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7)
2007-12-04 10:13:51
169차 우면산 - 서상국
1. 일시 : 2007. 12. 2(일)
2. 곳 : 우면산
3. 참가 : 문수(대장), 광용, 병욱, 정호, 펭귄, 인섭, 상국(7명) + 갱호(뒷풀이)
4. 코스 : 남태령역-과천방향 여우고개 - 남태령 비석-왼쪽길-병력하차 팻말-왼쪽길- 돌고 돌아- 소망탑- 직진- 돌도돌아 관문사 - 목동.
2007년, 미리 짜놓은 산행일정에 따라 30산우회는 숨가쁘게 달려왔다. 정말 한 주도 쉬지 않고 산행을 이어온 지독한 친구들, 하지만 연말을 맞아 이런저런 바쁜 일에 산행도 좀 느슨해지는 건 당연하겠지.
영남알프스 좀 먼 산행을 다녀온 직후, 169차 산행은 가까운 산에 가자고 공지를 올렸다. <가까운 산>, 산 이름이 4자가 되는 셈이다. 30산우회 룰에 의하면 4자로 된 산은 무조건 문수가 책임지기로 되어있다.
문수가 제풀에 놀라 갈만한 곳을 죄다 뒤진 모양이다. 엄청 머리를 굴려 가까운 산을 찾았는데, 이름이 우면산이란다. 과천과 서초동을 가로질러 소가 자고 있는 형상을 한 산. 이름하여 <소 자는 산>. 혼자 답사를 다녀오는 성의도 보이고 약속장소를 정한다. 선바위역 2번 출구 오전 9시.
토요일 오후에 집에서 김장을 했다. 아들과 나, 아내 친구까지 합세하여 김장은 간단히 해치우고 멀리 천안에서 오고 있던 아내 친구까지 합세, 술 한잔 하다보니 밤 12시가 훨씬 넘었다. 고민 없는 사람 어디 있겠냐만 잘 덜어내지지 않는 고민을 제각각 한 짐씩 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서둘렀는데도 늦다. 정거장 앞에 가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아차, 휴대폰을 안 갖고 왔다. 이젠 휴대폰 없으면 모르는 곳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다시 집에가서 폰을 들고 나오고, 마을버스, 지하철. 근대 배가 싸르르 아프면서 이마에서 땀이 솟는다. 윽, 큰일인데. 서현역에서 화장실을 찾아 일을 보고 다시 333번 버스를 타러 간다. 범계역에서 하차하여 다시 지하철. 남태령역에 내린다. 무슨 계단이 하늘까지 이어지나? 저렇게 높은 계단을 언제 가나? 속으로 18, 18하면서 낑낑 올라간다. 다리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다 올라가니 아니, 저 맞은편에서 웬 아줌마가 스르르 자동으로 올라오는 게 아닌가?
모르는 아줌마를 보고 나도 모르게 갱상도 말이 튀어나온다.
“어? 아지메? 거게 에스카레이타가 있덩교?”
그 아줌마, 아침부터 웬 미친놈 다 보겠다는 눈치다.
문수의 지시대로 과천고개를 향해 올라간다. 본래는 여우고개라 불렀는데 수원으로 능행하던 정조가 이 고개 이름이 뭐냐고 물었는데 아전이 임금앞에 속된 이름 말하기 뭐해서 임금님이 남으로 내려갈 때 만나는 첫 번째 큰 고개란 뜻에서 남태령으로 대답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설명이 있다.
<남태령> 큰 비석앞에서 왼쪽으로 오솔길이 보인다. 거기서 계속 호젓한 산길을 홀로 걸어간다. 낙엽이 많다. 한참 가니 <병력하차>팻말이 있고 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한참 가다보니 어디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산우회 친구들이다.
내가 늦으니 자기들끼리 벌써 한판 벌이고 있었는데 이미 파장이다.
펭귄이 짐 챙긴다고 어정댈 때 발로 낙엽을 쓸어 모아 슬쩍 장갑을 묻어놓았다. 가만 두었으면 펭귄은 장갑 한 쪽 또 잃어버렸을 것이다.
- 쫄들은 들어가 총을 겨누라는 문수의 명, 군기가 빠졌다.
