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안동 대동회수회 연수
1. 일시: 2019.5.18.10시-15시
2. 장소: 안동체육관 지하 연회장
3. 참석: 안동경주이씨 안동회원 300명 정도
4. 강사: 이인우 40분
5. 내용: 경주이씨 선조의 생애(요약분)
(2019.05.18 안동대동화수회)
선조(先祖)의 생애(生涯)
- 중흥조(핵翮)를 중심으로 -
이 인 우(평리성암공파. 소설가)
Ⅰ. 성씨(姓氏)와 족보
성씨(姓氏)는 혈통관계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동양윤리의 근원이며 중국문화를 수입한 뒤에 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고구려 장수왕 시대(413~490)부터 성(姓)이 있었다.
신라의 육촌 중 알천 양산촌의 촌장 알평이 신라 유리왕 9년에 다섯 촌장들과 함께 경주 이씨를 사성 받았다.
족보는 선조의 얼이 담겨 있고 교훈이 기재되어 있어 가보(家寶)로서 가치관이 높다. 또 충ㆍ효ㆍ열(㤠)ㆍ의(義)를 집대성한 보전(寶典)으로 인류의 귀감이요 씨족의 역사이다.
경주이씨 족보의 연원은 고려말 익제공이 밝힌 경이세계(慶李世系)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를 근간으로 해서 숙종 10년(1684년)에 초판 5권 추보(追譜) 1권을 출간하고, 영조 24년(1748년)에 15권 추보 1권, 순조 14년(1814년)에 31권 추보 3권 발간을 3대 구보(舊譜)로 표준보(三大標準譜)라고 한다.
Ⅱ. 경주이씨(慶州李氏)
1. 시조(始祖)
경주이씨의 시조(始祖)는 알평(謁平)이다.
알평(謁平)의 자(字)는 천서(天瑞) 호(號)는 표암(瓢巖) 시호(諡號)는 문선공(文宣公)이다.(은열왕恩烈王으로 무열왕 3년에 추봉)
시조의 영지(領地)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은 뒤에 밑돌부(及梁部)가 되는 뿌리 마을로 6촌의 촌장인 알평(謁平)이 부족사회를 영도하는 수장이었다.(박혁거세 탄생설화)
시조 알평은 6가지 사적(史蹟)이 있다. 첫째 사로국(斯盧國)을 탄생시켰다. 둘째 화백 제도를 창안하여 전통화했다. 셋째 한가위(秋夕)가 알평공의 마당에서 시작되었다. 넷째 유두(流頭)의 풍속이 알천(閼川)에서 시작되었다. 다섯째 박혁거세가 양산촌에서 탄생했다. 여섯째 알평공이 내려온 표암(瓢巖 밝바위)이 ‘밝사상’(단군신앙)의 남부연원(南部淵源)구실을 했다.
2. 인멸된 세계(世系)
알평(謁平) 시조 이후 소판공(蘇判公 휘 거명居明)의 최초 기록은 고려(高麗)말 성리학자인 익재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밝힌 경이세계(慶李世系)를 목은 이색 (李穡 1328-1396)이 선술한 익제 묘지문(墓地文)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묘지문에 ‘그 선대(先代)가 신라(新羅) 말 진골(眞骨) 출신으로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이거명(李居明)’이라 하여 시조(始祖) 이후 기록이 전하는 최초의 선조(先祖)가 되었다.
3. 분적(分籍)과 분파(分派)
경주이씨에서 분적(分籍)한 합천이씨(陜川李氏)의 계보(系譜)에는 알평 이후의 계차(系次)가 명시되어 있다.
경주이씨 분적종(分籍宗)은 우계이씨(羽溪李氏), 차성이씨(車城李氏), 합천이씨(陜川李氏), 아산이씨(牙山李氏), 재령이씨(載寧李氏), 진주이씨(晉州李氏), 원주이씨(原州李氏), 장수이씨 등이다.
대종파(大宗派) 분파는 대체로 거명(居明)으로부터 시작하는데,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 이암공파(怡菴公派), 익재공파(益齋公派), 호군공파(護軍公派), 국당공파(菊堂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상서공파(尙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 판전공파(判典公派), 월성군파(月城君派), 직장공파(直長公派), 석탄공파(石灘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교감공파(校勘公派) 등이다.
4. 거명(居明 중시조 소판공)
중시조 소판공(蘇判公 휘 거명居明)은 시조의 36세이다. 소판(蘇判)은 관직명(官職名)으로 신라시대 성골이나 진골 출신들만이 오를 수 있는 17관위 중 3관등 지방 수령직(地方首領職)이다.
2세 김현(金現)은 병부령(대각간을 통칭), 3세 김서(金書)는 고려 개국을 도운 삼한공신, 중원태자(中原太子)와 호부랑중(戶部郞中), 4세 윤홍(潤弘)은 병부령, 재상, 5세 승훈(承訓)은 정조시랑(정7품), 승겸(承謙, 판이부사), 6세 주복(周復)은 좌사간(정6품), 7세 칭은 사록(司錄) 증 보조공신 문하시중, 8세 치련(侈連)은 문하시중, 9세 총섬(寵暹)은 문하성 문하시중, 10세 춘정(春貞)은 순흥부사(현 김해), 11세 현복(玄福)은 생원, 12세 선용(宣用)은 군윤(軍尹 9품 증 8품)이고, 13세 승고(升高)는 보윤(甫尹 9품)이며, 14세 득견(得堅)은 문림랑 상의원 직장동정(종7품)이다.
