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편 청도매전 가는길

21. 청도로 간 방범가족   몇 시간이나 잤을까? 진동 모드로 켜 논 손 기자의 휴대폰이 식탁 위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아, 예, 대장님…이래 일찍 우짠 일이십니까?” 잠결에 받은 전화라 목소리가 콰악 잠겼다. “허허 이 사람이! 일찍은, 해가 중천인데, 어제 마 사무실 정리한다고 퍼져뿐 모양이네.” “아입니더, 그나저나…” “아! 오늘 방범대 단합대회 땜에, 청도 매전 놀러 안 갈건 교?” “앗!”  탁상시계 시침이 9시를 겨누고 있었다. 경산을 지나 자인, 청도로 넘어가는 국도엔 막바지 피서를 즐기려는 차량행렬로 이따금씩 밀리다 말다를 반복했다. 더위도 살짝 힘을 잃어가는 듯 했다. 찜통더위에 유난히도 열대야가 길었던 대구의 여름도 서서히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천막과 음식 등 갖가지 짐을 실은 이사 고 성대와 김 상목의 1톤 화물차가 선발대로 떠났고, 그 뒤꽁무니를 물고 달리는 비호태권도 승합차 앞 유리로 햇살이 눈부시게 쪼개졌다. 초행길인 박 정민을 위해 비상 깜박이를 넣은 방범대 차량이 그 뒤로 4대가 일렬로 이어졌다. 조금은 텁텁하지만 창문으로 날아들 온 바람에 제각기 이마를 내맡겼다. 그 중에서도 ‘빛나리’ 대장 남도의 이마가 젤 시원해 보였다.  “박 관장! 음악 함 때리 봐라!” 맨 뒷좌석에 앉은 순찰부장 홍 선표가 목청을 높였다. 박 관장이 테이프를 틀었다.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송 대관의 ‘네 박자’가 뽕짝뽕짝 흘러나왔다. “아싸아~좋고!” 부대장 강 문도가 손뼉으로 장단을 맞췄다. 애들이 귀찮은 듯 귀를 틀어막았다. 바람이 탱탱하게 들어간 노랗고 빨간 튜브를 목에 건 아이들.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 있었다. 그래도 마냥 즐거운 듯 재잘거렸다. 손 기자의 딸 채현이가 만화 ‘짱구’ 흉내를 내며 까불거렸다. 그 모습을 본 박 관장의 딸 현지와 은지, 김 성만 조장의 딸 해수가 쪼롬이 붙어 앉아서 깔깔깔 웃어댔다.   “쇠주 한 잔 안 땡기는 교?” 왜 안나오나 했던 동영소파 장 사인의 술타령이었다. 용성을 지났으니, 청도 끝까지 가봐야 채 1시간도 안 걸릴 지점이었다. “그케 말이야! 간만에 야외 나왔는데 술이 없으면 쓰나.” 조장 윤 호도가 기다렸다는 듯 냅다 맞장구를 질렀다. “아이고 마! 쪼매마 참거라, 다 왔다 아이가, 애들도 있는데.” “…” 아이스박스가 선발대 차량에 실려 있어 마침 술도 없던 차였다. “손가락이나 빨자. 헤헤.” 장 사인이 쩝 입을 다셨다. 규석의 비호태권도 승합차가 비구니로 이름난 청도 운문사와 밀양 방향으로 갈라지는 운문 삼거리 모퉁이를 우로 휙 돌았다. 차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운문 교 밑 잔디밭은 텐트로 꽉 찼다. 비좁은 공간을 헤집고 형형색색 파라솔이 중간 중간 끼어들었다. 보트를 타고, 튜브를 끌어안고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운문 댐 하천이 복닥거렸다. 청도 매전은 대장 남도의 부인 영숙의 고향이었다. 청도 지리가 영숙 손에 있는지라, 어디에 고디(다슬기의 경상도 사투리)가 많고, 어디가 한적하고 물이 좋은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반시가 유명한 청도는 감나무가 지천이었다. 가로수도 감나무요, 밭에도 감나무요, 촌집 마당에도 감나무였다. 조금 있으면 가을이고, 처갓집에 감 따러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남도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감만 따면 몰라도 5천 평이 넘는 대추밭에, 사과나무까지 할 일이 첩첩이었다. 