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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庵 門人 淸峯 淸韻 선사 의역 강설
현각선사는 영가사람이며 성은 대씨이다.
젊어서 경과 론을 익혔으며 천태의 지관법문에 특히 정통하였는데, 유마경을 봄으로 因하여 마음 바탕을 깨달아 밝혔다.
우연히 조사의 제자인 현책이 찾아와 서로 만나 그와 더불어 많은 대담(법거량)을 했는데, 하는 말이 모든 조사와 은밀히 합하였다.
현책이 이르기를 "仁者께서 법을 얻은 스승은 누구십니까?"
이르기를 "내가 방등경론을 들을적엔 각각 스승이 이어있었으나, 그 뒤 유마경에서 부처인 마음의 종지를 깨달았으나 증명해 줄 분이 없었소이다"
현책이 이르기를 "위음왕불 이전에는 곧 그럴수 있었을지라도 위음왕불 이후에 스승없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은 모두가 바로 천연외도인 것이요"
이르기를 "원컨대 인자께서 나를 위해 증명해 주시오"
현책이 이르기를 "내 말은 가벼운지라 조계에 六조대사가 계시어서 사방에서 모여 와서 법을 받고들 있으니 만일 가시겠다면 곧 함께 가겠소이다"
현각이 현책과 같이 조계 六조를 뵙고 조사 둘레를 세 번 돌고서 석장을 떨치고 서 있었다.
강설:
현각 영가스님이 젊어서부터 경(부처님의 말씀), 론(보살,조사들의 서술인 유식론 구사론등)을 익혔고, 지자 천태스님의 지관법을 통했어도 지식일 뿐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다가 유마경을 보다가 기연이 닿아 심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현각 영가스님은 현책선사와 현랑스님과 더불어 사형 사제간이었다.
현책선사는 일찌기 六조 문하에 들어 깨달음을 얻고 선지식이 되었는데 우연히 현각스님을 만나 법담을 해보니 선지가 밝았음을 보고 누구에게 인가를 받았는가를 물으니 "방등경론(화엄, 반야, 법화, 열반경, 四부 외의 대승경전)을 들을 때는 일러준 스승이 각각 있었으나, 유마경을 보다가 부처인 마음의 종지를 깨달았으나 이것을 밝게 깨달았나 하는 것을 증명(인가)해 줄 분이 아직 없었다" 하였다.
이때 현책선사께서 "위음왕불(최초 출현하신 부처님) 이전에는 곧 그럴 수 있었을 지라도(불가능한 일) 위음왕불 이후에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은 모두 천연외도(삿된 도인)"라 하였다.
그렇다 요즈음 너 나 없이 법맥을 이은 선지식의 인가를 받은 바 없이 스스로 깨쳤다고 떠들고 스스로 명안종사 흉내를 내며, 무엇이 큰지 큰 스님 대접을 받고자 하여 어디서 얻어 금란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가관인 것은 머리에 까지 괴상한 것을 만들어 뒤집어 쓰고 칼날같은 법의 무서움도 모르고 겁 없이 사자좌에 올라 주장자를 굴리며, 주어 듣고 읽은 남의 소리를 그럴싸하게 뱉어내는 말법시대의 진풍경을 종종 보면서 중생을 바르게 제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오도(誤導)를 하는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바이다.
다시 말을 이어 살펴 보자.
현각스님이 현책선사에게 자기를 인가해 주기를 간청했으나,
현책선사는 내 말은 가벼우니 六조대사를 찾아가 "점검을 받고 인가를 받아 법을 이으라"고 안내한다.
(옛 조사들은 이토록 겸허했다.
조주선사께서도 스승 남전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가까이 모시다가 스승이 천화하신 뒤에 입을 열어 법을 펴기 시작하셨다)
이런 행적을 귀감으로 삼아야 하거늘 조금 알았다 하면 스승까지 뛰어 넘어 아상, 아만을 키우는 세태가 되고 있다.
다시 살펴보자.
현각스님이 조계 六조대사를 찾아 뵙고 위의를 갖춰 예를 올리기 전에 공격부터 먼저 시작한다.
六조대사를 오른쪽으로 세번 돌고 나서 석장을 떨치고 버텨서 서 있었다.
