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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문화인. 광양인
강석태 (새삶교육문화연구원장) 2011. 3. 20.
<시작하는 글>
국제 촌놈의 때를 벗어던질 때가 왔다.
광양 항과 일본 시모노세키/ 모지 항 간의 정기 항로 개설과 함께 광양이 일약 국제도시로 비약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광양인은 좁은 한반도의 남단의 한 작은 도농도시에서 육대주 오대양을 향한 세계인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서양 속담에 ‘로마에 가서는 로마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라’ (In Rome, Do as the Romans Do)라는 말이 있고,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말로서 ‘고을에 들거던 그 고을의 풍습을 따르라 (入鄕卽遵俗)’했다. 이것은 외국인이 우리 고을에 오면 우리 풍습을 따르면 되는 것이나, 이것을 뒤집으면 우리 고을에 온 외국인을 대함에 있어 우리가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말도 된다. 더욱이 오늘은 지구가 한 가족이요, 세계가 하나의 마을인 지구화시대이다. 우리 고장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계인으로서, 그리고 문화인으로서의 매너와 에티켓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이하 세계인으로서, 문화인으로서, 그리고, 자랑스러운 광양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국제적인 매너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비상한 각오를 했다. 엄청난 욕을 먹거나, 뭇매를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외국과 달라서 한국인은 사물을 판단함에 있어,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2분법적인 논리로 처리하기에 익숙한 경향이기 때문에, 애국자 vs 비애국자, 좌빨 vs 우파, 보수 vs 진보, 예수 천당 vs 불신 지옥,....으로 나누기 좋아한다. 그리고 한국에선 우리나라, 곧 ‘대한민국’에 대한 비판을 하면 곧잘 비애국자로 비난을 받고, 잘못하다간 덕석몰이 (동내에서 추방하는 것)를 당하기 십상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나라’라는 ‘우리(가축을 기르는 장소)d’ 안에 너무나 오래 갇혀 살아왔기 때문일까. 말로는 우리들이라 하면서, 속으로는 ‘나’와 ‘너’ 밖에 모르고 자기만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그래선 못 산다. 세계가 하나의 가정이 된 21세기가 아닌가. 용기를 가지고 글을 쓰기로 한다.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이 쇄국정책을 팽개치고 서구 제국과 통상을 함으로써 일찍 선진국 대열에 들 때에 세계정세에 어두워서 스스로를 우물 안에 갇히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서양 놈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야심을 본 딴 왜놈들의 침략을 당해 식민지인으로 36년을 살아야만 했던 비참한 역사를 가졌다. 나아가 국토는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두 동강 나서 동족 상잔의 전쟁도 치렀다.
그런 비참한 과거에서 이제 우리는 당당히 세계 선진국 대열에 참가할 날을 바라보게 되었다. 세계 올림픽도 치렀고, UN사무총장도 배출했고, G20 국제회의 주최국 노릇도 했다.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수없이 열리는 국제회의나 세미나에서 촌놈 노릇을 하며 지내왔다. 영어가 짧아서 당당하게 전면에 나서질 못하기도 했고, 서구인들이 만들어 놓은 국제적인 사교방식에 미숙해서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고, 달라져야만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관광객이 머지않아 1천만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수가 1백만을 넘었다. 한국은 더 이상 동방의 조용한 은자의 나라가 아니다. 세계 각국의 선두주자의 하나로서 앞으로 세계역사의 주역으로서의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 광양시도 posco 광양제철과 컨테이너 부두에 이어 이번 일본 시모노세키/모지 항과의 정기 항로 개설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맞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우리 광양인은 세계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춰야만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1) 꼴불견 한국인(Ugly Korean)에서 벗어나자:
우리는 걸핏하면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며 우리가 사뭇 예절 바른 나라 국민인양 으쓱댄다. 실상 그런가?
우선 최근에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영사관에서 일어난 스캔들을 보면 창피하기 짝이 없다. 명색 한 나라의 총영사라는 자가 주재국의 일개 유부녀에 농락당하여 자기 개인의 인격에 먹칠을 했을 뿐 아니라 나라 망신을 시키고 있다. 그 공관에선 총영사 뿐 아니라 그 밖의 몇몇 영사들도 같은 여성과 얽혀서 치정 관계를 맺었다니 참으로 기가 차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한 나라의 외교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은 자들이 이 꼴이라니.... 그리고도 국내에선 이 문제가 별 것도 아닌 양 쉬쉬하고 덮어버리려고 하고 있으니 기가 차디 못해 숨이 막힌다. 한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출세 한 놈이란 이런 모양으로 외국에 나가서 나라 망신시키는 것이 제 놈들을 그렇게까지 출세하도록 돌봐준 조국에 대한 보은이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보은’이란 단어가 튀어 나왔으니 말인데, 그들과 같이 함량 미달 사이비 엘리트를 요직에 앉혀 나랏돈을 갉아먹게 한 자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고 그것이 바로 MB식 보은 인사정책이라는 것인가 보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이런 꼴을 듣고 보는 그 곳에 있는 우리 교포 청소년들이 온갖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하겠다.
상하이라면 중국 제일의 대도시이며 세계에서도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온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도시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무면서 오토바이 사고를 내는가 하면, 집단 폭력 사건을 일으켜 경찰에 체포되고, 음주운전에 걸린 건수도 부지기수라 한다. 여자 친구 문제를 둘러싸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패싸움을 벌인 사건도 발생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겉으로는 근대화니 선진국이니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직 과거 이씨조선시대의 봉건사회의 남존여비 사상, 양반 상놈 사상이 온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몇 가지 예를 보자.