올해는 어쩔까나, 남도는 휙휙 지나가는 감나무 가지를  말없이 쳐다보며 짧은 상념에 잠겼다. 그 사이 차는 목적지인 매전 입구에 들어섰다.  “대장님! 여서 어디로 가는 교?” 매전 양어장 2km. 검정색 래커로 성의 없이 촌집 담벼락에 갈겨놓은 양어장 이정표 앞에서 규석이 볼륨을 낮추며 남도를 불렀다. “어? 벌써 여기 왔나, 좌회전, 저 밑에 가가 또 좌회전 하고.”  저 밑에 가서 좌회전하고부턴 울퉁불퉁 비포장 길이었다. 타이어가 지나가며 흙먼지를 뿜어댔다. 절로 꼬마들의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렸다. 게다가 꼬부랑길이었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롤러코스트가 따로 없었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농로를 털썩거리며 빠져나가자 물길을 막아놓은 넓은 보가 나왔다.  “와~” 방범대 식구들을 위해 꼭꼭 숨겨놓은 명당자리 같았다. 허긴 꼬불꼬불 얼마를 돌았는지, 한 번 와보고는 들어온 길 나가기도 어려워 보였다. 먼저 당도한 고 성대와 김 상목 내외, 총무 구 대영, 감사 정 관진, 고문 노대식이 자율방범대 천막을 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궂은일을 마다않고 솔선수범해온 방범대 고참들이었다. 차문을 열자마자 애들이 튕겨나가듯 강물로 뛰어 들었다.  방범대의 모든 행사는 가족 중심이었다. 야간순찰 근무를 서려면 어차피 가족들과 같이하는 시간을 쪼개야 했다. 그만큼 가족들의 희생과 내조가 필요충분조건이었다. 먹고 사는 게 우선이고, 강제조항은 없지만 안심방범대원들의 울트라 캡션 초특급 봉사 열정은 타대의 추월을 허락지 않았다. 더군다나, 신입대원들이 늘어나 한층 젊어진 연령층에, 애들 뛰노는 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도 안심방범대의 큰 자랑거리였다. “아따 더버라! 함 디갔다 와야 겠다!” 뒤따라온 박 정민이 웃통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첨벙첨벙 강으로 들어갔다. 새까맣게 그을린 등짝에 허물이 엉기성기 벗겨졌다. 막노동 오야지이지만 직업의식이 투철한 그였다. 현장 인부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뒤이어 강물에 뛰어든 최 칠성과 박 정복, 규석, 범순, 광출이 장난기가 발동한 듯 손바닥으로 물 치기 싸움을 벌였다. 운동으로 다져진 규석과 범순의 몸매가 미끄덩했다. 박 정복도 헬스로 뭉쳐진 단단한 몸매를 과시했다. 어린애가 따로 없었다. 자연으로 돌아오면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지는 걸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도와 기식, 손 기자가 얼굴을 번갈아 마주본 뒤 동시에 강물로 점프했다. 운문 댐 하류지만 시멘트로 쌓아놓은 보 가까이 수심은 꽤 깊었다. 어른 키가 넘는 곳도 있었다. 꼬마들 익사 사고를 대비해 대신부동산 김 영훈이 하는 수 없이 오디션 때 썼던 올빼미 모자를 다시 썼다.      다리를 쭉 뻗고 그늘에서 늘어져라 한 숨 때리는 사람들, 애들과 같이 어울려 물놀이 하는 사람들, 다리를 둥둥 걷어 부치고 유리 받침대를 수면에 대고 뚫어져라 물속을 쳐다보며 다슬기를 줍는 아낙들, 밑밥 없는 파리낚시를 쳐놓고 피라미들이 걸리기를 기다리는 초짜 강 태공들, 여유로운 한 낮 풍경… 한 폭의 진경산수화가 따로 없었다.   천막 옆에서는 삼겹살 파티가 한창이었다. 지글지글 불판에 익어가는 삼겹살에 소주잔이 거나하게 돌았다. 반술 된 부대장 강 문도가 뒤춤에서 슬그머니 봉삼주를 꺼내 놨다. 며칠 전, 송정정비 신 태룡과 함께 경북 봉화 깊은 산골짜기를 파헤치다시피 돌아다녀 캐왔다는 봉삼 두 뿌리가 소주병에 질린 채 누워 있었다. 봉삼 소식에 물속에 있던 대원들이 죄다 뭍으로 튀어 나왔다. 