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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3편
마귀는 우리를 정말 낙심시키기로 작정하고 우리의 삶을 물어 뜯는다.
한사람이 무너져 버리면 가족의 마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가 영적으로 무너지면 가족들이 영적으로 다 무너지고, 우리가 영적으로 일어나면 가족 또한 영적으로 다 일어 난다.
염려는 아주 작은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을 망가뜨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염려를 품고 자신의 영혼을 힘들게 만든다. 믿음은 염려를 떨쳐내는 것이다.
힘들 때 기도하지 않는사람이 많다.. 그래서 어떤 방향도 모르고 문제해결만 하려고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것이고 하나님의 인도을 구하는것입니다.
생각중에 기도의 마음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이끄심이다.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느때까지 입니까?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4번 반복 하면서 탄식이 나옵니다.
본문의 시작은 다윗의 이야기 인데 그 믿음이 좋은 다윗도 얼마나 어려윘스면 이렇게 탄식 하게는냐? 하나님을 믿고 싶은때 하나님이 믿어짖 않는다 . 하나님의 자녀의 위기입니다.
이럴때가 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순간에도 이런 순간이 있다.
하나님 정말 계실까?
그럼 왜? 내 기도에는 응답을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것 맞는냐?
이렇게 얼마나 어려운냐?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냐?
때론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분노가 치밀어 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은 지금의 상황이 정말 괴로러워서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그상황에서 자신이 3절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두렵다고 합니다.
신학교에서 필독서
소설 침묵은 일본에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던 1600년대를 배경으로 참혹한 고문과 후미에(踏繪) 등의 사실들을 토대로 쓰여 졌다. 후미에는 예수님을 그린 판을 말한다. 신도를 색출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나 성문에 후미에를 깔아 놓고 그 것을 밝고 지나가는 사람은 내버려 두었지만 피하여 가는 사람은 신자로 간주하고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렸다고 한다.
이야기는 포르투갈에서 파송한 신부 페레이라가 배교(背敎)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온 포르투갈 예수회의 믿음의 대표라고 할 그런 선교사이었는데 처참한 고문 끝에 믿음을 버렸다는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물이 빠진 바닷가에 세워진 말뚝에 묶인 이들은 조금씩 다시 밀려들어 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죽음의 공포에 떨며, 조금씩, 조금씩 코로 넘어오는 물로 고통의 익사를 당한 것이다.
이들 순교자들을 집어 삼킨 바다에는 그치지 않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고, 그 바다는 그들을 죽인 다음 무서우리만치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로드리고도 한 신도의 밀고로 당국에 체포돼 갖은 회유와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았고, 어떠한 고난이 닥친다 해도 변하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 신부을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것이다, 회유 하라고,,,자기가 당하는 고통은 감수하지만 자신으로 당하는 일본 성도들을 보고 견딜수가 없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일이...분노가 일어 나더라...그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마침내 로드리고는 예수의 초상을 밟고 지나간다. 후미에에 새겨진 주님은 내게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로드리고가 주님의 얼굴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멀리서 울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째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다는 성경의 기록과 공명하는 부분이다). 로드리고는 고백한다. “나는 배교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제가 결코 배교한 것이 아님을 당신은 아십니다. 어째서 배교했냐고 성직자들은 나를 심문할 것입니다. 구멍 매달기 고문이 두려웠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저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는 신자들의 신음소리를 참을 수 없었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얼마 전 어느 기독교 인터넷 신문에 올라온 참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올리신 기사였는데 1983년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채플 시간에 김흥겸이라는 학생이 대표 기도를 한 것에 대한 기사였는데 그 학생의 기도는 ‘하나님 이제는 당신이 회개하셔야 할 때입니다’라는 충격적인 말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여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뜻을 더 이상 우리가 이 땅에서 실현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힘들어서 못해먹겠습니다. 우리 보고 회개하라고요? 우리가 죄인이라고요? 정말 울며불며 회개해야 할 것은 당신이요, 죄인 중의 죄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 보고 하라 말고 당신이 한번 이 땅에서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그래요. 우리는 아무 것도 못해요. 그런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독재자의 종말이 백주 대낮에 수천 명을 학살하는 광주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학교를 보세요. 저 악의 무리들을 뚫고 당신을 믿지 않은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도서관 유리창을 깨고 나올 때 당신이 선택했다는 우리도 아무 것 못했지만 당신은 또 무엇을 했는가요? 우리를 시키지 말고 당신이 직접 해보라니까요. 정말 회개해야 할 것은 당신의 실패작인 우리가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당신, 바로 당신 야훼 하느님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사실 당신의 선택을 받은 무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처럼 살다 그렇게 죽기 위해 있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이렇게 예수의 처참한 죽음을 예배드리며 팔아먹기 위해, 또 예수의 그 고통스런 삶과 당신의 이야기를 강의하며 팔아먹고 살기 위한 무리들이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신앙을, 신학을 선택한 것뿐이라고요. 그래도 고맙지요. 당신과 예수가 있어서 그것으로 여러 사람이 2000년 동안 먹고 살게 해주시니….
