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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숙권사메세지
* 8월 23일 메세지
♧화성댁 | 2016. 8. 30. 19:55
2016년 8월23일 주님이 주신 메시지
자신이 믿음생활 중에 가장 위험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한다.
바로 나라는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이 들 때이다.
이 때 ☆악한 영들이 주는 파멸의 영의 음식, 영적인 마음인 교만☆이 파고 들어온다.
마귀는 자신의 취약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자신이 상처를 제일 쉽게 받는 부분도 잘 알고 있다.
어떠한 상태에 있을 때 자신의 긴장함이 느슨해지고 방관하는지도 너무도 잘 안다.
신부는 주님의 군대이다.
군인은 전쟁 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적들에게 약점이 노출되고 공격을 받아서 쉽게 무너진다.
교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목사들이 처음에는 가난하고 힘들었을 때 그들은 오직 주님 밖에 모르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았다. (불쌍한 한국의 WCC 독수리 5형제들)
성전 강단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대형화 되어지고 맘몬신인 돈이 풍성하게 넘치고 왕좌가 세워지면서 그 강단 자리가 왕국이 되면서부터 교인들이 그 목사들을 신처럼 드높이기 시작하였다.
맘몬신인 돈이 풍성하게 넘쳐나니 그들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여 가난한 이웃을 돌아 볼 줄 모르고 자신들의 배가 신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회개라는 말도 무색하게 되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주님의 충성스러운 종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열매는 설익은 과일이 되었다.
(간악한 NWO 후계자들에 넘어간 교회들)
먹지 못하는 과일이 되어 거름더미에 버려야 하는 썩은 과일로 변질되었다.
한 때는 한국교계에서 추앙을 받았지만 지금은 추악한 모습을 보이는 얼굴이 된 것이다.
유명하게 추앙받는 목사들의 문제가 과연 무엇이길래 지금 그 모양 그 처지가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마귀가 주는 영적인 음식 교만☆에 넘어가서 그렇게 되었다.
지금도 휴거를 사모하며 가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교만함이 들어오고, 탐욕이 들어올 때 그 타이밍이 있다.
이러할 때 먼저 그 자리에서 직분이라고 하는 옷을 벗어놓고 낮은 자리로 내려 앉아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을 내려 놓고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는 십자가 앞에 앉아 부르짖고 기도하며 자신은 가룟 유다와 같은 예수 이름을 파는 자라고 자신을 먼저 내려 놓는 기도부터 해야 한다.
자신의 죄를 보면서 탄식하고 애통하며 회개해야 한다.
☆자신 안에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성령이 거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쓰레기가 썩어 있는 곳에는 온갖 벌레가 우글거리고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것은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 속에 있는 벌레들을 제거해야 천국이 열리는 것이다.
십자가는 보혈의 피가 흐르는 곳이다.
그래야 보혈의 피로 씻김을 받고 깨끗해 지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이 더욱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휴거신부로 성장하는 길이다.
항상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휴거신부는 하나님의 군대이다.
군인은 전쟁 시에 긴장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긴장의 끈을 내려 놓는 순간 그 자는 죽음인 것이다.
군인은 이유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유를 대는 자는 아직 십자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이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과한 자는 이유가 없다.
쓴물을 먹을 줄 아는 자로 성장된다.
휴거자들은 주님을 만나 뵐 때까지 더욱 경건하고 정결한 신부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과 악한 영의 싸움은 오늘로 승리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매일 매일의 영적 전쟁이다.
자신의 의가 강하면 그는 망한다.
의가 강한 자들은 자신이 응답받았다고 하면서 주님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다니며 자신이 잘하고, 잘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만이라는 악한 영들이 주는 생각에 자신을 팔아 넘기는 것이다.
의가 강한 자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을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리어 화를 내고 상대방을 지적하고 미워한다.
이렇게 할 때 더욱 주님 앞에 엎드려 ♡악한 영들이 주는 생각을 단번에 말씀의 칼로 내려 쳐서 버리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돌아와 영광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
그러므로 교만은 마귀, 귀신의 기름이다.
주님께서는 영의 눈과 귀를 뜨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영의 눈을 뜨라고 한 것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영적인 분별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성령의 하시는 일과 악한 영의 공격을 잘 분별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령과 악령의 존재를 잘 깨닫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악한 영의 계략이나 공격도 훤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
너무 아쉬운 것은 신학자나 박사나 목사들이나 직분자들이 이러한 역할을 하여야 하는데 먼지같은 지식의 틀에 갇혀 있으므로 교회들 조차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종교의식에만 전부를 걸고 종교놀이를 하고 있다.
영적인 잠에 푹 빠져 있으므로 인해 영계의 세계가 열리지 못하므로 성경만 읊어대고 진리-, 진리만 앵무새같이 외쳐대고 있다.
"성경 말씀을 제대로 잘 알고 진리를 제대로 안다면 영계의 세계가 열리고, 천국이 열린다 !".
