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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마음 사로잡은 수려한 경관 |
사재 털어 20여채 건물·정자 짓고 원림 조성 |
입력시간 : 2012. 08.03.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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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 세운 세연정·동천석실 풍광 '으뜸'
지난해 이맘 때 ‘서양자두 꽃’이란 뜻 이름을 가진 태풍 '무이파(MUIFA)'가 서해상을 따라 북상하면서 한반도를 무력화 시켰다.
무이파는 가거도에서 104톤의 큐브블록과 64톤의 테트라포드로 막은 방파제를 부셔 버렸으며, 서울의 우면산 산사태를 비롯해 많은 피해를 주었다.
특히 완도 보길도에서는 추석 출하기를 앞둔 전복양식장을 덮쳐 약 1천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
'보길도(甫吉島)'는 십여 년전만 해도 완도하면 '보길도'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고산(孤山) 윤선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덕에 보길도가 유독 유명세를 탔는데, '보길도'하면 '고산 윤선도'가 자연스럽게 연상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의 완도는 청산도를 비롯해 금일도, 생일도, 여서도, 항일 유적지의 소안도 등 많은 관광지가 개발되고 문화유적 또는 연고지 여행을 찾거나 '나 홀로 여행 족'이 늘어나면서 보길도는 살짝 뒤로 처진 듯한 느낌이다.
예전 보길도는 아이들이 쌀 서 말 먹기 힘들었을 정도로 가난한 어촌으로, 섬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작 면적도 적었다.
그러다 1960년대부터 김 양식을 시작으로 톳, 미역, 다시마와 최근에는 전복까지 양식을 시작하면서 부촌으로 탈바꿈했다. 전복양식이 활성화되고 농가들이 고수익을 창출하면서 부터 1970~80년대 고향을 등지고 떠났던 동네 사람들이 이제는 고향으로 하나, 둘씩 귀촌하면서 완도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되돌아와 살고 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해남에 낙향해 있던 고산 윤선도는 의병을 일으켜 강화로 가던 중 남한산성에 피신했던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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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은 "국왕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신하"라고 자책하면서 세상과 등지기 위해 제주로 찾아가다가 심한 태풍을 만나 보길도 황원포에 상륙했는데 이곳 풍광에 매료되어 아예 눌러 앉았다.
보길도를 10여 년간 18번이나 찾았을 만큼 수려한 경관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이 곳에서 은거를 시작하며 막대한 사재를 들여 세연정과 석실 등 25채가 넘는 건물과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고 원림을 경영했다.
그가 보길도에 꾸며 놓았다는 세연정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 밖에 더는 보탤 말이 없다.
그러나 연못 안을 뱅뱅 돌며 헤엄치는 흰 깃의 거위 두 마리와 무희들의 무대를 보고 있자면 은둔을 꿈꿨지만 욕망의 불은 끄지 못한 듯 세속에 대한 미련 또한 엿볼 수 있다.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493m) 자락 동북방향의 풍광에 반하여 이곳은 부용동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자연계류를 돌둑으로 막아 연못으로 만들고 다시 그 물을 끌어들여 인공 회수담을 꾸몄다.
두 연못 사이의 인공 섬에 정자, 즉 세연정를 놓아 주변의 다양한 경관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세연의 의미는 뭘까? 주변의 경관을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 시대 고산의 정치적 심경을 이야기 한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고산은 세연정을 자연속 비밀의 정원 같은 곳으로 그토록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세연지는 우리나라 정원 유적중 조형 처리가 가장 화려하고, 광대한 연못으로 계곡의 물을 잘 이용한 연지(蓮池)이며, 담양의 소쇄원, 영양의 서석지 함께 3대 정원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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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담 안에는 네모진 섬이 하나 있으며 넓적한 바위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 있고 세연정 동쪽에는 각각 동대와 서대로 불리는 네모진 두 단이 있다. 이 회수담 안의 너럭바위와 동·서대가 바로 무희와 악사들의 무대로 쓰였다. 세연지에 항상 맑은 물이 찰랑거리게 하였고 작은 배를 띄워 어린 아이들이 뱃놀이 하면서 ‘어부사시사’, ‘오우가’를 읊조리는 것을 감상 하였던 곳이다.