다음 장에 이어서 이 일촉즉발의 순간을 살펴 보도록 하자.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무릇 사문은 3천의 위의와 8만의 세행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기에 큰 아만을 내는가?"
현각이 이르기를 "생사의 일이 크고, 무常이 신속하나이다"
사께서 이르시기를 "어찌 남이 없음은 체달해 얻지 못했으며 빠름 없음은 요달하지 못했는가?"
"체달함에 곧 남이 없고 요달함에 본래 속함이 없나이다"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그렇고, 그렇다"하시니 현각이 바야흐로 위의를 갖추어 예배하고 잠시 있다가 하직인사를 아뢰니,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돌아감이 너무 빠르구나"
이르기를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아닌 데 어찌 빠름이 있으리까?"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누가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스승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시는가 하나이다"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심히 남이 없는 뜻을 증득했도다"
이르기를 "남도 없는 데 어찌 뜻이 있겠나이까?"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뜻이 없으면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이르기를 "분별 또한 뜻이 아니이다"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갸륵하도다, 잠시 하룻밤이라도 쉬어 가도록 하라" 하셨다.
그때(의 일로 그를) "일숙각(깨치고 하룻밤 잠)이라" 하였다.
뒤에 증도가와 영가집을 지어서 세상에 성행케 하였다.
강설:
사문은 출가승이며 3천 위의는 비구 250계 4(행, 주, 좌, 와) 3(세)의 자세를 갖춘 행이며 8만사천 대행은 대승이 닦을 미세한 일체를 갖춘 행을 이르는 말이다.
"승려가 아만으로 조사를 친견하는 태도가 어째서 그러한가?" 하고 현각스님의 공격을 역공하여 반문하신 것이다.
"생사의 일이 크고(일대사) 덧 없어 급하거늘 무슨 위의니 아만이니 한가히 분별하시오?" 하고 제빨리 공격을 늦추지 않는다.
그러자 조사께서 "어찌 생사 급함은 알고 생사 없음은 증득하지 못했으며 오고감이 없어 빠름이란 본래 없음은 밝게 깨닫지 못하고 생사가 급하니 뭐니 떠드는가?" 하고 한방 크게 내려치시자
"깨달아 통해 이르러 봄에 남이 없고 밝게 깨달은 즉 빠름이 없나이다"하여 방어와 동시에 자기 견처를 밝히자,
조사께서 "그렇고 그렇다" 두 번 인정하여 확실하게 인가하셨다.
이로써 서로를 간파하였음에 현각선사가 제자의 깍듯한 예로써 절을 하고 곧 떠나려 하자 "돌아 가는 것이 너무 빠르구나"하고 상대의 동태를 떠 보시며 권하자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아닌데(不動) 어찌 빠르고 더딘 것이 있나이까?" 하고 다시 반격하자 六조께서 놓아 주시지 않고 다시 "움직임(作用)이 없다 하면 무엇이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하여 찔러 보신다.
"스승께서 오히려 분별을(아는 놈이라는 이름을 둠을) 내시고 있나이다"하고 반격으로 뒤집어 쒸운다.
그러자 "네가 깊이 무생법인을 증득했도다"하고 다시 인가하였으나,
현각이 물러 서지 않고 이쯤 서로를 간파한 차재에 한판 놀아 보자 하고 "남이 없거늘 무슨 뜻이니 하는 것(相)이 있습니까?" 하고 대들었다.
그러자 六조께서 이놈 봐라 하시고 "뜻이 없다 했는데 그렇다면 분별해 아는 것은 무엇이냐?" 하고 다시 공격해 보신다
"분별도 뜻이 아니라"고 분별이니 뜻이니 하는 것이 거짓이름이요 일체가 비어 공한 그 가운데 이름도 상도 없이 갖추어 작용함을 드러 보이니 다시 옳게 깨우쳤음을 인정하여 기특히 생각하시고 "하룻밤이라도 묵어 가라"하고 자비를 여셨다.
이렇게 격전이 끝을 맺었으니 모름지기 학인들은 깨어 있어야 하며, 법이 이토록 날카롭고 위험한 취모검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기연으로 영가 현각선사는 깨쳐 하룻밤 묵었다 하여 "일숙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후 증도가와 영가집을 펴 오늘날까지 널리 유포되게 하신 선지식이다.
