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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07-26 09:39:30
[100차] 참나무골의 추억 - 박광용
1. 산행일: 2006. 7. 22. (토), 흐리고 가끔씩 햇살.
2. 코 스: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마운틴파크 스무나리코스 (능선길~사면길).
3. 참가: 인섭, 효용, 진홍, 택술, 광용, 길래, 부종, 일기, 광호, 경남, 재명, 웅식, 석모, 덕영, 은수,
민영, 인식(2), 문수(2), 규성(2), 상국(2), 세우(2), 경호(2). 총28명.
월요일 저녁 무렵 서총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100차라는 의미가 있는 행사인 만큼 나더러 산행기를 쓰란다. 김총이 준비하는 100차 산행을 도와주지 못한 죄(?)로 블로그에는 자신이 산행기 보시하겠다고 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다시 날더러 쓰란다. 나야 일주일 전에 공지한 대로 블로그에서 서서히 사라지려 하는데 또다시 나의 등장을 요구한다. 아무래도 서총의 꾐에 빠져드는 것 같다.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막상 예기치 않은 글을 쓰려 하니 앞이 캄캄하다. 근데, 무슨 얘기로 시작하나?
100차 산행대장을 맡은 김총은 한 달 전부터 그 준비에 바쁘다. 예약하기 어렵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는 콘도를 덕영쫄의 도움으로 예약해두고서는 지루한 장맛비에 99차 산행이 제대로 실행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모모 씨는 ‘비가 와서 99차 산행 못하면 100차 산행을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김총의 속을 긁어 놓는다. 절대 취소해서는 안 되는 99차 산행을 우중에 감행한 신림 거사, 김총, 펭귄한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한다.
특히나 거사님의 ‘운행을 산행으로 인정하자’는 논리가 마음을 확~ 잡아끈다.
“황 선달의 인솔하에 강원도 산간계곡을 다녔을 때, 우린 산 타지 않고 차 타고 돌았다. 오늘 우린 관악산 자락을 진입하진 못하고 백운저수지를 차로 한 바퀴 돌았고 모락산 자락에 진입을 시도는 하고 있다. 이만 하면 됐고, 이제 하산주(?) 시작하자.”
이렇게 하여 ‘산행개시주’가 ‘하산주’로 바뀌면서 99차 산행은 완성되었던 것이다.
만약 그날의 산행 기록이 없었더라도, 다음날 펭귄과 길래 선사가 다녀온 불곡산 산행이 있었으니 그것으로 대체하면 될 터였다. 나 역시 이런 사고는 막아야겠다고 여기고, 17일(월)에 곁님과 둘이서 대모산을 다녀온 것이 있으니, 아무도 산행기를 올리지 않으면 폰카로 찍은 곁님 사진 한 장으로 99차 산행기를 대신하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친구들도 한둘이서 다녀온 친구가 있을 것이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었다.
고비를 넘기고 나니 산 넘어 또 산이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것 같다. 매시간 열어보는 기상청 사이트는 밀려드는 네티즌 때문인지 연결이 쉽지 않다. 겨우 연결 되더라도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겨우 열리는 화면을 통해 확인한 일기예보는 수요일쯤 되어서야 희망적이다. 토요일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고 일요일 오후에는 비가 조금 올 것이란다. 한 시름 들었다.
이제는 참여 인원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30산우회 영업상무를 자처한 김총과 펭귄, 여기저기 전화하여 가능한 한 동부인하고 참석할 것을 권유한다. 블로그에 올린 김총의 글을 보면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20명은 넘을 것 같아 안심이다.
나로서는 조금 아쉬운 게 있어 두 사람에게 따로 전화했다. 지난 목요일 저녁 무렵 걸려온 재봉 선사의 답신은 공항에서 지금 도착했단다. 상황은 잘 알겠는데 올 겨울 준비하느라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단다. 하루치기로 다녀오는 것이라면 따라 가겠는데 1박2일의 일정은 무리란다. 이럴 때 가끔은 배짱이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치는 것은…… 다음날, 신림 거사는 미리 연락한 대로 다른 약속이 있어 불참이란다. 아쉬움이 남지만 할 수 없다.