또 세연지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해 물이 넘칠 때는 폭포가 되고 평소에는 다리가 되는 판석보가 눈길을 끈다. 판석보는 일명 ‘굴뚝다리’라 불리는데 구조는 양쪽 판석을 견고하게 세우고, 그 안에 강회를 채워서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그 위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는 기법이다.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은 판석을 걷다보면 소리가 울려 정자 안에서도 오가는 길손을 알았다고 한다. 요즘으로 표현하면 CCTV 기능 이라고 할까.
무엇이든 꽁꽁 숨겨두고 세상 모든 것을 다 담은 듯 숨 막히는 중국의 정원과 지나친 축약으로 오히려 원래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느낌의 일본 정원과 달리 세연정은 그 형태로 보아 무엇이든 드나들고 다녀가는 길목처럼 느껴져 자연스러움과 흥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땅과 하늘 사이에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며, 그것들 모두 그 자리를 본디 차지하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우리 옛 건물의 특징이 아니던가.
고산이 이곳을 빌려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면 창에 담긴 연못과 연못에 담긴 산, 산 너머 느껴지는 시간의 흔적까지 나를 잠시 놓아버리기에 충분한 풍경들이다. 아무리 빼어난 인간도 자연 속에서 일개 손님에 불과할 따름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보길도 세연정이다.
이곳에 고산의 마음을 닦아 주는 뜰이 있었다. 연못과 바위, 그리고 늙은 소나무와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얽히고 설켜서 그야말로 파라다이스를 만들어 놨다.
부용동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절벽 위에 동천석실을 지어 석간수에 차를 우려 마시며 담소하고 지냈다. ‘동천석실’은 산천이 아름답다는 뜻과 신선이 사는 곳 또는 하늘로 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에 한 칸짜리 정자를 지었으며, 아래에는 낙서재와 곡수당 그리고 초가의 무민당의 건축물이 복원되어 있다.
비에 씻긴 듯 단정하고 깨끗한 경관을 세연이라 칭하더니, 이곳의 풀내음은 유난스레 상쾌하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무더위의 극성을 피해 보길도를 찾아 고산과 함께 거니는 상상을 해보자.
그리고 깻돌과 노송이 어우러진 예송리 바닷가며, 은모래의 중리, 통리의 해수욕장, 보옥리의 공룡알 해변도 거닐 만하다.
사진작가
노화도의 이목항과 보길도의 청별항 사이에는 2008년 개통된 보길대교(길이 620m)가 놓여 있다. 이 교량의 등장으로 보길도를 찾는 여행객들은 노화도까지 아울러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해남군 땅끝마을 선착장, 완도군 화흥포항에서 노화도행 카페리가 하루 10여 차례 왕복 운항된다.
해남에서 배를 탄다면 노화도 산양진항, 완도에서 출발한다면 노화도 동천항에 닿는다. 과거 보길도 청별항까지 배를 타고 갔던 시절에 비하면 승선 시간이 20∼30분 정도는 줄어들었다. 어느 곳으로 입도하건 보길도로 가기 위해서는 노화도를 관통한 다음 보길대교를 건너야만 한다.
여행객들이 보길도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을 만나보기 위함이다. 세연정이 들어선 고산원림, 고산문학체험공원, 동천석실, 곡수당과 낙서재 등에서 고산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부용리의 고산원림(명승 제34호)이다. 고산원림을 한 바퀴 천천히 산책하면서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어떻게 해서 보길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냈던 고산은 고향인 해남에서 지내다 병자호란 때인 1637년 인조를 돕기 위해 강화도로 향하던 중 ‘삼전도의 치욕’을 들었다. 이에 통분한 고산은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를 들르게 됐다.
은빛금빛 모래가 깔린 해변, 울창한 원시림, 보석처럼 예쁜 주변 섬들…. 보길도의 풍광에 반한 고산은 보길도 부용동에 여생을 보낼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나이 51세의 고산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곳이 족하다.’
부용동 입구에 조성된 고산원림에는 세연정, 연못, 계담, 판석제방,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 등이 있고 동백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울창하다.
세연정의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해서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 후대 사람들은 고산원림에 대해 ‘고산의 기발한 착상과 절묘한 자연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고, 최대 별서조원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원림에서 나와 동천석실 방면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전남대학교 난대수목원과 고산문학체험공원을 만나게 된다.
고산문학체험공원은 계류 옆 공터를 활용한 공원으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저절로 어부사시사 40수를 감상하게 되니 걷기여행 외에 문학감상의 즐거움을 덤으로 얻는다. 연두색, 파란색, 갈색, 흰색 바탕의 아크릴수지판에 계절별로 10수씩 작품이 인쇄되어 있다.