☆지식의 감옥☆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이 열리지 않고 영계의 세계가 열리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눈을 피하여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놀라운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많은 믿는 자들이 자신 안에 성령이 있다고 확신한다.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는 말씀이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믿어야 의인으로 여김을 받는다고 말하였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많은 기적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하면서 내쫓은 이유이다.
(마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하였다.
이처럼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 뿐 아니라 악한 영의 존재와 그들의 계략이나 공격을 훤하게 꿰뚫고 있고 이들을 쫓아내는 영적 능력도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는 말씀을 잘 새겨 보면 진실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다.
악한 영의 공격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사단이나 귀신들이 공격하는 유형은 대략 말한다면 세가지이다.
가장 흔하게 하는 공격이 사람의 머리를 타고 들어와 자신의 생각을 넣어주는 일을 한다.
그 다음은 사람 안에 들어와 잠복하면서 육체와 정신에 질병을 주고 괴롭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일이다.
마지막은 자신이 조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를 공격하고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의 공격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불행에 빠뜨리고 영혼과 생명을 빼앗으며 종국에는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사단들이 조종하는 좀비들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사단이 어떤 사람을 조종하는지 알아보기 전에 사단이 어떤 전략으로 사람들을 사단의 포로로 삼고 공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단이 공격하는 근거는 죄이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악령들이 마음놓고 공격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들어나는 죄의 속성은 미움, 시기, 질투, 분열, 싸움, 탐욕 등 모든 것이 합쳐져서 교만이라고 한다.
이런 자들은 100%로 악한 영이 지배하고 조종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교만을 가진 자는 자신의 교만함을 잘 드러내지 않고 포장하고 가면을 쓰고 있다.
경건하게 위장하는 자이다.
잘 살펴보지 않으면 분별하기 어렵다.
물론 처음부터 교만한 사람은 드물다.
낮고 천한 신분에 궁핍하며 배우지 못한 사람은 교만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람은 겸손하다.
병들어 고통을 겪는 자는 병든 사람의 마음을 안다.
가난하게 살아온 자는 가난하고 힘든 자의 마음을 안다.
낮고 천한 배우지 못한 자는 같은 처지에 속한 마음을 안다.
그래서 겸손하고 사랑으로 섬길 줄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타락한 옛사람인 죄성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에 신분이 높아지거나 특정한 환경이 되면 교만을 드러내고 사람을 무시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에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가진 교회는 배가 불러서 농어촌에 가난한 교회를 무시하고, 가난한 목사들을 무시하고, 거드름을 떨고 있다.
가난한 목사들이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거지 동냥 주듯이 몇푼 건너주기도 하고, 아예 무시하고, 대답도 하지 않는다.
사랑도 없고, 그들은 긍휼도 없는 파렴치한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마음이 많이 아프시다고 하신다.
그래서 큰 구원 휴거로 가난하고 소외받는 목사들을 휴거시켜 데려 가신다고 하셨다.
가난한 목사들의 눈물과 아픔을 다 보고 들으셨다고 하셨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박사라는 학위를 받은 자들의 교만의 행태는 더 말할 수 없다.
부요한 교회들이나 많이 배웠다고 하는 신학자나 목사들은 한 세트이다.
지금은 부자로 살고 있지만 폐막식 날에 알게 된다.
농어촌에 있는 가난한 교회 목사들은 거지 나사로처럼 눈물로 살았지만 폐막식 날에 활짝 웃을 것이고, 부자로 사는 목사 많이 배웠다고 하는 그들은 그 날에 통곡한다.
가난한 사람은 겸손하고 사랑이 있지만 부자는 교만하며, 서민은 겸손하지만 고급 관료나 높은 지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교만하다. (표면적 이분법 결정론은 위험)
학벌이 변변치 못한 사람은 겸손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은 출신들은 교만의 극치이다.
자신이 자신을 자랑하고 내가-, 내가- 하는 자도 교만의 길잡이다.
그래서 휴거자들은 광야를 통과시키는 것이다.
휴거될 신부들은 광야에서 배고픔도 배우고, 고난과 아픔도 알고, 질병의 고통도 알고, 가난도 안다.
천로역정의 길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은 사랑과 긍휼이 없다.
그러나 광야의 길에서 쓴물을 먹고 눈물의 빵을 먹어 본 자는 사랑과 긍휼이 넘쳐나고, 모든 고난의 아픔을 알기에 자신의 희생할 줄도 알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사랑으로 나누고 섬길 줄 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소유가 없는 자들이다.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며 살고 감사할 줄 아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의 총애를 받고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고 큰 구원 폐막식 휴거의 날에 꽃마차, 황금마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활짝 웃으며 사랑하는 신랑 예수님 품으로 올라간다.
아름다운 추수의 열매들과 천국에서 상봉하여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한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광야의 삶을 잊어버리고, 광야에서 주님 만난 것을 잊어버리고, 현재의 많이 갖고 있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지면 그 날에 슬피울고 통곡한다.