내가 이들을 챙기는 것은 이들이 우리의 산행 모임을 태동 시킨 주역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요일 아침 눈뜨면 전화하여
‘오늘은 어데 갈래?’
‘그래, 예봉산?’
‘아니, 검단산?’
‘아니, 청계산?’
‘오늘은 안 되겠고, 다음에 가자.’
하며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일요 산행을 다니고 있었고, 예봉산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2004년 3월 21일 일요일, 처음으로 두 사람을 따라 나서며 책상 위 다이어리에 끄적거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 기록들이 모여 이렇게 어엿한 <100차 정기산행>이라는 의미 있는 행사로 발전하였고…
지금과 비교하면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다른 것 같제?
별도로 병효 대사한테도 전화해봤는데, 지금 사무실이 비상인 모양이다. 중간 간부 한 친구가 그만뒀단다. 새로 사원을 뽑기는 했는데 이제 하나부터 가르쳐야 한단다. 토요일에도 전부 출근하라 했단다. 100차 산행을 함께하지 못한 서운함을 친구들한테도 전해달란다.
부지런한 김총이 블로그에 각자의 준비물을 공지해 놨다. 나와 곡사의 준비물은 김치와 과일이다. 김치야 ‘목동표’ 최우수 브랜드가 있으니 걱정을 들었고, ‘과일이나 좀 준비하자’ 하고 곁님을 모시고 과일가게로 갔다. 장마에 좋은 과일이 있을까마는 수박을 제외하고 참외와 자두, 귤만 좀 샀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부피가 꽤 되네. 차 안에 그대로 보관해 놓고, 쫄고, 덕영쫄과 아침 11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권박은 호루라기, 나팔과 같이 가겠단다.
근데 곁님이 같이 못 가겠다고 하네. 고4인 딸애녀석 돌봐줘야 할 것이 있단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어기게 됐다. 특히나 서총 마나님과 황 선달 마나님이 곁님을 기다린다고 꼭 오라고 당부를 하였건만, 마나님들한테도 미안하다. 그래도 우짜겠노??? 쫌 봐 주소…
출발 당일, 11시가 되어 주섬주섬 챙긴 옷 가방과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아무 연락이 없이 5분을 지났을까? 쫄고가 차를 몰고 우리집 앞으로 왔다. 준비물 차에 싣고 보니 타고 있어야 할 덕영쫄이 없네. 전화연락도 없었단다. 오는 길에 들은 얘기지만, 덕영쫄이 아침에 빠진 준비물(숯인가, 뭔가 모르겠다) 챙기러 할인점에 들렀는데 2층과 3층을 오르락내리락했단다. 바로 옆에 두고도 마음 급한 눈에는 보이질 않으니…
11시20분, 모든 준비를 끝내고 출발이다. 조금 늦은 출발이기는 하지만 큰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배우고 익힌 쫄고님의 운전실력(?? 말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에 올라서고, 호법에서 영동선으로 갈아 탄다. 중간에 김총한테 전화하니 예상치 못한 인물들도 참가하여 25명은 넘을 거라 한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쫄고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문막나들목으로 빠져 나온다. 덕영쫄이 가본 적 있고 ‘묵밥’이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 우회전, 좌회전,,,, 드디어 <종가집>을 찾았다. 안쪽에서 한 무리의 친구들이 우리를 반긴다. 김총과 나팔, 호루라기, 양사장 등이 미리 와서 음식을 주문해 놓고 앉아있다. 손님이 많아서 그런가, 아니면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가? 반찬 좀 더 갖다 달라는데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소식이 없다. 이런 걸 그냥 넘길 쫄고님이 아니지!! 쥔장을 불러 한마디 경을 읽어준다. 근데 나오면서 느낀 것인데 그 경을 들었던 귀는 소의 귀였나 보다.
자동차 대여섯 대가 한꺼번에 쭉~ 빠진다. 쫄고님 차가 제일 마지막으로 앞차를 따라 간다. 모든 사물은 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리조트 정문을 들어서자 느낌이 다르다. 연두색과 녹색이 조화로운 들판에서 띄엄띄엄 보이는 공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다른 어느 골프장에서 느끼는 기분과는 확연히 다르다. 여유가 묻어나온다. 쥔장이 누구시더라?
