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8.
김종직의 유두류록
대학을 졸업하고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서른 후반 어느 연수원에서 짧은 회포를 풀었고 지금껏 연락도 없이 살고 있다. 전혜린이 번역한 에리히 캐스트너의 <파비안>을 아직도 돌려받지 못했다. 선배는 복학생이었고 말수가 적었다. 술을 무척 좋아했고 그런 날이면 말이 많은 달변가로 변신했다. 평생을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할 명언들을 내뱉었다.
말처럼 살지는 못하지만, 기억은 하고 있다. “말은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할수록 손해다. 말은 삼가고 생각의 폭은 깊고 넓어야 한다. 작은 분을 참지 못해 독한 말들을 내뱉거나 상대를 부정하는 한 마디로 적을 만들지 마라. 친구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적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엎질러진 물을 바라보며 후회하거나 반성할 때만 기억나는 말이다. 조선의 선비들도 아마 나와 같았으리라.
조선은 숭유억불(崇儒抑佛)의 나라다. 불교 탄압에 대한 흔적들은 허다하다. 여행 중에 불두(佛頭)가 없는 석불을 만날 때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너무 많아 황당하고 지나쳐 화가 치밀 때도 종종 있다. 조선 선비들의 유학에 대한 맹신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불상을 파손한 주범을 탓하는 말인데 자꾸만 조선의 선비에게 눈길이 간다.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를 읽었다. 많이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김종직은 대학자이다. 목은, 포은, 야은, 강촌으로 이어온 정통 성리학으로 한훤당, 일두, 탁영 등과 같은 문하를 두었기 때문이다. 한훤당과 일두는 동방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었고 500년 최고의 개혁사상가 정암 조광조는 한훤당의 제자이다. 유두류록을 통해서 김종직의 불교에 대한 눈과 생각을 골라 보면 다음과 같다.
“하물며 승려 무리가 세상을 현혹하는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이라! (중략) 그 무엇이 이보다 더 무례하고 거만하여 불경스럽겠는가? 이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가섭상 오른팔 팔뚝에는 불에 탄 듯한 흔적은 겁화(劫火)에 탄 것으로 조금만 더 타면 미륵 세상이 된다고 한다. (중략) 바로 허황하고 괴상한 말로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고 내세에 이익을 보려는 자들로 하여금 돈과 베로 보시를 다투게 하니 진실로 가증하다”
“가섭전 북쪽 봉우리에는 우뚝 선 두 개의 바위가 있다. 이른바 좌선대다. (중략) 중들은 그 위에서 예불하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한다. (중략) 중이 백성을 속일 수 있음은 이를 들어 알 수 있다”
“지금은 단지 용렬한 사내, 도망친 노비, 신분을 숨기는 자, 부처를 배우는 자들의 소굴이 되었을 뿐이다”
유두류록에서 발취한 내용이다. 4박 5일 동안 지리산 천왕봉을 안내한 길잡이가 스님이었으며, 그가 몸을 쉬고 누이며 지나친 곳은 모두가 작은 암자와 사찰들이다. 무엇보다 용렬한 사내, 도망친 노비, 신분을 숨기는 자들이 부처를 배우는 자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때는 그랬다.
첫댓글 그랫군 그랫을거 같다
듣고 보는것이 다가 아니고
속이지 않아도 스스로 속고 살고있다
말 한마디도 무서운데 글로 남겼으니...
아무리 선비고 아무리 의지가 굳기로서니 이리 무시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고려 때는 나라의 근본이었는데.
그렇게 귀하기 여겼던 설이학이 조선을 망하게 했는데...
어찌 그리도 몰랐을까. 대학자께서...
그래서 말이란 조심해야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