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고등어
우리고등어들은 물 속 달리기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몸길이 30cm에 불과하지만 초당3m는 가뿐하다.
인간들 중에 최고 빠른 수영선수도 50m 기록이 20초대이니
우리를 따라오긴 한참 멀었다.
우리들은 떼로 몰려다니기 때문에 두려울 게 없다.
반경 50m쯤 무리를 이루는데 얼추 5만 마리는 되려나..
16층 아파트 한 동 규모가 바다를 휘젓고 다닌다고 보면 된다.
생각해 보라. 그렇게 많은 무리들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다니니
어찌 우쭐해지지 않을 수 있나 말이다.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제 아무리 포악한 상어도, 제 아무리 몸집이
크다는 고래도 무섭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서도 우리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대중가요에서부터 소설,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한 지 오래다.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겠지만 부산공동어시장을 먹여 살리는 것도 바로 우리들이다.
위판 되는 생선 중에서 70%가 우리들이니 말이다.
우리들의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굶어죽었을 어민들이 한 둘이 아닐 게다.
다만 일본어로 ‘사바사바’라 해서 뭔가 구린 일에 우리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내 이리자랑을 늘어놓았지만, 고백하건데 본디 우리 종족은 소심하고 조그만
일에도 민감하다.
바다 속에서 조그만 소리만 나도 쉽게 놀라 도망간다.
어쩔 수 없는 약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서도 썩는 다’고 할 정도로 쉬 부패해버리는 성질 때문에 온 몸에 염장을
지르는 일도 업보로 받아들인다.
여기에 더해 요즘에는 산 것을 좋아하는 인간들의 입맛 때문에 또 다른 수모를 격고
있다. 내 형제 하나는 아기고등어 시절에 잡혀서 남해안 어느 해상 가두리로 옮겨
졌다. 그곳에서 2년 쯤 갇혀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참을 인(忍)자를 머릿속에
새기다 보니 급한 성질도 많이 누그려졌다고 했다.
마침내 횟감으로 나설 때는 침을 맞고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나 역시 어젯밤 큰 변고를 당했다.
밝은 빛이 비치는 곳에 모여 있던 플랑크톤을 쫓아갔던 게 화근이었다.
순식간 이었다. 혼비백산 도망가던 친구들은 그물코에 꽂힌 채 내장까지 으스러
지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내 어미가 동중국해에서 2만ー5만개의 알을 낳았고, 그
중에서 생존한 형제들은 불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나는
억세게 재수가 좋았던 셈이다.
숱한 사선을 넘었던 나도 6년이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한다.
어쩌면 오늘 저녁 밥상위에 고등어조림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을지 모르겠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당신들의 피와 살로 육화된 ‘가을고등어’들의 명복을
빌어주시길.........
이상 고등어의 유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