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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크메르의 세계'가 기획한 <21세기 대중음악 사전>을 구성하는 항목으로서,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해당 항목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후 동영상 등을 추가하여 편집한 것이다. |
[개론] 러버스 락 : 로맨틱이 강조된 '레개'의 서브장르
* 다음의 게시물을 먼저 읽어두면,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 가이아나(Guyana)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런던으로 이민와 성장한 매드 프로페서(Mad Professor: 1955년생).
그는 '덥 뮤직'(dub music) 사운드를 발전시킨 주요한 아티스트인 동시에, '러버스 락' 장르의 주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러버스 락'(Lovers rock)은 '레개'(reggae, 레게) 음악의 한 스타일로서, 로맨틱한 사운드와 가사 내용을 그 특징으로 한다. 1960년대 말 이래로 '레개' 음악에서 '러브 송'(love song)은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러버스 락'이 더욱 관심을 받으면서 그 명칭을 획득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의 영국 런던이었다.(주1) '러버스 락'은 그 명칭과는 달리 '락 뮤직'(rock music)의 서브장르가 아니며 관련성도 없다.
주1: Larkin, Colin (1998) "The Virgin Encyclopedia of Reggae", Virgin Books.
역 사
'러버스 락'의 뿌리는 '락스테디'(rocksteady, 록스테디) 장르 시대의 말기와 '레개' 장르 초기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 시대는 켄 부스(Ken Boothe: 1948년생), 쟈니 내쉬(Johnny Nash: 1940년생), 존 홀트(John Holt: 1947~2014) 같은 ['레개'에 기반을 두면서도 자메이카(Jamaica: 자마이카) 출신이 아니었던] 미국 가수들이 유명한 러브 송들을 국제적으로 히트시키고 있던 때이다.(주2)
당시 자메이카에서는 라스타파리 종교 운동(Rastafari movement: 라스타파라이)에 기초한 의식 있는 음악들이 주류였지만, '러버스 락'은 비정치적 태도를 보이면서 런던의 '레개' 씬에 적합한 스타일이 됐다. '러버스 락'은 '락스테디' 스타일이 지녔던 풍부한 감성 및 사랑을 테마로 하는 스타일을 유지했다. '러버스 락'을 주도한 앨튼 엘리스(Alton Ellis: 1938~2008) 등의 가수들은 '라스타파리안 레개'의 부상에 그다지 낙관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주1)
(동영상) 앨튼 엘리스의 2008년 런던 라이브.
'러버스 락'은 '시카고 소울'(Chicago soul)과 '필라델피아 소울'(Philadelphia soul)의 부드러움을 '락스테디' 및 '레개'의 베이스라인 리듬과 접목시킨 것이었다.(주3)(주4) '러버스 락' 스타일은 사우스 런던(South London) 지역의 '사운드 시스템'(sound system)들에 기반을 두면서 특히 여성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여, 캐롤 톰슨(Carroll Thompson: 1960년생) 같은 여성 스타들을 배출했다. 루이자 마크(Louisa Mark: 1960~2009)는 1975년에 [미국의 '블루스 락'(blues-rock) 기타리스트 겸 가수] 바비 파커(Bobby Parker: 1937~2013)의 노래 <코트 유 인 어 라이>(Caught You in a Lie)를 '러버스 락' 버전으로 발표하여 히트시켰는데, 당시 나이는 14세였다. 그녀의 성공은 어린 소녀 싱어들이 등장하는 사운드의 유행을 만들어내면서 초창기 '러버스 락'의 한 모습을 창조했다.
(동영상) 루이자 마크(Louisa Mark)의 <코트 유 인 어 라이>(Caught You In A Lie)(1975년).
여성 그룹 '심플리시티'(Simplicity)가 결성된 것도 1975년이었고, 클레멘트 '콕슨' 도드(Clement 'Coxsone' Dodd: 1932~2004)가 프로듀싱한 그들의 첫번째 히트 싱글 <투 비 인 러브>(To Be in Love)를 발표했다. 이 싱글의 B면(뒷면)은 미국의 소울 여성 그룹 '이모션즈'(The Emotions)의 고전적 명곡 <어 필링 이스 어 필링>(A Feeling is a Feeling)이 '러버스 락' 버전으로 수록돼 있었다. '심플리시티'를 발굴해낸 사람은 네빌 킹(Neville King)이었는데, 그는 '심플리시티'의 히트곡들인 <러빙 카인드>(Loving Kind), <웨이팅>(Waiting), <블랙 이스 아워 컬러>(Black is our Colour)를 작곡했다.
이어서 등장한 것은 부부 프로덕션 팀 데니스 해리스(Dennis Harris)와 이브 해리스(Eve Harris)였고, 이들은 여가수 티 티 로스(T.T. Ross)의 <라스트 데잇>(Last Date)을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데니스 해리스는 존 크피아예(John Kpiaye: 1948년생) 및 데니스 보벨(Dennis Bovell: 1953년생)과 더불어 런던 남동쪽의 '어퍼 브로클리 로드'(Upper Brockley Road)에서 새로운 레코드 레이블 "러버스 락"(Lover's Rock)을 설립했는데, 이 레코드사의 이름이 새로운 장르의 명칭이 됐다.(주4)
사우스 런던 출신의 여성 트리오 '브라운 슈가'(Brown Sugar)는 훗날 '소울 투 소울'(Soul II Soul)의 멤버가 되기도 하는 캐론 휠러(Caron Wheeler: 1963년생)도 포함했다. '브라운 슈가'는 <아임 인 러브 위드 드래드락스>(I'm In Love With a Dreadlocks)와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 같은 곡들을 통해 '러버스 락'의 서브장르인 '컨셔스 러버스'(conscious lovers: '의식 있는 러버스 락') 스타일을 개척했다. '컨셔스 러버스' 스타일로 레코딩을 한 아티스트에는 런던 배터시(Battersea) 지역 출신 여가수 윈섬(Winsome)과 코피(Kofi: '브라운 슈가' 출신)가 포함된다.(주4)
(동영상) '브라운 슈가'(Brown Sugar)의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1977년).
