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16일 일요일 오전 9시31분.
아침 7시 대전 시내를 출발해 동악산 산행 들머리인
전남 곡성군 곡성읍 도림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뒷차로 출발한 몇 사람을 기다리며 내려다 본 청류동 계곡의 물이
생각보다 무척 깨끗하고 시원해 보인다.
오전 10시15분.
뒷차로 온 일행들과 합류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660년(신라 무열왕 7년)에 원효대사가 사불산 화엄사로부터
옮겨 지었다고 전해지는 도림사 일주문 앞을 지난다.
사찰 내 탐방은 하산시로 일단 미루고 산행 대열에 합류한다.
청류동계곡이라 부르는 이 계곡의 암반에는
이처럼 바위에 새겨 놓은 글자들을 무수히 만나게 된다.
과연 풍류의 고장인 호남지방 다운 모습이다.
이 글은 오씨와 조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청류동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행길이다 보니
이와 같이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 다리를 여러 번 만나게 된다.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은 다리는 아니지만
그 작고 소박함에 더 정감이 간다.
오전 11시5분.
계곡을 가로지르는 여러 개의 철 다리를 건너 이어지는 산행길은
해발 500m 가까이까지도 이와 같은 계곡을 따라 오른다.
주 계곡 옆의 작은 계곡의 제멋대로 생긴 돌들은
나무 그늘에 가려 햇빛을 보지 못한 때문인지
진녹색 이끼로 덮여 있다.
오전 11시28분.
길상암 해발510m 라는 글이 새겨진 작은 표지석이 있는
아담한 공터에는 약수가 졸졸 흘러 더위와 갈증으로 지친 산행객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오래 전에 만든 것이겠지만 돌로 쌓은 성벽의 흔적도 보인다.
골짜기가 많은 지역이라는 의미의 곡성(谷城).
돌로 만든 우물 터 등 군사가 주둔했던 흔적으로 보아
1389년(고려 공양왕 1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당시 죽곡면 당동리에 있던 읍이 함락되자
읍치를 현재의 동악산 아래인 곡성읍으로 옮긴 이래
성을 쌓고 방비를 중히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전 11시59분
이곳 동악산의 명물 중 하나인 부채바위의 한 부분이 눈 앞에 나타난다.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모습이다.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 한 컷 담아 본다.
부채바위에서 바라본 해발 755m 형제봉 의 모습이다.
현재 해발 735m인 북봉에 동악산이라는 표지석이 있으나
실제 이곳 동악산의 주봉은 저 앞에 보이는 해발 755m인
형제봉 중 동봉인 성출봉이다.
앞에 보이는 철계단을 이용해 형제봉에 오르는 사람이 보인다.
오후 12시13분.
해발 660m지점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며 뒤돌아본
부채바위의 모습은 장관이다.
설악산이나 금강산 못지 않은 절경이다.
철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곡성읍은 너무나 작고 아담해 보인다.
곡성군 전체 인구가 32,00명 이고,
곡성읍의 인구가 8,700 명에 불과한 점을 생각하면
조용한 시골 마을의 고층 아파트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더라도 꼴불견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오후 12시33분.
형제봉 중 동봉인 성출봉은 정상 부분이 1분여의 거리를 두고 두개로
나뉘어 있다. 그 중 1봉인 해발 750m에서는 곡성 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씻어 준다.
오후12시41분
동봉 중 다른 하나의 정상. 이곳 동악산의 최정상인
해발 755m 성출봉 1봉을 지나 형제봉 중 서봉인 대장봉을 향하는 능선에서는
멀리 북서쪽으로 곡성군 입면의 약천 저수지와 약천리 모습이 보인다.
오후 1시7분
형제봉의 서봉인 해발 751m 대장봉에서는 서쪽 아래로
곡성군 겸면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오후 1시49분.
대장봉 부근 큰 바위 위에서 동행한 일행 10여명과 함께 점심을 마치고
산행 시점부터 북서쪽으로 향하던 방향을 90도 꺾어 북동쪽으로 향한다.
동악산으로 향하는 배넘어재까지 이어지는 북동 방향의 능선길을 향한다.
그나마 높개 드리운 짙은 구름이 더운 여름날의
산행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 준다.
오후 2시26분.
대장봉에서부터 능선길을 따라 40여분을 걸어도 짙은 숲은 이어진다.
