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동군(河東郡) 금오산(金鰲山 849m)을 가다.
글 쓴 이 都 庵 高 枓 永
3월 28일, 꽃샘추위라드니... 아직은 쌀쌀하다. 금오산(金鰲山)은 인기(人氣)도 좋아서 차 내는 앉을 자리가 모자란다(51명). 수 년만에, 수 개월만에, 또 처음 오신분들이 이 외로 많으시다.
영산(靈山) 휴게소에서 회원님들이 조반(朝飯)을 드실 동안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넓은 광장에는 대형 버스와 승용차들로 넘쳐나고, 여자 화장실 앞에는 길게 줄을 서 있어 그야말로 장사진(長蛇陣)이다.
세상은 좁고도 넓어서... 서로간에 무관심(無關心) 한 것인가...? 서해 백령도(白翎島) 인근에서는 북의 경계근무를 하던 “천안함(1천200t급)”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대 폭발로 58명은 구조되고, 46명(실종)은 생사(生死)를 몰라서 가족과 그 관계자들은 물론이요, 온 나라가 침통하게 술렁이고 있건마는...
휴게소는 가는 곳 마다 상춘객(賞春客)들로 넘쳐 나시니, 이래도 되는건지...? 마음이 착찹합니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온 세상이 우리와 한뿌리다.)”이라 했는데... 어찌 남의 일이라 하겠는가...! 더구나 나라를 지키는 대한의 아들들인데... 실종 46명의 무사생환(無事生還)을 기원합니다!
얼마를 달렸을까, 하동군 진교 IC에서 다시 1002번 지방도를 따라 20여 분을 더 달려서 금남면(金南面) 중평리(仲坪里) 출발기점에 이르니... 시계는 10시를 조금 넘어있다.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일렬로 줄지어 오르니 봄의 기운이 완연(宛然)하고, 우측 개울 건너 산 기슭에는 정기룡(鄭起龍) 장군을 모시는 경충사(景忠祠)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슴니다.
주차를 좀 더 아래쪽에 했드라면 모든 회원님들이 답사를 할 수 있었을 텐대... 아쉬움이 많아 선생의 업적을 잠시 옮겨 봅니다.
매헌 정기룡(梅軒 鄭起龍 1562~1622)장군은 1586년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 왜군이 쳐들어 오자 거창(居昌) 싸움에서 500여 명의 적군을 격파하고, 금산(金山)에서 왜군의 포로가 됀 상사 조경(趙儆)을 구출하는가 하면, 곤양(昆陽)의 수성장(守城將)이 되어서 왜군의 호남(湖南) 진출(進出)을 막았다.
또한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 고령에서 적장을 생포하기도 하면서 무장으로 용맹을 떨치다가, 삼도수군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의 직에 있던 1622년에 통영의 진중(陣中)에서 죽었다.
그는 마치 천마(天馬)를 타고 다니는 것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고 전해 오며, 그런 전설이 서린 곳이 상주 “경천대”이다. 그 곳에는 정기룡 장군의 유적(遺蹟)이 있고, 유적지는 경북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아울러 장군의 유품인 교지(敎旨) 18장과 관복, 옥대 등 유물 5점이 보물 제669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훗날을 기약하며 선채로 예(禮)를 드리고 다시 오름니다. 널리 알려진 명산이라 등산로도 순탄하고, 주변에는 근세에 생겨 난 이름모를 수도장(修道場)도 여러곳에 보인다.
山은 그리 높지 않으나 계곡은 깊어서 수량(水量)이 상당하며, 게다가 계곡은 경사도가 심하고 바닥은 미끈하고 평평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대소(大小)의 자갈들이 없어 보는 눈이 다 시원하도다!
기념촬영도 해 가면서 쉬엄 쉬~엄 오르니,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는 노란색으로 물들어 그 자태를 뽐내고, 길섶의 양지바른 곳에는 진달래도 반쯤 피어서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수줍어 수줍어 보인다!
