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국의 기도 도량 / 금오산 향천사
시리도록 붉은 늦가을 길목에 겨울 마중하는 신심이 선잠에 들다
금까마귀 한쌍 샘물 마시던 곳
중국서 3053불·16나한 모셔온
의각선사 만나 가람으로 꽃펴
세월 흐르고 1516불 남았지만
오롯이 담긴 구도심 변함없어
▲향천사 극락전에 이르는 길이다.
빨갛게 타오르다 명 다해 주황색으로 빛바랜 낙엽이 객을 마중한다.
세속에서 좋든 싫든 달아오른 마음의 색 좀 빼고 들라는 법문이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 했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에 가을이 영근다.
곧 추운 겨울이 오리라. 단풍도 겨울 마중물이다. 추위 이겨낼 걱정이 반가움보다 앞선다.
금오산 향천사 일주문엔 붉게 저무는 가을이 시간을 붙들고 있었다.
일주문은 마음 가다듬고 한마음으로 들어서라며 한 줄로 선 기둥 2개로 버티고 섰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문이니,
들어서는 누구나 무거운 세속 시름 따윈 내려놓고 와야 할 게다.
그러나 일주문 오른쪽을 부여잡고 있는 단풍으로 객 마음이 기운다. 도리 없다.
옆길로 향천사에 들어 그 마음을 부렸다.
향천사로 이르는 계단엔
가을 내내 빨갛게 타오르다 명 다하고 주황색으로 빛바랜 낙엽이 객을 마중한다.
세속에서 좋든 싫든 달아오른 마음의 색 좀 빼고 오르라는 법문이다.
절에 부처님 뵈러 올 때만 한없이 낮아지는 객 마음도 그러하리라.
세상사에 치이다 기껏 부처님에게 얻어간 신심도 극락전 향하는 계단에서 빛바래져 나뒹굴었다.
창건 유래비에 따르면 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 말사인
충남 예산 금오산 향천사(주지 법정 스님)는 백제 의자왕 16년(656)에 의각선사가 산문을 열었다.
의각은 부처님 가르침에 밝은 건 두말이 필요 없고
평소 ‘반야심경’을 일심으로 독송해 눈과 입에서 광채가 났다고 한다.
의자왕 12년, 의각은 현해탄을 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백제사에 잠시 머무르다 중국으로 가 구자산(현재 구화산)에서 3년 동안 수행정진하며
옥으로 3053불과 16나한을 조성했다.
백제에서 불법을 펼치리라 마음먹은 의각은 655년 순탄치 않은 길에 올랐다.
배에 실은 옥불과 나한을 끌어안고 풍랑을 견뎠으리라.
예산읍 창소리 북포 해안에 이르러 안도도 잠시, 법을 펼 곳이 아득했다.
다시 옥불과 나한을 품고 밤낮으로 예불 올리며 종소리를 울렸다. 뜻은 하늘에 닿았다.
어느 날 금까마귀 한쌍이 홀연 날아와 배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의각이 홀린 듯 뒤따르자 산 아래 향기 가득한 샘물에서 까마귀는 자취를 감췄다.
낙엽 뒤덮인 곳에서 까마귀는 샘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샘물에서 나는 좋은 향기는 산골에 그윽했다. 의각은 감격에 겨웠을지 모른다.
“법을 예서 펼치라는 뜻이구나. 백제에 부처님 법이 아직 살아있다” 생각했을지도.
의각이 가람을 여니 산은 금오산(金烏山)이요, 절은 향천사(香泉寺)였다.
▲뭉개지고 깨졌다. 왜란을 겪으면서도 향천사를 지켰다. 9층석탑이다.
극락전 앞 나무 두 그루는 입동 지나 겨울 초입이건만 오히려 옷을 벗었다.
찬바람에 온몸 드러냈다. 머리에 얹은 파란 하늘이 시리다.
의각선사 그도 향천사의 기울어가는 가을이 시렸을까.
아니면 4년 뒤에 스러져갈 백제의 국운에 가슴 시렸을지도….
극락전 옆 덩그러니 놓인 9층석탑(충남문화재재료 제174호)은 뭉개지고 깨져 있었다.
위와 아래가 달랐다. 기단이 2층이었고 4층 이상은 아예 탑신조차 없이 지붕돌만 앉았다.
임진왜란 겪으며 가족과 생이별하고
찢겨진 가슴 안고 살아가야 했던 민초들처럼 탑도 향천사를 지켜왔으리라.
의각이 모셔놓은 3000불을 참배하러 천불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지런한 나무다리를 건너 울긋불긋 핀 땅을 밟았다.
순간, 숨이 멎고 걸음이 멎고 수없이 나고 지는 잡생각도 멎었다.
나무그늘 뚫고 쏟아지는 햇살과 지천에 층층이 쌓인 낙엽과
하늘에 드리운 단풍이 기막힌 우연을 빚어내고 있었다.
길옆엔 수행자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데웠다는 흔적이 가만했다.
