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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의 초상(肖像)
이숙진
유난히 햇살이 눈부신 날이다. 고향 친지 혼사가 있어 서둘러 나들이에 나섰다.
원색의 한복이 출렁이는 식장을 애둘러 보고 섰자니 어디서 본 듯한 훤칠한 신사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악수를 청한다.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은빛 연어처럼 시간의 물살을 급히 헤엄쳐 봐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고향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오주 아제였다.
전후 황폐했던 우리나라 농촌 실정은 가난 그 자체였다. 특히 오주 아제네 가난은 처참했다.
보릿고개란 어원이 생길 정도로 식량이 부족할 때라, 그네들이 밥을 지어 먹는 일은 칠년 대한에 단비같고 석달 장마에 햇볕 같이 드문 일이었다.
내 것이라곤 땅 한 뼘 없던 터라 그의 어머니는 자식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동냥을 다니기도 했다.
불편하신 아버지와 옹기종기 허기진 다섯 동생을 보다 못한 그는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남의 집 머슴살이로 들어갔다.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했다는 마리 앙뜨와네뜨는 제쳐 두고라도, 이즈음 아이들이 밥이 없어 굶었다면 몇이나 이해를 할까.
먹을거리를 찾아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풀뿌리를 캤다면 곧이들을까. 술 찌개미를 먹고 벌건 얼굴로 학교에 간 아이가 있었다면 믿을까. 아니, 동냥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런 나이에 오주 아제는 들로 산으로 일을 하러 다녔다. 그의 검정 고무신 안에선 늘 물이 질퍽거려 뽁뽁 소리가 났으며, 철부지들이 흉내를 내고 놀리기도 했다.
심성 좋은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게 목발을 두들기며 유행가만 구성지게 불러댔다. 한 무리 까치 떼가 숨어 앉은 콩밭에서도 그의 ‘오동추야’는 서글펐고, 이름모를 새들의 종종거림보다 더 색 고운 메아리는 ‘앵두나무 우물가’였다.
세월이 흘러 그가 건장한 청년이 되었을 때 월남 파병 문제로 온 나라가 소연(騷然)했다. 그는 자기가 월남전에 목숨을 바치면 부모님과 동생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용약(勇躍) 지원을 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도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는 기쁨으로 만족했고, 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그리는 보람으로 참아냈다고 한다.
그 후 전쟁터에서 다리를 다쳐 후송되었으나, 하느님도 무심치 않아 다행히도 완쾌되었고, 범국가 차원에서 철도청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단다.
늦깎이 공부를 하여 승진도 하고, 부모님이 그렇게도 원하던 집과 땅도 사 드렸다고 한다.
“세상에서 부모에게 잘 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더라고``````.” 하면서, 병세가 누꿈해 지듯 가슴속에 맺힌 먹먹함이 풀어져 마음이 누그러지는지 한참동안 지긋이 감고 있던 눈에 이슬이 맺힌다.
그의 맑고 싱그러운 얼굴 위에 맴도는 진주를 훔쳐보자니, 힘겨웠던 지게의 무게만큼이나 가난했던 날의 초상(肖像)이 겹쳐진다.
자갈과 사금파리가 널려 있는 길을 맨발로 걸어온 그, 어버이를 위해 서슴없이 목숨을 내 놓은 그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펄럭이는 적기 앞에서 승리를 뽐내는 레닌보다, 여송연을 문 처칠의 V자 사인보다 그의 만족스런 웃음이 더 강렬하게 남는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다시 만나 끌어안아 주고 싶은 사람이다.( * )
(1999. 5. )
이숙진
아유, 깜짝이야!! 시간은 화살같이 지나간다지만 이렇게 빠른 세상의 현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무심코 들어 왔다가 이숙진 이름이 있어 깜짝 놀랐네요. 또 운당 카페 들어가 봐야겠네요. 현실 셈 캄사!! 07.10.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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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한
가난한 시절에 있엇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실감있게 잘 써주셨습니다.이숙진 선생님은 참 글을 잘 쓰세요.부럽네요 07.10.2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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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아이쿠, 이 저녁 선생님의 과분한 말씀에 저 또 실오라기 찾습니다. 이 글이 빛을 보게 된 건 도반을 잘 만나서 생긴 현실이랍니다. 07.10.27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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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실
그저 현실이 아니고 이 현실을 어이 하리요. 07.10.2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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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눈치 9단이시구만. 07.10.2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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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
고난과 가난을 딛고 일어선 글이네요. 참으로 암담하던 그 시절이 있었지요. 이를 악물고 앞만보고 살았을 겝니다. 잘 읽고 갑니다. 07.10.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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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시비가 어떤 모양으로 제작되었을까 무지 궁금하네요. 발은 잘 나아가고 있지요? 07.10.2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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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희
청보리 같은 청년의 얘기 아주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문장의 비유가 뛰어납니다. 겸손함도 은은히 흐르고... 07.10.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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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대동초교에서 기다렸는데 못 뵈서 아쉬었어요. 구일역에서는 만날 수 있겠지요? 07.10.2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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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한
에밀리부론테 같은 분이에요.연세가 좀 많은게 흠이지만서도... 07.10.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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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에효! 에효!! 선생님, '폭풍의 언덕' 같은 명작을 쓴 에밀리부론테에 비하다니요. 부론테 자매가 화냅니다. '제인에어'를 쓴 샤론까지 단체로 항의하면 곤란지사지요. 근데, 선생님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데 우째 흠이라고 하시는지요? 서늘한 중년의 곰삭은 시선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것일진데``````. 저는 하드웨어는 좀 낡았지만 소프트는 이십대야요. 흑흑흑흑. 취소해 주이소, 마. 07.10.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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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실
환장하겄다! 07.10.29 10:19
김미옥
그런 세상이 얼마 전이었던가요? 세상은 참으로 빨리도 변하고... 흔히 있을 수 있는 얘기를 참 좋은 솜씨로 엮어놓으신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읽는 사람들에게도 따스함이 번집니다. 07.10.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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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서울 오셨능교? 플라워 따블 망치 어떻게 할 것인지 통화 함 합시다레. 07.10.2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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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끌어안아주고 싶은 사람- 환장할 정도로 멋진 이 글의 결미죠. 07.10.29 10:21
답글
이숙진
어이, 일송정 선생님께서 답글 안 읽은 척 하시네요. 07.10.3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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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춘옥
어머나 선생님 축하드려요 모든 일에 열정 쏟는 멋진 선생님 올 해는 축하할 일 뿐이네요 07.10.30 20:35
답글
정동진
저도 축하를 드립니다... 늘 좋은 글로 넉넉한 미소로 동작의 아름다운 그리고 영광의 앞날을 위하여... 07.10.3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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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진
수필방까지 왕림하셨구랴. 우리 동작문협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시니 감기 조심하시기를~ 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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