그 밖에도 이름모를 나무들이 저마다 뾰족 뾰족 새싻을 틔우고 있어... 남국의 봄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그려!
마지막 개울을 건너 잠시 오르니, 거대한 낙엽수 두 그루와 돌담으로 가리워진 제단(祭壇)이 보인다. 당산목(堂山木)인가? 촛불을 켰던 흔적도 보인다.
우리네 선조(先祖)님들은 만물(萬物)에 신령스런 기운이 다 깃들어 있음을 간파하시고, 뭇 생명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아셨으니... 어찌 영험타 아니 하리오!
이제부터는 경사도 더 가파르고 주위는 돌너덜이 많아 험로(險路)라 하겠다. 오늘따라 선두에 최대장은 뭐가 그리 급한지 쉬~임 없이 오르고, 중간은 필자와 정국진 회원님이, 후미는 최형달님과 황부회장님이 진행을 돕습니다.
쉬다 오르고 오르다 쉬면서 30여 분을 오르니 갑자기 주위가 확 트이고, 남해바다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多島海) 섬들을 바라보면서 몇 걸음을 더 나아가니 석굴암(石窟庵)이 나타난다. 어느 때 부터 지어진 석굴법당(石窟法堂)인지 그 내력을 알수는 없으나, 주위의 돌들을 차곡 차곡 쌓아서 두어 사람이 겨우 앉을만큼 좁은 공간으로 지어진 기도장(祈禱場)이다.
그 옆으로는 산신각(山神閣)이 더 좁은 공간에 모셔져 있고, 금오산의 8부능선은 되겠건만 감로수(甘露水)는 철~ 철~ 넘쳐 흐른다!
도량(道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왜소(矮小)하지만, 그래도 신심(信心)이 있는자라면 수도(修道)를 할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오산(金鰲山) 중턱에 묵묵히 앉아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의 조망(眺望)이 가히 일품이라!
한 세상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자기 세계에 몰입(沒入)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대장부의 길이 아니겠는가!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10여 분을 더 오르니, 정상에는 통신탑이 우뚝솟아 홀로 장엄하시니... 하늘로 오를 것인가? 천하를 굽어 보심인가? 21C 첨단문화 건설에 어쩔 수 없는 송신탑이라 지만... 환경훼손은 참으로 크도다!
어서 빨리 환경훼손 없이 인류문화를 향유(享有)할 수 있는 첨단문화 세상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여러개의 나무계단을 오르니, 이번에는 해맞이 행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거창하게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도 당국의 배려가 크고도 깊어서... 자연훼손 없이 정형화됀 널빤지로 잘 시설되어 있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넓은 광장에서 삼삼 오오(三三五五) 모여 앉아 점심을 드심니다.
춘삼월(春三月) 호시절(好時節)에 햇볕도 따사로와서, 바람은 불어도 훈훈한 춘풍(春風)이라! 식후 디저트로 과일이며 쌍화차 까지 드시니... 되려 나른하게 느껴진다!
점심후 몇계단을 더 올라 정상표석(頂上標石)을 배경으로 간단한 기념촬영을 한 후 잠시 사방을 조망(眺望)합니다.
금오산(金鰲山 849m)은 백두대간의 지리산 삼신봉(1289m) 부근에서 남쪽으로 주산(831m)과 옥산(614m), 계봉(548m)을 거쳐 이 곳 금오산에 이르고, 다시 연태봉(447m)을 지나 남해바다에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금오지맥이라 한다.
백두의 정기(精氣)가 이 곳 금오산에 오롯이 모여 한껏 치 솟으니, 그 지기(地氣) 또한 뛰어나서... 금남면(金南面)에는 매헌 정기룡 장군의 출쟁지로 그의 태봉(胎地)이 있으며, 진교면(辰橋面) 안심리(安心里)에는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의 태지(胎地)가 있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없다 하리요!
