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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체 구조상 개인기록경기 분야에서 올림픽의 금메달을 따기가 어렵다. 과거에 손기정 선수나 황영조 선수가 이룬 업적 처럼 끈기로 승부를 하는 마라톤 같은 장거리 레이스에는 가능할지 몰라도 단거리 레이스에서는 거의 불가능 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요즈음 수영의 박태환 선수는 대단한 선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신체적 약점 때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기록경기가 아닌 주로 남과 겨루는 시합인 유도나 복싱, 레슬링, 태권도 같은 종목이 주를 이룬다. 서구인에 비해 신체가 왜소한 까닭에 몸무게에 따라 체급을 달리하여 경기를 할 수 있고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한 경기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금은 복싱의 인기가 완전히 사라지다 시피 했지만 70년대나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프로복싱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프로 복싱이 한참 인기를 끈 이유는 TV가 보급되고 또 위성 중계가 가능했기 때문이었으며 세계 챔피언은 곧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는 성공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서 세계 최고에 오르는 유일한 것이 바로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었다. 세계 타이틀 매치 중계방송이 예고되면 우리는 그 날이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으며 세계 타이틀 매치를 중계하는 날이면 모두가 TV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동네가 한산했으며 도시에는 거리에 다니는 인적이 드물 정도였다. 복싱은 헝거리 정신을 바탕으로 훌륭한 선수가 배출되나 요즈음은 대부분 잘사는 탓도 있고 인기가 없으니 좋은 선수가 배출되지 않고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든지 아니면 취직을 하든지 둘 중 하나는 이뤘어야 하는데 대구 유학 3년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맨손으로 시골로 귀향하였다. 귀향하면서 내손에는 권투 글러브가 있었는데 고향에서 아이들과 놀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었다. 복싱 글러브로 고향의 어린 아이들에게 시합을 붙이며 지켜보는 것이나 아니면 친구들과 시합을 하면 정말 재미가 있었다. 내 복싱 파트너는 바로 아래 내동생이었는데 평소 형한테 감정도 있고 해서인지 시합을 하자고 하면 오히려 좋아라하고 덤벼들었다. 내 동생은 동작은 민첩하지 않으나 펀치가 묵직해서 한방 맞으면 머리가 핑돌 정도의 강펀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가끔씩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마당에 전깃불을 밝혀 형제간에 코피 터지도록 한판 벌이곤 했었다.
우리나라의 복싱 초대 챔피언은 김기수 선수였는데 나는 김기수 선수가 경기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아마 김기수씨가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우리 마을에 TV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시절에 도덕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오늘 캐시어스 클레이와 조 프레이져가 헤비급 세계 타이틀 매치를 하는 날이며 세계적인 대결을 벌인다고 말하였으나 그 때는 중계방송을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TV가 없기 때문에 이 타이틀 매치를 시청하지 못했다.
우리가 한창 복싱을 좋아할 때는 동양 타이틀 매치도 거의 중계방송을 하였는데 그 때 유명한 선수로는 유제두, 홍수환, 백전노장 오영호, 김현, 박찬희, 염동균, 이창길 같은 선수가 있었다. 오영호나 김현 선수는 동양 챔피언이 끝이였고 이창길은 강펀치의 소유자였지만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 선수에게 도전했다가 힘 한번 못쓰고 KO패를 당했다. 그가 시합에 패하고 나서 기자회견 때 "세르반테스 주먹이 마치 쇠망치 같았다"고 고백하던 것을 기억한다. 유제두는 오랫동안 동양 챔피언을 지냈으며 그 당시 포르그 점프로 유명한 일본의 트럭운전사 출신 세계 챔피언 와지마 고이찌가 도전을 받아 주질않아 전성시대가 거의 다 지날 무렵에 경기가 성사되어 세계타이틀을 따게 되었다. 와지마 고이찌는 유제두와 경기를 하기 전에 챔피언타이틀을 미국의 오스카 알바라도에게 빼앗겼다가 리벤지 매치로 다시 타이틀을 되찾고 그 첫 방어전에서 유제두에게 KO패를 당하였다. 그러나 리턴매치에서 유제두가 힘없이 15회를 끌려 다니다가 타이틀을 되돌려 주고 만다. 이 사건은 아직도 정확하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제두의 주장에 의하면 중앙정보부에서 김대중과 가깝다는 이유로 유제두에게 약물을 투여했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그 당시 매니저였던 김덕팔씨가 유제두의 숱한 공격에도 일체 대꾸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있기는 분명히 있었던 모양이다. 유제두는 동양 챔피언 시절에는 전승을 하였으나 하루는 일본의 가네자와에게 일격에 다운을 당하여 무승부를 기록한 일이 있고 또 당시의 호적수로는 류소리마찌가 있었다. 