악한 영들은 낮고 천한 사람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지위가 높아지고, 학식이 많아지고, 돈을 많이 벌어 쌓아두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 이들을 교만하게 하고, 사단들이 조종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정치가, 부자, 사장, 재벌 기업들 예쁘다고 자화자찬하는 자 연예인 배우들, 고위 관료들, 사자가 붙은 자들 등의 신분이나 직업을 가진 자들의 성품을 잘 살펴보면 겸손한 사람은 희귀하게 적다.
이들은 다 한결같이 교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대부분이다.
세상도 이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대형교회나 그 목사들은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형교회나 중견교회나 담임목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이하게도 목사라는 사자만 붙여주면 평신도, 교인들보다 월등하게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목사라고 하여 교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목사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교회 안에 사자라는 가지수가 그리도 많은지 한심한 노릇이다.
종교 교리가 사자라는 직분을 만들어 놓고 교만의 그물망에 자신들의 교만의 발이 걸려 스스로 망하고 있다.
자신이 평신도와 평등하다고 하는 목사는 교만의 그물망에 걸려 망하지 않는다.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라고 한 것처럼 목사나 장로나 평신도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평등한 신분이다.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나 장로나 직분자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목사, 장로나 직분자들이 가난하고 소회당하는 자들을 돌보고 섬겨 주는지 보아야 한다.
교만한 목사나 장로나 직분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신분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대접을 못받거나 대우를 못받는다고 생각하면 화를 내고 분노를 터 뜨린다.
겉으로 드러내는 자가 있고 은밀하게 감춰진 자들이 많이 있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목회자가 겸손하기는 커녕 교만하기 이를데 없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직분을 가진 자나 예외없다.
교만하고 탐욕적이고 자신은 서 있다고 하는 자들은 사단의 조종을 받으며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만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왜 그런지 알아야 한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교만한 자, 탐욕적인 자가 악하다는 말씀은 성경에 수도 없이 많다.
예수님의 메시지 말씀에도 수도 없이 기록되어 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잠 13:1) 지혜로운 자는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 20: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하였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다.
(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이처럼 교만을 버리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단의 앞잡이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자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신 스스로 교만을 내려놓고 악한 영의 조종에서 벗어나고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는지 알아야 한다.
악하고 교만한 성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지는 것이지 예배 행위나 희생적인 신앙 행위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긍휼을 가지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면 교만한 성품에서 벗어난다.
성령이 내주하시고 동행하는 삶을 살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성품에 대한 책망을 주신다.
자신이 고치려고 애쓰면 안되는 것은 없다.
자신이 고쳐지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이 굳어지고 어두워☆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첫째는 기도가 막힌다.
그래서 ♡오랜 기도의 강을 겸손하게 건너♡면 교만한 성품이 선하고 진실한 성품으로,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교만과 탐욕과 음란은 3종 세트이다.
상대방을 과도하게 헐뜻고 비판하며 거짓을 지어내어 말하는 자들은 사단의 조종을 그대로 답습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기름은 성령이고, 사단의 기름은 교만☆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휴거신부들을 인도하시지만, 사단은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드는 좀비로 변질시킨다.
교만한 자들은 대부분 탐욕스럽고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짜증을 잘 내고 싸움을 벌이고 분열을 조장한다.
이런 자들은 피하여야 한다.
이것이 자신이 사는 길이다.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나와야 한다.
원만하면 교류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능력있는 기도는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의 강을 건너야 한다.
휴거가 아주 임박한 때이다.
사단과 귀신들은 한사람이라도 지옥으로 끌고 갈 동반자를 모으고 있다.
남한과 북한도 심상치 않는 가운데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가 등이 터진다’ 라는 말이 있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강대국 속에서 한국과 북한을 놓고 치열한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눈이 함께 하는 한국을 강대국들이 노리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의 아비, 어미인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과 한국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눈동자인 것 같이 한국도 하나님의 눈동자와 같다.
아무리 조그만한 나라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강대국이 된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며 울어야 한다.
환난에 남는 자들을 위하여 울어야 한다.
휴거신부들은 이기적인 마음을 버려야 한다.
아비의 마음, 어미의 마음을 품어라.
나라는 자신을 내려 놓아라.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드러내고 싶어한다.
칭찬받고 싶어한다.
자기 이름, 자기 얼굴, 자기 명예 이 모든 것이 자신 사랑에서 나온다.
자기의 의인 것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드러내려고 하지 말라.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라.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내가 잘 했다 인정하지 말라.
모든 것은 다 주님이 하신 것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다 잊어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은 다 주님이 하신 것이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거든 빨리 귀를 씻으라.
자신의 귀를 듣기 좋게 칭찬하는 사람의 칭찬은 독약을 먹는 것과 같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드러내야 한다.