영국 런던의 '사운드 시스템들' 사이에선 '러버스 락'이 핵심적인 컨텐츠가 됐다. 그러한 사운드 시스템들로는 '치킨 하이파이'(Chicken Hi-Fi), '석세스 사운드'(Success Sound), '소페르노 비'(Soferno B) 등이 있다.(주2) 여가수 데보라헤 글래스고우(Deborahe Glasgow: 1965~1994)의 곡들을 프로듀싱한 매드 프로페서(Mad Professor: 1955년생)도 '러버스 락'의 핵심 프로듀서 중 한명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고, 데니스 보벨은 자넷 캐이(Janet Kay: 1958년생)의 <실리 게임즈>(Silly Games)를 제작했는데, 이 곡은 1979년 '영국 싱글 차트'(UK Singles Chart)에서 2위에까지 올라 '러버스 락' 장르의 최대 히트곡 중 한 곡이 됐다.(주1)(주2)(주3)
(동영상) 자넷 캐이(Janet Kay)의 <실리 게임즈>(Silly Games)(1979년).
'러버스 락'이란 새로운 장르에서 여성 아티스트들의 우세함과 젊음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트레버 월터스(Trevor Walters: 1961년), 허니 보이(Honey Boy: 1955년생), 윈스턴 리디(Winston Reedy) 같은 남성 스타들 역시 탄생했다. 이러한 경향은 '트래디션'(Tradition), '디 인베스티게이터스'(the Investigators) 등 남성 그룹들도 많이 출현했다. 버밍햄(Birmingham) 출신 그룹 '베샤라'(Beshara)는 1981년에 감성적인 곡 <멘 크라이 투>(Men Cry Too)을 발표하여 "영국 레개 차트"(British reggae charts) 상위권에 랭크됐다.
(동영상) '베샤라'(Beshara)의 <멘 크라이 투>(Men Cry Too)(1981년).
이어서 실력을 갖춘 수많은 자메이카 뮤지션들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이 새로운 사운드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성공했던 이들로는 그레고리 아이작스(Gregory Isaacs: 1951~2010), 데니스 브라운(Dennis Brown: 1957~1999), 슈가 미노트(Sugar Minott: 1956~2010), 그리고 점 더 나중에는 프레디 맥그레거(Freddie McGregor: 1956년생) 등이 있다.(주2)(주3) 데니스 브라운의 <머니 인 마이 포킷>(Money In My Pocket)(1979년 14위)과 슈가 미노트의 <굿 씽 고잉>(Good Thing Going)(1981년 4위)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빅 히트를 했다.(주2)
(동영상) 그레고리 아이작스는 "레개 역사상 가장 정교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일컬어진다.
1982년 발표작 <나잇 너스>(Night Nurse)는 차트에 오르진 못했지만 클럽들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곡이다.
펑크/락/스카/레개 크로스오버 장르에서 중요한 밴드인 '더 클래시'(The Clash)는 1979년에 발표한 더블 LP 앨범 <런던 콜링>(London Calling)에 <러버스 락>(Lover's Rock)이란 곡을 수록하여, '러버스 락'이란 용어를 보다 폭넓은 주류 청중들에게 소개하고 대중화시켰다.
'러버스 락'의 인기는 1980년대에도 지속되어, '패션 레코드사'(Fashion Records)는 영국에서 성공을 거뒀고, 1986년 '리뷰'(Revue) 레이블은 보리스 가디너(Boris Gardiner: 1943년생)의 곡 <아이 워나 웨이크 업 위드 유>(I Wanna Wake Up With You)를 히트시켰다.(주2)
1990년대에는 마이크 앤소니(Mike Anthony), 피터 허니개일(Peter Hunnigale: 1960년생), 도나 마리(Donna Marie)가 '러버스 락' 장르에서 성공을 거뒀고, 영국의 유명 스타 몇몇은 유명 뮤직 페스티벌인 '레개 선스플래시'(Reggae Sunsplash)에 출연했다.(주2)(주4)
21세기에 들어와, 공연기획자 올란도 기텐스(Orlando Gittens)는 런던의 '오투 아레나'(O2 arena)에서 일련의 시리즈 콘서트인 "자이언츠 업 러버스 락"(Giants of Lovers Rock: 러버스락의 거장들)을 기획하여 더 많은 청중들에게 '러버스 락'을 알렸다.
주2: Thompson, Dave (2002) "Reggae & Caribbean Music", Backbeat Books.
주3: "Lovers Rock". allmusic.com, Macrovision Corporation.
주4: Barrow, Steve & Dalton, Peter (2004) "The Rough Guide to Reggae", Rough Guides.
(동영상) 피터 허니개일(Peter Hunnigale)은 <비 마이 레이디>(Be My Lady).
(동영상) 2011년 "자이언츠 업 러버스 락"(Giants of Lovers Rock) 콘서트에 출연한 프레디 맥그레거(Freddie McGregor).
* 관련 항목 링크
* 참조용 게시물
- "[개론] '레개' : 자메이카 음악의 대명사 (1) - 개요 및 역사"
- "[개론] '레개' : 자메이카 음악의 대명사 (2) - 음악적 특징"
- "[개론] '레개' : 자메이카 음악의 대명사 (3) - 해외 상황 (남미, 북미, 영국)"
- "[개론] '레게' : 자메이카 음악의 대명사 (4) - 해외 상황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 "[부록] 한국 레게 25주년: Get Up, Stand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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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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