(2) ‘성을 상납’하는 사회/ 남존여비가 아직도 판 치는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사건인 한 여배우의 자살, 2009년 3월 7일 탤런트 장지연 씨가 “술 접대를 할 수 없어....”, “잠자리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욕설. 구타를 당해...”라는 등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글에서 그에게 성적인 학대를 한 자들 중에는 국내 제일 크고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언론사 오너 일가도 포함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일이 장지연 씨 한 사람이 당한 것이 아니란 데 있다. 이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요컨대 한국사회가 여성을 아직도 남성보다 한 단계 낮은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매스컴이 장 씨 사건을 두고서 ‘성상납’이라는 말을 쓴 것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성을 상납한다면 성을 하나의 상품으로 본 것이다. 여기서 ‘성’은 여성의 몸이다. 성상납은 여성의 몸을, 여성의 인격을 한 상품으로 취급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다. 여기엔 여성의 인격이 없다.
강자와 약자, 갑과 을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곳에서 여성은 약자와 을이 강자와 갑에게 진상하는 물품에 지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외국의 어느 고에선 여성의 서비스가 미인보다도 얼굴이 추한 자가 더 낫더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정부 여당의 대표라는 자가 여성을 평하여 “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룸에 가면 자연산을 많이 찾는다”는 폭언을 하는 사회다.
과거 봉건사회에서 양반가 남성이 여성, 특히 여종을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말하는 것이 우리 민화 ‘반딧불 벌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반딧불 벌레를 속어로 ‘개똥벌레’라 한다. 실은 그 개똥벌레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서울 은평구는 이조시대엔 한성 중심부의 북쪽 양반들이 사는 곳이었다. 여기에 인공의 나지막한 언덕이 있어 그 남쪽에 한 고관의 저택이 있었다. 때는 이조 중엽, 이 저택에서 일하는 많은 하인들 중에 한 젊은이가 있었다. 신분은 노비다. 얼굴 생김새가 준수하고 총명했다. 외아들이라서 어머니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고관 양반에게 천사와 같은 아리따운 딸이 있었다. 그 딸이 젊은이를 좋아하게 되고 끝내 열렬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주인양반이 그것을 알게 되어 격노했다. 젊은이를 포박하여 ‘때려서 죽이라’고 명했다. 종들이 그를 마당에 끌어내어서 몸을 형틀에 묶고서 곤장으로 매우 때렸다. 그리고 두 다리를 의자 다리에 각각 묶고 그 사이에 몽둥이를 넣어서 힘껏 트는 벌, 주리를 틀었다.
젊은이는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어서 그 집에서 추방되었다. 치료를 받을 돈이 없으니 의원을 찾아 갈 수도 없었다. 젊은이를 실신한 채 무당에게로 데려 갔다. 무당이 굿을 하고 기도를 했다. 잠간 있다가 젊은이가 눈을 떴다. 그리고선 곧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무당에게 “ 난 어차피 죽을 목숨입니다. 살아나라고 빌어주지 마세요. 대신 빨리 저 세상에 가서, 빛을 갖는 동물로 환생해 이승에 오도록 열심히 빌어 주십시오”라고 하고선 숨이 끊어졌다.
옛날에 한국에선 아들, 특히 외아들은 애지중지 키웠다. 태어나면 본명 외에 어릴 때에 부르는 아명을 지어서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돼지’니 ‘개똥이’니 하는 따위로 천하고 더러운 이름을 붙여주고 부르면 염라대왕이 그 아이를 싫어해서 얼른 데려가지 않는다 해서 그랬다. 그 청년은 어머니가 ‘개똥아’하고 불렀다. 그런데 그가 죽어서 소원이 성취되어 밤이면 빛을 꼬리에 달고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되어서 밤마다 사랑했던 미녀의 창밖을 맴돌았다. 청사초롱 불 밝히라는 동요와 함께 이 반딧불, 개똥벌레는 연인의 사모하는 한국판 로미오인 것이다.
(3) 해외에서 성매매 행위
우리 속담에 ‘집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는 것이 있다. 국내에서 여성을 무시하고 성을 상품화하는 못된 행위를 해외에 나가서도 자행해서 국제 망신을 사는 일이 허다하다. 과거엔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 여러 나라를 드나들면서 성매매 여행, 곧 섹스관광에 열을 올렸다. 그 뒤를 따라서 오늘은 한국인 관광객이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성매매 행위를 하여 ‘Ugly Korean(추악한 한국인)’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캄보디아에서의 광경을 예로 들어보자. 알다시피 캄보디아는 가난하다. 수도 프놈펜 시내의 웬만한 호텔이면 보통 30~40명의 여성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의 눈에 띠기 쉬운 엘리베이터 근처에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시간당 $6를 받고 안마를 한다. 안마 뒤 $50을 추가로 낸 손님과는 성매매도 한다.
한국에서 직행 비행기로 프놈펜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 11시쯤 된다. 도착하자마자 차량에 짐을 싣고 곧장 안마시술소나 성매매 여성이 있는 바에 가는 손님이 많다는 것이 여행사 직원의 귀띔이다. 물론 호텔에서도 이뤄진다.
동남아에서 한국인의 성매매는 캄보디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룸살롱을 처음 만든 것도 한국인이었으며, 필리핀. 타이. 베트남 등에서도 한국인 남성의 성매매 행위는 곧잘 눈에 띈다고 한다. 현지에는 이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알선해 주겠다는 여행안내 사이트까지 등장하고 있다.