-우면산 글자가 들어가야지, 밑에 글자는 다리로 가루고...
- 여기가 우면산 정상인 셈이다. 군부대때문에 저쪽 더 높아보이는 곳엔 갈 수 없고
-이런 쉼터가 많더라. 아줌마 쉼터라고 우리가 이름 붙였다.
우면산, 온통 떡갈나무 이파리로 덮인 길, 물이 많이 나는지 곳곳에 약수터다. 전망 좋은 쉼터에서 다시 사과 몇알 까묵으면서 환담. <행복>,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글귀가 기억에 남는 청마의 시가 적혀있다. 다들 회상에 잠긴다. 광용이 아버님이 옛날에 통영에서 청마선생이랑 같이 근무도 하셨단다. 통영, 그 파란 바닷물이 눈에 들어온다. 우체국도, 엽서도. 산양면 달아공원도, 굴양식장 하얀 브이도, 만지도, 딱섬, 학섬....
우면산에서 제일 긴 코스를 도는데 오늘 김장할 예정이라던 갱호와 연락이 닿았다. 김장은 다음주로 미루고 집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는 모양이다.
“이리 올래?”
“가까? 근데 너무 멀다. 니가 일로 온나.”
“에이, 너그가 온나. 내가 밥 사주께.”
“그래도 너무 먼데?”
“너그도 내가 얼마나 멀리 댕기는 지 한번 겪어봐야 안 되겠나?”
밀고 댕기다가 결국 목동으로 가기로 한다.
뱅욱이는 헬리코 박터가 있다나? 일주일간 금주령이 내려서 불참한단다. 그래도 회비는 내어야지? 만원 꺼내는데 엄청 꾸물댄다.
목동까지 택시로 이동, 금방 가기는 갔는데 상가에 가게가 문닫은 곳이 많다. 삼겹살에 소주 몇 잔 묵고, 호프 간단히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 하나 듣고 6시 조금 넘어 헤어졌다. 전철로 이동, 인섭이랑 같이 광화문에서 같은 버스를 탔다. 혹시 잠이들면 안되니까 알람을 맞춰놓고, 가는데 걱정이 되어 그러는 건지 잠 못자게 용심을 부리는 건지 광용이 이녀석이 시도때도 없이 문자를 보낸다.
잘 가고 있나?, 단디 내리야 된다.
우리 단디 하자.
이 자슥, 얼마 전에 지가 옷 이자뿌고 난리를 피우더만 이제 조디에 <단디>가 단단하게 붙은 모양이다.
집에 닿기 100m전, 갱호한테 전화를 했다. 마님과 같이 단촐하게 술 한잔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님을 바꿔준다.
“아이구 회장님. 전화 안 바꿔줘도 되는데, 잘 계신교~?”
“제가 지금 소주를 한 잔 하고 있거던요. 다음에 미리 연락주시몬 좌악 먹을 것 스탠바이 해서 잘 대접할께요. 나중에 오이소~”
“예, 갱호도 산에 자주 보내주시고요.”
아주 분위기 화기애애 하디만, 나중에 또 갱호한테서 전화가 온다.
“어덴데? 아까 통화했는데 와 또?”
“니가 아까 너그집 100m전이라 해서, 나도 인자 우리집 50m전이라꼬 보고한다 아이가.”
“니 완전 펭귄이네? 그래 하이튼 덕분에 작 묵었다. 나중에 산에서 보자.”
“그래.”
근데 나중에 들은 말로
밤 12시가 넘어 갱남이가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고 얼이 빠진 모양이고, 목동 같은 삐알에 사는 죄로 광호까지 한밤중에 일어나 5분대기조가 된 모양이다.
다 잘 해결되었디나 다행이고, 갱호는 앞으로 ‘산’이란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망년회도 못 나올 만큼 망가진 모양인데, 우짜겠노? 세상 사는 거 힘들어도 그래도 결국 답은 산에 있더라.
잠자는 호랑이 깨우지 마라, 하고 잠자는 호랑이 콧털을 뽑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도
잠자는 소 깨우지 말란 말은 못 들었는데
소자는 산, 그거 탔디만 디기 무섭더라.
모두들 자는 소를 조심할 것! 크크.
-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흰 신 신은 갱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