공원에서 나와 부용동 안쪽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저수지 못 미친 곳에 이르러 두 갈래 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동천석실에 가게 되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곡수당과 낙서재로 길이 이어진다. 동천석실까지는 오르막길의 연속이라 등산을 하는 기분이 조금 들고 곡수당 방면은 돌담 사이사이를 누비고 가는 평지길이라 산책의 아기자기함이 녹아있다.
세연정에서 도보로 40분 가량 부용동 안으로 걸어가면 격자봉 북쪽 평지에 들어선 곡수당과 낙서재에 닿는다.
세연정이 유희와 휴식의 장소였다면 이곳은 생활하면서 독서하고 강학하는 공간이었다. 2010년 초 현재 복원공사가 거의 마무리단계에 들었다.
고산은 67세 때 무민당을 지었으며 82세 때에는 아들에게 곡수당을 짓도록 했다. 곡수당 옆으로 흐르는 개천의 물소리가 옥이 구르는 듯하다고 해서 ‘낭음계’라고 불렀으며 낙서재, 무민당, 곡수당 주변을 모두 합쳐 ‘낭음계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낙서재와 곡수당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중턱 바위지대에는 동천석실이 있다. 동백나무 등 활엽수가 울창한 숲길을 20여분 가량 헤집고 오르면 바위틈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동천석실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격자봉이 눈높이를 맞추고 부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산은 이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고 시문을 지었다.
다도해 해안 경승에 취하면서 걷고 싶다면 통리해수욕장∼중리해수욕장∼백도리∼송시열 글씐바위 코스를 택하거나 청별항∼예송리전망대∼예송리상록수림과 해변 코스를 선택한다. 보길면사무소∼황원포쉼터∼정자마을∼망끝전망대∼보옥마을 공룡알해변 코스는 거리가 제법 길기 때문에 보길도 내의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서 둘러보는 것이 낫다.
통리해수욕장과 그 앞의 목섬은 썰물 때마다 하나로 연결돼 걸어서 건너가볼 수 있다. 열린 바닷길에서는 고동과 게, 바지락, 성게, 해삼 등이 심심찮게 발견돼 갯벌체험장 구실을 한다. 중리해수욕장은 고운 모래, 완만한 경사도, 1km에 달하는 해변을 자랑한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1689년 숙종 때 제주도로 귀양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상륙했다. 당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바위에 한시를 새겼는데 그것이 바로 글씐바위이다. 한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든 셋 늙은 몸이 / 멀고 찬 바다 한가운데 있구나 / 한 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이기에 / 세 번이나 쫒겨나니 역시 궁하다 / 북녘의 임금님을 우러르며 / 남녘바다 바람 잦기만 기다리네 / 이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에 / 감격하여 외로이 흐느껴 우네’
한편 예송리마을 전방 해안도로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의 왼쪽에서부터 기섬, 당사도, 소도, 복생도, 예작도 등이 차례로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예송리해변은 모래 대신 검은색 바둑알 크기의 곱고 둥근 돌이 깔려있고 해변과 민가 사이에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40호)이 울창하다. 3백여 년 전에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조성한 숲이며 길이는 740m, 폭은 30m로 반달 형태를 하고 있다. 숲 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됐다.
보죽산(또는 뾰족산, 195m) 아래에 형성된 보옥리 해변은 완도의 구계등이나 거제도의 몽돌해수욕장처럼 둥근 자갈들이 해변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크기가 공룡알만큼이나 커서 이곳 해변은 ‘공룡알해변(일명 뽀래기갯돌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밖에 보길도의 중심 산인 격자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7가지 코스가 개발돼 있다.