주님만 자랑해야 하고 영광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모든 영광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미천하고 미련한 자신을 통로로 사용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고 자신을 살려주신 큰 은혜에 보답하게 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감사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 드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지 말라.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눅 16:15)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하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마치고서 항상 마음에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대답할 말은 자신은 무익한 종이라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자신에게 전 존재를 내어 주신 주님께 자신의 헌신, 섬김, 봉사, 기도, 구제, 선교 이 모든 것들은 은혜받은 자로서 마땅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을 주님이 지신 십자가 사건보다 더 대단하게 생각하지 말라.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그 큰 사랑에 비하면 자신의 전 삶 생명까지 다 드린다 할지라도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다.
자신의 한 일에 대하여 오직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한다.
(마 25:21)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큰 구원 휴거와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이다.
온 천하를 얻는 것 보다도 그 날에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고백해야 한다.
주님을 따르는 좁은 길, 생명의 길을 가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바로 나라는 자신이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실제로는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말세의 특징은 첫 번째로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
(딤후 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하였다.
구원의 도에 대하여 갈급했던 부자 청년이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간 것을 성경 (마 19:21-22)은 말하고 있다.
자신이 예수님께 온전히 순복하는 삶을 위해 최종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모으고 있는 물질이다.
맘몬신이 지배하는 이 세계 자본주의 정글의 법칙이 통제하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물질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 믿는 자들에게는 물질은 곧 생명이 되며 그들의 의지하는 신이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주와 그리스도를 알고 주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알고 있다면 세상 신인 돈이 돌같이 보이고 물질의 욕심이 끊어진다 는 것이다. (마 6:24)
이것은 양자 택일의 문제이다.
돈을 섬기면 하나님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 돈은 따라 오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 중심을 보신다.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정확하게 알고, 보고 계신다.
결정적으로 나라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기준의 판단과 잣대로 결정과 선택에 임하는지 알아라.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에게 유익을 따지고 계산하여 결정하고 그 결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한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아주 어리석은 망언이다.
이런 자들은 선악과를 함부로 따 먹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선택과 그 책임에 대한 것은 자신들 스스로에게 돌아갈 것이다.
자신의 머리 속에 지금도 연속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인간의 수를 출력해 내는 계산기를 꺼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단한번도 인간의 수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 할 것이다.
계산하지 말고 순종하며 따지지 말라.
하나님의 일을 계산하고 따지면 하나님도 자신에게 계산하시고 따지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축복을 받았음에도 주변의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이다.
자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온전하신 뜻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자신을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우상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돈이라는 우상이, 교만이라는 우상이, 시기 질투의 우상이 자신의 믿음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계산하고 따지지 말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더하여 주시는 축복이 봇물 터지듯이 넘치게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급이 끊임없이 임하고 영육간에 천국의 복이 만나로 내려 주시는 것이다.
큰 구원 휴거의 문도 넓게 열어 놓았으니 낮아지고, 겸손하고, 사랑과 순종과 긍휼이 풍성한 자가 얻는 영광이 될 것이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섬기는 자가 그 날에 활짝 웃을 것이다.
교만하고 탐욕이 가득한 자는 주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겸손한 자를 예쁘게 여기신다.
교회 안에도 불신자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이 불신자이다.
아무리 휴거를 믿는다고 하면서 대화와 행동 속에서 겸손과 사랑의 향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불신자이다.
인격적으로 사람 보기에 좋게 보이지만 그 중심이 아름답지 못하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이다.
휴거자들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마음과 가슴으로 알고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 밖에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돌아보아 양심을 비추어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못하였는지 죄의 담이 막혀 있는지 알고 회개하고 돌이켜라.
육체로 이 땅에 오래 머문다고 하지 말라.
기회가 있을 때 돌이켜야 하고, 기회를 줄 때 감사하여야 한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주 예수님과의 생생한 실체적인 만남임을 놓치면 안된다.
신랑과 신부가 신랑의 마음을 모르고 신랑과 교제가 없이 어찌 결혼하겠는가? 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다수 교회들이 ☆화석화된 교리 전수의 학교☆로 전락해 버렸다.
모든 종교의 신은 같은 것이라고 하는 종교다윈주의 혼합영성에 빠져서 마귀 귀신들의 난잡한 장난터로 변질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휴거가 너무 임박한 디데이 시간이기 때문에 영을 잘 분별하여 곁길로 발을 딛지 말고 성경 말씀과 예수님의 메시지 말씀을 읽고 들으며 기도해야 한다.
이 말씀을 벗어나서 다른 생각과 마음이 들어오는 것은 잘못하면 사단의 올무에 걸려드는 것이다.
자신 안에 종교적인 철학의 요새들이 제거되고, 신비를 가장한 귀신들의 장난들이 제거되어야 하고, 자신 속에 죄의 진영인 쓰레기들이 청소되면 성령님의 강력하신 기름부음 안에서 하늘의 영광과 권능만이 흘러 넘치는 겸손과 사랑과 순종의 신부가 된다.
