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로 사랑은 시작되고 ..정영선(저의 친 누나입니다)
승민이가 자고 있다. 열 달을 뱃속에서 웅크려 지내다가 이제 다리도 쭉 뻗고 팔도 쭉 펴고서 잠들어 있다.
작고 귀여우며 사랑스런 아기다. 연분홍빛이 도는 투명한 살갗에 오목조목한 눈, 코, 입 그리고 부드러운 곱슬머리에 잔털이 보송보송한 귀…….
아기는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눈썹을 찡그리기도 하다가 입을 벌리고 생긋 웃기도 한다.
배냇짓이라 해도 아기가 웃을 땐 내가 더 행복해진다.
지난 몇 년간은 정신적으로 참 지루하고도 힘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이 된 두 딸을 낳고서 이제는 그만 낳아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남편이 집안에서 장남이지만 남녀차별이 아직 남아있는 이 시대에 반기를 드는 기분으로 이제 그만 낳을 거라고 선언하면서 두 딸
에게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 결심도 흔들렸다. 명절이나 제사 때면 시집 식구 대하기가 왠지 미안하고
대를 이어가는 남편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들 필요 없다는 남편도 속으로는 은근히 바라는 눈치여서 더 늦기 전에 한 번 더 아기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꿈에 호랑이 새끼를 안았다는 시어머님의 태몽과 함께 임신을 했고, 온몸에 핏기 가시는 듯한 입덧도 무사히 넘겼다.
임신 4개월째 남녀 성감별을 해볼까 하는 벌 받을 생각을 자꾸 하는데 배가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큰 병원에 가서 알아보니 자궁에 근종이 세 개씩이나 있다고 했다.
근종은 평소에는 작으면 별 문제가 없으나 임신 중에는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지기 때문에 점점 커진다고 했다.
성감별을 해보려던 나쁜 마음을 고쳐먹고 아기 건강하기만을 빌었다. 산달에는 태아가 거꾸로 되어있는 상태여서 인공분만을 했다.
전신마취로 세 시간씩이나 걸린 힘든 수술을 끝내고 마취가 깨어 회복실로 옮길 때, 정신이 몽롱한 중에도 무얼 낳았느냐고 물었다.
딸이라는 남편의 대답을 듣고 나는 너무 서운해서 펑펑 울다가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는 얼마나 아들이기를 바랐던가. 가족, 친척들, 이웃 사람들, 직장 동료들까지 아들을 낳기를 빌어주었는데,
조상님도 무심하시다 싶었다. 그래도 내 새끼라고 출산 후 이틀째 겨우 걷게 되자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를 보러 갔다.
다른 아기보다 좀 작아 보였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예뻐 보였다.
내가 빈혈이 좀 심해서 8일간이나 입원을 하고 있다가 퇴원을 하려는데, 신생아실 주치의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신 아기 다리가 좀 아픈 것 같으니 신생아실로 와 보라는 것이었다.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싶어 엎어지다시피 신생아실로 달려갔다.
주치의 말로는 아기의 다리를 당기면 몹시 우는데 ‘고관절 탈구증’이 의심되니 정밀 검사를 해보아야겠다는 것이다.
아기 다리를 만져보고 뻗게 해보니 정말 괴롭게 울어서 눈앞이 캄캄하였다. 주치의는 아기를 입원시켜야 하겠으니 입원 수속을 밟
으라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입원을 시키라는 신생아실 주치의가 그렇게 밉게 보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조그맣고 여린 내 아이
가 다리에 이상이 있다니 애처롭기 한이 없었다.
나는 퇴원하기 전에 내아기를 한번 안아보기나 하려고 동그랗게 다리를 오그린 채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았다.
‘불쌍한 아기야, 내가 네 엄마다. 이제 엄마 품에 안겨서 집으로 가려는데 이렇게 어린 네가 입원이라니……. 다리가 아프다니……’.
포대기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딸을 낳고 서운했던 마음은 어느새 다 없어지고, 하느님에게 매달렸다. 이 어린 생명이 건강한
정상아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고 간절히 빌었다.
시어머님의 입원 만류로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다리를 계속 주물러주고 조금씩이라도 펼 수 있게 다리 운동을 시켰다. 산부인과
의사며 여러 아는 의사에게 문의해보니 X-Ray상으로 문제가 없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여서 다소 위안이 되었다. 그 뒤 정형외과 소
아 전문의에게 아기를 보이고 초음파검사도 해본 결과 아기는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비좁은 뱃속에서 오랫동안 다리를 펴지 못하고 지내서 다리가 굳었나 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뱃속에서 머리를 위로 한 채 정상
적으로 돌지도 못하고 다리를 오그리고 지냈을 아기를 상상하니 가슴이 아팠다. 딸이라고 서운해 할 할머니와 못난 어미 때문에 오
금도 제대로 못 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 아기는 오므리고 있던 다리를 차츰차츰 펴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다가도 기지개를 켜면서 다리를 쭉 뻗는다.
내 옆에 누워 곤히 잠든 아기를 본다. 덮은 이불이 갑갑했는지 발로 툭 차낸다. 아기가 이불을 차내는 행동에 이렇게 감사해 할 줄
생각이나 했던가? 하느님은 나에게 딸이라고 서운해 하지 말고 건강하게 태어난 것에 감사하라는 뜻으로 눈물 흘릴 수 있는 시간
을 주신 것은 아니었을까?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하심으로 새 생명의 탄생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라고……. 사랑은 지금부터라
고…….
첫댓글 군대간 울 아들 생각납니다... 그 넘 놓치지 않을려고 열 달 동안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절대 모를겁니다. 딸 셋을 둔 누나군요. 집 안이 완전 꽃밭이겠습니다. 아들 셋 둔 엄마보다 많이 행복하시겠어요..^^*
요즘 테마를 다르게 잡으신듯...
요즘 딸이 좋다고들 많이합니다.생각 나름이겠지만 키워보아도 아들 많은것보단 나을듯...ㅎㅎ
즐겨 보았습니다... 감동적인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