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김현우가
<PEN문학>
2023. 1,2월호(통권 171호에)
동화
<장대로 달을 따서>를
발표했다.
동화
장대로 달을 따서
김현우
정호 할아버지 노래는 좀 이상해요.
흥얼흥얼 혼자서 부르는 노래인데요. 옆에서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노래를 하시는지 혼잣말을 하시는지 모르지요. 아무튼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인데 좀 이상하게 느릿느릿 부르지요.
“…… 야들아 오니라 딸 따로 가자아
장때 들고오 망태 미고오 디똥산으로…….”
할아버지 노래를 들은 아버지가 가만히 정호에게 속삭였어요.
“할아버지가 또 고향 생각이 나나보다.”
“저, 저 노래가 무슨 동요예요?”
“아! 너도 잘 들어보지 못했구나.”
“언제 들은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딸 따로 가자니, 딸이 아니고 달 아녜요? 둥근 달 보름달 말예요.”
“그래! 밤에 뜨는 달이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꼭 딸 따로 가자아…….”
아버지는 정호의 말에 근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조금 읏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정호 말을 들었든지,
“달이 아니라 딸이다. 저 멀리 높이 솟은 달을 어찌 따느냐? 우리 어릴 적에 산에 가면 산딸기가 많았제. 딸 따 먹으러 다녔거든.”
하고 산딸기를 딸이라 한다고 일러 주었어요. 아버지가 덧붙였어요.
“할아버지께서 점점 사투리가 심해졌구나. 산딸기를 딸이라고도 하지.”
“장때는 또 뭐예요?”
“장대는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란다. 망태는 너는 통 본 적이 없을 테지만 가는 새끼로 엮어 만든 바구니야. 등에 메고 풀을 베어 담아오던 것이지,”
“하필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뭐하러 가요?”
“그야 딸을 따서! 먹는 산딸기 말고, 아! 아니야. 2절에 달을 따서 순이네 집에 가져가려 했제. 그 집은 가난해서 불을 켤 수 없었지.”
“불을 켤 수 없는 집이 어딨어요? 요즘……”
“옛날 예전에는 그랬어. 할아버지가 순이 생각도 나나보다.”
할아버지 노래는 느릿느릿 계속 이어져요.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요.
“…… 디똥산 올라가아 ……흐응흐응
장때로 딸을 따서어 망태에 담자아…….”
할아버지가 노래를 하다가 가사를 잊었는지 흐응흐응 하였지요. 그러자 아버지가 큰 소리로 고쳐 불러 주었어요.
“아버지! …… 뒷동산 올라가 무등을 타고
무등을 타고오……. 입니다.”
“뭐라꼬? 무등을 타고오? 무등이 뭐꼬?”
“아! 키가 큰 아이 등이나 목에 키 작은 애가 올라타는 거 말입니다.”
“아아! 목말타는 거 말이구나!”
할아버지는 알아들었다는 듯하였지만, 다시 흥얼흥얼 노래하는데 여전히,
“…… 디똥산 올라가아 으응으응……”
하고 중얼거리며 ’무등을 타고‘는 슬슬 넘어가 버려요. 그사이 잊어버린 모양이에요.
“아니! 아버지께서 어디 가셨소?”
회사에서 퇴근해 온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물었어요. 어머니가 그때야 생각이 난 듯 대답했어요.
“동네 노인정에 가셨는가? 오전에 나가셨어요.”
“노인정에 가셨어도 돌아올 시간이 지났지 않소? 전화를 해 봐야겠군.”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베란다 화분 쪽에서 소리가 났어요. 아마 아침에 화분에 물을 주고 나서 깜빡 잊고 핸드폰을 두고 나가신 듯했어요.
“허어! 또 휴대폰을 놔두고 나가셨군.”
할아버지는 외출을 하시면서 휴대폰을 가지고 나가는 걸 자주 잊어버리곤 했어요.
“얘! 정호야. 당장 노인정에 가서 할아버지 모시고 오너라.”