선객 지황은 처음에 五조를 참례하고서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이미 바른 가르침을 얻었도다" 하고는 늘 암자에 있으면서 (눕지 않고)오래 앉기를 二十년을 하였다.
六조대사의 제자 현책이 사방을 다니다가 하삭이란 곳에 이르러서 지황의 이름을 듣고 암자에 들려서, 일러 묻기를 "그대는 여기에 있으면서 무엇을 하는가?"
지황이 이르기를 "정에 드노라" 하자
현책이 이르기를 "그대가 定에 든다하니 마음이 있어 드는가?
마음이 없이 드는가?
만일 마음이 없이 든다면 모든 무정물인 초목이나 기와나 돌도 모두 다 응당 합당이 定을 얻을 것이요,
만일 마음이 있어 든다면 유정물인 정식을 갖고 있는 무리들도 또한 응당 정을 얻을 것이로다?"하니
지황이 이르기를 "내가 바른 정에 들 때에는 있다 없다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지 않노라"
현책이 이르기를 "있다 없다는 마음을 보지 않는다면 곧 이것이 항상 정이거늘 어찌 나고 드는 것이 있는가?
만일 들고 남이 있다면 곧 큰 정이 아니니라"
지황이 대답없이 한참 있다가 일러 묻기를 "스님은 누구를 스승으로 (법을)이었소?"
현책이 이르기를 "나의 스승은 조계의 六조대사이시오"
지황이 이르기를 "六조는 무엇으로써 선정을 삼으오?"
현책이 이르기를 "우리 스승이 설하시는 바는 묘하게 맑아 둥글고 고요하며 그 체와 작용이 如如하여 다섯 가지 쌓임(5온)이 본래 비었고 육진경계가 있지 않음이라 나감도 아니고 들어옴도 아니며, 머물러 있기만(定)한 것도 아니요 어지럽지도 않아, 선의 성품이 머무름이 없는지라 선의 고요한 것에 머무름을 여의었으며, 선의 성품이 남이 없는지라 선이라는 생각을 냄도 여의어서, 마음이 허공과 같으나 허공과 같다는 헤아림도 없으시오"하자
지황이 말을 듣고 곧 와서 조사를 뵈웠다.
강설:
지황스님이 五조 홍인대사를 참례한 뒤 스스로 "이미 정법을 증득했다"하고 늘 암자에서 장좌불와로 20년을 定에 듦을 일삼았으니, 요즈음도 큰 스님이라는 분을 한 두번 참문하고는 인가를 받았느니 법을 이었느니 하고 스스로 깨달았다고 자칭 도인 노릇들을 하는 이가 많음을 보게된다.
스승없이 깨쳤다 하는 짓은 천연외도며 자기는 물론이거니와 남까지 삿된 길로 끌고 들어 지옥 축생의 길로 빠져 들게 됨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수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현책선사가 지황스님의 소식을 듣고 찾아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동체대비의 자비심의 발로인 것이다.
지황스님을 만난 현책선사가 그를 몰아쳐 스스로 삿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첫 화살을 겨냥하여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고 묻자 "定에 드노라"하고 당당하게 응수한다.
이제 과녁을 향해 "그럼 定에 든다하니 마음이 있어 定에 드는가?
마음이 없이 드는가?
만일 마음이 없이 定에 든다면 모든 무정물이 모두 다 定을 증득할 것이니 定이란 아무 정식이 없이 되는 것일 뿐이요, 만일 마음이 있어 定에 든다면 異類유정물들도 마땅이 定을 증득할 것이니 有無가 있어 상견에 끄달리는 가운데 定을 증득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도리이니 어떤 것이 定에 듦인가?" 하고 화살을 쏘았다.
지황이 그 화살을 막고자 손바닥을 들어 "내가 정에 바르게 들 때에는(定에 들고 들지 않음을 가려 놓고) 있다 없다 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지 않노라"하고 방패로 쓰고자 하자
현책스님이 틈을 주지 않고 즉시 "있다 없다는 것을 보지 않는다면 항상 이것이 정인데 나고 든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들고 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큰(본성의 큼<마하>인) 定인 참으로 定이라 할것이 아닌 거짓된 定인 것이다" 하고 힘껏 활을 한방 더 쏘자,
지황스님이 더 이상 대항하여 살 수 있는 활로를 찾지 못하고 두손을 들어 항복하여 "스님께선 누구로부터 법을 인가 받았습니까? 하고, 현책의 법사이신 六조대사께서는 "무엇으로 선정을 삼으십니까?"하고 공손히 여쭙게 된다.