자신 속에 가장 강력한 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탐심, 음란, 거짓이 합쳐지면 교만☆이다.
"자신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거나, 탐심이 있다거나, 음란이 있다는 것이 사단의 집이다 !".
"거짓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자를 주의하고 피하여라.
탐심이 강한 자를 피하고, 음란한 자는 더욱 더 멀리하여라.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덫에 걸려 들어 같이 멸망한다.
탐심의 끝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끊지 못하고 음란과 거짓을 끊지 못하면 탐심의 끝은 지속적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진 자나, 가난한 자나 다같이 자신 속에 안고 가는 죽음의 길이다 !".
하나님을 깊이 만난 자들은 탐심이 없고, 섬기고, 나누는 자가 된다.
그래야 탐심의 끝이 마무리된다.
탐심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내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은 탐심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탐심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자신이 무슨 일을 많이 하려는 마음 자체가 탐심이다.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이든 할려고 하면 자신이 더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탐심이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겉으로 들어나는 죄는 심각하게 여기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탐심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탐심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는 심각한 일이 벌어진다.
(눅 12:1-15) 무리 중에 한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였다.
탐심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으로 향하게 만든다.
마음과 생각이 세상으로 향하면 내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두게 한다.
부자 청년이 외적인 복으로만 향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오해를 한 것이다.
이처럼 탐심이 들어오면 외적인 것에 치우치며 결국은 예수님을 자신의 탐심을 채워줄 수 있는 도구로 본다.
세상 끝을 향하여 가는 이 때 천국에다 소망을 두지 않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자신의 탐심을 채워줄 수 있는 대상으로 믿기 때문이다.
짐승들은 자신의 배만 채우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
자신의 배를 채우면 그만 두어야 하는데 타인의 것을 더 가지려고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상상도 못할 일이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탐심은 사람을 동물보다 더 못한 존재로 만든다.
오죽 했으면 예수님께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탐심은 자신의 욕망을 채운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탐심에는 만족이 없다.
아무리 적은 탐심이라도 그 탐심이 충족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탐심을 불러 들인다.
(약 1:13-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므로 미혹되지 않는 최상의 방법은 욕심 즉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반드시 탐심을 버리고 물리쳐야 진리의 하나님 말씀이 제대로 보이고 깨달아질 것이다.
그러나 탐심을 버리지 않고 말씀을 본다면 깨달을 수도 없고 깨달아진다 해도 그것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자신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후 2:9-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2절)에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기 때문이며, 진리의 사랑을 듣고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는 탐심에 대한 문제도 크다.
사단이 타락한 이유는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어서 타락한 것이 아니다.
타락한 천사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지어졌으며, 으뜸이었으며, 그의 영화와 능력은 천사들 중 최고였다.
그러한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탐심이다.
자신이 부족함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과 발상이 또 다른 탐욕을 생기게 하였고 사단은 천사 3분의 1을 자신의 수하로 만들고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사 14:12-15) 탐심 그것은 마귀적이며 멸망의 지름길이다.
(눅 12:15)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사람의 모든 탐심은 사람의 육신의 생명의 멸망 뿐 아니라 영적인 생명이 결코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끼친다는 말씀이다.
탐심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밑거름으로 탐심을 해결하지 않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은혜도 받을 수 없다.
큰 구원 휴거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싸우는 자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이다.
영적인 것은 속일 수 없다.
영들은 같은 영끼리 모인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 라고 하는 말이 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이라고 하면서 모두가 다 좋고, 다 포용해야 한다는 식의 무대뽀적인 신앙들이 있다. (동성애, 간통법)
그것은 아니다.
한가지만 보고 그 친구가 좋고, 그 교회가 좋고, 그 목사가 좋다 라고 한다.
영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의 하는 말장난이다.
자신의 믿음의 수준에 따라 좋다, 나쁘다를 판별하는 유형의 사람들끼리 그 속에서 당기는 영적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끼리끼리 자석처럼 모이며 붙어 다닌다.
남을 판단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끼리끼리 모여 다닌다.
교회 안에서도 충성 봉사 헌신하는 사람들 끼리끼리 모이고, 기도하는 사람들 끼리 모이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 모인다.
그러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 천국상급을 사모하는 사람들, 순교를 각오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헌신하는 사람은 또 이런 사람들과 모이며 뭉치게 된다.
자신의 하는 모든 일과 믿음이 은혜를 사모하며, 천국보화를 사모하며, 살아있는 믿음을 유지하는 자인가 ?
지금 이 시간 자신을 돌아 보아서 남은 시간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 보혈 의지하여 회개하고 돌이켜야 그 날에 웃는 날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은 남들이 인정하는 자라고 자만하지 말라.
신령한 체험도 하고, 교회 충성도, 헌금도 많이 한다고 하며 자신은 천국간다고 확신하고 있다.
때가 너무 임박하다.
한 발자국 남은 시간이다.
자신을 낮추지 못하면 큰 구원 휴거와는 상관없는 것이 된다.