(4) 아직도 남아 있는 양반 망국 풍조 찌꺼기;
한국인은 어릴 때에 부모로부터 “남에게 저선 안 돼. 남보다 더 높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훈계를 들으면서 자란다. 가정에서는 ‘이겨라’정신을 철저히 입력한다. 심하게 말하자면, 사람을 죽이건, 때리건, 속이건, 이기면 그만이라는 것. 이조시대라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등제해서 양반이 돼 가문을 빛내라는 것이 아들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원이었다. 오늘로 치자면 큰 부자가 돼서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아이들의 공부하는 목표를 물으면 공무원이라는 답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법과대학에 가서 장차는 고급공무원으로 출세하는 것이 가장 큰 공부 목표라는 것이다. 그래야 남에게 뽐내고 부모의 소원에도 보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성인이 돼서도 남에게 ‘지면 안 된다’는 근성이 강하다. 이것 때문에 한국인은 팀플레이가 약하고, 모두가 홀로 뛰는 독불장군이 된다. 자기만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뻐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기를 한국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모두가 우수한 기관차인데 이 기관차에는 연결고리가 없어서 열차를 편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 일본은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남에게 폐가 되는 짓은 해선 안 된다’, ‘모두 함께 발을 맞춰서 달려라’, ‘어려워도 견디어라’는 교훈을 가지고 교육을 한다. 그 결과가 어떤가를 뚜렷이 나타내 보인 것이 금년 3월에 겪은 일본열도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과 대 쓰나미와 원전 사고에서 일본인들이 취한 행동이다.
한국의 태권도는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인데 비해 일본의 유도는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팀플레이를 하는 나라라면, 한국은 개인플레이를 하는 나라이다. 한국사회가 딱딱한 사회라면 일본사회는 부드러운 사회라 할 것이다.
한국인은 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차분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어느 때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져서 자기만이 벼락부자가 됐으면 한다. 이조시대부터 만연했던 배금주의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았다. 돈만 있으면 벼슬도 사서 양반이 될 수 있었으며, 오늘도 그 잔재가 남아서 고급 공무원사회와 재계의 유착, 그리고 부정부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공직사회의 청렴도가 이 나라가 존경받는 나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이젠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아직도 우리네 사회에서 완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는 것이 ‘양반’타령이다. 한국인들이 앉은 술자리에는 서양은 물론 같은 동양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없는 진풍경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로 나이를 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가 양반. 쌍놈을 구별하고자 한다는 농담이다. 쉽게 말하자면 ‘귀족’과 ‘평민’을 구별하자는 것이다.
나이를 묻는 것은 별 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그것조차도 큰 싸움의 거리가 된다. 요즘의 젊은 학생들 간에도 그와 같은 봉건적인 사상, 행동이 나타나 결투까지 하곤 한다.
반상을 가리는 것도, 양반을 생산했던 모태인 과거제도를 발명한 중국인조차도 한국인처럼 양반, 상인을 구별하는 것은 농담으로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와 같은 사람의 귀천을 따지는 일을 안 한다.
오늘에는 양반, 상놈을 구분하는 분수령이 두뇌노동자냐, 육체노동자냐에 달려 있다. 육체노동을 하는 자는 상놈이다. 그러면 양반은 어떤 존재인가? 시골 농촌에 살아도 일은 하지 않고, 그런다고 독서를 하는 것도 아니고, 거저 놀고먹는 자들이 양반이라고 으시댄다. 이것 때문에 대학을 나와서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취직일 안 되면, 중소기업에라도 들어가 일하려 하지 않고, 백수로 있는 것이 양반인 것으로 착각하는 젊은 세대 풍조를 낳지 않았을까?
반대로 일본선 일찍이 어떤 직업이건 한 번 종사하면 그 일에 몸을 바쳐 그것에서 ‘제1인자’가 되겠다는 마음씨를 가지고 평생을 바치는 풍조가 옛날부터 있어왔다. 임진왜란에 포로가 되어 일본에 납치되었다가 2년 후 귀국한 이조의 문관 강항(姜沆)이 일본 견문록인 ‘간양록(看羊錄)’에 이런 말을 남겼다. ‘ 왜인들 풍습에는 어떤 기술,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반드시 “천하 제1”이라는 것이 있다. 왜인들은 그 천하 제1이라는 자들의 손으로 만든 물건에는 천금을 아끼지 않는다. 장원의 수목을 가꾸는 자, 벽에 흙을 바르는 도장공, 심지어 팽이를 치는 자, 도장을 파는 자에 이르기까지 천하 제1을 자랑으로 한다’. 이것이 소위 ‘장인(匠人)’,또는 ‘직인(職人)’기질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일본이라는 풍토 자체가 자연히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다. 역시 임란 때 일본에 납치당한 도공 심수관의 후손을 보면 대를 이어 사쓰마야키로 이름난 도자기를 큐슈에서 굽고 있으며, 후손(14대 沈壽官)이 일류 대학을 나온 후에도 고향에 돌아가 가업인 도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엔 그와 같이 대기업의 총수로는 3대 세습이 있으나, 음식점이나 도공과 같은 기능자로 5대, 6대로 이어온 가문이 없다. 음식점을 해도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주인은 일을 하지 않고 ‘사장’이라면서 손 놓고, 놀러 다니거나, 대낮부터 술이나 마시거나, 외국 나가서 골프 치고, 카지노에서 돈 날린다. (좀 심하게 썼나?)