"묘하게 맑아 (갓없이)둥글고 고요하며(묘유) 체와 용이 공하고 공하다는 것도 공하여(如如) 5온(색, 수, 상, 행, 식)이 본래 공하고 六진경계(일체相)가 본래 공하여 나퉈 있으되 필경 공하여 있어도 있음이 아니며(一相삼매) 나고 듦이 달리 있음이 없음에 밝아, 머물러 있음(定에 국집)도 아니요 산란하지도 않아서 선정의 성품이 가만히 머묾이 없는 것(항상 작용함: 묘용)이므로 선이라는 고요함에 국집하는 것도 여의었으며 선이라는 것이 생멸이 없는 것이라 선이라는 생각도 여의어서 본성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허공같이 확트여 비었으나 허공 같다는 분별도 없음(일행삼매)이라" 하자
지황스님이 역시 선근이 상근기라 현책의 법위를 간파하고 자기 허물을 알아서 대종사를 지체없이 참예하게 되었으니 요즈음은 법을 구한다고 입으로는 말하나 아상만 키울 뿐 법문을 듣고 자기 삿된 소견을 뉘우치고 스스로 선지식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희소한 실정이 된 교계를 돌아 보게 된다.
용 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뱀 대가리가 되겠다고 저마다 배움을 구하기 보다 자기 소견을 갖고 남을 가르치려고들 하니 자기도 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까지 동업중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그 죄업이 크도다.
조사께서 물어 이르시기를 "그대는 어찌 왔는가?"
지황이 지난 인연을 갖추어 말씀드리니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참으로 (현책이)말한 바와 같으니라,
그대는 다만 마음을 허공처럼 하되 비었다는 소견에 집착하지 않으면 應하여 씀에 걸림이 없어서 움직이고 고요한데 마음(분별심)이 없게 되며,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精(알음알이)이 없어 주관(能)과 객관(所)이 함께 다(멸진)하고 자성과 나타난 상(現像)이 如如하여 定(일상, 일행삼매)이 아닐 때가 없느니라”
강설:
현책이 설한 법(진의)은 六조대사의 법을 이었으니 異설이 있을수 없으니 그 설한 바가 바른 것임을 확인시켜 주신 뒤 다시 정리하시어 六조대사께서 설하신 것이다.
"다만 마음을 허공같이 空(無相, 無念)하게 하되 허공같이 비었다는 분별하는 생각(허공같이 空한 것이 있다는 것이 도리어 相見)에 집착하지 않으면 인연 따라 경계에 응해 쓰되 걸림이 없어서(끄달리는 분별심이 없는 지혜로써 일체상이 허망한 것임을 밝게 알아) 動靜간에 움직임과 고요하다,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분별심이 없으며, 주관(能)과 객관(所)이 함께 다하여(분별망상을 여읨: 일상삼매) 자성이 같고, 같음(如如)이 곧 항상 定인 것(일행삼매)이다" 하셨다.
"오매일여가 되어야 한다"하는 오매일여는 오매일여함을 아는 분별심이 있으면 참 오매일여가 아닌 것이요, 定을 얻어야 한다는 그 또한 삿된 소견이요 크게 그르치는 망견임을 분명하게 들어서 일깨워 주신 것이다.
지황이 이에 크게 깨달아서 20년 동안 얻은 바가 마음에 도무지 영향(미치는 그림자나 울림)이 없었다.
그 밤에 하북땅의 선비와 일반이 들으니 공중에 소리가 들리기를 "지황선사가 오늘에야 도를 얻었다" 하였다.
지황이 예배하고 하직한 뒤에 다시 하북에 돌아가서 사부대중을 깨우쳐 교화하셨다.
강설:
상견의 분별심이나 六조대사의 말씀 아래 몰록 일체 분별심의 반연(攀緣)함을 여의게 되어 상구보리(자리)하였으므로 본래 머물던 하북으로 돌아가 하화중생(이타)하여 범부를 깨우침에 들게 교화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