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에게 묻다
근무를 마치고 병원을 떠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맨하탄의 빌딩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지만, 자전거에 몸을 실은 나를 넘어뜨리지는 못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풀렸고, 바람도 그리 차갑지 않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욱 편안하게 느껴진다.
집 주변에 자전거를 잠그고, 이스트 강변을 걸으며 어둠 속에 잔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하늘은 밝고 순수하게 빛나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퀸즈 다리에 비치는 불빛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데 퀸즈 브리지를 바라보니, 반달이 아파트 위로 살짝 걸려 있는 듯하다. 마치 건물 사이를 비집고 잠시 쉬어 가려는 듯, 달은 천천히 흐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꿈을 담은 달을 향해 셔터를 눌러본다. 그리고 한국의 고향을 떠올린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은 점점 더 그리운 곳이 된다. 그곳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달빛은 언제나 한결같다.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그 빛을 나누어준다. 그러고 보면,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보름달이 될 수 있을까? 반달이 사랑받아야만 보름달이 되는 것 아닐까? 나만이라도 반달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후 베란다로 나가 본다. 이스트강을 따라 흘러가던 반달이 이제는 내 베란다 위에 걸려 있다. 그때 전화기가 울린다. 중국에 사는 친구에게서 온 문자다. 그가 찍은 달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사진 속의 달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고결한 빛을 머금고 있다. 고결한 영혼은 다른 영혼을 순수하고 착하게 정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해서라도 다른 영혼을 끌어올려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나는 그처럼 달을 담아보려 하지만, 내 사진 속 달은 어딘가 부족하다. 친구는 내가 오월한국에 방문할때 중국에 들리면 달을 더 아름답게 찍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그가 중국 시인 이백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진 속 달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한 인간의 영혼이 투영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반달을 바라본다. 반달은 마치 욕심을 덜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름달을 향해 조금씩 채워가는 중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 혹은 나누며 덜어내는 과정. 반달은 나에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따라 반달은 내게 그리움의 빛이 무엇인지, 가슴 속에서 반달이 어떻게 보름달로 변하는지를 가르쳐준 것 같다. 다홍빛 반달 속에서 나는 반달을 가슴에 품고 잠이 든다. 달빛 속에서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고, 또 나를 만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