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 2014-8-19 (보도) 크메르의 세계
[분석] 태국 군정의 '중국 카드' : 서방국가들에게 미치는 영향?
Thailand's Asian values : Looking inward

(사진: AFP)
샘(Sam)은 20세기 초에 중국에서 태국으로 이주해온 이민자이다. 그는 방콕의 차이나타운을 마주보는 벤치에 앉아 회상을 한다. 그는 미국 액센트의 영향이 있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이 1960년대 헐리웃의 '파라마운트'(Paramount) 스튜디오에서 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시대는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살아 있는 제임스 본드(James Bond)였던 시대이다.
그의 뒤로는 "왕들의 강"(River of Kings)이라는 의미의 짜오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이 흘러가고 있었다. 짜오프라야 강은 태국의 동맥으로서, 여러 세대에 걸쳐 태국의 부(富)는 외국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축적된 것이다.
'왓 아룬'(Wat Arun: 아침 사원)은 바로 위 상류쪽에 위치한다. 이 유명한 사찰은 '짜끄리 왕조'(Chakri dynasty) 초기에 부숴진 중국 도자기 조각들을 잘라붙여 창건한 곳이다. 또한 올해 86세인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1927년생) 국왕이 자신의 인생을 보낸 왕궁과 병원도 있다.
전국적으로 보면, 태국은 내향적인 점검을 받는 시기에 놓여 있고, 향후의 전망은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 휩싸여 있다. 푸미폰 국왕은 편찮은 상태이고,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1952년생) 왕세자는 인기가 없으며, 그들의 왕국도 불안에 동요하고 있다. 태국에는 짜끄리 왕조가 오직 9대 국왕에서 맥이 끊길 것이라는 오래된 예언이 존재한다.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바로 라마 9세(Rama IX)이다.
5월에 발생한 쿠테타는 한 문민 일족이 이끌던 선거로 선출된 일련의 연속적인 정부들의 종지부를 찍었다. 새로운 독재정권을 맡은 군부 인사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태국형 민주주의"(Thai-style democracy)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군부의 개입은 수호적 민주주의(tutelary democracy) 체제를 부활시키는 것에 보다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러한 체제는 일군의 왕당파 엘리트들이 국가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들의 대안이란 것은 '태국적 특수성'(Thai uniqueness)이란 관념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마술 쇼 같은 데 사용되는] 토끼 모양의 모자에서 끄집어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것은 말레이시아를 22년간이나 통치했던 마하티르 모하마드(Mahathir Mohamad: 1925년생)가 제시했던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라는 개념과 명백한 유사성을 보인다. 이 개념은 활발한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경제발전의 이면에 기대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싱가포르 같은 국가들의 정부에 유용하다는 것이 입증됐고, 오늘날 이 개념의 챔피온들은 중국에 찬성을 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보면,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태국이 현재 진행 중인 독재의 실험이나 관습적인 견해로 나아가는 일은 중국에 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태국의 쿠테타 지도부는 미국과의 게임에서 "중국 카드"(China card)를 사용할 수 있기를 희망해왔다. 이것은 일종의 위협 전술이다. 즉, 만일 미국이 자신들의 쿠테타를 계속해서 반대할 경우, 그들이 중국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를 "모든 차원에서"(at all levels) 한 차원 강화해나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면, 태국 쿠테타가 발생한 배경을 "서구식"(Western-style) 민주주의가 초래한 혼돈의 실례로 이용하면서, 태국의 장성들에게 정신적 지지를 보내줄 수도 있다.
한편, 중국과 태국 사이에 경제적 유대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고 있다는 징후도 있다. 태국 쿠테타가 발발한지 몇주 후, 중국 정부 소유의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 '차이나 모바일'(China Mobile, 中国移动通信集团公司)은 타닌 찌야라와논(Dhanin Chearavanont)의 후원 하에 태국의 주요 이동통신사인 '트루 코포레이션'(True Corp) 주식을 매입했다. (태국의 주요 재벌 거의 모두가 중국계 태국인(화교/화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타닌 회장 역시 중국계 후손이다. 또한 태국 군정은 23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고속철도 건설사업 2건도 승인했다. 이 노선들은 장차 중국과 태국의 활발한 연결 링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은 또한 중국 관광객들의 비자 발급비용도 면제했다.
하지만 중국이 실제로 얻은 것은 얼마나 될까? 이 이야기는 정치적 및 경제적으로 양국 정부 모두에 대한 매력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신화적인 윤곽을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평상시보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태국의 국민적 여론이 결국에는 군부에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단기적인 조건 위에서 장기적 매수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다지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중국과 보다 나은 관계를 갖긴 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은 태국의 군사정권에 너무 많이 투자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태국 군정의 미래가 대단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군정에 적법성을 부여한 유일한 원천은 국왕의 축복 뿐이기 때문이다.
