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63)>
63. 노마지지(老馬之智)
늙을 노(老), 말 마(馬), ‘노마(老馬)’라 함은 ‘늙은 말’이라는 뜻이고, 어조사 지(之), 지혜 지(智), ‘지지(之智)’라 함은 ”~의 지혜’를 말한다..
따라서 ‘노마지지(老馬之智)’라 함은 “늙은 말의 지혜” 즉 “경험이 풍부하고 숙달된 지혜”라는 의미이다. 또한 “하찮은 사람일 지라도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혜가 있음”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노마지지는 한비자의 설림편(說林篇)에 나온다.
제(齊)나라의 명재상인 관중(管仲)과 습붕(濕朋) 두 사람은 제나라의 환공(桓公)을 따라 고죽국(孤竹國)이라는 작은 나라를 정벌했다. 그런데 갈 때는 봄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겨울이 되어, 추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때 관중은 “늙은 말은 원래 지나온 길을 알고 있으므로, 눍은 말의 지혜가 도움이 된다. (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라고 말하고,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갔다. 과연 본래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산 중을 진군하고 있을 때,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목이 말랐다.
그러자 습봉이 “개미는 겨울이면 산 남쪽에서 살고, 여름철이면 산 북쪽에 사는 법이다, 개미집의 높이가 한 자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개미집을 찾아 그 아래를 팠더니 과연 물을 구할 수가 있었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관중과 같은 현명한 사람이나 습봉과 같은 지혜있는 사람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늙은 말이나 개미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현의 지혜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
대체적으로 연륜이 쌓아갈수록 경험이 풍부하게 된다. 경험이 풍부해지면 그에 비례하여 삶의 지혜도 많아지게 진다. 노인네 팔다리가 쑤시면 다음날 일기를 점칠 수가 있다. 제비가 낮게 날거나 지렁이가 굼틀거리고 저녁노을의 빛깔이 짙어도 다음날 일기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경험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많으면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한다.
공자님 같은 성인도 뽕밭이 아낙네에게서 깨우침을 받았다.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이다.
공자(孔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진기한 구슬을 얻었는데, 이 구슬의 구멍이 아홉구비나 되었다. 그
는 이것을 실로 꿰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문득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라면 어렵지 않게 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
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던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그 아낙은 이렇게 말했다.
“찬찬히 꿀(蜜)을 두고 생각 해 보세요”
아낙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던 공자는 얼마 후 그녀의 말의 의미를 깨
닫고 무릎을 쳤다. 그리고는 개미를 한 마리 붙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는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 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개미가 꿀 냄새를 맡고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왔다. 이리하여 구
슬에 실을 꿸 수 있게 되었다. 송(宋)나라의 목암선경(睦庵善卿)이 편찬한
조정사원(祖庭事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노마지지에서 늙은 말이 산길을 제대로 찾은 것은, 그 산길을 수도 없이 다녀
본 경험이 있었가 때문이다. 현장 경험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나이가 지긋
하여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본 사람만이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가 있다. 자식을 낳아서 키워 본 사람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법이다.
한 분야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뛰어난 경우 달인(達
人)이라고 부르기도한다.
국가를 관리하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스스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는 없
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잘 파악하여 활용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가 있다. 전문가에게 일을 맡겼으면 그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한다. 늙은 말을 수레에서 풀어놓았으면 그 말이 찾아가는 산길을 믿
고 따라가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하여, 경로사상(敬老
思想)이 두드러진 나라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경로사상이 약해져 가는 것
같다. 심지어 대통령후보로 나선 사람이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말고 집에
서 편히 쉬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무릇, 인생경험이 많아야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아침 해가 찬란하고 장엄하지만, 저녁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지는 석양도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래서 옛 시인은 “서리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다”라고 읊었다. 이를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라고 한다. 노마지지(老馬之智)를 풀이 하다보니,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나서 적어 본 것이다.(2023.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