주고 있는데서 성령님의 중생의 사역도 이해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을 봅니다. 그리고 이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게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창세 전에 가지신 예정과 선택의 교리를 적용해 나가십니다. 이때 이를 세상에 알게 하시는 방법에 있어서 선민 사상을 함께 중요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선민 사상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보는 것입니다만, 사실은 아담 때에서부터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보는 "약속의 씨"에 따릅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시험자인 뱀에게 내리신 심판을 통해 유혹의 장본인인 사단에게 내리신 심판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14-15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심판의 진정한 의미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아담의 아내인 하와와 함께 하면서 그의 마음을 사단으로부터 지켜 나가시고 그에게 사단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적개심을 일으켜 나가게 하셨듯이 하와가 낳은 자손과 그들에게서 나는 후손들인 모든 인류 가운데서 사단과 원수가 되는 관계에 놓일 하나님의 택하심의 은혜를 입은 모든 자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악한 세력으로부터 단호하게 지켜 나가시는 중에 장차 "여자의 후손"에게서 뱀과 대적하여 이기는 "여자의 후손"이 나게 하여서 뱀을 조종한 배후의 존재인 사단과 그의 악한 나라를 멸망시키실 분인 메시야를 약속으로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뱀을 조종한 배후의 존재인 사단이 장차 처할 운명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사도 시대에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메시야로 오실 이 여자의 후손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아담의 아내인 여자에게서 난 후손들 중에서 아브라함이 있었고, 아브라함 안에서 그 자손[아들]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과 관련하여서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그]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브라함 안에서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받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서 시작하셨으며, 그리고 또한 모든 이방인이 이 복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담 이후로 이어지는 아벨과 계속되어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에게서, 그리고 또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유대인에게서 보이신 선민 사상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믿음이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원리를 보여주십니다. 여기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원리를 세상에 드러내어 알게 하시는 하나의 표적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구원받은 자인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이스라엘로 택하신 것을 통해서 이들에게 주신 언약의 율법의 지배를 받는 믿음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아브라함을 혈통을 타고난 자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참 유대인이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구원 사역에서 구약 시대의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자들을 중생시켜 나가는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참 하나님의 백성들의 중생을 주관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으면서 믿음으로 산 의로운 자들을 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된 성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하여 우리는 이들이 중생한 자라고 하는 사실에 조금도 의심을 품지 않습니다. 가령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되고 있는 믿음의 인물들인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인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 믿음을 보인 여러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이들의 중생을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들의 중생에 성령님께서 계셨다고 하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되고 있는 믿음의 인물들에게서는 삼손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그의 출생에 있어서 여호와의 사자는 그가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려 뽑으신 나실인인 것과 그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건져낼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삿 13:3-5). 그리고 삼손은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잘 자라났으며,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감동하심으로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할 강한 자가 되어갔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삿 13:24-25). 이런 삼손에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셨다"(삿 14:19)는 것을 말씀하심으로 여호와의 신, 곧 여호와의 신에서 말해지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삼위이신 성령님께서 삼손과 함께 하심이 거듭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삼손은 20년 동안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생애는 참으로 비참하였습니다. 들릴라의 관능의 미에 빠지고 원수인 블레셋에 잡혀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신인 다곤에게 성대한 제사를 올리는 데서 두 눈이 뽑힌 채 두 기둥 가운데 묶여서 조롱과 멸시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이런 삼손은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 16:20)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 생애를 블레셋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어 구하기를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하였을 때 그가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다고 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다시금 강한 힘을 주어서 그가 묶인 두 기둥을 무너뜨려 집이 무너져 그 안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과 왕들을 내리 덮쳐 모두 죽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삼손에게서 떠나셨던 여호와의 신이 다시 또 그에게 함께 하신 모습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삼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구약 성경에서는 그 시대에서는 여호와의 신께서 믿음의 인물과 때로는 함께 하시는 모습을 띠나 또 어떤 때는 이들이 여호와의 신을 근심하게 할 때는 그에게서 떠난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 시대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하여서는 당시의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중생 사역을 주권적으로 해 나가시며 또한 이들이 성령님께서 자신 안에 내주해 계심을 의식하고 살아가게 하시나(시 51:11, 139:7, 143:10), 장차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부활 승천으로 성령 강림이 온 세상의 교회 위에 미칠 보편성을 띠기까지는 표면적 선민인 이스라엘 안에서 내면적 선민인 언약의 율법 아래에 있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서는 구원의 원리에 의한 방식의 중요성이 "언약"에 있었으며 이 언약의 특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언약"으로 미칠 것이지만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의 언약"으로 미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청종의 자세가 그들이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신앙으로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를 