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의 탄생
초창기 야구에서 선수 발굴은 전문적인 직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내츄럴 The Natural]을 보면 이 점이 잘 나타난다. 영화는 야구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주인공 로이(로버트 레드포드)가 시골집을 떠나 시카고 팀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출발하며 시작된다. 시카고 구단이 강속구 좌완투수로 소문이 난 로이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계약하길 원한 것. 선수 스카우트를 사람들의 ‘입소문’과 ‘추천’에 의존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당시에는 구단주와 감독이 직접 스카우트 역할을 겸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들은 기자나 야구 관계자들 사이에 “어디에 가면 좋은 선수가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직접 보러 찾아 나섰다. 가까운 사람들의 추천을 통해서도 선수를 수급했다. 말 그대로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재능 있는 선수를 발견하고 계약하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구단 경영의 선구자’ 브랜치 리키가 1920년대 들어 창안한 ‘팜 시스템’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리키 이전까지는 신인 선수를 영입하려면 마이너 팀에 돈을 주고 사오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세인트루이스 단장을 맡은 리키는 마이너 팀 여럿을 사들인 뒤, 직접 계약한 신예들을 산하의 마이너 팀으로 내려 보내 훈련을 시켰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마이너에서 키워서 메이저로 올려 보내는 시스템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후 1931년 양키스가 세인트루이스의 방식을 따라 하면서, 팜 시스템은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았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구단 산하 마이너에 수백 명의 선수를 확보해야 했고, 이는 입소문과 추천에 의존한 구식의 스카우트로는 불가능했다. 전문적인 스카우트 요원의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한편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초의 스카우트가 나온 것은 1985년으로 보고 있다. 프로 출범 초기만 해도 구단들은 스카우트 보직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2군을 운영하는 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신인 지명도 연고지 출신 선수를 무더기로 뽑는 형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초창기 메이저리그가 그랬듯이 감독이나 코치들이 개별적으로 선수 영입에 관여하곤 했다. 하지만 선진적인 구단 운영을 추구하던 OB 베어스(현 두산)가 1985년에 강태중 씨를 스카우트 담당자로 임명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이후 드래프트 제도가 바뀌고 선수단 규모가 커지면서 스카우트 팀은 프로 구단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현재는 구단마다 많게는 8명에서 적게는 2명까지, 각기 다른 규모로 스카우트 요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누가 하는가
메이저리그건 한국 프로야구건 스카우트가 되려면 선수 경력이 있어야 한다. 선수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평가를 내리려면 비전문가의 눈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스카우트 대부분은 선수로 뛰다가 일정기간 코치로 활동하고 스카우트 업무를 맡게 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선수 은퇴 뒤 곧장 스카우트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계속 현장에만 머무르는 것보다는 3~4년 정도 스카우트 업무를 하는 편이 지도자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LG 스카우트팀 강상수 과장은 “스카우트는 현장과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한 발 떨어져 있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현장을 매일 지켜보기는 하지만 직접 컨트롤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수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부분까지 아우르며 보다 넓은 시야로 야구를 보게 된다는 얘기다. 두산 시절 스카우트 업무 경험이 있는 롯데 양승호 감독도 “스카우트를 오래 하면 선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눈이 생긴다”며 스카우트 경험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스카우트 업무를 하면 자연히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강상수 과장은 “사람들이 스카우트가 한 두 경기 보고서 선수를 뽑는 줄 알지만, 사실은 아니다. 짧게는 고교 3년, 길게는 대학까지 7년을 보고 선수를 뽑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켜보며 공을 들인 만큼 강한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스카우트 출신 코치들은 유난히 열의가 강하고 선수들을 소중하게 대한다는 평을 듣는다. 강상수 과장은 “안 해본 사람은 그 마음을 모른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카우트가 그렇게 오래 지켜보고 고생해서 뽑아온 선수라는 것을 아니까, 지도자가 되도 ‘내가 허투루 가르치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거다. ‘우리 정말 한번 미친 듯이 열심히 해 보자’고 의욕적으로 가르치게 될 것이다.” 양승호 감독도 같은 견해다. “스카우트를 하다가 코치가 되면 선수들을 구단 재산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애지중지하고 열심히 가르친다. 좀 가르치다가 안 되면 ‘쟤는 안 돼’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다.”
스카우트와 007작전
임창정 주연의 영화 [스카우트]는 고전적인 방식의 선수 스카우트를 잘 묘사하는 영화다. 여기서 임창정은 선동열 영입을 위해 학부모에게 읍소하기, 인간적으로 호소하기, 부모 비위 맞추기, 주변 인맥 활용하기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심지어는 경쟁자가 동원한 건달들에 의해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기도 한다. 과장을 약간 보탠 이런 묘사는 프로야구에 ‘1차 우선 지명’ 제도가 살아있던 9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었다. 당시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은 연고지 내 고교 유망주들에 야구 용품이나 용돈을 쥐어주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다른 구단이나 대학과의 선수 영입 경쟁도 영화로 치면 [스카우트] 같은 코미디보다는 전쟁물이나 첩보물에 가까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