체크인 카운터로 차를 몰고 간다. 앞서온 친구들과 마나님들이 서 있다. 방안에 들어가 있어도 될 텐데 여기 이렇게 나와 있네… 근데 큰 실수했다. 서총 마나님과 펭귄 마나님께는 인사를 드렸는데, 선달 마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사를 못했다. 지난 겨울 북한산 부부 산행과 청계산에서 보고 처음인데, 계절이 바뀐 탓인지?? 그 동안 너무나 젊어지신 거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방안에 들러 간단히 준비하고 나니, 2시30분에 입구에서 집결이라는 전달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도 있고 산에서는 처음 보는 친구도 있다. 그 면면을 가만히 뜯어보자. (이거는 서총이 블로그에 이미 올린 것을 내가 약간 가필한다.)
비록 참석은 못했지만 <30산우회 100차 산행기념 타올>을 협찬해주신 최경도 사장님,
돼지고기 10인분을 챙겨 저 멀리 인천에서 홀로 운전하여 온 고수님, 그냥 존재만으로 우리의 의지가 됩니다.
따로 고기 5인분과 바비큐 준비를 완벽하게 해오고, 또 뜨거운 불을 쬐면서 고기 굽느라 주방장을 자처하고 수고해 주신 선달님 부부,
‘목동표’ 김치를 통째로 들고 와서는 합동 가무로 우리를 매료시킨 신 곡사님 부부,
우리 모임의 격에 맞을지를 심히 걱정하며 고급 양주를 협찬하신 쫄고님,
해외출장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와인까지 4병이나 챙겨오신 양 사장님,
역시 오랜 외국생활 도중에 새벽에 공항에 도착하여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데낄라 한 병 옆에 끼고 손수 운전으로 오신 세우님 부부,
구하기 힘든 콘도 그 너른 평수 방 3개나 저렴하게 잡아주고, 비록 쓰이진 않았지만 바비큐 불판까지 준비해 주신 덕영쫄님,
블로그를 통해 눈치채고 아침 찬거리를 부산에서 공수한 재첩국 15인분으로 완전히 해결해 알딸딸한 친구들 속을 완전 풀어준 박은수(겨울여행)님을 나는 산행에서는 처음 만났다.
마지막까지 술에 흔들리지 않고 듬직하게 자리 지켜주신 키 큰 오빠 광호님,
아침에 201호 식사 제공하고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봉사하신 영펭쫄 재명님,
100차 산행 모든 것 진두지휘 한다고 다음날 아침에는 완전히 탈진한 김총님,
어려울 때 총무직을 자진해 맡아 어려운 산우회 살림을 위해 애 많이 쓰는 서총님 부부,
아직은 멀었다며 몸 만들어 산행참여 하겠다는 일기님,
역시 분위기 살리는 데 빠질 수 없는 조디 9단 갱남 호루라기님,
참석하는 것만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펭귄님 부부,
따라가면 절대로 계산이 틀릴 이유가 없는 그저 든든하기만 한 길래 선사님,
그저 함께 있으면 든든한 우리 팀닥터 권박님,
작년 1월 <30산우회> 발기 산행에서 보고 산행에는 처음으로 나온 김규성 부부,
그리고 넉살 좋은 풍채에 언제나 미소가 떠나지 않는 영원한 우리의 회장님인 뱅고님,
동기회 총무이자 30산우회 나팔수 지노이님, 언제 단체로 함 가야 할 낀데……
동기회 자금담당 총무로서 30주년 홈카밍 행사를 성대히 치뤄내었고, 마음뿐이던 산행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203호 아침식사와 설거지 마무리한 웅식님,
세분 모두 참석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금일봉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큰아들(?)을 잘 길러주시고 어려운 자리 참석하여 특히나 노래방 분위기를 한층 빛내주신 여섯분의 마님들, 모두들 고맙습니다. 내 말고는 이름 빠진 사람 없제?
