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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런 날이 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제 명절이면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형님이 계시는 대구로 가게 되었습니다.
많이 허전하고 섭섭한 일입니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낸다는 점에서는
고향이건 타지건 별반 다를 바가 없겠으나,
명절의 고향이 내게 주었던 표현하지 못할 감정과 의미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되겠지요.
여전히 시골에는 어머님이 살고 계실 거지만
올 추석을 마지막으로 제사 모시는 일을 맏이한테로 넘겼기 때문에
어머니도 이제는 명절이면 귀성객이 되어야 합니다.
집안의 대소사는 무조건 따라만 하는 입장이라 눈치도 못채고 있었는데
추석날 아침 차례가 끝나고 어머니가 차례상 앞에 앉아서
조상님들께 말씀을 올리는걸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제는 제가 몸이 불편해서 더 이상 제사를 모실 수가 없습니다.
올 추석을 마지막으로 맏손주한테 모든 걸 넘길테니
앞으로는 손주네 집으로 가서 얻어 드세요.
그동안 잘 모시지 못해서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쪽지에 적어둔 형님네 집 주소를 불러드렸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큰 아이 집은 대구시 수성구 신서동 ○○아파트 ○○동 ○○○호 입니다.
이제는 그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당황스러운 사태를 옆에 서서 지켜보는 동안
한꺼번에 참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사실 추석날 아침에 어머니는 허리를 다치셨습니다.
안그래도 몸이 불편하신 양반인데
탕국 끓일 무를 손수 뽑겠다고 텃밭으로 나갔다가
잘못 주저앉는 바람에 지난번에 다치셨던 곳을 또 다치신 거지요.
일 할 사람 많은데 괜히 나가서 사고만 친다고 성질을 버럭 냈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당신 손으로 주관하는 마지막 차례상에 조금이라도 손길을 보태고 싶으셨던 게지요.
다음날 병원에 입원시켜드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이후 고향을 떠나오면서
조금씩 단절의 과정을 겪어오긴 했지만
이제부터는 결별의 속도도 더욱 빨라질거 같습니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나와 연결된 고향과의 끈도 상당부분 소멸되고 말겠지요.
냄새 푸근한 우리동네 들판도
어릴 때 자주 놀던 저수지와 뒷동산도
폐교가 되어버린 내 모교의 흔적도
명절이면 매일 밤 만나서 술잔 기울이던 친구도
이제는 멀리 떨어져서 각자 늙어갈 일만 남은거 같습니다.
그나마 고향을 지키는 든든한 친구들이 몇 있어서
언제든 달려가면 반갑게 맞아주긴 하겠지만
방문객으로서의 고향은 또 많이 다른 느낌이겠지요.
나이가 들수록 의지처가 되어주리라 기대했던 고향이
실제로 나이가 들어보니 이런 식으로 배신을 때리는구만요 ㅎㅎ
추석날 밤
동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나는 결국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도 이제 명절이면
제 태어난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울거 같습니다...
첫댓글 '풍우회'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을 옮겨 왔습니다. 항돈 후배님!! 개안쵸?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짜안 했습니다....우리 집 ..우리들의 이야기 같애서요... 항돈후배는 글을 참 정감있게 쓰네요...
항돈아 얼마전에 만났지...후배의 잔잔한 마음. 아마도 고향떠난 이들의 마음이겠지요...하지만 고향!!! 생각만해도 마음이 설레어 짐니다.........................-좋은 글 늦게 만나서 죄송합니다-
항돈 후배님도 카페에 글좀 직접 올려 주도록 잘아는 분들께서 힘좀 써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