지난날 한국의 양반이 어떤 행세를 했는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 소개하고 다음으로 가기로 한다.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로 잘 알려진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 양반의 마지막 지킴이라고도 할 단재가 만주에서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와 함께 망명생활을 할 때 같은 방에서 기거했다. 당연지사 학생 격인 이광수가 신채호를 선생으로 섬기면서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했다. 양반인 신채호 선생은 아침마다 세수를 할 때면 머리를 숙이지 않고 세면기의 물을 손으로 떠서 얼굴을 씻으니, 소매는 물론 옷도 물에 젖었다. 외국에서의 망명생화이니 옷은 단벌이다. 그 젖은 옷을 이광수가 볕에 말려서 선생에게 입히는 것이 일과였다. 한 번은 참다못해 이광수가 선생에게 “선생님, 세수를 할 때 머리를 숙여서 하세요. 그래야 옷이 젖질 않죠”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신채호가 무섭게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이 놈아! 양반의 머리는 조상과 부모 앞이 아니면 아무 데도 숙이지 않는 법이다. 천한 세숫대야 따위에다 어떻게 머리를 숙인단 말이냐. 왜 나더러 쌍놈의 짓거리를 하라고 말하느냐!“
(5) 외국인 노동자 멸시, 학대로 나라 품격 떨어뜨려;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약 35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와서 각종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주로 종사하는 일자리가 소위 3D직업, 곧 힘들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ous) 불결한(dirty) 직업으로 인식된 직종이다. 이런 직종은 주로 육체적 물리적 신체적인 노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지난날의 사회 풍조는 노동을 천시하는 것으로, 양반 계급이 서민계층 사람들을 천대하고 자기는 놀고먹으면서 소위 아랫것들만 일을 시키는 반봉건사회였다. 근대화가 된 오늘에도 그와 같은 과거의 찌꺼기가 사람들의 의식에 남아서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다. 또한 대학 진학률이 세계 제1이라 할 만큼 높아서 대졸 백수가 거리에 넘쳐난다. 그들은 놀고먹으면서도 3D직종과 같은 것에서는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결과 취업난이면서 동시에 구인난이라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그 노동력 부족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해주고 있다. 매우 고마운 존재들이다. 우리 중소기업 거의 전부를 먹여 살리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농촌 사정은 더하다. 시골마을마다 필리핀이나 태국, 베트남 등 출신 주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해엔 농촌 총각 5명 중 1명이 외국인 아내와 산다. 한국인 신부를 얻기 싫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처녀들이 농촌에서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해 이 나라에선 일반 국민은 물론, 그들을 사용하는 직장에서조차 그들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관행이 있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 10대권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이라고 으쓱대는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해 소위 ‘코리언 드림’을 이뤄 보자고 했다가 불공정하고 부정한 대우를 받다가 본국에 돌아가면 그들이 한국을, 한국인을 어떻게 평할 것인가.
이웃 나라 중국인 가운데는 한국인이 뚝하면 지도까지 펼쳐놓고 ‘대한민국’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서 그만 실소를 하고 만다는 말도 한다. 왜냐고? 기껏 해야 남북을 합해도 일본보다 훨씬 좁은 땅인데다, 남한만을 따로 떼어서 보면 중국 국토의 백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소국이 뭐 그리 잘났다고 떠버리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호 꼭지에 붙은 ‘큰 대(大)’자라는 것이다. 자기네가 볼 땐 쥐꼬리만 한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슨 대국이나 되는 양 ‘대’자를 붙이느냐는 것. 그렇다고 마음이라도 넓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세계에서 오직 하나, ‘대’자를 달고 까부느냐고 못 마땅해 한다. 하긴 나라 이름에 큰 대자(大)를 붙인 건 군국주의시대 일본의 ‘대일본제국’, 지난날의 ‘대영제국’을 빼고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중국에서 온 ‘조선족’과 재일본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도 고쳐야 할 일이다.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으나, 한때는 중국에서 온 동포에 대해선 ‘똥포(糞胞)’, 일본의 동포는 ‘재일 돈포(錢胞)’ 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 같은 우리 동포인데도 이렇게 사람을 등급을 매겨서 차별하였다. 먹다 남은 생선 머리나 뼈를 중국 동포 가정부 아줌마에게 먹으라 하고선 ‘당신은 중국에서 이런 것조차도 먹지 못 했을걸’하는 투로 대하는 일도 있었고 한다. 말로는 한국 사람은 인정이 많다고들 하면서, 왜 그런 추태를 보였을까?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이면 농담 삼아 하는 말에, ‘우리들이 불의의 사고로 절단된 손가락을 모으면 가마니에 가득할 것이다’라고 한다는 것이다. 비참한 것은 직장에서 부상을 당해도 보상은커녕 치료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에 자랑삼아 말했던 ‘단일민족’이니, ‘단군의 자손’이니 하는 따위 말은 접어야 할 것이다.고령화. 저출산 사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필연적으로 다민족사회를 부른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국이 됐다. 어느 나라보다 시급한 것이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다. 예상보다 2년이나 앞당겨 인구 감소를 가져온 일본이 재정백서에서 양질의 외국인 노동력 흡수를 밝히고 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이제부턴 우리와 똑 같은 인간, 아니 우리의 동족이란 관점에서 처우를 하도록 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세계인으로서 세계와 더불어 사는 지혜와 자세가 필요하다.
(6) 동방 무례지국(無禮之國)이 된 동방 예의지국:
*버스. 지하철에서 자리양보 없다;
몸이 불편하거나 어린 아이, 나이 많은 노인과 같은 약한 자를 보호하고 배려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것은 예의의 시작이다. 그와 같은 것을 에티켓이라 한다. 에티켓은 만국 공통의 패스포트이다. 하지만 이 기본 에티켓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쉽게 무시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거의 없다. 젊은이들은 바로 자기 앞에 그런 약한 사람이 서 있어도 모른 체 하고서 신문을 보거나, 혹은 잠을 차는 체하고 눈 딱 감고 있다.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서로 몸이 부딪치거나 실수로 발을 밟는 경우도 있다. 사과하는 게 당연한 예의지만 많은 사람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친다. 다시 만날 일 없으니 그 순간만 지나치면 되니까.