고집이 센 사람, 의가 강한 사람은 상대가 지적해 주고 권면해 주면 자신이 옳다고 하며 듣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고집 때문에 그 날에 슬피울 것이다.
자신이 늘 잘 한다고 상대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 교만으로 인해 자신을 죽이는 일을 자초하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지, 예수님의 심정으로 살고 있는지, 성령님의 다스림 속에 살고 있는지 심중있게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양심 안에 휴거만 되어야 한다는 휴거가 우상이 되어 있는지 보아야 한다.
아무리 자신이 예루살렘성에 가족과 골육과 같이 가고 싶다 라는 휴거의 욕심이 있어 구한다고 하여도 자신이 겸손과 순종과 사랑과 낮아져서 십자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휴거가 자신의 우상☆으로 마감할 것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꿈만 꾸고 있는 불쌍한 자가 된다.
휴거의 욕심을 갖기 보다 자신이 상한 심령이 되고,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말씀에 이끌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믿음 안에서 교제하고 가는 자는 이유를 대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끝내 십자가 죽음을 통과하지 못한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이유도, 변명도 없다.
"나도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을 박혔고, 머리에는 강한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그들이 눌러 씌운 것을 쓰고, 매달려서 이유를 대지 않았다 !".
"변명하지 않았다 !".
나의 하는 일과 죽음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기쁨이 있기에 죽음으로 가는 고통이 처절하였지만 오히려 감사로 나의 하는 일이 아버지의 기쁨이 된다는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하물며 피조물의 죄많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못한다면 어찌 승리자가 된다고 말하는지 어이없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만 일으키는 대적자가 되고, 하나님과 싸우는 자가 된다.
예수님의 메시지 말씀을 기록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 (독단적 위험)
수박 겉만 보지마라.
한글자씩 읽으면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라.
휴거 때가 초읽기로 눈 앞에 와 있는데도 죽지 못하는 것은 말씀을 무시한 것이고,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인정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자신이 기도해서 응답받겠다고 한다. (분별해야)
이런 자는 그 아비 마귀에게 기도하는 것이고, 마귀의 음성을 듣고, 마귀의 종이 된다.
하나님은 고집이 세고, 의가 강한 교만한 자는 외면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이러한 자는 마귀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착각한다.
그 사람 자신의 착각 속에 살다가 그 탐심으로 휴거와 상관없는 자로 환난의 불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지적을 받고 시험을 받는 자는 그 속에 악한 영들이 말씀을 받아 먹지 못하도록 마음을 닫는 형상이 벌어지게 된다.
예수님의 메시지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최대화 하라.
말씀의 힘이 미치는 영향력은 천국을 얻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가 말씀에서 흘러서 자신의 영, 혼, 육을 정결하게 씻는 것이다.
그리할 때 기도로 능력이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며 교제하는 기쁨을 얻는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제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하였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다.
한번쯤은 지금 내 영혼이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난다면 과연 내 영혼의 현주소는 천국일까 ?, 지옥일까 ? 생각하여 보라.
큰 구원, 넓은 구원 휴거의 자리에 선다면 천국에서 행한 대로 상을 예비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과연 내 영혼의 상급과 면류관은 있을까 ? 아니면 나는 낙원 변두리로 구원받을까 ?
겨우 부끄러운 구원받은 낙원 변두리에서 부끄럽게 살아갈까 ?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여 보아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이 먼저 옳다고, 잘 서있다고 한다면 그 자는 회개할 수가 없다.
마귀에게 잡혀 빠져 나오기 힘든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옳고 잘 서있다고 하는 자체가 마귀의 올무에 걸려든 것이다 !".
마귀는 교묘하게 덫을 친다.
그 사람의 마음이 높아져 있는 것을 마귀는 알고 있기 때문에 덫을 친다.
교회 선택과 영적 스승을 선택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자신의 수준에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말씀과 예수님의 메시지 말씀이 뭐라고 하는지 잘 보고 선택해야 한다 (시 1:1-2)이다.
주님이시라면 병든 자, 가난한 자, 헐벗은 자들을 보면 어떻게 결정하고 판단하시며 행동하실까 ?
생각하여 보라 !
이처럼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도한다면 100% 성령님이 자신의 심령과 가난함과 겸손함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기도소리에 응답해 주신다.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도와 주신다.
이러한 자는 마귀가 손을 대고 흔들지 않는다.
휴거자들은 어디로 가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믿음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패망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양심이 화인맞은 자가 아니라면 ☆변명하고 이유대지 말라 !☆.
십자가의 주님을 한번 더 바라보고 말없이 양심의 거짓되고 허망한 것을 버리고 죽어야 한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비인격적이고 극단적)
왜 그런지 알아야 한다.
