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14대 近仇首王과 道德經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제14대 近仇首王條 원년(375)에 고구려의 國岡王(고국원왕) 斯由가 친히 내침하므로 近肖古王이 太子를 보내 半乞壤에서 싸우게 되는데 이때 高句麗人 斯紀는 본시 百濟人이였는데 國用馬의 발굽을 잘못하여 罪가 두려워 고구려로 도망갔다가 이때 다시 돌아와 태자에게 적정상황의 정보를 알려주어 적을 크게 무찌르고 추격하여 水谷城(新溪)西北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수행한 장군 莫古解가 諫하기를 일찍기 道家의 말을 들으니 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얻은 바가 많으니 어찌 구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將軍莫古解諫曰, 嘗楣家之言, 知足不辱, 知止不殆, 今所得多矣, 何必求多,) 태자가 선히 여겨 추격을 그만 두고 돌을 쌓아 표식을 삼아 좌우를 둘러보며 금후에 누가 여기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하였는데 『도덕경』(44장) 「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 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중 ( )부분에 해당되는 말로서 족한 줄을 알아 욕되지 않고 그칠 줄을 알아야 위태롭지 않아야 가히 장구할 수 있느니라 근구수왕은 태자때부터 영민하여 총애를 받았고, 아버지 근초고왕과 해외정복을 개척한 가장 뛰어난 백제왕중의 왕이다. 근초고왕을 따라 倭를 개척한 王이고, 일본의 실제적인 천황의 시작은 근초고왕에서부터 라고 보면 되겠다. 태자 近仇首는 어렸을 때부터 글 읽기를 즐기고 文武를 겸전하여 항상 책을 놓지 아니하고 倭의 땅에 출전하면서도 論語 등 經典을 읽고 주위에도 학문을 권장하였다고 한다, 『일본서기』 응신천왕조 16년2월에 王仁이 왔다는 대목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王仁이 近仇首王으로 비정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너무나도 유명한 경남 진주시 智水面의jhmbn klojo89 止愼亭이란 亭子에 얽힌 이야기로 이곳은 수 백년 부자동네로 소문 난 곳으로 원래의 터주대감은 김해 許氏들인데 止愼亭은 許駿(1844~1932)이었고, 만석의 부자였지만 멈출 줄 알고, 향상 경계하였던 것이다 그 후예가 D.S그룹 허창수 회장이고, 이곳은 한국의 재계를 대변하는 재벌 창업주 L,G , 삼성, 효성 등의 창업주의 고향이기도 하다.
(『三國史記』 原文)
『三國史記』 近仇首王 元年조「(一云 諱須) 近肖古王之子 先是 高句麗 國岡王斯由親來侵, 近肖古王遣太子拒之, 至半乞壤將戰, 高句麗人斯紀本百濟人, 誤傷國馬蹄, 懼罪奔於彼, 至是還來, 告 太子曰, 彼師雖多, 皆備數疑兵而巳, 其驍勇唯赤旗, 若先破之, 其餘不攻自潰, 太子從之, 進擊大敗之, 追奔遂北, 至於水谷城之西北, 將軍莫古解諫曰, 嘗楣家之言, 知足不辱, 知止不殆, 今所得多矣, 何必求多, 太子善之止焉, 乃積石爲表, 登其上顧左右曰, 今日之後, 疇克再至於此乎, 其地有巖石, 罅若馬蹄者, 他人至今呼爲太子馬迹, 近肖古在位三十年薨, 卽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