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용: 국호의 변경 -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FNRJ; Federativna Narodna Republika Jugoslavije/Federal Peoples' Republic of Yugoslavia) 에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SFRJ; Socijalisticka Federativna Republika Jugoslavije/Socialists'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 로 바뀌게 된다.
2) 의회제도 - 2원제 (연방의회, 경제의회) 였던 것을 5원제 (연방의회, 경제의회, 교육문화의회, 사회복지보건의회, 정치 행정의회) 로 증설하였다.
3) 그 외 - 재선 3선 금지, 유고 왕가의 작위부여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실제적 사회변동에는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2. 1965년 경제개혁
1) 6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서방국가들과 교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2) 60년대 초반에 은행제도의 개혁이 있었다. 즉, 은행의 임대 차용기능, 대출기능 등이 확대되어, 외부로부터 활발한 투자를 유도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개혁의 배경이 되었다.
3) 1965년 7월, 30가지 이상의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이것은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입법 상의 틀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4) 무역의 개방으로 디나르(Dinar)화가 70% 평가절하 되었고, 새로운 화폐가 출현하게 되었다.
5) 외국 자본들을 많이 도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1964년부터 1970년 사이에 구직자 수가 40% 증가하게 되었고, 이 후 6년간 구직률이 230% 증가하였다.
3. 외교 정책
1) 1958년 소련과의 국교 정상화 이 후 중립노선을 선택하면서, 이집트, 인도 등의 비 동맹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였다.
2)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것을 비판하면서, 외침 시 모든 성인 남성들을 징병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4. 그 밖의 특징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소보 내의 알바니아인들이 대규모의 시위를 벌이게 되어, 빠르띠잔 시절에 티토와 동지 관계를 맺고있었고, "대 세르비아주의" 의 대변자였던 알렉산다르 란꼬비치(Aleksandar Rankovic)가 비밀경찰들을 동원하여, 알바니아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1966년, 알렉산다르 란꼬비치 부통령이 티토 관저 도청사건으로 해임되었다. 해임 이 후에 세르비아 민족주의는 소멸되었고, 대신에 크로아티아의 민족주의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 당시에 "신 계급(Nomena Kulatura/ New Class)" 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는데, "사회주의 등장과 더불어 평등한 사회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또다른 계급이 등장한다." 라는 주장을 펴게되는데, 티토는 이것을 명렬히 비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