자신의 양심이 화인맞았기 때문에, 그 양심 안에 거짓되고 시기 질투하고 탐심이 가득한 교만의 마귀가 집을 짓고 있기 때문에, 그는 버림을 받는 영혼육으로 자신의 생명줄이 마귀에게로 넘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에 찔림이 올 때 즉시 자신을 돌아보아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 같이 순교적인 믿음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령으로 믿는 믿음이 자신 안에 충만해야 한다.
휴거가 가까운 이 때에 자신의 허물은 보이지 않고, 남의 허물만 보는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심판의 때가 가까우니 믿는다고 하는 자들과 휴거를 사모한다고 하는 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마음이 강팍해 지고, 인색하며, 억울함을 풀지 않으며, 자기중심적이고, 감정 중심과 이론 중심과 환경 중심과 매스컴 중심, 사람 중심으로 마귀는 인간의 생각을 사로잡아 끌고 가고 있다.
"사랑이 없는 모든 말과 행동은 그 근본이 마귀에게서 나온다"는 사실만이라도 깨닫는다면 영적 성숙이 이루어진다.
"세상 뉴스나 인터넷에서 보여지는 것과 들여지는 수다한 소문들과 내용들이 그럴듯하게 보이나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 들이면 영적 신앙에 큰 영향을 자신이 그대로 먹는 것이다.
사단의 속임수이다 !".
(마 7:1-2) 비판을 받지 아니 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고 하셨다.
(눅 23:34, 마 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하였다.
천국에 속한 언어는 감사와 사랑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옥에서 나오는 소리는 불평과 판단, 시기, 질투, 인색, 불신, 정죄, 미움 등 온갖 부정적인 것이다.
언제든지 남의 허물을 들추어 약점을 잡아 큰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교만에 잡혀 사는 세상 사람과 같은 자들이 교회 안에 어리석은 영혼들이 있다.
자신의 영혼은 자신 스스로 판단하여 기도하면 그 마음의 진실과 거짓이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로 세상 사람들처럼 판단, 정죄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
(고전 10:10)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하였다.
"원망, 불평, 판단, 정죄는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이며, 마귀를 부르는 언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비판하는 그 자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섭리를 비판하는 영적 진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마귀처럼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마귀에게 잡힌 양심은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옥의 자리, 비판 정죄의 자리에 서있게 될 수 있다.
휴거신부들아 !
더 이상 주님의 마음에 비수를 꼽지 말라.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한번 더 쳐다보고 입을 열어라.
숨을 몰아쉬는 십자가의 주님을 마음판에 새기고 흐르는 눈물과 머리에서부터 온 몸에 흘러 내리는 피를 마음에 새겨라.
그리할 때 자신이 이유없이 죽을 것이다.
휴거되는 그 날까지 그 시간까지 심령의 겸손함으로 천국을 소유하고 예루살렘 영광을 얻는 영광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광야에서 모진 훈련을 받은 자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안다.
영을 잘 분별하는 능력도 있다.
이러저리 치우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알아야 한다.
주님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속사람을 만들고, 죄악으로부터 진지를 사수시키시며, 망치로 두들겨 가며 불 속에 넣고 불 속에 넣어 가시며 훈련하시고, 죽음의 골짜기를 넘나 드는 특공대 훈련을 하셨다.
이런 자들은 전쟁의 끈을 놓지 않은 자들이며, 용사들이다.
군대장관들이다.
이런 자들이 군화를 신은 신부 용사이다.
그러므로 지상재림 때 주님을 호위하며 미가엘 천사장과 천군들과 함께 내려와 주님과 함께 천하를 호령하는 철장 권세를 받는 자들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특공대 훈련을 마친 자들은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장성한 자들은 홀로 설 수 있는 강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자신에 대한 존재 의미를 돌아보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자력의 힘을 가지게 된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 놓는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들이 용사이고, 예루살렘성 왕권자 신부이다.
그래서 휴거신부들을 훈련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휴거는 사모하나 직접 사람을 통해 훈련이 들어가면 훈련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은 다 되어 있다고 하는 교만 때문이다.
그래서 마귀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가 지적하든지 겸손히 낮아지면 속사람을 완성시키는 생명 길이 된다.
하늘나라를 소망한다면 죽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떨어지고, 외롭게 남겨지는 것에 대하여 어느 누구든지 두려워해야 한다.
휴거를 사모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상식과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과 하나님을 만난 것보다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만나 주셨다.
바울이 그랬고, 모세도 그랬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도 홀로 만났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한사람 개인을 만나 주신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개인과의 만남을 통해 개인과의 친밀하시기를 원하시며 자신 한사람을 인격으로 존중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 한사람을 세우시기 위해 만나 주신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한사람을 사용하시기 위해 하나님 홀로 그 한사람을 만나신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찾아 오실 때는 그 사람의 모든 주위 환경과 삶이 정리가 되었을 때 오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위대한 선지자 모세는 주위의 모든 것이 다 끊어지고 홀로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만났다 !".
아브라함은 자신과 같이 떠나온 그의 조카 롯이 떠났을 때 새로운 비젼의 말씀을 받았다.
