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인 카이사르와의 만남
외부적으로 가까스로 이집트를 지켜내 가고 있던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내부에서부터 위기가 커가기 시작했다. 남편이자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성장하면서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잠시 몸을 피한 클레오파트라 7세는 더 큰 위협이자 기회를 만나게 된다. 정적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까지 내려온 로마의 장군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죽음으로 내 몬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에 대해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신의 왕좌와 이집트의 운명을 위해 클레오파트라 7세는 카이사르의 의중을 떠보아야만 했다.
내부적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리고 외부적으로는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신의 지혜와 미모를 이용해 난국을 타개해 갈 것을 결심한다. 일설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 7세는 카이사르를 만나기 위해 방바닥에 까는 깔개로 몸을 감아 카이사르의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깔개가 펼쳐지고 나타난 미모의 이집트 여왕을 호색한이었던 카이사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클레오파트라 7세의 나이 21세였고 카이사르는 52세였다. 카이사르와 다소 극적인 만남 이후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의 독립과 왕좌를 보장받는 대신에 카이사르의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를 무찌를 군대를 얻는다. 결과적으로 클레오파트라 7세는 카이사르의 군대로 내부의 적들을 일소하고 이집트의 안전과 독립을 보장 받게 된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카이사르와의 사이에 카이사리온(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뜻)을 낳고 카이사르가 로마에 개선할 때 함께 빈객으로 따라 갔다. 로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때 연인 카이사르와 아들 카이사리온을 통해 새로운 야망을 꿈꾸게 되었던 것 같다. 카이사르가 닦아놓은 발판을 딛고 아들 카이사리온이 로마의 황제가 되어 이집트와 로마 전체를 통치하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안토니우스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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