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쉐카이나 코리아
 
 
 
카페 게시글
 율법과 복음 하나님의 율법의 영원성 - 스펄젼 - (D) 내가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 그분의 사랑안에 거함같이
하토브 추천 0 조회 94 12.02.01 11:56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2.02.01 12:00

    첫댓글 스펄젼도 율법이 아닌 복음을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완성시킨 주 예수님의 복음을 널리 전하기 원합니다.

  • 작성자 12.02.01 12:08

    제가 말하는 바나 요한 웨슬레가 말하는 바나 스펄젼이 말하는 바에 있어서 율법에 관하여 다른 차이를 발견하십니까?

  • 12.02.01 12:13

    저는 요한웨슬레보다도 슬펄젼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

  • 작성자 12.02.01 12:16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짓밟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그것들을(율법의 계명들을) 행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크게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이 말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웨슬레와 스펄젼의 율법에 관한 말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 12.02.01 12:20

    저도 웨슬레와 스펄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하토브님이 말하는 바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르게 정립하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

  • 작성자 12.02.01 12:53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스펄젼의 글에서 요 15:10 에서 예수님의 율법 준수를 찾아내고, 히 10 장 7절에서 예수님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펄젼은 성경을 매우 정독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 작성자 12.02.01 21:44

    스펄젼, 무디, 웨슬레 3인이 모두 율법에 대한 존중과 율법의 영원성, 유용성, 등을 강조하였는데, 그들 모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서, 제도권 신학교와는 무관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웨슬레는 옥스포드를 나왔고 성공회 부사제가 되었지만 그것은 그가 모라비아 형제단의 전도를 받고 구원얻었을 때 폐기된 것이었습니다. 무디 또한 어느 신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스펄젼 역시 침례교에서 이사야서 45장 22절을 읽고 거듭났습니다. 그후 강에서 침례받고, 주일할교 교사로 시작하여 설교가로 초빙되고 나중에 목회자로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신학교 체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그를 기념하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 12.02.01 22:11

    스펄젼, 무디, 웨슬레 3인은 모두 형제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과 형제모임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 작성자 12.02.01 21:46

    스펄젼은 고아원 운동을 죠지 뮐러에게서 배워 실행하였는데 그의 고아원은 2차대전때 폭격으로 소실 될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중국 내륙 선교회의 허드슨 테일러와 아프리카의 데이빗 리빙스턴 죠지 뮐러 등의 플리머스 형제단과 교제하였고 무디와 교제하였지만 형제모임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저 침례교 설교가로 지냈습니다. 아마 그는 다비를 싫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12.02.01 22:12

    플리머스 형제단과 다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과 교제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 12.02.02 03:17

    웨슬레는 형제모임이 생기기 100년 전 사람입니다.그러나 형제모임의 원류인 모라비아 형제단에 의해 전도받고 피터 뵐러의 설교를 듣고 거듭났습니다. 모라비아 형제단의 뿌리는 잔후스 등의 보헤미아 형제단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그들은 보고밀에서 전도되었습니다. 보고밀의 뿌리는 터키 알메니아 지역의 바울 파였다고 생각되는데 그들에 관한 글은 에반스 글이 여기에 올려져 있습니다. 바울파는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많은 모임들을 말합니다. 보고밀이 서진하여 알비파를 형성하였고, 또 그 이전의 카타리와도 합류하였습니다. 알비파와 보도아 형제단은 거의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 작성자 12.02.02 03:23

    독일지역의 왈덴지안들로 연결되는데 독일 스위스에 퍼져 있었습니다. 이 왈덴지안들이 율법을 중시했다는 기록은 나옵니다. 왈덴지안들은 로마 카톨릭에 항거하기도 하였고 그들의 무력에 무력으로 맞서 싸워 100 대 1로 격파한 기록도 있었지만 로마 종교의 회유에 넘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왈덴지안들은 라인강 유역 연합 형제단, 재침례파 등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빠진 무리들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위클리프의 롤라드파, 네스토리우스의 네스토리안, 스툰디스트, 메노 시몬의 메노나이트, 등이 있습니다. 플리머스 형제단은 1827년 그로브스, 빌렛, 다비 등 7명의 형제들이 모여 처음 떡을 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 작성자 12.02.02 03:28

    그들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모였는데 나중에 플리머스에서 크게 부흥하게 되어 플리머스 형제단으로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이 플리머스가 그토록 번영한데에는 기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라비아 형제단이 그 지역에 상당수의 복음의 씨앗을 뿌렸었기 때문입니다. 모라비아 형제단은 요한 웨슬레에게 뿐만 아니라 플리머스 지역에서 많은 전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큰 시야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크게 성령의 역사로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로마 카톨릭 외에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형제모임과 헤른 후트 모라비아 형제단은 비데니스트 성경학교를 통해서 그 연결을

  • 작성자 12.02.02 03:32

    엿볼 수 있습니다. 위에 말한 후스는 보헤미아 여왕의 고해신부 였으면서 프라하 대학 총장으로 유아세례, 연옥설, 교황제도, 화체설에 반대하여 교황이 주관하는 콘스탄자 파티에 신변 보장을 약속받고 소환되었다가 화형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가지 않으려 하여 거절하였으나 교황은 여러 말들과 문서로 신변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였었습니다. 그가 화형된 사건은 당시 동유럽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쳐서 후사이트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모든 그룹들은 연결됩니다. 루터보다 200여년 앞서서 페트로 드 부루시안은 크게 개혁을 외쳤던 사람인데 폭도들에 의해 불태워졌습니다. 그가 마리아 우상을 쪼개워 불태웠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12.02.02 03:33

    여러분 스펄젼이나 웨슬레가 율법만 강조하고 은혜는 가르치지 않았겠습니까?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