산행이야 정해진 코스 오솔길을 따라 다녀온 것이고 기억에 남는 것은 ‘마운틴 파크 스무나리 코스’라는 것 밖에 없는데… 결과적으로 선두는 2시간, 후미는 30분이 더 걸려 내려왔다. 급기야 전날 저녁 너무 무리(?)한 탓인지 호흡이 가빠진 한 분과 얼굴에 핏기가 없이 창백해진 한 분이 먼저 내려가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낮은 산이라고 절대로 얕보면 안 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깨우친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중간에 휴식처에서 목마를 때 마신 모과주 한 잔과 자두 한 알이 그렇게 위안을 주었고, 산 이름은 모르지만 그 산에는 살모사 같은 뱀이 억수로 많다는 보고(사진으로 확인 가능)도 있었다. 장마에 불어난 물에는 송사리도 있고, 소금쟁이, 특히 물가 수풀에는 모기가 억수로 많았다.
낭군님은 저 뒤에 오는데 휑~하니 먼저 간 마나님도 있고, 세 분의 마나님은 부부간의 사랑을 확인하기도 하며 다정하게 사진도 찍었는데, 보여줄 산행실력이 너무 많았던지 먼저 휑하니 가버린 펭귄은 마나님의 색다른 데이트(?)를 아는지 모르는지?
28명이 모여 함께 찍은 사진이래야 고수님이 찍은 것 밖에 없을 텐데. 고수님이 언제 사진 올려 주실라나?? 혼자서 먼 길을 차 몰고 다니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 차량도 시동이 안 걸려 잠시나마 고생도 좀 했고…
한 가지 첨언하면, 산이 있고 친구가 있는 한 우리의 산행은 지속될 것입니다. 산이 있고, 친구가 있어, 우리의 모임이 있습니다. 함께 참여하고 함께 고민하며 하나하나 쌓아갑시다. 밀레니엄 산행을 기다리며 먼 훗날 이날 우리가 소리친 ‘후라 경고’가 메아리 되어 들을 수 있는 이곳 참나무골을 추억할 날도 오겠지요…
감사합니다.
(이로서 1부를 마치고, 2부는 필름이 끊겨 아무것도 기억 못하겠는데 우짜노?? 아무래도 이 부분은 상구기가 쓰는 것이 좋겠다.)
100차 정기 산행 낙수 (서상국)
100차 산행대장을 맡은 죄로 실무를 준비하느라 고생 엄청 많았던 김총이 산행기를 내게 넘기기에, 아무런 도움도 못 준 게 미안해 내가 쓴다고 말은 해놓고 막상 쓰려니… 쓰기 싫은 게 아니라 아무래도 뭐가 찜찜하더라고.
1차 산행을 시작했던 3사람 중, 100차 산행에 참석한 광용대장이 감회도 남다를 것이고 100이라는 숫자를 정리하는 의미에서라도 광용이에게 필을 넘기는 게 도리일 것 같아 전화를 내었다. 광용이, 처음엔 고사하더니 내 뜻을 알아차리고는 흔쾌히 응해놓고 술 취해 필름이 끊겼다는 핑계로 저만큼만 써 보냈네? 사실, 필름은 내가 더 일찍 끊어졌는데… 하는 수 없이 생각나는 것 몇 개, 우스개소리로 몇 자 보탭니다.
1. 수시 원서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100차 산행준비에 손을 놓았지만 의미깊고 중차대한 100차 정기 산행의 산행대장을 맡아 고군분투하는 김총의 정성이 눈물겨웠다. 수요일 저녁 김총과 박대장, 나, 이렇게 셋이 모여 마지막으로 경비문제와 준비물, 기념품 준비 문제 등을 협의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주 운전으로 자전거가 자빠져 바지는 찢어지고 팔꿈치와 무르팍을 깼다. 언제 철이 들겠냐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2. 토요일 아침, 펭귄 부부를 태우고 영동 고속도로를 달려 문막 I/C를 빠진다. 오크-밸리 찾아가는 길은 곳곳에 팻말이 붙어있어 찾기 쉬웠다. 하나, 둘, 처음 보는 친구도 있고… 하지만 한번의 악수로 금방 친구가 된다. 총 28명의 대군이다.
