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국 큰손들이 제주도를 찾는 이유는?
가격 싸고, 가깝고, 영주권 나오고 …
"별장 마련 하자" 콘도 등 매입 열풍
제주도 서귀포시 정방폭포 절벽에는 한문으로 ‘서불과차(徐市過此-서불이 지나갔다는 뜻)’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서불(서복)은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진시황제의 명을 받아 우리나라를 다녀갔다고 전해지는 중국인으로 제주도가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 서불과 관련된 글귀를 정방폭포에 새겨놓은 것은 중국인 관광 수요를 염두에 두었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라도 중국과 연결고리를 찾고 싶은 뜻에서 새긴 이 글귀는 실제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제주도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중국인들 사이에 제주도는 꽤 인기 휴양지다.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출발하면 불과 40분. 이 정도 거리면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 칭다오(靑島), 다렌(大連), 하이난 섬(海南道)과 비슷하다. 그러면서 물가는 칭다오, 다렌, 하이난 섬의 절반 수준.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아예 부동산을 통째로 매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7월 상하이 부동산 투자단 소속 150명은 전세기를 대절해 제주도를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휴양과 부동산 투자였다. 당시 대규모 투자단 방문 이후 제주도 내 콘도 20여 개는 순식간에 주인을 찾았다. 지금도 제주도에는 주말마다 대규모 부동산 투자자들이 몰려와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5년 보유 시 한국 영주권 취득 가능
국토해양부가 조사한 2010년 6월 말 기준 외국인 토지 소유현황을 보면 중국인 투자금액은 2009년 전체 1조2753억원에서 올 상반기 1조3345억원으로 2.79%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반기 투자액만으로 지난해 전체 금액을 초과한 것이다. 국적별로 놓고 볼 때 단연 증가율이 높았던 곳 역시 중국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환율변동에 따른 대체투자용과 자산 안배 성격이 크겠지만 제주도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부동산 영주권도 인기몰이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제주도에서만 2010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외국인이 국내에서 5억원 이상 규모 부동산을 산 뒤 5년 이상 거주(보유)하면 영주권을 주는 것이 골자다.
투자대상은 휴양목적의 콘도, 리조트이며, 분양권, 일반아파트 등은 제외다. 완공허가를 받아 매매등기가 가능한 물건만 해당된다. 이 제도는 일정 기간 제주도에 머물러야 한다는 단서조항조차 없기 때문에 구입 후 그냥 3년만 보유하면 국내 거주비자가 나오고 추후 2년간 비자를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렇게 5년간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바로 영주권이 나온다.
이 같은 장점이 알려지면서 최근 제주도에는 중국 큰손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서귀포시 섭지코지에 위치한 휘닉스아일랜드는 지난 10월과 11월 단독형 빌라 2채를 매각했는데 매수자는 공교롭게도 모두 중국투자가였다. 현재 남은 한 채 역시 중국인투자자들이 매입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림읍 재릉지구 내 라온프라이빗타운을 개발하는 라온레저개발에 따르면 1차분 220실 중 절반에 가까운 109실을 중국인들이 매입했다. 라온프라이빗타운은 제주도 내 단일 리조트로는 최대 규모로 분양 가격은 3.3㎡당 1000만원 수준이다. 서해종합건설이 개발하는 아덴힐도 380㎡(116평)짜리 단독형빌라 20여 채를 중국 투자자들이 구입했다. 분양가만 38억원에 달하는 고급 리조트 아덴힐은 18홀의 골프장과 클럽하우스, 풀 빌라 등을 부대시설로 갖춰놓고 있다. 아덴힐은 집 한가운데를 중정(中庭) 형태로 꾸미는 등 신개념 평면을 도입했지만 워낙 고가에 분양된 탓에 그동안 매매에 어려움을 겪어왔었다.
서해종합건설 관계자는 “2~3번 현장을 방문한 뒤 매입을 결정하는데 단독보다는 5~6명이 공동으로 매입하고 있다”면서 “영어마을, 제주공항과의 접근성도 따지지만 이들이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역시 우리나라 영주권”이라고 소개했다.
구입자는 대개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대도시에서 활동하는 사업가라는 것이 분양대행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얼마 전 중국 내 고급부동산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업체와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한 데다 상하이에 20억원을 들여 고급 모델하우스를 지은 것도 중국수요를 키운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실거주보다는 해외 바이어를 위한 휴식공간으로 사용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최근 와선 법인 차원의 부동산 투자도 활발하다. 광둥성(廣東省) 부동산 개발업체 천해그룹은 서귀포시 목장용지 43만㎡에 신혼테마파크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 4월 제주특별자치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천해그룹은 경우에 따라 5000만달러 이상 추가 투입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회사 분마그룹도 지난 2009년 9월 제주시 이호 유원지 25만5000㎡에 3억달러를 들여 호텔, 상가 등을 짓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베이징(北京)에 위치한 태양광 전지 제조업체 기가솔라는 지난 4월 제주도에 투자키로 결정했다. 후난성(湖南省)에 본사를 둔 중국 최대 중장비업체 샤니(SANY)그룹도 제주도에 기업연수원을 건립할 계획이다.
