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별미 / 文耕 양귀순
올여름은 유난히 일찍 시작된다. 직장 다닐 때는 에어컨으로 인해 몸이 많아 아팠다. 에어컨 바람이나 선풍기 바람을 온종일 계속 쏘이고 있으면 내 몸 땀구멍으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있다. 집에 있으니 에어컨은 틀지 않으면 되지만 6월 초순부터 30도가 넘는 날씨가 많아졌다. 그러기에 집에 있다가 나가려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외출복을 챙겨 입는 자체부터가 곤욕이다. 하지만 집에만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신다.
2년 전 광주로 이사 간 친구와 통화했다. 친구가 내려오란다. 내려와서 발 닿는 곳으로 떠나자고 한다. 사회복지 공부하다가 만난 동갑 친구다. 나는 비교적 여행 목적지와 여러 가지를 미리미리 계획하는 편인데 그 친구는 정해놓지 않고 떠나자고 한다.
그 친구로 인해 수년 전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보통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와야 하므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산에 올라갈 때는 물론 다시 차 있는 곳으로 내려올 생각이었다.
둘레길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얼마를 걸어야 하는지, 몇 시간이 소요되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여름에 산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후 3시쯤 부터 걷기 시작했다. 뜨거운 8월, 둘레길이라고는 하지만 지리산은 꽤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아주 가끔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친구는 그 산중 계곡에 옷을 벗고 풍덩 계곡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 자유로운 여인’ 하며 웃으며 지켜 주었다. 지금까지도 내내 그때 짜릿함이 남아있는지 즐거웠다고 웃어댄다.
그렇게 걷다가 산에서 시원한 음료를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1박 2일 강호동 팀이 다녀갔다는 현수막을 앞에 걸고 있었다. 오랜 보행 끝에 시원한 음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쭉 들이키고 민박을 물었더니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우리는 차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뱀사골 계곡 쪽으로 갔다. 걸어도 걸어도 목적지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두 여자가 두려움을 가지고 어둠 속을 걸었다. 길 끝에서 기다리기로 한 민박집 아저씨 전화가 왔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내려오지 않아 걱정되었는지 확인 전화가 왔다. 휴대폰이 얼마나 좋은지 이런 때는 누릴 수 있음이 고마울 뿐이다. 민박집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도착을 하니 차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차를 타고 민박집에 도착하였다. 늦은 시간인데 저녁을 차려주었다. 둥그런 상에 갖가지 나물 반찬과 된장찌개는 특별히 맛있었다. 허기진 탓이었는지 더 맛있었다. 다른 부부 민박팀이 있어 민박집 주인 내외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차려주는 따뜻한 집밥이 맛있어 주소를 알아놓았다. 내 친구는 그 후에도 그 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나는 명함은 열심히 모으다가 결국에는 버려 지금 민박집을 찾아가지도 못한다. 잘 차려준 아침밥을 먹었다. 민박집 아저씨가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태워다 주어 수월하게 돌아오게 되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아저씨의 호의가 고마웠다.
이번 여행은 어디를 가 볼까 생각했다.
광주는 가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여수를 가느라 시외터미널에서 있었던 적은 있다. 이 더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광주에 가는 것이 더 번거로웠다. 애마를 운전하며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한 차선은 모두 화물차였다. 여행 시에 고속도로를 잘 이용하지 않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빨리 가야 해 고속도로 운행을 했다.
광주에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어디를 갈까 하다가 기왕 광주에 왔으니 망월동 518 묘지를 방문해 보고 싶었다. 친구에게 말을 하니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 친구는 광주가 고향이다. 대학교도 광주에서 다녔다. 1980년 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셋이다. 그 친구는 광주항쟁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절제한다. 몇 마디 중 한마디는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의견을 내는 소수의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고 융단폭격을 한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행 중에 친구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것도 싫지는 않다. 여행 중이니 마음을 풀어놓고 말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진실을 말해 주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목포 쪽으로 차 머리를 돌린다. 천사대교를 목표로 정했다.
천사대교는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와 암태면 신석리를 잇는 교량으로 2019년4월4일에 개통되었다. 천사대교라는 명칭은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의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連島橋)로 압해도(押海島)와 암태도(巖泰島)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우리나라에서 건설된 교량 중 영종대교, 인천대교, 서해대교에 이어 4번째로 긴 해상교량이다.
크고 작은 섬이 1004개나 된다는데 놀란다. 평일이라 코로나 19 때문인지 방문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이 많지 않으니 특별히 내려 놀고 싶은 곳은 없었다. 섬은 온통 양파를 수확해서 밭에 말리고 있었다. 양파가 금값처럼 비쌀 때가 있는데 밭에 버려지는 우수리도 엄청 많다고 한다. 어떤 1톤짜리 트럭은 양파를 자루에 담아 실었는데 제대로 묶지를 않아서 차도로 양파망이 떨어져 도로가 엉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 설치도 해 놓지 않고 큰 도로에서 낱개로 떨어진 양파를 사람들이 줍고 있었다.
여행은 이런 소소한 사고와 사건을 만나게 된다. 내가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으면 다행이다. 평일 여행은 숙박할 곳을 정하지 않고 떠나는 것이 별미다. 다시 목표로 나와 유달산에서 늦은 저녁에 비싼 한정식으로 식사했다. 식당에서 인터넷으로 호텔 예약을 했다. 하루 숙박비 70,000원이고 트윈배드여서 과하지 않은 숙박비였다.
어디든 가서 구경하다가 발길이 머무는 그곳의 주변 숙박을 정하기로 했다. 인터넷 강국의 국민이 되어 그것을 누린다. 숙박에 얽매여 이동 거리를 멀지 않게 편안하게 여행하련다. 지리산 여행 때처럼 선한 사람을 만나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도 있을 터이니까. 남은 인생은 좀 더 모든 것에 여유로우면 좋겠다. (2021.06.21.)
첫댓글 직접 장거리 운전하여
친구를 만나고,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 다시 읽었어요.
'여행의 별미' 글을 읽으니
나도 운전을 다시 시작하여 자유로이 다니고 싶습니다.
좋은 친구와 여행하면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다시 운전 하시면 훨씬 행동 범위가 넓어질 듯 하네요. 아홉살 위 언니도 아직 운전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