옛날 우리의 조상님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의를 모르면 말이나 소만도 못한 것으로 여겼다. 예(禮)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가장 엄하게 받은 교육이었다. 인간됨의 근본이 예의를 아는 것이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인이 우리를 가리켜 동쪽의 예의를 깍듯이 지키는 나라라 칭송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혼동하고 있는 것이 에티켓과 매너이다. 에티켓은 프랑스어로 ‘붙이다’라는 뜻으로써 몸에 익혀서 그대로 지켜야 하는 예법이란 뜻이다. 따라서 에티켓은 공공 차원의 예의란 의미가 함축되었다. 한편 매너는 좀더 개인적인 행동방식이다. 에티켓이 더 상위 개념인 셈이다. 따라서 에티켓을 지키지 않았을 땐 불쾌감이나 피해를 주지만, 매너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카페 같은 장소에서도 상석과 말석이 엄연히 다르다. 전망이 좋고 입구에서 먼 쪽이 상석이다. 파티를 하는 경우라면 호스트나 호스티스가 먼저 와서 게스트를 기다라는 것이 기본 에티켓이다.
* 자가용에 손님을 태우는 경우 상하석의 위치;
자가용에 손님을 태우는 경우에도 상. 하석이 있다. 당신이 손수 운전을 하며 손님을 태울 경우, 당신의 오른 쪽 조수석이 상석이다. 운전자인 호스트가 손님과 서로 쉽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중히 모신다고 손님을 뒷자리에 앉히는 것은 틀린 것이다.
A 내외와 B내외가 함께 한 차를 타고 가는 경우, A가 운전을 하는 경우라면 A 내외가 프런트에 앉고 B 내외가 뒷좌석에 않는 것이 상식이다.
직업 운전수가 운전하는 차에 여럿이 타는 경우는, 사회적인 지위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서 설명하며, 가장 윗사람이 조수석 바로 뒷자리에 앉고, 그 다음 사람은 운전자의 바로 뒷자리, 그리고 셋째가 가운데에 앉고, 넷째는 조수석에 앉는다.
*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모르는 Korean;
이 글을 쓰는 지금 며칠 전 일본 도오호쿠(東北) 지방에서 강도 9의 지진이 나고 파고 10m인 쓰나미가 몰려와서 대재앙이 발생하고 원자로 사고가 나고, 여러 도시가 폐허가 된 상황인데도 일본인들이 침착하게 재앙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온 세계가 감탄을 했다는 것을 TV나 신문이 연일 보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저와 같은 재앙이 발발했다면 어떠했을까 하고 성찰하게 된다.
일본인은 어릴 적부터 서구인들처럼 철저히 타인을 배려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 그들은 조금만 남의 몸에 부딪치거나 하면 곧장 “미안합니다.(sumimaseng) 죄송합니다(gomennasai)” 라고 사과를 한다. 그리고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hitoni meiwakuo kakeruna)고 배우면서 자란다. 그들은 이렇게 공공의 장소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몸에 익혀서, 이번과 같은 사변이 났어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나 한다.
*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을 대할 때 무례하게 굴거나 거들먹거린다.
고객이 왕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상점이나 그 밖의 기업에서 손님을 대하기를 왕처럼 모시라는 것이지, 손님이 자기가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네 한국인은 그렇지 않아서 외국에 가서 빈축을 사는 경우가 많다, 왕 대접을 받고 싶으면 왕처럼 에티켓을 갖춰 행동해야 마땅하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대에도 무조건 환불해 달라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합리적으로 항의하는 게 왕다운 에티켓이다. 또 상품을 살펴보거나 설명을 들을 때는 거들먹거리지 않고 불필요하게 언성을 높이지 말 것이다. 사지 않을 때엔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다.
종업원이 인사를 하거든 받아주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출입문에서는 뒷사람을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는 것도 기본 에티켓이다.
에티켓이든 매너든 그 본질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둘째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것, 셋W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철없는 나이 든 고객들이 여직원을 부를 때 서슴없이 “야!”라고 외치거나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기도 하는데, 이건 아주 못된 버릇이다. 식당이나 호텔의 종업원은 종이 아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타고나면서부터 착한 것이라 했다. ‘성선설’이라 하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4가지 기본적인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인. 의. 예. 지(仁義禮智)라 말하고, 그 4가지 덕목의 뿌리가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설명을 했다. ‘인’의 뿌리는 ‘남을 사랑하며 측은히 여기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요, ‘의’의 뿌리는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며, ‘예’의 뿌리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고, ‘지’의 뿌리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라 했다. 우리의 선조님들은 이와 같은 도덕을 배워 몸에 익혔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경제적인 풍요 때문인지, 물질숭배 바람이 사회를 휩쓸면서 예의와 도덕은 사라져 가니 안타까운 일이다. 에티켓은 이렇게 훌륭한 교훈과 더불어 2천 수백 년 전부터 우리 동양인의 삶에 뿌리 내려 왔던 것이라서, 반드시 서양에서만 찾아야 할 것이 아니었던 것인데도 이제 와서 마치 우리는 에티켓, 곧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인 것처럼 인식되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조상님들께 죄송스런 마음이 간절하다.
* 서비스 정신이 모자라는 한국인;
한 재외 한국인의 경험담을 들어 본다. K는 중국계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인 동포다. K는 중국을 찾아 온 한국인들의 입에서 귀가 따갑도록 한국이 이제는 일본인에게 지지 않을 만큼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고 들었다. 88올림픽이 끝난 지 얼마가 되지 않아서이므로 지금으로부터는 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소개한다.