낙엽송 군락과 소나무 군락이 교대로 나타난다.
이곳 動樂山을 "동락산" 이라 읽지 않고, "동악산" 이라 읽는 이유는
'즐거울 락'이 아닌 '풍류 악'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노래, 즉 음악이 울린다(동: 動 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래는 이렇다.
이 산의 개산조인 원효대사가 성출봉(聖出峰 형제봉 동봉으로 동악산 최고봉) 아래에
길상암을 짓고 원효골(청류동 남쪽 골짜기)에서 도를 베풀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성출봉과 16아라한이 그를 굽어보는지라
깨어나 즉시 성출봉에 올라가 보았더니 1척 남짓한 아라한 석상들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원효가 열일곱 차례나 성출봉을 오르내리면서 아라한 석상들을 길상암에 모셔 놓으니
육시(六時) - 불교에서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독경의 시각으로
신조, 일중, 일몰, 초야, 중야, 후야- 만 되면
천상에서 음악이 들려 온 산에 퍼졌다 한다.
도림사 응진전에 봉안된 아라한상들이 당시의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
오후3시10분.
너무 더운 날씨인지라 복봉인 해발 735m 동악산으로 향하지 않고,
배넘어재에서 청류동 계곡을 따라 산행 출발지인 도림사 주차장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동악산을 삼남 제일의 암반계류라 부르는 까닭을
이와 같은 많은 자그마한 폭포를 접하면 실감하게 된다.
오후 3시 37분.
오전부터 시작된 산행으로 온몸이 땀으로 끈적거렸으나
등산복을 입은채로 차가운 계곡 물에 온몸을 담그니
그 시원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물에 흠뻑 젖은 옷이 마를 때쯤이면 또 이처럼 맑은 물 속으로 몸을 던진다.
이곳 청류동 계곡은 지난달 다녀온 포항 보경사 계곡에 비하면
그다지 깊지 않은 계곡인데도, 암반이 펼쳐지는 시원스런 품세는
삼남에서 제일이라는 과찬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고
더구나 등산로 바로 옆에 계곡물이 끝없이 이어지므로
산행 중에도 바로 물에 뛰어 들었다 나올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이다.
오후 4시8분.
마른계곡과 청류동 계곡이 갈라지는 이정표를 조금 지난 지점
아담한 폭포 아래 깊지 않은 소(沼)에 또다시 온몸을 담그고
복봉인 동악산을 경유해 하산할 몇몇 일행을 기다리며 더위를 식힌다.
완만한 암벽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비단결처럼 곱고 윤기가 나는듯하다.
계곡 물이 너무 깨끗하여 그대로 계곡물을 맘껏 들이 마셨다.
시중에서 파는 생수보다 훨씬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다.
금년 산행 중 처음으로 내 눈에 띈 망태버섯의 모습이다.
대나무밭에서 주로 자라는 희색 망태버섯은 식용으로
중국에서는 건조품을 죽손(竹蓀)이라 하여 진중한 식품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처럼 노란색의 망태버섯은 활엽수림에서 자라는 것이고
식용할 수 없다는 얘기들을 한다.
어쨋든 여름 숲속의 귀부인으로 치부해도 될듯 싶다.
주차장으로 가까워질수록 계곡은 넓어지고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마지막 가는 여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 속에서 보내는 이런 즐거움도 1년 후에나 가능할테니까.
이곳 넓은 암반에도 예외없이 많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그 글들은 2곡, 4곡, 5곡 등의 곡이름과 淸流洞(청류동),
丹心臺(단심대), 樂樂臺(낙락대) 등의 지명,
樂山玩草 吟風弄月(요산완초 음풍농월)이니
淸流水石 動樂風景(청류수석 동악풍경)이니 하는 싯구 등이다.
오후 5시8분.
7시간 가까이 걸린 긴 산행을 끝내고 오전에 출발한
산행 들머리의 도림사 경내로 들어섰다.
이곳 도림사의 주불전은 보광전이다. 대웅전이란 이름의 건물은 이곳에는 없다.
사찰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대웅전이 안보인다며 찾아다니기에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신 보광전은
아담한 정면 3칸, 측면 2칸인 맞배지붕 구조이다.
도림사 경내를 벗어나며 휴일 하루 일정을 경건하게 마감한다.
첫댓글 여름이 아닌듯 넘 평온하게 다녀오신듯 하내요. 막바지 더위에 건강 유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