일두 정여창(1450~1504)은 조선 성종(成宗)때의 대학자로 본관(本貫)이 하동(河東)이며, 그의 증조(曾祖)인 지의(芝義)가 처가의 고향인 함양(咸陽)에 와서 살기 시작 하면서 함양사람이 되었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김굉필과 함께 함양군수로 있던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늘 벼슬을 사양하다가 성종 21년(1490) 문과에 급제하여 당시 동궁이었던 연산군을 보필 하였지만, 강직한 성품 때문에 연산군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 연산군 1년(1495)에 안음(安陰:현 안의) 현감에 임명되어 선정을 배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들었으며, 1498년 무오사화 때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流配)되었고,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剖棺斬屍) 되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사에서 한훤당 김굉필,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과 함께 동방 오현(五賢)으로 인정받고 있다. 선생의 고택(古宅)은 함양군 지곡면(池谷面) 개평리(介坪里)에 있으며, 수동면(水東面) 원평리(院坪里)에 있는 남계서원(灆溪書院)에서 향사를 하고 계시니...
그 업적은 태산같은데... 스스로를 낮춰서 “일두(一蠹:한마리의 좀벌래)”라 하셨으며, 만년에는 “수옹(睡翁: 졸고있는 늙은이)”이라고 겸칭 하셨으니... 이 못난 필부(匹夫)는 스스로 부끄럽고 시냇가에 모래알 보다도 더 작게 느껴집니다 그려!
어디 그 뿐인가...! 노량리(露梁里) 앞바다에는 성웅 이순신의 최후 격전지(激戰地)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금오산의 지덕(地德)은 크고도 높아서
만고불멸의 영웅(英雄)들을 길러 내시어
이 나라를 풍전등화에서 구해 내셨으니
아~ 그 이름 그 지덕 영원(永遠) 하소서
다시 고개를 들어 다도해(多島海)를 바라보니 멀리는 시계(視界)가 흐려서 분간키 어렵고, 가까이는 이름모를 작은섬들로 수(繡)놓아 져서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저토록 아름다운 곳을 피로 물들였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슴니다 그려!
안내판에 금오산은 노적(露積)가리처럼 우뚝 솟아 있어 옛날에는 “소오산”이라 하였으며, 병목처럼 생겼다고 “병요산(甁要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 이산의 주맥(主脈)을 따라 산줄기가 끊어질 듯 이어져 내려 바다를 건너다보는 자라(鰲) 형상(形象)과 같고, 오행설(五行說: 목 화 토 금 수)에 따르면 山의 상(象)이 금상(金相)이므로 금오산(金鰲山)이라 한다고 적혀있다.
아울러 산 높이가 849m이고, 둘레가 34Km 나 되어 진교면, 금남면, 고전면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는 지리산의 웅장함과 남으로는 다도해(多島海)의 아름다운 경관에 발걸음을 돌리기가 무겁슴니다.
금오산 봉수대(지방기념물 제122호)와 마애불(磨崖佛:경남유형문화재 제290호)은 훗날에 답사를 기약하며, 잘 닦여진 찻길로 10여 분을 나아가다 “공군 제8357부대” 입간판(立看板) 부근에서 우측 금성암(金星庵)방향으로 하산하니... 비교적 조용한 산길이라 걷기가 조심스럽다.
최대장은 선두에서 산행로를 확인하여 후미로 알려 오시니 진행이 순조롭다. 등산로 좌 우로는 싸리나무와 진달래가 뒤썪여 지천(至賤)을 이루고, 진달래는 꽃눈이 단단하여 아직은 멀었도다!
하산길은 가파르고 외길이라 달리 방도가 없으며, 30여 분을 부지런히 걸어나려 도성암(道成庵)에 이르니, 여기서 부터는 포장도로다. 등산 개념도(槪念圖)에는 “금성암”이라 적혀 있으나, 실재는 “도성비구니도성암창건비(道成比丘尼道成庵創建碑)”가 서 있어 서로 다름을 알겠다.