K는 자신의 모국에서 온 사람들의 장담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일본에 가 보기로 했다. 일본에 지지 않을 만큼이란 말을 맞는 말인가를 알기 위해서였다. 결론은 한국인이 자랑한 한국인의 서비스는 일본인의 그것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우선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의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딱 기분이 잡치는 일의 연속이었다. 상점의 점원이나 레스토랑 종업원, 안내양의 무표정하고 불친절한 태도는 중국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 내가 중국에 와 버렸나?’ 하고 의심할 만큼 중국이나 한국은 다 같이 불친절했다는 것이다. 다른 것이라면 복장이 약간 중국보다 화려했던 것이라 할까...
(.....) 손님을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처럼 ‘하느님’ ‘왕’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남’이거나 ‘타인’, 곧 외부 집단의 타자에 불과한 것이다. 말하자면 서비스 의식이 한국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들끼리 살아가는 사회이므로,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학급, 우리 친구, 우리 가문, 우리 친척, 우리 동료 등등 ‘우리’끼리만 잘하면 되고, 우리가 아닌 자들과는 어떻게 하든 ‘상관없는’, ‘괜찮은’ 것이다. K가 인사동 근처 여관에 투숙하면서 자주 드나든 조그만 식당에서 겪은 일인데, 그 식당 아줌마가 처음엔 매우 불친절하니, 나중에 K가 일본에서 온 중국 출신 동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일본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는 같은 피붙이 였군요”라면서 요리도 많이 주고, 김치도 서비스를 하는 등 서비스가 좋아졌다. 일본인이 아닌 같은 피가 흐르는 동포라면 그만 우리 식구로 바뀌는 것이다.
한국인은 곧잘 일본인의 서비스에는 진심이 빠져 있고, 겉으로만 친절한 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서비스가 설령 겉으로는 불친절하게 보일지라도 실상 진심이 들어 있고 인정이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낸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서비스를 비교하면서 겪어 온 자신의 경험에 비춰선 그 말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K는 말한다. 일본은 어딜 가나 최고 수준의 친절과 손님을 신이나 왕으로 대접하는 정신이 살아있다. 남성 점원이라도 여성과 똑 같이 매우 부드러운 태도로 우아한 미소를 띠면서 예의바르게 접대를 한다. 어디까지나 손님 제일주의다. 손님이 지인이건, 외국인이건 차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비스업에서, 가령 호텔 종업원이 자기 호텔의 오우너(owner)나 사장이 나타나도 손님을 그냥 두고서 그 사람 쪽으로 달려간다는 풍경을 볼 수가 없다.(한국에선 있을 수 있는 광경이다) 회사에서 사장을 부를 때 한국처럼 ‘사장님’이라고 존칭인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 특히 남들 앞에선 자기네 사장이라도 그냥 성명만 부른다. 한국서 그랬다간 당장에 ‘모가지’감일 게다. (이상은 K라는 재외동포의 말을 각색한 것인데, 오늘은 한국의 서비스 정신도 많은 진화를 했다. 그러나 세계인 수준까지 가려면 더 분발해야 할 것이다--필자 주)
(7)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국민성이란 말이 있다. 사전적 풀이로 어떤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치관, 행동양식, 사고방식, 기질 등을 말한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난 3월 11일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자발전소의 폭발 사고 등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원전 사고를 확대하지 않게 막아보려는 위험한 작업에 수백 명의 자원자가 모인 것 등은, 일본인들이 오래 동안 위험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공존의 삶 방식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일본인의 국민성의 한 단면이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존중히 여기는 것을 배웠다. 앞에서 말했듯이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예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땐 그것이 하나의 오랜 세월에 걸쳐 길들여진 복종성(follow-ship)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급진적인 기질인 한국인의 눈으로 본 견해이다. 물론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면 우리 한국인의 국민성은?)
UN에서 각 나라별로 대표가 나와 자기 나라의 국민성을 한 마디로 말하는 것 이었다.
프랑스는 ‘예술’.
영국은 ‘신사도’.
독일은 ‘근면’.
미국은 ‘개척정신.’
일본은 ‘친절’.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한국인이 뒤쪽에서 튀어나와선 “거 좀 빨리빨리 하고 들어갑시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성급함이 한국의 국민성이란 것이 여실히 국제무대에서 발로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확실히 뭐든 성급하다. 그러고 보니 빨리 잊어버리는 것도 1등 선수다. 냄비근성이라던가.
좌우간 우리는 이 빨리빨리 습성은 조금 성찰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건설한다고 하면 그저 속성으로 하기 십상이어서 나중에 사고가 빈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집안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도 그런다.
해외여행 시 방문 국 입국심사에서 이 빨리빨리 국민성에 발동이 걸리면, 특히 동남아의 후진국 공항에서 “내 여권 빨리 달라”며 그곳 공무원에게 뒷돈을 찔러주는 사례도 있어서 그것이 관례가 되어 일부러 한국인 관광객을 공항에 오래 붙들어 놓기도 한다는 것이다.
방문국의 문화나 관습에 무신경이어서 빈축을 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머리를 신성시하는 인도네시아 등에서 지나가는 아이의 머리를 함부로 쓰다듬거나 하는 따위이다. 미국에서 한국 할머니가 백인 유아의 고추(자지)를 만졌다가 성희롱으로 재판을 받은 일이 있었다. 한국선 예쁘다면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미국선 범죄 행위. 여러 증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설명해서 무죄로 낙착되긴 했다.
