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었을 때 바로 쓰지 않으면 내용을 잊어먹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모냥이다. -_-; 게을러진 때 그래도 책 읽는데는 덜 게을러서 읽긴 했는데 한달이 넘도록 글을 써서 남겨두지 않으니 그새 잊어버렸다.
물론 내용은 충분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느낌..감정 이런것들을 솔직히 표현해 내기엔 읽자 마자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 내린다면 유쾌하고 통쾌하게 웃을 수 있는 책, 그 속에 느림의 미학을 가지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프로야구가 처음 창단되던 시절 소년 소녀였던 우리들 세대는 읽으며 더욱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야구의 야자에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였지만 듣자 마자 바로 기억하는 프로야구팀의 이름과 어린이 서포터즈 그리고 선수들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삼미슈퍼스타즈 라는 이름 자체는 생소하기만 하다. 내가 인천에 살지 않은 탓도 있을테고 야구에 관심이 없어서도 있을테고 또한 그만큼 이름을 날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책을 읽고 흥분해서 친구들과 가진 술자리 모임에서 책 얘기를 꺼냈다. 재밌게도 인천에 살지도 않던 한 친구가 자신이 바로 삼미슈퍼 스타즈의 서포터즈였단다.
그 친구 철학이 늘 지는 팀은 우리편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늘 지는 팀이라 삼미슈퍼스타즈를 응원하였단다.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시절에 초등학생도 아닌 중학생이였지만 서포터즈가 되어 열심히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그 팀임을 증명하는 잠바와 모자와 그리고 그 돗자리까지 열심히 이용해가며 팀을 사랑했다.
늘 지는 팀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반짝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장명부라는 인물이 나타났을 때였다고 했던가? 이렇게 유명했을 법한 팀이 내 머리 속엔 전혀 기억에 없다.
서포터즈였던 그들은 이미 커서 어른이 되었다. 야구에 열광하던 시절도 지났고 이젠 삶에 찌들어 있는 한 사회인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바로 삼미의 깊은 뜻을 되새긴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아마추어도 아닌 프로팀에서 과연 이런 말이 가능한 일일까?
예전 삼미팀의 선수였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과연 모라고 할것인가? 그들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고 정말 노력했는데도 되지 않았던 일을 이렇게 모략할 수 있는가? 혹은 비웃는것인가? 라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내지는 아직도 우리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팬클럽이 있다는 사실 아니 이렇게 우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으며 그저 재밌게 즐겁게 웃어버리고 있는 나로선 그들이 가진 철학이 정말 그런 철학이였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하며 책을 덮는다.
요즘처럼 각박하고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그저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삶이 부럽기에 상상속에서 나마 즐겁게 미소를 지어본다.
내 글이 미흡하며 리브로에 있는 리뷰글을 발췌해서 붙여둔다....함께 읽어보시길...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소설 중에는 간혹 내 얘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이 있다. 물론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의 경험이 꼭 나의 경험과 같지 않고, 주인공의 외모와 비슷한 구석도 전혀 없지만, 반드시 그와 같이 내가 살았다고 할 수 없고 딱히 그와 완벽히 다르게 살았다고 할 수도 없으면서도 공감이랄까 공통감각이랄까 상식이랄까 정서적 유대감이랄까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그런 소설 말이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내게 딱 그런 소설이다.
