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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은 여행자에게 성찰의 시간을 준다. 구시포의 일몰도 그렇고 동학혁명의 발상지 무장도 그렇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그렇게 얽힌다. 어린왕자는 어느 외로운 날 마흔 네번이나 지는 해를 봤다는데 도시의 삶은 그런 여유를 허락치 않는다. 사람들은 매일 뜨고 지는 해를 `굳이’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과거의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나기도 한다. 길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도 좋아질 것이다. `앞’만 보는 사람보다 `주위’를 돌아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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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서해바다. |
일몰 아름다운 구시포
고창군 상하면에 있는 구시포로 가는 길은 반듯하다. 곡선이었던 길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직선에 가까워졌다. 빨리 도달할 수 있지만 정겹진 않다. `산’이라고 생긴 곳이 대부분 파헤쳐지고 있는 광경도 견뎌야 한다. 길을 다니다 보면 국토의 대부분은 늘 공사중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영광 법성까지 쭉 뻗은 22번 국도를 타고 공음으로 들어가는 길을 지나야 비로소 직선 아닌 길을 만난다. 공음, 무장, 심원…. 바다가 가까워진다.
고창 구시포는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20분 거리의 동호 해수욕장도 고즈넉하게 일몰을 보기 좋은 곳이다. 아름다운 모래가 펼쳐진 명사십리해수욕장도 가깝게 있다. 동호해수욕장은 넓은 지평선 뒤로 지는 해를 볼 수 있고 구시포해수욕장에서는 바다로 길게 이어진 방파제가 특별한 정취를 자아낸다. 그 사이를 잇는 해안도로도 겨울바다의 풍경을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해안도로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해안림을 관통하는 이 해안도로 때문에 서해안에서 거의 원형으로 남아 있는 마지막 해안생태계가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는 해안도로는 정상적인 해안의 모습을 해치고 각종 생태 종들의 이동을 차단한다.
구시포와 동호해수욕장의 해넘이는 아름답다. 해넘이를 보려는 한 쌍의 커플이 백사장을 거닌다. 그 해안가에 서면 누구나 풍경이 된다. 온통 붉은 바다를 앞에 두고 사람들은 저마다 상념에 잠긴다. 누군가는 외롭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슴 벅찬 감동이 일기도 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성찰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경계의 시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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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포에서 맛보는 조개구이. |
조개구이와 해수찜
구시포 해수욕장에는 조개구이집들이 몰려 있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조개구이를 `콘셉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조개구이집 주인이 “길이 좋아지면서 광주에서도 많은 이들이 조개구이를 먹기 위해 찾아온다”고 귀띔한다. 바다를 앞에 두고 맛보는 조개구이는 또 다른 구시포의 즐거움이다. 구시포에 즐거움은 더 있다. 해수찜이다. 해수는 사람 몸 속의 혈장과 그 성분이 비슷해 체내로 침투된 해수가 세포와 혈관을 빠른 속도로 자극, 오장육부를 덥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염도가 높을수록 효과가 더 확실한데, 구시포 앞바다의 물이 전국에서 가장 염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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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읍성은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농민들의 아지트였다. |
동학혁명 불길 일어났던 무장
구시포의 일몰을 보기 전에 꼭 들려야 할 곳이 있다. 아름다움 뒤에 가려진 아픔과 치열함이다. 20~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무장읍성. 오래 된 나무들이 서 있는 무장읍성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농민들의 아지트였다. 동학혁명의 발상지가 무장이지만 역사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현재 무장읍성 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동학혁명군의 습격으로 관아가 불 타 없어졌지만 무장에서는 관리들이 혁명에 참여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동학혁명의 중심에 위치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무장읍성이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다. 고창은 동학혁명이 민란수준을 벗어나 혁명으로까지 갈 수 있는 길을 닦은 곳이다.
전봉준 장군이 1894년 1월10일 정읍 고부에서 봉기해 고부관아를 습격, 혁명을 시작했지만 조직화하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전봉준 장군은 당시 농민군을 조직화해 훈련을 하고 있던 무장의 손화중을 찾아 거사를 도모한다. 손화중의 농민군 3500여 명은 전국으로 확산된 동학농민 전쟁의 주력이었다. 무장읍성은 백년의 세월을 이어주고 있는 끈이다. 읍성 안의 오래된 나무들은 “세상을 바꾸자”는 농민들의 함성을 들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자는 함성이 다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읍성과 나무만이 그 세월을 지켜볼 것이다.
글=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사진=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가는길= 광주에서 22번 국도를 타고 영광 법성을 지나 공음까지 간다. 공음에서 796번 지방도를 타고 무장면으로 들어간다. 무장읍성은 무장면 사무소에서 걸어서 2~3분 거리다. 무장에서 다시 15번 지방도를 타고 해리 심원쪽으로 이정표를 따라가면 동호 해수욕장이 나온다. 동호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지나 구시포 해수욕장까지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