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여성 만화가들로 이루어진 ‘클램프’의 데뷔작 <성전(聖戰) - 리그베다>는 천계의 신들의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일개 무장에 불과했던 제석천(帝釋天)이 반역을 일으켜 선제를 살해하고 도리천의 주인 자리에 앉았다”는 매우 파격적인 성정으로 시작된다. 신화 속에서 제석은 매우 매력적이며 불경 속에서는 언제나 불법의 수호를 자청하는 늠름하고 든든하며 선량한 신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가 도리천의 주인이 되기까지 피할 수 없는 전쟁을 거쳤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전(聖戰) - 리그베다>에서는 이미 신화에서 상세하게 기록된 이 ‘전쟁’에 ‘상상력’이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실컷 발휘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특히 주인공으로 제석이 아닌 팔부신장 중에서 가장 비중이 작은 편에 속하는 야차왕(夜叉王)을 내세움으로써 그가 가진 선량한 면을 한껏 부각시킨다.
비밀스럽게 중생을 보호해주는 존재, 야차(夜叉) 팔부신장(八部神將)의 으뜸인 천(天) ·용(龍) 다음으로 등장하는 존재들은 하나같이 ‘환상적’이다. 그 중에서 가장 현실감 있는 존재를 꼽자면 간신히 ‘야차(夜叉)’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차’라는 이름은 본래 ‘놀라게 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는 민첩하고 교활하며 용맹함과 비밀스럽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인도 신화에서 야차는 본래 신이긴 신인데 사람을 해치는 귀신이다. 그래서 불경이 아닌 곳에서는 무섭기 짝이 없는 존재감을 자랑하며 주로 악귀(惡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야차는 다른 귀신을 먹고 살기 때문에 다른 귀신들도 야차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불교에 수용된 후 야차는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보호하는 매우 좋은 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면 당당하게 선량한 신으로써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도 좋을 텐데 야차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꿋꿋하게 지킨다. 무서운 귀신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이름처럼 ‘비밀스럽게’ 악귀들로부터 중생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성전(聖戰) - 리그베다>에서도 야차는 아쉬울 것 없는 그 능력과 힘으로 인해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지만 결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 의리있고 ‘착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순정만화 주인공’에 걸맞게 훤칠한 미남의 모습을 하고 있어 겉모습으로는 결코 악귀(惡鬼)를 연상할 수 없게끔 장치를 해 놓았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과 만화의 힘이 아닐까. 천계의 족보에 따르면 야차는 제석천 수하의 사천왕 중 하나인 다문천의 권속으로 도리천도 함께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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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달바. 삽화=김영수 | 향기(香氣)를 먹고사는 우아한 존재, 건달파(乾達婆) 건달파(乾達婆)란 범어로 변화무쌍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식향(食香)’이라고도 부르는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농염한 향기를 풍긴다고 한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는 자리에 ‘친구’격인 긴나라와 마후라가 등과 어울려 음악과 향, 꽃 등으로 공양을 올리곤 한다. 본업은 음악의 신으로서 악기를 연주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악사(樂士)나 마술사를 건달이라고 불렀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예능인을 천시하는 풍습과 맞아 떨어져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고먹는 사람’을 ‘건달(乾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향기를 먹고 사는 우아한 천계의 음악신의 이름이 다른 나라에 들어와 이처럼 전혀 다르게 사용되다니 참으로 절묘한 변화구라고 할 수 있다. 건달파는 천상의 음악을 담당하는 동시에 천상의 물 소마(Soma)를 지키는 역할도 맡고 있으며 부업으로 밀교에서는 어린아이에게 해를 가하는 귀신을 보호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소속은 도리천의 주인인 제석천의 직속이므로 신분은 야차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