홍수환은 남아공 더번에서 세계 챔피언이던 아놀드 테일러에게 도전하여 팔을 빙빙돌리는 제스처를 쓰는 등 자유자재로 게임을 운영하면서 개최국의 텃세에도 불구하고 판정으로 세계타이틀을 쟁취하였으며 이 때 전국이 난리가 났었다. 이 경기는 TV중계가 되지 않았고 카메라 한 대로 희미하게 촬영한 필름으로 녹화 방송을 하였다. 아마 이 경기가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원정 경기에서 얻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인 것으로 기억된다. 홍수환 선수는 타고난 소질은 확실하나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당시 세계적인 돌주먹 알폰소 사모라에게 KO패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리턴매치도 국내에서 치뤘는데 또 다시 지게 된다. 그 때 심판이 TKO패를 선언하자 홍선수 모친이 링위로 올라와서 난리를 치던 장면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밴텀급에는 알폰소 사모라에서 사라테 그다음 월프레도 고메즈 또다음 치과의사 출신인 멕시코의 산체스까지 엄청난 강자들이 계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홍수환은 몇 년 후 다시 체급을 바꾸어 그 당시 전승가도를 달리며 “지옥에서 온 악마”로 불리던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파나마에서 4전5기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다시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다. 그 타이틀 매치에서 홍수환이 다운될 당시 체육관에서 공포탄을 쏘며 좋아라 하던 관중들이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듯이 침묵으로 변하는 순간을 지켜 보았다. 홍수환과 같은 시대에 염동균 선수가 있었는데 염선수는 피하는 권투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세계 챔피언까지 오른 인물이다. 염동균 선수는 그 당시 챔피언이었던 일본의 로얄 고바야시를 맞아 도망가는 권투로 세계타이틀을 획득하여 비난을 산적이 있지만 사실 염동균의 복싱 실력은 본인의 핸디캡을 커버하면서 챔피언을 획득한 아주 잘하는 권투 선수였다. 이 때 홍수환과 염동균을 상대하던 동양 선수로는 태국의 농아 복서 타놈치트 수코타이가 있었다. 홍수환을 비롯한 테크닉 권투의 달인은 박찬희였다. 박찬희는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으로 그 당시 경량급 강국이었던 멕시코나 푸에토리코의 내노라 하는 선수들을 모조리 물리쳤다. 박찬희의 도전 상대 중 그 당시 전 KO승을 자랑하던 구티 에스파다스라는 멕시코 선수가 있었는데 이 선수는 경량급 임에도 불구하고 긴 리치와 헤머 펀치로 명성을 날렸으며 이 경기에서 박찬희가 일방적으로 불리하리란 예측을 깨고 초반에 KO승을 거두었다. 나는 이 타이틀 매치하던 날 군에 있었는데 그날 고참으로부터 에스파다스 선수 못지 않게 맞은 기억이 있어 이 경기를 잊지 못한다. 박찬희는 강자에겐 강하나 의외로 도망다니는 복싱을 하는 일본의 왼손잡이 복서 오구마 쇼지를 잡지 못하고 타이틀을 내 주고 만다. 그리고 그 이후에 유명한 복싱 선수로는 장정구, 유명우, 김철호가 있었다. 이 3선수들은 모두 경량급 선수로 롱런을 하였으며 그 당시 우리나라의 자랑 거리였다. 그리고 또 해머 펀치를 자랑하던 김태식 선수가 있었는데 이선수는 세계타이틀 매치에서 루이스 이바라를 맞아 초반에 쉴새없이 소나기 펀치를 퍼부어 세계타이틀을 획득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러나 김태식 선수도 어느날 시합 중 쓰러져서 의식을 잃고 뇌수술을 하면서 은퇴를 하게된다. 그리고 자질은 있으면서 애석하게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김현치, 최충일, 황충재 선수와 당시 날리던 황충재를 넉 다운 시킨 황준석 선수가 생각난다. 이 다음에는 박종팔, 문성길, 최용수 선수 등이 그 대를 이었으나 얼마전 최요삼 선수가 방어전을 치르다 운명을 달리하고 난 다음 그 대를 이을 선수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최요삼 선수처럼 복싱을 하다가 레이 붐붐 맨시니 한테 강펀치를 맞고 운명을 달리한 김덕구 선수도 우리 복싱사에 남을 선수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을 비롯하여 아르헨티나의 카롤로스 몬존, 피피노 쿠에바스, 돌주먹 로베르트 두란, 마빈 해글러, 슈가레이 레너드, 일본의 구시겐 요꼬 등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며 그 시대를 풍미하던 세계적인 복서들이었다. |
첫댓글 야~~!!! 소설 같은 문장력,역시 !!! 그리고 또 다른 면이 있네..너에게 어울리지 읺게,복싱에도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위에 선수들 TV에서 볼때,난 어떠한 일이 있으도 내 자식들에게 만은,절대로 복싱 같은 것은 안 시킬거라고 했지,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시합할 때,순간순간 참 피를 말리는 장면을 볼때,만약 그들의 부모가 보고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
우리집에는 권투도 그렇고 레슬링도 그렇고 어떤채널인지 난 알지못하지만 찿아서 3 남자가 보든데 . 그래서 요즘도 프로레슬링이 있나보다 난 그렇게만 생각했지 , 관심이 없어니까 TV 그의 뉴스아니면 안보는 편이라서.....연속극도 잘안봐....몰라~
그때는 다들모여 응원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시들해져서 체늘 돌리고 말지... 누군지 기억력 하나는 짱이다.ㅎㅎㅎ
울진 출신 선수도 한명 있엇는걸로 기억하는데 때려 눕혀야 이기는 경기라서 요센좀 시들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