나무는 온몸 내놓은 것도 모자라 잘린 밑동에 초록 생명을 키워내고 있었다.
▲나무그늘 뚫고 쏟아지는 햇살과 지천에 층층이 쌓인 낙엽,
하늘에 드리운 단풍이 기막힌 우연을 빚어내고 있었다.
숨이 멎고 걸음이 멎고 잡생각도 멎었다. 천불전 길목.
천불전(충남문화재자료 제173호)은 천불선원에 안겨 있었다.
마음 크게 쉬라는 천불선원의 빗장 ‘대휴문(代休門)’을 열고나서야 천불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불선원은 1954년 정화대책위원회를 지낸 10인 중 한 스님이며 한암 스님에게 법을 받은
보원 스님이 금오선원(金烏禪院)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문을 열었다고 한다.
지난 50여년 동안 매년 8~12명의 선객이 안거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눈 푸른 외국인 납자들이 문 열고 객을 살핀다. 그네들 화두는 어떨까.
천불전과 천불선원 뜨락이 붉고 성성하다.
천불전에선 의각의 구도심이 배어났다. 부처님 한 분 한 분이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기와 모양도 달랐다. 왼쪽에서든 오른쪽에서든 자기 나이만큼 숫자를 세어
그 부처님한테 치성으로 기도하고 절하면 원이 이뤄진다고 했다.
의각이 모셨던 3053불 가운데 절반이 인연을 알 수 없고 1516불만 남았다.
몰래 가져간 이들을 탓했다. 절반 밖에 남지 않았다.
천불전의 객 부처님은 입 닫고 지긋이 뜬 눈으로 내려다 볼 뿐이었다.
절반이나 남았다. 합장이다. 나한전 16 나한도 한 분이 안 계셨다. 다시 합장이다.
▲천불전의 부처님들. 3000여불이 계셨지만 절반이 사라지고 1500불만 남았다.
향천사에서 2000일 기도 회향을 앞둔 지현 스님이 입술을 뗐다.
천불전 부처님 안엔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복장물이 다수 나왔다고 했다.
옛사람 마음이나 우리네 마음이나 꼭 같다.
지현 스님이 1000일 기도에 입재한지 1년이 지날 쯤이었다.
새까만 작업복 입고 스님 앞에선 50대 중반의 한 거사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꺼냈다.
5000원짜리 지폐 2장과 1000원짜리 지폐 2장이었다.
스님이 웬일이냐 묻자 그 거사는 네 글자만 간신히 말했다.
“살려 달라.” 거사의 아들은 사법고시를 3번이나 떨어졌었다.
1차만 붙고 2차에서 번번이 쓴잔을 마셨고, 가세는 기울어 더 이상 뒷바라지할 여력도 없었다.
스님이 한 마디로 거사를 이끌었다.
“100일간 나와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목숨 거는 각오를 하십시오.”
거사는 새벽엔 스님과 기도하고 낮엔 생업을 매달리다 시간만 나면 절 불사를 도왔다.
100일 중 어느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거사의 몸은 매일 고통에 시달렸지만 마음은 오로지 아들을 향했다.
향천사 부처님에게 전하는 자신의 기원이
맑은 기운으로 아들에게 가 닿기를 소망하고 염원하고 발원했다.
100일이 되자 거사는 무너져 내렸다. 식도암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세상 앞에 당당히 섰다. 사법시험에 3차까지 합격한 것이다.
아들은 사법연수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창건주 의각선사 부도. 긴 세월 속에서도 그 표정이 근엄하다.
지현 스님이 의각선사 부도로 안내했다. 부도는 세월의 때를 입고 있었다.
중국에서 전법 원력 하나로 옥불과 나한을 모시고 온 의각이 예 있었다.
의각의 표정인지 팔부성중인지 모르나 얼굴의 흔적이 남았다.
까맣게 세월의 무게를 지니고도 근엄했다.
임진왜란 당시 승군을 조직해 금산전투에 참가했던 멸운대사가 의각 곁을 지키고 있었다.
1930년대 누구나 먹을 것 입을 것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시인 김영랑은 누이의 마음을 살폈다.
장독대에 오른 누이는 어디에선가 날아든 ‘붉은 감잎’을 보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 ‘오매, 단풍 들것네’라고 소리쳤다.
놀라움은 누이의 얼굴과 마음으로 번졌다. 기쁨은 잠시였다.
다가올 겨울이 걱정스러운 누이는 가을이 반갑지 않았다.
기쁨의 순간에도 끼니와 추위 걱정을 놓을 수 없었던 누이는 우리네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라와/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 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다/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전문)
가을이 저문다. 겨울초입이다. 절에 드나드는 기도객 신심이 환희심으로 붉게 젖어든다.
일주문 나서면 다시 부모, 자식,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 걱정으로
환희심은 차갑게 식어 빛바랜 채 바닥을 뒹군다.
우리네 신심에 ‘붉은 감잎’ 날아든다. 추위가 다가온다.
오~매 단풍 들것네.
2012. 12. 04
최호승 기자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