정호는 공부를 하다말고 노인정으로 달려갔어요. 마을 노인정에는 할아버지들이 있다가,
“너희 할아버지는 오늘 오시지 않았다.”
하고 대답하는 게 아닙니까? 정호는 깜짝 놀라 되물었어요.
“정말 우리 할아버지 오시지 않았어요?”
“그래! 오늘은 오시지 않았다. 친구들 모임이 있었나? 점심때.”
“여기보다 더 재미난 곳, 어디 다른 데 가셨나 보다.”
할아버지들의 대답에 정호는 급히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알렸어요.
난리가 났어요.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가실만한 이곳저곳 전화를 하고 법석했어요. 그렇지만 아무도 할아버지가 계신 곳을 알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경찰서까지 달려가서 집을 나간 노인을 찾아 달라고 신고까지 했어요.
경찰이 물었지요.
“할아버지께서 평소 좀 정신이 없었나요? 치매 증상 말입니다.”
“아아! 좀 건망증 같은 거…… 잘 잊어먹기는 하셨어도 맑은 편이었습니다.”
“알 수 없지요. 나이 많은 노인은 순간적으로 깜빡깜빡하거든요.”
하루가 지났어요.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면서 거리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수소문하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어디에 계신지 알 수도 없었지요.
또 하루가 지났어요.
한낮이 되었을 때 정호의 휴대폰으로 보지 못한 전화번호가 뜨면서 벨이 울렸어요. 정호가 혹시나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조심스럽게 받았어요. 저쪽에서 어떤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거기! 정호란 학생이냐?”
“아! 예…….”
“여기 할아버지께서 정호 학생을 찾으시네? 할아버지께서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 오셔서 돌아다니시네? 겨우 기운을 차리셔서 이제야 손자 전화번호는 기억해 내셨어.”
정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께 고함을 쳤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찾아 나가셨고요.
“하, 할아버지! 저어기 계시데요!”
어머니가 달려와 휴대폰을 받아 저쪽 아주머니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어요.
“할아버지가 널 찾는구나.”
어머니가 휴대폰을 다시 건네주었어요. 정호는 할아버지 음성이 들려오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너무 반가워서요.
“하, 할아버지! 나 정호예요. 거기 어디세요?”
“아이고! 정호냐? 나아 치, 친구 찾으러 왔다가…… 친구들이 아무도 없네. 모두 죽었거나 고향을 떠나버렸다네.”
“아아! 할아버지 친구 만나러 그곳에 가셨구나. 그런데 할아버지 고향은 그 마을이 아닌데요?”
“이곳에는 아주 친했던 친구가 살았어. 난 이 동네에서 이십 리나 떨어진 학교 근처에 살았고. 그런데 다 떠나고 아무도 없구나. 아는 사람도 없고…….”
“거기 가만 계셔요. 아버지랑 저가 모시러 갈게요.”
“그, 그래라, 여기 노인정에 할아버지들과 놀고 있을 테니.”
어머니가 아버지께 급히 연락했어요. 정호는 아버지 차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고향으로 갔어요.
“그곳은 할아버지가 어릴 때 살았던 마을에서 이십 리나 떨어진 산골인데? 아마 할아버지를 기억할만한 사람들이 없었던 모양이네. 하루는 이곳에서, 하루는 저곳에서 돌아다니시면서 지냈는데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쳤나 봐.”
“호주머니에 용돈이 있었으니까 다행이예요.”
“그래도 잠은 노인정에서 잤데요. 요새 인심이 좋거든. 그런데 휴대폰이 말썽이야. 아버지께서 주소도 잊으시고 전화번호도 외우지 못하니까 집으로 연락을 못하셨다고 해.”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가셨으니까 큰일이 터진 거예요. 저도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해 뒀으니까 따로 기억 못 해요. 그러니 아버님께서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할아버지를 만나서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노래를 틀었어요.
“아버지! 좋아하는 동요입니다.”
“그래? 요새 아이들이 노래를 참 잘 부르는구나.”
할아버지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어요. 정호도 함께.
“……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은 바느질도 못 한다더라
얘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 들이자.”*
* 윤석중 작 동요 “달따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