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루먼 대통령의
“The bucks stop hear”
종로구 숭인2동의 동네 정서가 최근 매우 황폐하다. 주민들의 반목과 대립으로 갈등을 넘어 이웃 간 고소. 고발도 난무하면서 분열 양상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숭인2동 1169 일대에 대한 공공재개발 추진이 그 배경이다.
약 3년 전 국토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으로 서울시가 제1차 공공재개발 후보지를 공모했는데, 이 일대 주민 일부가 신청하여 후보 예정지로 선정되면서부터 주민들 간 분쟁은 시작됐다. 이 일대는 동대문구에서 종로구로 지입하는 첫 관문이자 숭인2동의 요충지다. 오랜 세월 재개발사업 추진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여러 사정 탓으로 진행되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대로변에는 수도학원 등 고층 건물이 들어 서 있지만 뒷골목은 낡고 노후된 작은 한옥들이 즐비한 상태다. 그래서인지 재개발 효용 가치가 높으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재개발이 이뤄져야 할 곳이기도 하다.
2021년 3월 국토부와 서울시도 이러한 지역 특성과 함께 도심 재개발사업의 공공성 강화를 통한 인센티브 부여 등으로 사업을 촉진시켜 주택공급 기반을 강화시키겠다는 의도에서 공공재개발 후보예정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후보지 선정 이후 지금까지 약 2년 10개월이 지나도록 공공재개발 은 정비계획 입안 절차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이른바 공공재개발 장기 정체 구역으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에 빠진 형세다. 현재 서울시 여러 곳이 이러한 현상을 보이며 심한 대립과 갈등 속에 있는데 이곳도 바로 그러한 딜레마로 황폐된 곳이다.
당초, 국토부와 서울시는 공공재개발로 도시규제 완화와 사업성 보장 그리고 신속한 인허가를 통한 사업 기간 단축 등의 인센티브로 야심찬(?) 추진을 했다. 하지만 공공재개발 후보예정지 주민 다수 중에는 공공재개발로 인한 삶의 터전이 침탈당할 것을 우려하면서 이를 적극 반대하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공공재개발을 실시하면 작은 평수의 토지소유자들은 재개발아파트에 입주를 못하고 지역을 떠나야 할 것이라는 우려다.
물론 공공재개발 아파트에 입주를 위해 ‘웃돈’을 내면 되겠지만 대부분 영세한 작은 한옥주 입장에서는 아파트 입주 ‘웃돈’을 부담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 중 약 80%는 공공재개발 시 동네를 떠나야 할 입장이다. 그런 연유로 공공재개발 결사반대를 하면서 자신들의 기본적 재산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큰 배경이다. 그것이 아니면 차라리 개발이익을 주민에게 환수시켜 아파트 입주를 보장하는 민간 재개발을 선호하면서 이를 적극 추진 중에 있는 모습이다.
반면 공공재개발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이라기 보다는 개발 투자를 위해 몰려든 외지인이 많은 편이어서 무조건 공공재개발을 원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양측의 이해관계 및 이익이 상충하는 형태다. 이는 찬성과 반대가 외지인과 원주민의 갈등이기도 하다. 물론 공공재개발을 원하는 원주민도 있지만 그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외지에서 온 투기꾼(?)이다. 이런 양측의 대립 양상이 그동안 약 3년 가까이 나타나면서 공공 재개발 추진은 계속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고, 앞으로도 찬.반 주민 수는 정체 현상으로 비전이 보이질 않고 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애꿎은 주민의 재산권이 침탈당하면서 정주권마저 침해되는 폐해를 낳고 있다. 공공재개발 후보 예정지로 선정되면서 토지거래허가 구역으로 묶이면서 부동산 거래도 끊긴 상태고, 장마철 폭우로 수해를 당해서 재건축이나 대수선을 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건축 규제로 그 또한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발생적 주민 불만이 폭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구청을 항의 방문하는 등 민원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주민들 간 반목과 대립으로 그동안 친한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정서마저 깨지면서 오히려 갈등과 대결의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변경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기존의 정비계획 입안 동의율을 기존 60%에서 50%로 낮추고, 동시에 '입안 재검토 및 입안 취소' 기준도 과거 30%보다 25%로 낮춰서 관할 구청장이 정비계획 수립 절차를 중단하거나 입안을 취소할 수 있게 했기 떄문이다. 이는 일면, 서로 상충되는 모순적 기본계획이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방점은 공공재개발에 대한 주민 반대가 많아 사업추진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구역에 대해서는 입안권자인 구청장이 입안을 중단(취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구청장은 취소 요건 충족 시 지역의 현황과 주민 동향, 그리고 정비의 효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취소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할 수가 있는 것인데, 숭인동 1169일대처럼 약 3년 동안 답보상태를 보이면서 공공재개발 추진은커녕 오히려 주민 분열과 갈등만 일으키며 주민 재산권을 침해하며 각종 생활민원을 야기하는 경우에는 구청장의 과감한 선택적 결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그 명분이 생긴 셈이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집무실 명패에는 ‘The bucks stop here’라는 문귀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는 뜻으로 지도자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의미다. 구청장은 숭인동 1169 일대에 대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