예약한 방 세 군데에 짐을 풀고 2시 30분에 산책 같은 산행을 시작했다. 푸른 잔디밭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어 산책로 입구에서 김총이 브리핑을 한다. 총 5Km에 왕복으로 3시간 걸린다니까 “코스가 엄청 험한 것 아니냐?”며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별로 오르막이 심하지 않은 평범한 코스인데 규성이가 힘들다며 주저앉았고, 좀 있다 진홍이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눈에 흰창을 희번덕하게 드러내며 이상하게 웃는다.
30산우회 주치의 권박의 지시로 둘은 사이좋게 미리 콘도에 내려가 자리를 잡았고, 나머지는 모두 자연스레 1진, 2진으로 나뉘어 완주한다.
나중에 펭귄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옮기자면, 생전 처음 30산우회 산행에 참가한 웅식이가 1착으로 내려와서는 “내보다 뒤에 온 사람들 전부 일렬로 줄 서라!” 그랬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펭귄,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영 미치겠더라나.
“아, 씨. 내가 그런… 산도 아닌 그런 길을 일착으로 못 가겠나? 내가 앞에 가면 너무 정치적이지 싶어 일부러 뒤에 갔는데 말이지. 내 밑에 쫄들, 덕영이와 재명이가 눈 벌겋게 뜨고 있는데 웅식이 글마가 그런 말 하몬 되겠나? 아, 내 열 받데! 글마 그거, 처음 와 가꼬, 지가 일등으로 왔다고 큰소리 치면서 속으로는 30산우회 이거 ㅈ도 아니네! 그런 생각 안 하겠나? ㅋㅋ ”
아무래도 웅식이는 펭귄을 잘 못 건드린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잘못했다고 머리 수그리라. 알았제?
3. 김총이 저녁 식사장소로 미리 예약한 자연산 매운탕집.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당에 준비된 테이블, 처음엔 자리가 부족했지만 8개의 의자를 더 구해 다행히 28명, 모두 한 자리에서 즐겁게 술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주인이 직접 강에 나가 잡은 빠가사리 매운탕을 안주로 한번에 소주 10병씩 나왔고, 세우가 멕시코에서 가져온 데킬라까지 합세, 순식간에 취기가 돈다. 황선달은 마당 한구석에서 바비큐용 숯불을 피우느라 열중이고 효용이가 협찬한 삼겹살에, 또 자기가 따로 준비해온 돼지고기 목살을 굽느라 연신 땀을 훔쳐낸다.
고기만 구운 게 아니고 나중에는 쏘시지, 강원도 찰옥수수까지 구워 각 테이블에 배달했다. 짓궂은 친구들은 구운 쏘시지를 꼬챙이에 끼워서는 마님들을 찾아다니며 술 한잔 올리고 안주로 그걸 먹도록 강권한다. 술자리가 파할 즈음, 모두 둘러서서 후라~경고를 시작으로 응원가 몇 곡, 목이 터져라 합창하고서는 콘도 안에 있는 노래방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4. 노래방이 딸린 콘도 체크인 하우스에 오니 야외 무대가 열리고 있었다. 누가 나와서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술이 취해선지, 신세대 가수는 도통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직원들 틈 사이로 진홍이가 가서 테이블에 있던 과일 안주를 싹쓸이 해온다.
“야! 좀 있다 노래방 가봐라. 이거 전부 돈 아이가? 상국아, 내 잘 하제?”
- 산에서는 낙오했지만 진홍이 정말 쓸모 있더라. 다음날 점심먹는 자리에서 뭘 둘둘 말아 쥐고 있던 걸 펴놓으며 “이거 누꺼고?” 하며 양말 두 켤레와 윗옷 하나를 챙겨와서는 주인을 찾아주더라. (양말 한 켤레는 내꺼였다.ㅋ)
진홍이 그 때, 내한테 한 마디 찬사를 들었다.
“야, 진홍아…. 니는 확실히 개보다 낫다.”
마님들을 태운 차 한 대가 콘도를 찾아오다가 길을 잘 못 들어 근 4-50분을 강원도 밤길을 헤매고 다닌 우여곡절 끝에 합류, 노래방 두 방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다.