도성암은 최근에 불사를 많이 한 듯 하고, 넓은 도량(道場)에는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과 요사(寮舍)채가 전부다.
법당에 들어 간단히 예(禮)를 드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주산(主山)은 웅장하고 수려(秀麗)하며, 백호는 힘차게 내리뻗어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으나, 청룡(靑龍)은 허(虛)하여 부실하다! 속가(俗家)나 절집(寺刹)이 다 사람이 거(居)하는 곳인데... 어찌 길지(吉地)를 택하지 않으리요!
원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말끔히 포장되어 대자연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으나, 철마시대(鐵馬時代)에는 더 없이 좋은 길이로다! 너~털 너~털 허허(虛虛)롭게 걸어 나오니... 양지바른 곳에는 여러회원님들이 봄나물을 뜯느라 분주하시다!
남국의 봄소식은 매화꽃에 묻어 나고
향기로운 봄 내음은 태양빛의 은혜로다!
금오산은 인걸들의 산실이자 귀의처로서
만고에 향기를 주시니 영겁으로 빛나리!
단기 4343년(서기2010년) 3월28일
하동군(河東郡) 금오산(金鰲山 849m)을 가다.
|
첫댓글 장문의 산행후기를 집필 하시느라고 대단히 수고가 많았습니다, 늘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취산님의 사진 자료를 많이 활용하였으며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졸문을 읽으시느라 수고 하셨으며,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랍니다.
역사가 숨쉬는 금오산을 알게 되였고 ..전망이 좋아서 더욱 돋 보이는 산행을 하고 보니 감사할 뿐 입니다.
황까페지기님의 사진도 많이 활용하였으며, 항상 산악회 발전을 위해서 애쓰심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아울러 김해진 선생의 사진자료도 많이 활용 하였으며, 이점 깊이 감사드림니다.
금오산의 봄향기와 함께 산행후기 잘 읽고 갑니다~~~^^*
구슬님은 편안하신지요? 4월에는 뵐수 있었으면 합니다. 변변찮은 글 보시느라 애쓰셨구요, 내내 건강하세요!
전문가와 비교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으신 산행후기 집필 존경스럽습니다..
.남산산악회의 편집국장으로 다시 자리를 하나더 만들어드려야겠습니다....ㅎㅎㅎㅎㅎ
멋지다고까지 말씀드리고 싶은 산행후기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수고하였습니다..그리고 감사드립니다...
맞아요~~~~~회장님!!!! 화이팅!!!!!!!
별이님! 부끄럽슴니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너무많아요.앞으로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며,항상 건강하시고 남산 산행에 열심히 동참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대구백물관에서 역사 이야기듣고 했지만 회장님 역사대하여 자세히 가르치주신 덕분에 많이 도움이 됩니다! 산행후 정말 감사합니다~~~
공주님께서도 역사공부를 많이 하시나 봅니다. 아직은 여러가지로 부족한점이 많아요. 앞으로 더 많은 협조와 산행에 열심히 동참 해 주세요! 좋은자료 보고드리겠슴니다. 감사합니다ㅏ.
산행후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같은 산에갔는데 보고 느꼈는것이 정말 다르군요!... 부끄~부끄
행복님은 매사에 아주 열정적으로 임하시는것 같슴니다. 우리 남산에도 많은 협조와 도움 주시길 바랍니다!행복님이 계셔서 늘 행복하며...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부족한 저를 잘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성격이 좀 열정적이다 보니 저생각과는 달리 남의 오해로 마음을 많이 다칩니다 이제는 좀 요저숙녀가 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ㅎㅎㅎ
회장님의 아침강의 도 즐거움 이지만 산행후기는 두고두고 공부가 됩니다.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 .
김선생님! 되려 송구스럽슴니다. 차내에서 늘 고명하신님들의 귀를 시끄럽게 하는 죄가 참으로 큼니다. 진리는 말에 있는것도 아닌데... 하오나 널리 이해 해 주시옵고 더 좋은 자료들을 조사해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슴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