소주잔에 찔끔 맛만 볼 정도로 돌아갔다. 약효보다 기분이라 했던가, 입술에 닿자마자 홀 날아갔을 봉삼 냄새에 갑자기 힘이 불끈 솟는다느니, 아랫도리가 무거워졌다느니, 별의 별 말이 술잔을 타고 돌고 돌았다.    대형 찜통에는 닭백숙이 맛 들어지게 익어갔다. 수영하다 지친 꼬마들이 허기가 졌는지 한 그릇씩 퍼먹고 다시 들어갔다. 몇 시간째 아예 나올 생각을 않는 애들은 엄마들이 숟가락으로 떠먹이고 또 물가로 나오면 떠먹이고 애간장을 태웠다. 꼬마들은 어느새 형 동생이 되고, 누나 오빠 사이가 됐다. 간만에 나온 물놀이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입술이 새파랗게 질릴 정도였다. 팔 다리도 거무스레한 게 제법 그을렸다. 파리낚시에 나섰던 구 대영과 정 관진, 김 상목이 피라미를 어법 잡아와 모닥불에 튀긴다고 난리였다. 밑밥도 없는 낚시에 걸려든 아이큐 낮은 피라미들만 불쌍케 보였다. “여, 청도 물은 1급수 아이가.” 물이 깨끗해 날로 회 처먹어도 되겠다며 김 상목이 피라미 목을 따고 배를 툭 갈라 초장에 찍었다. 아낙들이 기겁을 했다. “잘 한다! 간디스토마 걸려가 약 사 돌라 카기만 캐봐라!” 김 상목의 부인이 눈을 찌푸리며 못마땅해 했다. “나도 함 무 보까…컥!” 윤 호도가 김 상목을 따라하다 가시가 목에 걸려 손가락을 집어넣고 캑캑거렸다. 피라미들이 1회용 은박지 위에서 비늘을 태워가며 진을 뿜어냈다. 구 대영이 굵은 소금을 홱 쳤다. 술잔을 채운 강 문도가 혀로 입술을 한번 쓰윽 핥았다. 피라미들이 노릿노릿 익기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 눈치였다. “앗! 사모님들! 인자 오십니까. 고디는 많이 잡았는 교?” 남도의 부인 김 영숙과 정 옥수, 최 칠성의 부인 손 승미가 온 몸이 흠뻑 젖어 돌아왔다.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설 어두워져야 기나올 모양이네, 얼마 없어요. 어~추워.” 김 영숙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갈색 바께쓰에 다슬기가 한금이었다. “아따! 고당새 이빠이 잡아뿌네, 역시 사모님들 고디 잡는 거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구 대영이 얼른 바께쓰를 받아들었다.   “자~ 저녁은 초소 가서 고디 국 해먹기로 하고, 설설 마무리 합시다.”  남도가 양손을 깔때기 모양으로 하고 멀리 소리쳤다. 발을 물에 담근 채 널찍한 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김 영훈이 벌떡 일어서다 다시 주저앉았다. “아! 내 다리…” 애들 보초서다 깜빡 졸은 탓에 왼 다리에 쥐가 내린 모양이었다. 규석이 김 영훈의 다리를 하늘로 치켜세워 종아리를 주물렸다. 절뚝거려보며 무안해하던 김 영훈이 휘슬을 길게 불었다. 하지만 꼬마 애들은 쉽사리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들은 척 만 척 강물 안으로 더 멀리 달아났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천막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음식 남겨서는 못 간다니, 술 남았는데 어째 가느니 하다보니 얼추 7시가 다 돼갔다.   “다들 재미있었어요?” “예…” 팔팔하게 뛰놀던 꼬마들 목소리가 아쉬운 까닭인지 기어들어갔다. “고디 탕은?” 트럭 짐칸에 밧줄을 졸라매고 고 성대가 주둥이를 쭉 내민 다슬기를 한 손 가득 쥐었다 도로 바께쓰에 집어넣었다. “하하하! 초소 가서 먹도록 합시다. 자~술 안 드신 분이 안전 운전하고, 초소에서 봐요.” 청도 매전. 지난 5월 대형버스를 대절해 경남 하동 섬진강 관광을 다녀왔던 방범가족들. 그 추억의 책장에 청도 매전을 추가하며 방범 가족들이 여름 나들이를 끝낼 즈음, 나른한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