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역사상(남벽) |
금강역사상(북벽) |
○ 석굴암 - 黃壽永 편저, 安章憲
● 金剛力士(Vajradhara, Vajrapani)
마치 拳法의 날쌘 동작으로 상대를 일격에 쓰러뜨릴 기세에 부릅뜬 눈, 툭툭 불거진 근육, 한 치의 빈틈도 엿보이지 않는 자세, 게다가 나부끼는 옷자락에서 날렵한 몸놀림과 속도감까지 느껴진다.
金剛力士. 이 빼어난 두 개의 각상으로 해서 참배객은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두 손을 모아 부처님께 예를 올리게 된다.
前室 들어서서 본존불께 예를 올리는 바른 위치는 周壁에 있는 光背가 부처님의 相好와 가장 잘 어울리게 바라다보이는 지점으로서, 그 자리는 金剛力士가 좌우에 벌려있는 무지개문[虹 ]입구에 조금 못 미치는 곳이다.
부처님이 계신 主室으로 들어가는 문 입구의 좌우에서 악의 무리가 감히 침범할 수 없게끔 守門將의 역할을 맡고있는 것이 金剛力士이다.
金剛力士란 '金剛杵(Vajra)를 손에 들고 있는 자'라는 뜻에서 비롯되어 執金剛神. 金剛手이라고도 일컬어진다. 금강저란 본디 고대 인도에서 무기를 뜻했는데 적을 깨드리는 기능이 번뇌를 부수는 菩提心으로 상징화 되면서 불교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절 문에 배치될 때는 仁王이라고 부르며, 문의 좌우에 두 분이 배치되는데 이 경우 密迹金剛 또는 金剛·力士라고 하여 二尊을 구별해 부르기도 한다. 본디 금강역사는 일체이었으나 불법의 수호신으로 민중의 사랑을 받게 되자 그가 지녔던 상징적 의미가 分化되어 이른바 阿形과 形이란 二尊의 형식이 이루어졌다. '阿'는 산스크리트文字의 첫째 글자이고, ' '는 그 끝 글자로서 시작과 끝을 뜻한다. '阿는 입을 열어 내는 소리이며, ' '는 입을 닫으며 내는 소리인 까닭에 阿形을 開具像, 形을 閉口像이라 일컫는다.
『사진 - 금강역사(남벽)』
『사진 - 남벽 금강역사 얼굴』
『사진 - 금강역사 (북벽)』
『사진 - 북벽 금강역사 얼굴』
석굴암 조상에서 阿形像은 主室을 향하여 볼 때 왼쪽에, 形像은 오른쪽에 서 있다. 두 像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나 몸의 자세는 각각 굴 입구쪽을 향해 약간 몸을 좌우로 튼 모습이다. 여기에서도 엄격한 對稱的 구성 속에서 다양함을 느끼게 하는 숨은 뜻을 엿볼 수 있다.
두 상 모두 拳法의 자세를 묘사한 듯 보인다. 阿形像은 주먹을 꽉 쥔 오른팔을 어깨 위쪽으로 높이 쳐들어 무엇을 내려칠 듯 하며, 왼팔은 배 앞쪽으로 힘차게 내뻗고 있는데 구부린 손가락 사이가 벌어진 손 모습과 함께 무엇을 막는 자세이다. 이같은 손과 팔의 자세는 당연히 몸 전체에 영향을 끼쳐, 어깨 높이로 벌린 두 발 가운데 왼발에 몸의 중심이 쏠리고 오른쪽 엉덩이가 치켜 올라가면서 오른발 뒤꿈치가 따라서 들렸다. 발가벗은 上體는 근육이 꿈틀거리며, 힘이 넘치고 바람에 내리는 듯한 옷자락에서 재빠른 몸놀림이 숨겨져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머리칼은 정수리로 바싹 치켜올려 상투머리로 묶었으며, 부릅뜬 두 눈, 그리고 벌어진 입에선 '앗'하는 기합 소리가 터져 나올 것만 같다. 머리 위의 커다란 둥근 頭光과 발목 부근에서 둥글게 말아진 天衣자락이 삼각형 구도를 보인다.
形像은 阿形像과 기본자세는 같으나 배치상 좌우가 뒤바뀐 모습이며, 다만 오른팔이 배 앞쪽이 아니라 허벅지 옆으로 내려 뻗은 점이 다르다. 그리고 현재 왼쪽 팔목 이하가 훼손 되었다.
日帝時 제1차 修理때 窟內에 쌓인 흙 속에서 金剛力士像의 머리 부분 하나, 왼팔 하나, 왼손 하나 모두 세점의 파편이 발견되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머리부분의 얼굴 표정을 묘사한 조각수법이 현재의 像보다 더 우수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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