(8) 공중도덕 관념 부재;
* 아무데서나 휴대폰 통화, 고성 방담, 주위엔 아랑곳 하지 않는 시끄러운 한국인;
대만의 작가 보양(백양)이 쓴 ‘추악한 중국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 시끄럽기로 말하면 중국인은 천하제일이다. 특히 광둥(광동) 사람의 목청이 으뜸이다. 광둥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들이 싸우는 줄 알고 미국인이 신고를 했다. 경찰이 오자 이들은 태연하게 말했다. “귓속말로 얘기 했을 뿐인데요”. 이렇게 보양은 중국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럽다’를 꼽았다. 그는 이 책 때문에 동족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구피지 않고 “중국인의 단점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엔 반성할 줄 아는 신세대 중국인이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동안 금서로 돼 있던 이 책이 중국대륙에서 해금되어 출판되어서 읽히고 있다. 그의 말대로 중국의 힘이 커진 것일까.
한국이 바로 보양이 몇 십 년 전에 중국인에 대해 말했던 것과 같은 모양새다. 미국에서라면 버스 안에서나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를 큰 소리로 지껄이고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불평을 듣게 된다. 그리고 창피를 당할 것이다.
* 화장실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
대부분의 사무실에 금연구역으로 돼서 꼭 담배를 피우려면 옥외나 끽연을 허락하는 장소 에서 피워야 하게 돼서 애연가들의 불편이 크다. 그래서 그들 중 더러는 화장실에 숨어 서 담배를 피우는 수가 있다. 이것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는 행위 이다. 끽연이 해롭다는 것은 피우는 사람 자신보다 그 냄새를 맡는 사람에게 더 해롭다 는 것을 명심할 것이다.
* 공공의 장소에서 귀를 휘비는 짓;
서양인은 버스 안이나 사무실 등 남들이 보는 데에서 귀를 후비는 것을 실례라고 여긴 다.
* 콧물이 나올 때 손수건이나 티슈로 콧물을 풀지 않고 자꾸만 훌쩍거리는 짓도 외국인들은 안 좋은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인은 자기 근무처 화장실에 칫솔, 치약을 두고서 거기서 양치질을 곧잘 한다. 서양인 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친다.
* 미국인은 식사 때 냉수를 마신다. 한국인이 모르고 뜨거운 물을 서비스하면 그들은 당황 한다. 다만 커피나 티는 예외이다.
* 술을 마실 때 자기가 마신 글라스를 상대방에게 주면서 술을 권하지 말 것. 우리는 이것 을 우정의 표시로 알고 행하나, 저들은 비위생적이라 생각한다. 또한 손님이나 친구에게 한 잔 더 하라고 자꾸만 권하는 것도 에티켓이 아니다.
* 우리가 특히 유의한 식탁 예절:
1) 소리 내어 음식을 먹거나 마시지 말 것.
서양인들 문화에서 스프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우리가 국을 마시듯이 접 시를 들고 마시면서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또, 고양이가 음식을 먹듯이 몸을 앞 으로 굽혀서 접시 음식을 먹지 말 것.
여기 소리를 내지 말라는 ‘소리’는 접시와 포크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나 의자를 움직이 는 소리 따위도 포함된다.
2) 입 안에 음식이 들어 있을 때는 결코 입을 벌리지 말 것. 이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하지 말 것이다. 음식을 다 삼킨 다음에 말을 한다.
3) 입안에 음식이 들어 있는 채로 술이나 음료를 마시지 말 것.
4) 특히 여성의 경우, 컵이나 글라스에 입술 자국이 남지 않도록 미리 냅킨으로 가볍게 입 술을 닦은 다음에 마실 것.
5) 앉은 자세:
의자에 비스듬히 앉거나, 한 쪽으로 삐딱하게 앉지 말 것.
식탁과 자기 배 사이에 주먹 하나 가볍게 들어 갈 만큼의 사이를 띄면 편히 앉을 수 있 다. 식탁 아래에서 다리를 꼬지 말 것.
6) 쓰지 않는 손은 가볍게 식탁 위에 얹을 것. 이때 팔꿈치는 식탁 위에 올려선 안 된다.
7) 식탁에 앉은 다음엔 머리나 옷매무새를 고치지 말 것. 미리 손을 씻거나 머리나 옷 모 양을 돌볼 것.
8) 식사 도중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9) 소금, 후추, 버터, 밀크, 설탕 등 공용의 것이 멀리 있으면, 그것을 손을 뻗혀서 가져오 지 말고, 그것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보내달라고 할 것.
요리를 먹기 전에 조미료를 뿌리는 행위는 요리를 한 사람에 대해 실례가 되는 것이다. 일단 먹어 본 다음에 조미료를 쓸 것.
10) 동석한 사람 모두에게 음식이 다 왔을 때 먹기 시작할 것. 초청을 받아서 갔을 때엔 호스트나 호스티스가 먹는 것을 보고서 먹기 시작한다.
11) 자기 접시에 따로 나눠 받은 음식은 남기지 말 것. 그러므로 처음부터 먹을 만큼 떠 와서 남기지 않고 먹도록 할 것. 테이블 와인도 남기지 않는 것이 에티켓.
12) 남이 보는 데서 이쑤시개를 쓰지 말 것.
13) 냅킨 사용법;
* 큰 것은 접어서 무릎 위에 얹는다. 특별한 요리, 예를 들면 철판구이나 일부 생선 류 의 요리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냅킨을 목에 걸거나 양복 단추 구멍에 걸지 말 것이 다. 그러나 살짝 남의눈에 띄지 않게 벨트에 걸어서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무 난하다.
* 주빈이 냅킨을 든 다음 다른 손님도 냅킨을 들 것이다. 주빈이 냅킨을 테이블에 놓 으면, 그것이 회식이 끝났다는 신호가 된다.
* 식사 후 냅킨을 테이블에 놓을 때엔 반듯하게 개거나 접지 않는다.
* 냅킨은 입을 닦거나 컵에 입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입술을 닦는 것이나, 루즈를 묻 히지는 말 것이다.