'치앙마이 대학'(Chiang Mai University)과 제휴관계에 있는 '동남아시아 문제 연구소'(Institute of South-East Asian Affairs: ISEAA)의 태국 군부 연구 전문가 폴 챔버스(Paul Chambers)는 본지와의 회견에서, 태국 군 장교들이 "중국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65~1983년 사이에 입헌군주제에 대항해 싸우던 태국 공산 반군들의 자금 지원을 도와준 것이 중국이었다. |
그것은 이미 세월이 조금 흐른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바로 오늘날 태국 군의 모습을 정초했고, 당시 군대를 지휘했던 나이든 강경 왕당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태국의 중, 상류층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애착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밖의 모든 측면에서, 그들은 중국보다는 미국을 선택한다. 그들은 자녀들이 '하버드대학'과 '이튼스쿨'에 입학하기를 바라고 있고, 그들이 가진 미국이나 영국에 대한 애정을 중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비록 군인들이 몇년 동안 머물러 있다고 할지라도, 태국인이 중국으로 이민가는 일은 일탈적 행위 수준에 머물 것이고, 태국 학생들이 중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일도 [미국이나 영국 유학생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거대한 경제력이 일부 태국 군 장성들의 확실한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들이 태국 경제에 대한 원조를 하거나, 혹은 새로운 이념적 동맹세력의 옆구리를 쿡 찌르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심지어 그렇다고 할지라도, 양국 간의 관계 강화는 실망스러운 수준이 될 것이다.
지구상 대부분의 시장들이 마찬가지인 것처럼, 방콕의 차이나타운에도 이미 중국에서 수입한 물품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중국산 물품은 전체 소비의 일부분만 차지하며, 태국 경제의 주요 부분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오늘날 태국은 도리어 제조업 생산품의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중국은 그 중 제한적인 일부만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태국 경제가 어떤 외국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일본 경제일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태국에서는 3일에 1곳 꼴로 새로운 일본 공장들이 문을 열곤 했다.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태국에 투자되는 달러 중 3분의 2는 일본에서 들어온다.
2011년 대홍수가 태국의 산업 요충지들을 황폐화시켰을 때, 일본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생산기지 재건을 위해 거의 3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다. 지난 3년간 일본 기업들이 태국에 투자한 돈은 베트남 전쟁 이래 미국 기업들이 태국에 쏟아부었던 돈 및 중국 기업들이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막대한 비용 부담 없이 태국 경제의 골간이 더욱 중국화될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려는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중국의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태국으로 이전해도 별다른 이점을 얻기 어렵다. 태국 경제의 규모는 중국 후난성(Hunan province, 湖南)의 경제 규모보다도 작지만, 태국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중국 노동자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예측가능한 수준의 미래에 관해 말하자면, 중국의 산업 생산품 대부분은 중국 내에서 생산될 것이고, 그 중 많은 부분이 중국 내에서 판매도 될 것이다. 미국의 소비시장이 가진 규모는 어떤 점에서 중국 제품들을 유혹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태국 시장의 규모는 그렇지 못하다.
태국과 미국의 외교관계는181년에 달하며, 미국은 아시아의 그 어떤 나라들보다도 태국과 중단없는 오랜 관계를 맺어왔다. 양국 관계는 가끔씩 향수를 지닌 혼인관계처럼도 여겨지며,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추억들 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러나 미국이 만일 태국의 가장 주요한 후견인 위상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중국 때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쇠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를 들이대려는 이들은 태국 최남부의 송클라(Songkhla, 송카)에 위치한 과거의 미국 영사관 건물을 예로 들곤 한다. 이 건물은 현재 중국 영사관으로 바뀌어 있다. 그런가 하면 푸미폰 국왕의 영향력 그 자체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2006년 태국 군부가 9월19일의 쿠테타를 일으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총리를 쫒아냈을 때, 미국 대사관은 여전히 태국의 구시대 기득권 세력과 다정한 관계를 가졌다. 당시 미국 대사는 재즈 애호가인 푸미폰 국왕과 종종 잼세션 연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국왕의 조신들과 그토록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entre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가 최근 발행한 보고서 <아시아의 힘과 질서>(Power and Order in Asia)에 따르면, "미국이 아시아에서 발휘하는 리더십이 자국에 이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해, 태국의 응답자들은 아시아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확신이 적었다. 미국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 중심주의) 정책에 관해 태국 응답자들보다 반대가 큰 국가는 중국의 응답자들 뿐이었다.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은 1967년 방콕에서 창설됐다. '아세안'은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에 맞서 역내 국가들이 통일된 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태국은 분쟁 당사국이 아니다. 또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아세안 회원국들과 달리, 태국은 자동적으로 노선을 따르지도 않는다.
미국에 본부를 둔 비정부 기구 '아시아 재단'(Asia Foundation)의 존 브랜든(John Brandon) 소장은 미국이 무척 괜찮은 길을 밟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쿠테타를 일으킨 태국 군부를 꾸짖으려 하면서도, 아시아에서 전략적 균형을 잡는 데서 태국을 "외톨이"(odd man out)로 소외시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태국 군정은 사용할만한 '중국 카드'가 정말로 없는 실정이다. 설령 쓸 카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서방국들은 태국이 중국의 궤도로 빨려들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실제로 느끼고 있다. 결과는 명료하다. 서방국가들 일각에는 태국 쿠테타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의미 있는 행동에 나설 의지는 없다는 것이다.
|
첫댓글 노마드 님의 이코노미스트 글을 읽어보니까 공감이 가는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입니다. 분석력도 뛰어나고......번역도 잘하셨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