나 또한 그 옛날 삼미슈퍼스타즈의 팬이었고, 삼미슈퍼스타즈가 청보로 넘어갔을 때부터 프로야구를 시큰둥하게 대했던 아이 중의 하나였다. 삼미슈퍼스타즈 이후 전혀 프로야구를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삼미슈퍼스타즈의 팬이 된 것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인천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우리나라에 프로라는 말을 처음 대중적으로 알리며 위대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프로시대의 개막을 알린 프로야구에서 유독 소외된 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땅이 바로 강원도다. 프로야구의 불모지 아니, 야구의 불모지 아니, 프로의 불모지인 땅에서 남들 잔치에 우두커니 구경만 할 수는 없어서 삼미슈퍼스타즈의 팬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프로야구 개막 이래로 한국사회는 모든 부분에서 급속하게 프로로 개편되기 시작했다. 프로가 아니면 죽음, 프로는 아름답다, 심지어 프로주부 9단, 당신 이러고도 프로라 할 수 있어?, 우린 모두 프로가 되어야 해, 오오 심지어 어절씨구 운동권도 프로 운동권, 데모도 우리는 프로답게 해… 기타 등등.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삼미슈퍼스타즈는 프로에 미친 세상에 한떨기 아름다운 꽃이었다. 전혀 프로답지 않아, 어떻게 저러고도 프로라 할 수 있을까요?, 야구평론가들과 세인들은 18연패라는 위대한 업적을 쌓은 삼미슈퍼스타즈를 헐뜯고 조롱했다. 모두가 완벽하게 프로의 시대로 발맞추어 달려가는데, 난데없이, 뜬금없이, 눈치없이, 어절씨구 프로랍시고 나타난 팀이 경악할만한 야구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프로에 먹칠하는 삼미! 이것이 당시의 평가였다. 아, 어찌 잊으랴 그 시절의 수모를...이라고 생각하는 삼미팬도 있겠지만, 그건 진정한 삼미팬이라 할 수 없다. 어린 나는 삼미슈퍼스타즈가 튀면 튈수록, 프로야구사상 다시없을 기록을 만들어갈수록 분노와 실망보다는 어떤 숭고한 숙명을 따르는 감정으로 삼미를 옹호했던 것이다.
하루키 소설에서 비치보이스의 음악을 듣고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던가. 비치보이스가 상큼한 하모니를 들려주고, 「위대한 개츠비」가 썩 괜찮은 소설임에는 틀림없지만 1980년대의 대한민국 강원도에서 자란 소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러나 삼미슈퍼스타즈의 팬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소설에 의하면 진짜 야구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야구란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이다. 삼미슈퍼스타즈는 그런 아름다운 야구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삼미의 선수들은 훈련캠프로 떠나는 버스에 오를 때 양복 정장을 입었으며(다른 팀들은 유니폼을 입는다), 올해의 목표가 뭐냐는 질문에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이라고 대답했다(다른 팀들은 ‘우승’이라고 답한다). 삼미슈퍼스타즈는 모두가 프로의 시대로 내달릴 때, 프로가 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할 때, 야구가 어느새 그냥 야구가 아니라 프로야구라고 불릴 때, 유유히 자신만의 야구를 보여준 유일한 팀이다.
‘프로’라는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어 발정난 사회에서 유일하게 삼미슈퍼스타즈는 조롱과 멸시를 견디며 참으로 상큼한 해독제로 기능했던 것이다. 프로에 먹칠하는 삼미슈퍼스타즈, 프로의 이데올로기를 희화화하는 삼미슈퍼스타즈. 삼미슈퍼스타즈는 온몸으로 이 자유경쟁 약육강식의 프로시대의 허구성을 폭로하며 장렬하게 사라졌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다’라고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선언하며 삼미슈퍼스타즈가 이 세상에 남긴 의미를 되새기며 마지막 팬클럽을 결성한다. 작가는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소설을 헌사한다. 이 부분에서 삼미팬이었던 나도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다.‘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관건’이라고 무라카미 류가 소설 「69」에서 했던 말을 이 소설이나 작가의 말에서 다시 확인하며, 언제 들어도 훌륭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은 고속도로 위에서의 경쟁이 아니다. 아니, 사실은 그것도 인생의 한 단면이다. 남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춤을 추거나 경쟁하거나 멍석 위를 장악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인생의 한 종류다.
그러나 어떤 인생에게는 멍석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미 주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전적으로 그 게임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게임을 다른 식으로 즐기거나 다른 게임 판을 벌이고 싶어한다. 내 생각에는 게임의 속임수를 알게 되고 그 기술을 마스터한 뒤 멍석을 장악할 수 있는 인생과 게임의 속임수를 알고 나서 그 게임의 주인이 결코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인생이 있다. 그 두 극단의 인생사이에 대부분의 우리네 삶이 끼어있다고 생각된다. 이 소설은 싸워보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숙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 혹은 싸운 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보다 ‘지면 어때!’라고 하는 차원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첫댓글 프로야구 관심있었던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셔~~~~ 웃음 속에 베어나는 감동이 있네...그려... 그런걸 바로 해학이라 한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