* 식사 전 기도를 할 때엔 냅킨을 사용하지 말 것.
14) 나이프와 포크 사용법;
* 나이프와 포크가 여럿 놓여 있을 경우, 바깥 쪽 것으로부터 순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통례다.
* 나이프와 포크를 함께 사용할 경우엔, 나이프는 오른손에, 포크는 왼손에 들고, 포크 의 등으로 음식을 먹되, 미국에서는 음식을 나이프로 미리 필요한 만큼 잘라놓은 다음 포크를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서 음식을 찍어먹는 습관이 있다. 이것은 음식을 먹을 나이프와 포크를 번갈아 쥐고서 먹어야 하는 방식을 지그재그 방식이라 하면서 싫어한 데서 나온 습관이다.
* 식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엔 나이프와 포크를 A자 형으로 벌려서, 곧 나이프와 포크의 끝부분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하고 손잡이 쪽은 벌려서 접시에 걸쳐 놓는다.
* 식사를 마쳤을 때엔 둘을 가지런히 해서 접시의 오른쪽(시계 판 이라면 5시 자리)에 놓는다.
15) 커피나 홍차 등의 컵이 접시와 함께 나왔을 경우, 마시지 않았을 때엔 스푼을 컵의 앞 쪽에, 마신 다음엔 컵의 뒤쪽에 놓는다.
16) 음식은 빨리 먹지 말고, 다른 사람과 속도를 맞추도록 할 것.
17) 항상 Ladies First를 명심할 것. 부부 동반인 경우에도 반드시 아내를 앞세울 것이다. 특히 개인 주택에서 뷔페 파티와 같은 모임일 경우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음식을 취하 거나 하면 빈축을 산다.
18) 자리에 앉을 때 남성은 자기 오른 편 여성이 앉기 쉽도록 의자를 당겨서 착석하는 것 을 도와 줄 것이다. 남성은 앉을 때나 떠날 때 다 같이 자기의 양 옆 여성이 앉거나, 떠난 다음에 행동한다.
19) 쇠고기 따위 고기 음식물을 한꺼번에 모두 잘게 잘라서 놓지 말고(앞에서 미국에선 약 간의 예외기 있다고 했으나) 먹을 때마다 두세 쪽식 잘라서 먹는다.
20) 식빵:
* 최초의 요리가 나오기 전 식빵이 나왔을 때, 혹은 이미 테이블에 식빵이 놓을 있을 땐, 요리가 나오기 전에라도 먹어도 된다. 다만, 먹기 시작하는 타이밍은 역시 호스티 스나 옆자리의 여성이 먹기 시작한 다음에 먹도록 할 것이다.
* 식사 막판에 디저트가 나왔는데도 식빵을 먹는 것은 좋은 매너가 아니다.
* 버터 접시에 버터를 가져왔을 때엔 그것을 한꺼번에 다 식빵에 바르지 말고, 한 조각 씩 먹을 때마다 조금씩 칠해서 먹는다.
21) 테이블에 음식을 엎질렀거나 떨어뜨렸을 경우엔, 쉽게 주을 수 있는 것이면 자기 스푼 이나 포크로 주어서 자기 접시의 가장자리에 놓는다. 물을 엎질렀거나 나이프나 포크를 떨어뜨렸을 때엔 자기가 처리하기보다는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를 조용히 불러서 처리 하도록 부탁할 것.
22) 웨이터 웨이트리스에 대한 매너;
* 손님이 왕이라 해서 심부름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꼴불견이다. 그렇다고 요리 를 서브할 때마다 Thank you!를 연발할 필요는 없다.
* 식사 도중 서브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 대회를 나누는 것도 삼가는 것이 좋다.
23) 여성의 핸드백;
* 식탁 위에는 놓지 말 것이며, 작은 백은 무릎 위에나 의자와 등 사이에 두며, 큰 백 이면 마루 위에 놓을 것.
24) 먹지 못하는 음식을 거절할 때는, 아주 거절을 하는 것보다는 소량을 취해서 입에 대진 말고 그대로 남기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9) 학교교육에서 에티켓 수업이 필요하다;
* 에티켓은 가정에서부터 배워야 하고, 몸에 익혀야 한다. 에티켓이란 이론만 배워서 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몸에 붙지 않아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물이나 보호유리창에 손이나 얼굴을 대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큰 소리로 말하거나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지 않는다.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는 도중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이야기도 삼간다. 공공장소에서는 멀리 떨어진 친구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는다. 이런 것은 다 배워서 안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가르치지 않았으면 학교에서라도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한다. 그래서 체험을 하면서 베울 수 있는 학교의 에티켓 수업이 절실하다.
*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글로벌 에티켓 교과서 보완 지도 자료(교사용)’을 개발해 전국 초중고교에 보급했다.
학생들이 국가 간에 통용되는 기본 에티켓을 익혀 문화적 소양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교재는 마련했으나, 글로벌 시대에 맞는 에티켓을 실제로 가르칠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 교육 현장의 딜레마다. 지금은 우리 조상들이 지켜오던 유교적 예법과 서양식 에티켓이 혼재하는 시대다. 옛날의 예의를 고수하는 구세대와 서양문화에 익숙한 신세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지 교사로서도 헷갈리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 식으로는 손윗사람의 얘기를 들을 때 똑바로 눈을 마주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하지만 서양에선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건 그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예의나 에티켓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길러야만 하는데, 가정이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게 된 현실이다. 종래의 대가족제도가 무어지고 핵가족이 되면서 가정교육이란 것이 사문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 대가족제도 하에서 행하여졌던 것을 그대로 되살리자는 것은 아니다. 핵가족이면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베풀어야 할 가정교육은 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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