세례 요한도 빈들에서 성장하며 예수님의 길을 준비할 수 있는 귀한 사명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기 전 40일 동안 빈들에서 홀로 계셨다.
사역 기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산과 들로 나가셔서 홀로 기도하셨다.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간 홀로 지내며 예수님과 증인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독대하며 홀로 지냈다.
지금 예수님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내 사랑하는 신부 나의 종도 수많은 어려움과 죽음의 골짜기를 넘나들고,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알려주며, 훈련되었고, 십자가를 통과하고, 그 흔적이 온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홀로 세우고 모든 환경과 삶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안정된 삶 가운데로 이끌어서 나와 함께 친히 독대하며 한자한자 불러주어 기록한 말씀이 천장을 육박하였다.
그는 나와 모든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나도 그 종을 웃기고, 나의 종도 나를 웃기며 아주 친밀하고 진지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나의 종이 그렇게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말씀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가슴에 묻어 놓는 것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조금씩 말하는 것 뿐이다.
천국에 와 보면 나의 사랑하는 종이 어떤 사람이였는지 알게 된다.
나는 아무나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순수하고 진실하고 순종하며 사랑이 풍성한 자, 긍휼이 풍성한 자, 아비의 마음을 품은 자를 사용한다.
바울처럼 직접 말씀을 불러 주어서 사용하는 자를 아무나 사용하겠느냐 ?
반드시 죽음을 통과한 자라야 한다.
이러한 자들은 주님이 친히 연단하시기 때문에 죽음의 문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죽어보지 않은 자가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이다.
그러므로 홀로 서기에 합당한 자, 생명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자라야 주님과 독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선다는 것은 성숙해져 가는 과정"이다.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에 확신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고 맘몬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목사들의 사명은 성도들이 목회자를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 하고 신랑되신 예수님을 더 가까이 하게 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왜 그런지 알아야 한다.
목회자들의 이득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맘몬신에게 눈이 멀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 성도들에게 짐을 주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목회 비용을 마련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오히려 성도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은 삶을 살았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 교인들에게 장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히 5:12-14)이다.
사도 바울의 말 속에서 사도 바울의 탄식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식까지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자신의 배가 신이 된 목사들은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런 자들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지 않고 있다.
예수님께 큰 대적을 하는 죄를 짓고 범죄자로 살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물샐틈없이 막고 자신만 높이고 섬기라고 방어막을 굳게 치고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고 있다.
성도들을 하늘의 양식으로 장성시킬 능력이 없다면, 예수께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목사의 탐심인 야망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고 있다면 목회자라는 옷을 벗어 당장 내려 놓는 것이 교인들도 살리고 자신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성하고 홀로 선다는 뜻은 스스로 분별하는 능력을 갖춘 자라는 뜻이다.
분별한다는 뜻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따라 거침없이 걸어가는 뜻이다.
다니엘은 마지막 때가 되면 의로운 자는 더욱 의롭고 깨끗하게 될 것이며, 불의한 자는 계속 불의하여 더럽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 때가 가까올 수록 알곡과 가라지는 확실하게 갈라지고 가려진다.
☆영적인 양극화 현상☆이 심해진다.
홀로 서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말씀 앞에 홀로 설 수 없다.
이런 자는 많은 사람 앞에 알아 달라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많은 일을 만들어서 바쁜 척 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하는데 자신도 제대로 못먹으니 헛소리들이 나오는 것이다.
모세를 하나님께서 쓰신 이유가 있다.
"광야 40년 생활을 통하여서 모세는 사람들에게 잊혀졌으며 모세 자신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려는 욕망이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찾아 오셨고 그러므로 모세에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이 주어졌을 때 모세는 온유할 수 있었다 !".
혈기많고 야망이 많았던 베드로는 나서기를 좋아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이려고 하였지만 인간적인 생각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의지와 야망을 버렸다.
그 때 홀로 담대히 서는 비결을 배웠다.
자신의 삶 속에서 베드로 같은 성품이 있다는 것은 그 배후에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사단의 욕망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휴거자들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보다 차라리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하나님께서 알아 주시고 기억해 주시는 그런 사람으로 백번 지혜로운 사람이다.
좁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 협착한 그 길은 아주 좁은 길이다.
홀로 서서 가다보면 좁은 길이고, 좁은 문이 보인다.
그 때는 주님이 손을 잡으시고 같이 하신다 !".
인생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나그네이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이 동행하시고, 안고, 업고, 손을 잡고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성령님이 인도하시며 함께 하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신부이며, 왕권자이며, 군대장관 큰 용사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빛이 흐른다 !♡.
지금은 세상이 숨막히는, 요동치는 세상이다.
갈수록 사람들이 두려워 떨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라.
전세계 사랑하는 신부들아 !
너무 사랑하노라.
아멘.
※ 좀 위태하고 불안하나 통찰과 기특한 말씀도 가끔씩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