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산(箕山)김준근 풍속화 속의 고전머리모양에 관한 연구
우리는 현재 21세기 포스트모던시대, 지식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개인과 국가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고전머리 모양에 대한 전망과 대안들이 요구되어 진다. 고전머리 모양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하고 이슈를 선점해 나가며 개인과 사회에 고전머리모양에 관한 연구가 간절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고전머리 영역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미용인의 권익이 부각되어 사회적 영역에서 고전머리모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기산(箕山) 김준근 풍속화 속의 고전머리모양에 관한 연구에 있어 이론적 개념을 정리하고 실증을 대한 새로운 영역을 구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복식(服飾)은 옷을 위주로 하여 머리와 신발을 모두 아우르는 분야이다. 그중 머리에 해당되는 수식(首飾)이나 두식(頭飾)은 가장 풍속적인 면과 관련이 있는 분야로 복식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머리모양의 변천은 곧 풍속의 변천을 의미하며 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이에 흔히 조선시대 마지막 풍속화가로 일컬어지고 있는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여성들의 머리모양들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 여인의 머리모양 발자취를 찾아보고자 한다. 기산 풍속화를 그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곳에 표현되어 있는 여성의 머리모양에 대한 고찰이 그리 넓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산 이전의 머리모양 변천에 대해서는 다방면으로 다루어져 왔지만 그 마무리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기산의 풍속화에 대해서는 그리 주의 깊게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기산 풍속화가 일반에게 소개된 것이 불과 십여년 전에 불과한 데에 있을 것이다. 처음엔 화젯거리 정도로만 알려졌다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 이를테면 독일 함부르크 민속 박물관, 영국 대영 박물관, 프랑스 기메 동양 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모스크바 동양 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고,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양이 천여 점이 넘는다는 점, 거의 대부분 풍속화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련 전문인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본 연구에서는 여성의 머리모양 변천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기산의 제작 기법이나 미술사적인 고찰은 예외로 하기로 한다. 단지 그 그림 속에 표현된 조선조 말기 여성들의 모습에서 머리모양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기산 풍속화에 표현되어 있는 여성의 머리모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부터 보여 지는 한국 여인의 머리모양 변천이 그 마지막 단계에서 보여 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곳에는 있을 줄 알았던 머리모양이 보이지 않고, 없어질 줄 알았던 머리모양이 끈질기게 남아 있으며, 몇 번인가 변화했던 머리모양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본 연구는 그 의미를 밝혀보려는 논의를 전개하면서 우선 기산 김준근이 누구이며 그의 행적과 그림의 성격, 그리고 소장처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다음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그림의 종류를 파악해보고, 본 연구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여성머리모양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해보려고 한다.
다음으로 그 머리모양별로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봄으로써 풍속으로써의 머리모양이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명멸해온 자취를 밝히고자 한다.
또한 기산 김준근에 대해서는 생몰년과 출생지, 행적 등이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일설에는 중국에서 귀화한 사람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그의 호 기산(箕山)이 국내 기록엔 없고, 중국측 기록에 있을 뿐만 아니라 기산이라는 지명이 실제로 하남성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풍속화를 보면 그의 국적이 조선 이외의 다른 나라일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선 서민의 일상적인 면면들이 폭넓고 생생하게 묘사하게 되어 있다.
그는 한마디로 그림만으로 말해주고, 그림만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작가이다. 근세와 현대의 갈림길에 해당되는 시기에 활동했으면서도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림의 수량이나 소재 등으로 볼 때 불가사의하다 할 정도이다. 그는 이를테면 근래 들어 작품이 알려지면서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본격적인 조선의 풍속화가 중 그 맨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풍속화는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넓은 의미로는 고구려 고분 벽화는 물론이고 암각화, 불화까지도 포함된다. 그러나 현실 생활의 희노애락이 주제가 되어 표현된 조선시대 풍속화의 등장은 윤두서의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이에 기산 김준근의 시대적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 조선시대 풍속화가의 맥락을 개략적인 도표로 만들어 살펴보기로 했다.
또한 수집된 풍속화 요소를 바탕으로 전문가와의 심층면담을 통해 조선시대 풍속화 요소들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규명하였다.
이 연구는 에 관한 기산(箕山) 김준근 풍속화 속의 고전머리모양 이론적 준거를 채택하여 다각적측면의 연구방법으로 적용하여 진행되었으며, 고전머리모양연구는 점진적인 면에서 기산(箕山) 김준근 풍속화 속의 고전머리모양은 학문과 예술적 가치에 크게 기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연구방법과 절차를 통하여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고서와 기산 김준근 풍속화 대상으로 조사 실시하였고, 연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정의 연구절차를 거쳐 실증연구를 구성 하였다. 본 연구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고, 앞으로 기산 김준근 풍속화 연구의 수준의 향상을 위한 보다 나은 연구를 위함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본 연구를 수행하면서 기산(箕山) 김준근 풍속화 속의 고전머리모양에 연구가 전혀 없는 가운데 진행되어져서 여러 어려움이 많았다. 앞으로 기산(箕山) 김준근 풍속화 속의 고전머리모양에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