15세 핵(翮 호 열헌悅軒 문하평리門下評理 증직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은 중흥조이다.
Ⅲ. 중흥조(中興祖)
경주이씨의 족보상 자랑은 시조와 중시조 중흥조에 대해 명확히 가리킴으로써 혼란이 없다. 시조는 표암공(휘 알평謁平)이며 중시조는 소판공(휘 거명居明) 중흥조는 열헌공(휘 핵翮) 이다.
시조(始祖)는 역사서의 기록상 증명이 되는 최초의 조상이다. 중시조(中始祖)는 오랫동안 계대가 실전되어 세계(世系)를 모르다가 어느 시기부터 고문헌 묘지명 등의 기록으로 나타난 지금의 후손을 잇는 첫 조상이다. 중흥조(中興祖)는 훌륭한 조상 중에 가장 집안을 번성케 하고 후손들이 높은 관직을 많이 가져 한 집안의 명예를 드높인 조상이다.
1. 열헌공(悅軒公 휘 핵翮)
중흥조 열헌공(悅軒公 휘 핵翮 자 만리萬里 호 열헌悅軒 초휘初諱 타駝 중시조 거명居明의 15세)의 관(官)은 문하평리(門下評理)이며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증직되었다. 중시조의 16세인 세 아들과 17세인 아홉 손자(3자 9손三子九孫)가 모두 관직에 나가 현달하여 경주이문(慶州李門)의 중흥조(中興組)로 받들고 있다.
열헌공(悅軒公)은 벼슬이 높았을 뿐 아니라 인덕을 겸비하였으며 3대(본인, 아들, 손자)에 3자 5손이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였다. 세 아들은 인정(仁挺-評理公), 진(瑱-東庵公), 세기(世基-松庵公)이다.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로 성품이 매우 엄하였다. 삼 형제에게 서사(書史)를 직접 친교하여 모두 수석장원(首席壯元)을 시켰으며 큰 선비가 되어 문장으로 이름이 동문선(東文選)에 들었다.
2. 열헌공(悅軒公)의 3자 9손
중시조의 16세인 장자 인정(仁挺 호 성암誠庵 문과 장원 문하평리門下評理)은 문과를 거쳐 고려 제1의 사간(司諫)에 이르렀다.
차자 진(瑱 호 동암東菴 시문정諡文定)은 검교정승(檢校政丞) 및 임해군(臨海君)에 봉해졌다.
3자 세기(世基 호 송암松巖 문희공文僖公)는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대제학(大提學) 검교정승(檢校政丞)을 지냈다. 충렬왕 6년(1280)의 친시(親試)에서 제2, 제3 위에 올라 임금이 황패(黃牌)를 내려 세인(世人)이 ‘천장급제(天場及第 하늘의 과장科場에서 급제)’라 하였다.
그 뒤에 인정(仁挺)의 아들 부(榑)와 규(樛), 진(瑱)의 아들 관(琯)과 제현(齊賢), 세기(世基)의 아들 천(蒨) 등 5명이 성균시에 장원을 하였다.
3. 평리공(評理公 인정仁挺)
평리공(評理公 휘 인정仁挺 호 성암誠庵 문과 장원 문하평리門下評理)은 중시조 거명의 16세이다.
성품이 강직하여 충렬왕 2년(1276년)에 내료잡류(內僚雜類)를 수종한 영고로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윤허하려 할 때 공이 우정언(右正言)으로 서명하지 않으니 왕이 화를 내어 나라 일을 보지 말라고 명령했다. 대쪽 같은 절의와 지조의 직성이 중외에 떨쳐진 사실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차자 규(樛 한림학사)도 총애를 받고 있는 경인(景麟) 경총(景聰) 두 중에게 벼슬 주는 고신에 서명하지 않으므로 부자가 모두 정직하고 강직한 충신들로서 왕의 위엄에도 굽히지 않았다.
장자 부(榑 내서사인內書舍人)는 양시장원을 했다. 차자 규(樛)도 성균시에 장원으로 우헌납(右獻納)을 지냈다. 부(榑)는 아들 형제를 두었다. 장자 원선(元善)은 전서공이며 차자 의반(依班)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다. 손자 진(進)은 감무(監務)이다.
차자 규(摎)는 다섯 사촌들과 더불어 대과 장원급제로 벼슬이 성균관 제주에 이르렀다(고려사). 현손 석(碩)은 세종대왕 때 판서를 하였으며 단종이 물러나게 되자 나주로 내려가 숨어 살았다.
Ⅳ. 종중(宗中)을 빛낸 인물(人物)
시조 이알평(李謁平), 중시조 이거명(李居明), 중흥조 이핵(李翮), 이인정(李仁挺), 이진(李瑱), 이세기(李世基), 이제현(李齊賢), 이수일(李守一), 이항복(李恒福), 이종준(李宗準), 이회영(李會榮), 이시영(李始榮), 이상설(李相卨), 이갑성(李甲成), 이병철(李秉喆), 성철스님, 이명박(李明博) 등이다.
가문을 번영 시킨 과거 급제자는 고려조(高麗朝) 문과 24명, 조선조(朝鮮朝) 문과 178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 10여 명의 공신, 조선조(朝鮮朝) 무과 16명이다.
* 참고 문헌
1. 경주이씨대동보 총편(1978년 보전출판사)
2. 경주이씨평리공파 세보 총편(2003년 12월 기창족보사)
3. 경주이씨세촌공파 세보(전)(1988년 8월 회상사)
4.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홈페이지
5. 삼국유사(일연)
6. 삼국사기(김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