1코스 : 보길파출소→큰길재→수리봉→격자봉(4시간)
2코스 : 부용리→뽀래기재→격자봉(1시간 30분)
3코스 : 곡수당→큰길재→수리봉→격자봉(2시간 30분)
4코스 : 예송교회→수리봉→격자봉(3시간 30분)
5코스 : 보옥리→뽀래기재→누룩바위→격자봉(2시간)
6코스 : 선창리→망월봉→뽀래기재→격자봉(2시간)
7코스 : 정자리→남은사→선창리재→뽀래기재→격자봉(5시간)
<여행정보>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완도군청 www.wando.go.kr
○ 문의전화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237
보길면사무소 061-550-5611
보길도유적지 매표소 061-555-5559
노화읍사무소 061-550-5603
신지면사무소 061-550-5605
○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완도 : 고속버스 1일 4회 운행
부산-완도 : 직행버스 1일 6회 운행
광주-완도 : 직행버스 1시간 간격 운행
목포-완도 : 직행버스 1일 6회 운행
<노화도 방변 카페리 출항 문의>
해광운수 해남군 땅끝 매표소 061-535-4268
해광운수 노화도 산양진항 매표소 061-533-6107
소안농협 완도 화흥포매표소 061-555-1010
소안농협 노화도 동천항매표소 061-553-5635
○ 자가운전 정보
서울 : (1)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 → 영산호하구둑 → 해남읍 → 땅끝마을 선착장 → 노화도 산양진항 → 보길대교 → 보길도
(2)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 → 영산호하구둑 → 해남읍 → 완도 화흥포항 선착장 → 노화도 동천항 → 보길대교 → 보길도
부산 : 남해고속도로 → 순천 → 벌교 → 보성 → 장흥 → 강진 → 완도 화흥포항 선착장 → 노화도 동천항 → 보길대교 → 보길도
광주 : 광주 → 영암 → 성전 → 강진 → 완도 화흥포항 선착장 → 노화도 동천항 → 보길대교 → 보길도
○ 숙박정보
세연정 모텔 061-554-5005
보길도의 아침 모텔 061-554-1199
바위섬 모텔 061-555-5612
해돋이펜션 061-553-6425
예송정 민박 061-553-6494
○ 식당정보
세연정 횟집 : 활어회, 061-554-5005
보길도의 아침 횟집 : 낙지회덮밥, 061-554-1199
바위섬 횟집 : 활어회, 061-555-5612
우리식당 : 소머리국밥, 061-553-6380
완도 구계등횟집 : 활어회, 061-554-4216
신지도 모래뜰 : 전복죽, 061-552-7203
○ 축제 및 행사정보
- 장보고축제 : 매년 5월 개최
- 노화전복축제 : 매년 5월 개최
- 약산진달래축제 : 매년 4월 개최
- 윤선도 문화축제 : 매년 4월 개최
- 해맞이축제 : 매년 1월 개최
○ 주변 볼거리
노화도 성황당, 노화도 굴앞해수욕장, 소안도 항일운동 기념탑, 당사도 등대, 완도타워, 완도수목원, 해신드라마세트장, 완도어촌민속전시관 등
노화도의 이목항과 보길도의 청별항 사이에는 2008년 개통된 보길대교(길이 620m)가 놓여 있다. 이 교량의 등장으로 보길도를 찾는 여행객들은 노화도까지 아울러 돌아볼 수 있게 됐다. 해남군 땅끝마을 선착장, 완도군 화흥포항에서 노화도행 카페리가 하루 10여 차례 왕복 운항된다.
해남에서 배를 탄다면 노화도 산양진항, 완도에서 출발한다면 노화도 동천항에 닿는다. 과거 보길도 청별항까지 배를 타고 갔던 시절에 비하면 승선 시간이 20∼30분 정도는 줄어들었다. 어느 곳으로 입도하건 보길도로 가기 위해서는 노화도를 관통한 다음 보길대교를 건너야만 한다.
여행객들이 보길도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을 만나보기 위함이다. 세연정이 들어선 고산원림, 고산문학체험공원, 동천석실, 곡수당과 낙서재 등에서 고산의 발자취를 만나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부용리의 고산원림(명승 제34호)이다. 고산원림을 한 바퀴 천천히 산책하면서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이었던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어떻게 해서 보길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냈던 고산은 고향인 해남에서 지내다 병자호란 때인 1637년 인조를 돕기 위해 강화도로 향하던 중 ‘삼전도의 치욕’을 들었다. 이에 통분한 고산은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를 들르게 됐다.
은빛금빛 모래가 깔린 해변, 울창한 원시림, 보석처럼 예쁜 주변 섬들…. 보길도의 풍광에 반한 고산은 보길도 부용동에 여생을 보낼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나이 51세의 고산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곳이 족하다.’
부용동 입구에 조성된 고산원림에는 세연정, 연못, 계담, 판석제방,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 등이 있고 동백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울창하다.
세연정의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해서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 후대 사람들은 고산원림에 대해 ‘고산의 기발한 착상과 절묘한 자연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고, 최대 별서조원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