실제로 중국인들의 부동산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케팅 리서치 그룹 입소스가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6개 도시에 사는 성인 1074명을 대상으로 “만약 100만위안이 있다면 가장 먼저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응답자의 42%가 부동산을 꼽았다.
이 같은 부동산 짝사랑으로 중국은 최근 침체된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매수를 벌여나가고 있다. 중국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도시의 고급주택 시장에서 중국인들은 VIP고객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도쿄에서는 중국인들의 부동산 취득사례가 늘면서 “이러다 후지산까지 중국인 손에 넘어가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명의신탁 형식으로 강남 ∙ 한남동 부동산 투자
제주도 외에서도 중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 공략은 활발하다. 지난 5월 중국 대형 건설회사 중국건축공정총공사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DMC랜드마크타워 투자를 위해 사업 주관사인 대우건설을 찾았다. 당시 이 회사가 내건 조건은 자본금 5%와 공사 지분 10%를 투자하는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우건설이 공사지급보증을 요구하면서 두 회사 간 투자 논의는 깨졌다.
중국건축공정총공사는 중국 최대 규모의 국영건설회사로 지난 2006년부터 미국 <포춘>이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 중국 건설업체로는 유일하게 오르고 있는 회사다. 이 회사는 상하이의 명소인 474m 높이의 월드파이낸셜센터(SWFC)에 시공 지분 60%를 확보해 참여했으며, 상암랜드마크타워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초고층 빌딩 노하우를 얻기 위한 장기 포석의 성격이 짙었다.
대우건설 상암랜드마크AMC팀 채원철 부장은 “우리나라에선 아주 일반화돼 있는 건설사의 사업 지급보증에 대해 처음부터 탐탁지 않게 여겼다”면서 “중국건축공정총공사의 야심은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의 초고층 건설 노하우를 배워 중동에서 본격적인 사업을 벌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인천 영종도 미단시티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리포도시개발의 최대 주주 역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본사를 둔 중국계 부동산개발회사 ‘리포’이며, 대련화흥은 평택시 한중테크밸리 산업단지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박준희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최대 달러보유국가인 중국으로선 달러가치가 하락되기 전에 자금을 해외로 내보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로선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 상품이 바로 부동산”이라면서 “한때 명동 중앙극장 주변 명동4구역 등 재개발 사업도 적극 검토했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한국 사업 파트너의 명의를 빌려 한남동 유엔빌리지, 강남 청담동 등지의 부동산을 취득한 투자금액도 정확하게 추산할 수는 없지만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2월 중국 부동산투자회사가 50채를 구입하기로 한 강원도 알펜시아리조트(원안).
중국 최대 건설사 중국건축공정총공사가 사업참여를 검토했던 상암동 DMC랜드마크타워.
중국계 자금 글로벌 부동산시장 큰손으로 등장
중국 부유층들이 재산 분산 차원에서 해외부동산 매입에 적극 나선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홍콩,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중국 거부들의 대표적인 투자처인데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영주권 취득 등 이민정책이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제주도가 이들의 관심권에 들어왔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것뿐만 아니라 영주권도 받을 수 있는 다목적용이라는 매력이 부각되면서부터다. 일본도 최근 이 같은 중국투자자들의 투자선호를 의식해 자국 내 비자 규정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중국 투자자를 놓고 한일 양국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외 반응을 보이자 정부는 현재 제주도에 한정돼 시행하고 있는 영주권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강원도, 인천시 등 광역지자체들이 해당 지역 관광사업 활성화와 외자유치 확대를 위한 영주권 제도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앞으로 중국 등 외국인 투자수요에 불을 댕길 것이 확실하다.
지난 12월1일 홍수림무한투자유한공사는 강원도의 골칫거리였던 알펜시아 에스테이트 50동을 구입하기 위해 분양 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 아직 투자금 대부분이 전체 분양가의 20%인 계약금에 불과한 데다 우리 정부가 영주권 신청 시 외환장부증명서 등을 첨부서류로 요구하고 있어 자금 출처 노출을 꺼리는 중국인들로선 실제 구매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분양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분양 대행사 관계자는 “지금 중국에서 들어오는 자금들은 상당수가 검은돈인데 이들에게 투명한 자금출처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경우 생각만큼 외자 유입이 많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08년부터 1년에 두 차례씩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주요 도시를 돌며 벌여온 투자설명회를 2011년에도 계속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