판단하며 이로써 하나님과 그 백성의 실질적인 관계성이 입증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에게는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며 도우시고 축복을 내리시는 분으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성령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고 떠나셔서 버리심으로 저주를 내리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에서 종종 어떤 믿음의 사람에게서 임재하신 성령님이 떠난 것으로 표현하여 묘사되고 있는 것이 그들에게 주셨던 중생의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곧 중생을 취소시키는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듯이 또한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에게서 그의 어떤 일로 인해서 떠나셨었는데 어느 때에 다시 임재하여 함께 하실 때에 그것을 중생의 생명을 뺏었다가 다시 주시기도 하는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믿음의 인물에게서 성령님의 임하심과 떠나시는 모습을 취하는 것은 중생의 사역을 설명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언약의 율법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으로서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야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까닭에 있으며,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주이시기에 그들의 삶을 복있게 주관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믿는 자의 중생 사역과 관련한 성령의 임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지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있은 성령 강림에서입니다. 이 성령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사역의 관련에서 있는 일입니다. 우선 세례 요한은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있게 될 성령[과 불] 세례를 말하였습니다(마 3:11, 막 1:8, 눅 3:16, 요 1:3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육신을 입고서 구속 사역을 행하여 나간 이 세상에서 떠날 때를 언급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셔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이 세상의 죄와 하나님의 의와 심판에서의 구원의 의미를 바르게 알게 해 주어서 깨닫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요 16:7-8). 그런가 하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는 행동을 취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심으로 장차 임할 성령 강림에 의하여 있게 될 죄 사함에 대한 기대를 고취시켜주셨습니다(요 20:22-23). 그리고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이루시고 죽으신지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여러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보이며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제자들의 증인 사역으로 온 세상에 있게 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에 있은 성령 강림은 이후에 있을 성령 세례란 방식을 원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있은 성령 강림의 사건은 단회적이나 여기에서 보여주시고 있는 성령 세례는 원리적으로 온 세상에 미치는 참으로 위대한 사건인 까다락은 그래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강림으로 온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죄 사함과 함께 하나님의 참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모든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셨습니다.
이 성령 강림은 베드로에 의해서 설교되었듯이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행 2:16-21).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핵심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것이며, 이로써 그날에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의하여 성령 강림은 오순절의 한 시대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서 이것에 의하여서 각처에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는 자들은 구원을 받아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전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주 우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또 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이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에서 성령 강림이라는 종말론적인 큰 사건이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 그동안 특별히 선택받는 사람들에게 언약의 율법을 통해서 계시되어져 온 대속(代贖)에 의한 구원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과 부활에 의하여 온 세상에 은혜의 복음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죄 사함과 생명을 주시는 일을 해 나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을 성령님께서는 견인(堅忍)해 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자기의 백성을 끝까지 구원의 완성에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며 그래서 영화의 세계에 이르게 하시는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그들의 마음에 의한 믿음의 법을 통해서 해 나가십니다. 이것이 칼빈의 5대 교리의 하나인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입니다. 이런 까닭에 신약 시대에서는 성령님께서는 성도와 항상 함께 하시는 모습이며, 결코 그에게서 떠나는 모습을 취하시지 않습니다.
이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잖습니까?? 거기서 물이 왜 나오는지....그리고 물이 중생과 관계가 있는건지..??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알겠는데...왜 물이라는 단어까지 썼는지 궁금합니다"에 대하여 간략하게 답변하므로 본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성령님의 중생시키는 사역을 "물과 성령으로"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가진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인데(요 3:5), 이것은 중생케 하시는 성령님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서 입니다. 이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물과 성령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라고 보아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중생케 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 물과 성령에서 물을 "세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래서 세례가 주어지는 것을 통해서 성령께서 중생케 하는 일을 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 여기서 물은 구약에서 종종 그랬듯이 사람의 내면적인 정결케 하는 사역을 수행하시는 성령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후크마(Anthony A. Hoekema)가 있습니다. 이 견해가 가장 근접한 견해라고 보는데, 물과 성령은 "물, 곧 성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출생시키는 신적 집행자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중생케 하시는 일에 그 수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시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중생 사역의 수단으로서이지, 사람의 타락한 부패성(죄의 오염)을 씻어 정결케 함으로 새생명을 소유케 하시는 직접적인 사역은 성령님이 하십니다.
이 정도로 님의 질문에 대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부디, 님께서 궁금해 하는 것이 본 글을 통해서나마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님에게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에게서도 기쁨과 위로가 될 것입니다.
첫댓글 수련회를 갔다왔다가 오늘에서야 읽었습니다 부족한자에게 좋은 말씀 계속적으로 답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