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연봉 233%, 대기업에 스카웃되다.
1) 파견직에서 소기업으로
나는 그곳을 그만 둘 때 퇴직금도 없는 연봉 1,200만원이었고 2000년 2월, 전문대 졸업과 동시에 규모가 작은 -선박과 육상 인테리어 관련- 제조업체 D사에 설계직으로 취직하였고 연봉으로 1,530만원을 계약했다. 오너 사장은 역시 달랐다. 설계 실력도 쓸 만하고 현장일도 곧잘 따라하고(정비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어도 수준급이고 열정이 있는 나를 인정해 주었다. 다음해 연봉이 1,680만원이 되었는데 나의 인상률이 가장 높았다.
2) 무술을 배우다.
나는 D사를 다니면서도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무술을 배웠다. 제일 흔한 태권도부터 배웠다. 난 한 번도 수련을 빼먹지 않았고 대련이든 뭐든 먼저 손을 들고 하고자 했다. 그래서 처음엔 관장이 오해를 했다. 밖에서 무슨 싸움깨나 하다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자기와 대련하자고 해서 했는데 될 리가 있나. 싸움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무술이라고는 몇 년 전 합기도 2달 배우다 교통사고 나서 그만둔 뒤로는 이번에 배우는 태권도 1달이 전부인데......,
사람들이 나의 열정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나는 단지 더 빨리 배우고 싶었을 뿐인데......., 감기 몸살에 열이 나고 얼굴엔 다크 서클이 생겨도 도장은 빠지지 않았다. 몇 달 후 그는 나를 이해했다. 나의 열정을. 나는 8개월 만에 1단을 땄다. 대부분의 무술에 있어서 검은 띠만 따면 그가 1단 인지, 2단 인지 구분이 안 간다. 실력은 수련의 정도에서 나오는 것이지 반드시 단이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태권도에 있어서 승단은 필요 이상의 돈이 필요한 것이다. 태권도는 1단 이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나의 몫이다.
그 무렵 한 캐나다 친구가 합기도와 타이복싱을 배우고 있었고 나는 그곳으로 도장을 옮겼다. 그곳은 활무 합기도와 타이복싱을 동시에 가르치는 도장이었는데 이름이 낯설은 그 무술은 아주 실전적이었다. 내가 찾아간 도장의 관장이 두 무술의 협회장을 맡고 있었고 그 무술들은 그가 창시했거나 도입한 것들이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수였다. 그는 많은 무술들을 통합한 무술을 창시하여 ‘통일무술’이라 명했는데 그 명칭이 너무 생소하여 일반인들이 무술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자 비슷하게 보이는 합기도의 이름을 채용하였다. 그의 무술은 군더더기를 빼고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것들로 정립되었으며 K-1이 생기기 전인 1989년, 일본에서 열린 이종 격투기 대회에서 그는 체급 1위를 했다. 그는 묘기대행진, 호기심천국 등 TV에 여러 차례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얘기가 너무 기니 생략한다.
나는 그곳에서 두 가지 무술을 동시에 배우고 6개월 만에 각각 1단씩을 땄고 차력 기술도 몇 가지 터득했다. 그 이후에 검도와 복싱, 대한 합기도도 몇 달씩 배웠다. 고등학교 때 부터 시작한 보디빌딩의 기초체력과 타고난 유연성에 무술의 기술이(아직 기초적 이었지만) 더해지자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3) 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다시 회사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 회사는 한해 매출이 20억원 정도였는데 자체 영업이 없어서 매출 3,000억 짜리 B사의 하청을 받아서 했다. 마침 B사에서 해외 육상 project를 우리 회사와 같이 추진했는데 기술적으론 내가 주도를 했다. 그 프로젝트가 가시권에 들어오자 B사는 우리를 배제하고 선박 쪽 경험만 있는 자체 설계 인원으로 미팅을 갔는데 육상 쪽 경험이 전혀 없으니 내용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B사는 계열사를 하나 더 만들어 우리 회사에 주던 하청물량을 모두 자체 생산하려고 했다. 결국 우리 회사는 몇 달 안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나도 직장을 잃어야 하는 것이다.
2001년 12월 31일 나는 캐나다 아내와 부산의 한 호텔에서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B사에서 연락이 왔다. B사 상무님이 비밀리에 보자고 한단다. 스카웃 제의인 것이다. 며칠 뒤 나는 B사 상무님과 면담을 했고 난 2,800만원을 요구했다. 1,680만원에서 1,120만원(67%) UP, 2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600만원(133%)이 UP된 것이다. 그 금액은 나보다 2살 많은 B사의 핵심 K 대리가 2,400만원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분명 과도한 요구였지만 난 그 연봉을 받고 2002년 2월 직장을 옮겼다. 만약 그 스카웃 제의가 없었다면 난 D사를 끝으로 캐나다에 이민 갔을 것이다.
난 B사에서 열심히 일했고 발명특허를 1건, 실용신안 3건을 출원했고 이중 3건을 등록했다. B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7개의 특허와 실용신안 중 절반이 내가 출원/등록한 것이다.
4) D사에서의 에피소드
D사에서 일할 때 난 꽁지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스카웃될 때 B사에서는 내가 머리를 기르는 것을 허용했다. 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굴러들어온 돌. 난 열정이 많았던 만큼 적이 많았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면 항상 기득권 세력들은 반대를 하는 법이다. 재미있었지만 힘들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2002년 12월 30일 지하에 있는 회사 구내식당에서 송년회가 있었다. 부서별 장기자랑도 있었는데 난 차력을 준비했다. TV의 개그를 흉내 낸 팀도 있었고 엉덩이를 오므려 젓가락을 부러뜨리는 코믹 차력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되기 얼마 전 K 대리의 동료이며 나보다 1살 많은 키 185, 몸무게 100Kg Y대리가 나더러 화장실로 따라 오라고 했다. K 대리와 사소한 시비 아닌 시비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나를 부른 것이다. 너무나 하찮은 것이라서 나는 영문도 모르는데 Y대리가 왜 그랬냐고 따져 물었다. 무슨? 몇 마디 설명으로 오해라고 해명하고 화장실을 나오는데 그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담배를 빡빡 빨아대고 씩씩거렸다.
차례가 되었고 난 차력을 시작했다. 먼저 야구 방망이 한 개를 격파했다. 분위기가 압도 당했다. 쌍절봉을 돌렸고 머리 위 종이컵을 돌려차기로 떨어뜨렸고 날라서 4개의 목표물을 발로 찼다. 공중에 뛰어 올라 벌어진 소파 위에 다리를 벌리고 착지하였고 엄지손가락 만으로 팔굽혀 펴기를 했다. 다른 몇 가지 묘기 후에 마지막으로 야구 방망이 두 개를 묶어 격파를 할 순서였다. 한 쪽에는 몸무게 95kg 짜리 보조자와 다른 한쪽에는 70kg 짜리 보조자가 방망이를 무릎에 대고 있었다. 기합과 함께 정강이를 날렸다. 방망이 둘 중 하나만 부러졌다. 70kg짜리 보조자가 아파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자 술 한 잔된 65kg 짜리가 나와 대신 잡았다. 다시 찼다. 65kg짜리가 뒤로 1m쯤 날아갔다. 결국 격파를 중단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 시간에 100kg 짜리 Y대리가 다가와서
“아까 차력 멋있었습니다.”
라고 했다. 그 이후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