불쌍한 하느님, 우리 같은 것을 앞세워 하느님나라를 만들겠다는 하느님, 당신이 그래도 절 사랑한다면 이 길을 가다가 변절하기 직전에 죽여주소서. 당신에게 간구하는 당신의 사람은 이 길을 가다 지쳐 쓰러져 돌아서려 할 때, 그 직전에 죽여주는 잔인한 축복을 허락하소서. 그렇게 사랑하셔서 당신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기도였기 때문에 그 기도에 아멘이라고 한 사람은 몇 사람이 안 되었다고 그 기사를 올린 목사님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어요
5-6절 다윗의 진짜 믿음이 나옵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
다윗은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 “하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분 자체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그분 자체을 믿어야지 , 그분의 능력, 구원, 축복을 믿음으면 우리의 믿음이 다 무너져 버린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어요”
다윗은 오직“하나님만 사랑하고 그분을 믿어요”
왜? 이것을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구원만 믿으면 ,,,구원을 믿을수 없는 순간이 오면 믿음이 무너지고 만다.
예수님의 축복만 믿으면,,,축복을 믿을수 없는 순간이 오면 믿음이 무너지고 만다
예수님의 능력만 믿으면 ,,,능력을 믿을수 없는순간이 오면 믿음이 무너지고 만다
무너지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부인하며 무너질 수밖에 없다.
베드로와 스테반은 똑같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전할 때 몇천명이나 회개하고 예수을 믿었지만
스테반은 성령에 의지하여 말씀을 전했지만 돌에 맞아 죽였습니다.
스태반 집사님이 무엇을 잘못했는냐? 아니요 하나님은 그 계획을 이루셨을뿐 입니다.
다니엘3장 17-18절 다니엘의 친구들이 불에 던져지게 되지요 그런데 그들의 고백은 무엇을 말합니까?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하나님이 능히 건져내시겠고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겠다.
신상 앞에서 절하지 않겠다.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요,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들이 죽는것이라면 죽을수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수 있습니까?
3절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스테반은 성령에 의지하여 말씀을 전했지만 돌에 맞아 죽였습니다.그런데 그 순교을 오히려 기뻐 합니다. .[행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그는 눈이 뜨여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던 것입니다. 오래살고 일찍죽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면 환란 중에서 도무지 믿을수 없는 중에서도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노진준 목사님 은 소아마비 장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한때 하나님께 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목사 되겠습니다. 다리을 고쳐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 정말 반드시 고쳐주실 것 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계속하는데 ..어떤때 신우집회라고 해서 참석 해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설교 하시는데 “하나님은 무슨 병도 치료하신다고 설교 하는데”마음에 참을수 없는 분노가 일어나더랍니다. 믿으면 응답받고 고침을 받는다고 하는데 왜? 기도 했는데 ,, 그날 강사님에게 따지려고 찾아간다. 정말 고치는 것 맞는냐? 하나님이 ,,,
사도 바울도 몸에 가시가 있었는데 그도 세 번 기도했는데 고침을 받지 못했다 ...
강사 목사님이 사도 바울은 이미 응답 받았다. 왜? 바울은 그의 병을 위해 3번 기도할 때 “이 연약함이 너를 강하게 할 것이다” 응답 받고 바울은 그것을 위해 다시 기도하지 않았다. 육체의 가시가 오히려 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더 강하게 전해지게 되었고 ,더 좋은데 하나님께 더욱 영광 쓰려게 쓰임 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충분 하다고 응답 받은 것입니다.
노목사 그날의 깨우침“ 나도 치료 받았습니다.” 복음을 증거 –육신의 장애 통해 복음의 역사을 나타 나는데 “하나님 영광이 그에게 더욱 역사 되더라...
지난 2007년 4월18일 말라티아 지역에서 독일인 선교사(틸만)와 터키인 사역자(네자티, 우르 형제) 에게 성경공부하고 싶다고 다가서면서 ..세 명이 무슬림에 의해 의자에 묶여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틸만 선교사는 156번 이상 칼에 찌리고, 터키사역자였던 목사와 형제는 세수없는 칼에 찔림에 형체도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찌림...1사람을 죽이면서 그것을 남은사람이 보게 했다. 이때 “하나님은 살아계신지요,,,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찌....그런데 그들의 순교자들의 장례식때 아름다운일이 일어난다. 숨어있었던 곳곳의 수천명의 기독교인들이 나와서 예배들이고-불이익을 당할수 있는데...예배하는모습을 전세계가 지켜 보고 ... 많은 방송 언론의 인터뷰에 틸만 선교사의 아내” 저는 터키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나는 그들의 죄을 용서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죄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합니다.
어떤 칼림 리스트는“1000명의 선교사들이 1000년동안 하지 못했던 일 그 한마디로 이루었다.을 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분, 하나님을 믿어지지 않는분,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 하세요 .예수님을 바라볼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진정한 감사는 좋은 것, 나쁜 것, 기쁜것과 아픈 것.거룩한 부분과 거룩하지 않은 부분을 가리지 않고 삶의 전체을 하나님앞에 끌어내오면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임재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은 구원보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시고 온세계에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