마이크만 보면 안 놓으려고 흥분하는 몇몇, 이들의 마이크 쟁탈전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나중에는 마이크 뺏기고 돌아서서 분한 마음에(?) 육성으로 땡고함을 질러대는 길래선사, 부부팀을 러브-샷 시키고 부루스 치라고 끌어당기는 모모군.. 아이고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오죽하면 신곡사가 그러더라. “아, 씨. 나는 다음부턴 절대 도시락 안 들고 올 끼다!”
노래방에서 나와 콘도를 우찌 찾아갔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경상도 사람들 술 취하면 얼마나 목소리 크노? 나중에 안테나를 통해 접수된 바로는 엉뚱한 곳을 찾아가 방 내놓으라고 큰소리 쳤다던데. 목소리 큰 진홍은 연신 방 내놓으라고 고함지르고, “예약 했잖아요?” 근엄한 목소리로 종업원을 꾸짖는 권박, 안 봐도 훤~하다.
콘도에 근무하는 분들은 밤마다 이런 부류의 술취한 손님들에게 시달리겠제?
-사실 방을 못 찾아 헤맨 것은 그날 밤만 그런 게 아니다. 아침에 누구는 담배랑 소금사러 갔다가 소금은 잊어먹고 고춧가루를 한 봉지 사, 손에 들고 엉뚱한 곳에 가서 종업원을 다그쳐 키까지 받아 쥐곤, 자기 방이라고 201호를 찾아 갔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르는 아줌마들이 나오더라네?
“아니, 왜 남의 방에 아줌마들이 있능교?”하면서 한바탕 크게 따지다가 다시 프론트에 가서 확인하고…. 그런 난리소동을 피운 끝에 약 한 시간이나 빙빙 돌다가 재첩국 거의 다 먹고 난 뒤에 나타나서는 “와…. A동 그거… 여기 B동하고 구조가 똑 같은 것 있제? 내… 도저히 모르겠더라니까. 캬캬”
방에 와서 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누가 설치다가 깨었는지 몰라도 양주잔에, 그라스에, 유리에… 다음날 계산하러 갔더니 계산서 보니까 깨 묵은 것도 많더라.
그래도 술 안 취하고 중심 잡아준 광호 같은 친구가 있어 무사히 술자리를 마치고 모두들 꼬꾸라져 잤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데 하도 내가 시끄럽게 코를 골았는지 옆에 있던 석모는 아예 자기 집으로 도망(?)가고 없더라. 우리 방은 아주 널널하게 잤는데 옆방에 가니까 이건 정말 가관이었다. 마치 폭격맞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으니, 피난민처럼 거실바닥에, 소파에, 침대에, 방바닥에, 겹겹이 구겨져 뻗어 있었다.
그래도 아침은 재명이와 나, 그리고 웅식이가 라면과 재첩국을 끓이고 햇반을 말아서 정신이 돌아온(?) 친구들과 마님들을 먹이고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당구장과 볼링장에 가서 한 게임하고 12시에 체크아웃, 출발. 문막휴게소에 차를 대고 안 와본 사람은 찾아갈 수 없는 이상한 길을 따라 <록야>라는 음식점에 갔다. 주인장이 직접 자기 손으로 멋을 많이 부려 운치있는 집이었다. 맛있는 대통밥에 동동주까지 한잔 걸치고 모두들 배를 두드리며 아쉽게 헤어진 시각이 오후 3시경.
그렇게 100차 산행, 1박 2일의 여정이 끝났다.
30산우회, 이 모임이 있게 된 것은 앞에 산행기를 쓴 박대장과 비록 사정이 있어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신림이와 재봉이가 있었기에, 그리고 택술이, 병효, 민영이.. 이런 초창기 멤버들의 신참 친구들을 포용하는 너른 마음이 있었고, 2기를 맡아준 김총 인섭이의 탁월한 추진력과 또 여러 친구들의 산을 향하고, 친구들을 향한 한마음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고 또 100차 산행이라는 하나의 큰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101차 산행을 시작으로 200차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 내디뎌봅시다. 30산우회,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