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 좀 낫게 해줘요!
인천교구 박촌동성당 조 일 봉 라우렌시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
천체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는 초당 400m 속도로 자전하고, 지구는 물론 태양계를 비롯한 우주 공간에 있는 모든 별들이 초당 270km 속도로 어느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니, 이 우주는 도대체 얼마나 광활하고 광대한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나 광대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백사장의 모래알보다도 미약한 나에게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이름을 지어라 하신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 창세기2.19-
이 무한한 우주를 의식하고, 그것들의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무이한 ‘나’를 위해서 우주만물을 선물로 창조해 주신 성부 하느님께서, 독생 성자 예수님을 또한 보이는 가장 큰 선물로 주셨다. 이 가장 큰 선물, 인간으로 강생하신 보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섬기러 오셨고,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형제 안에 현존 하신다”는 진리를 머리로가 아닌 온 마음으로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 네 십자가를 지고,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새로운 삶은 또 다른 차원의 진통을 요구했다. 지금 나의 현실은 군 생활 20년 동안 모았던 퇴직금은 물론 가진 것을 다 잃었는데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 시간과 마음뿐이다. 옹색하고 황폐해진 마음이지만 의미를 부여하며 나의 시간과 마음을 나누자! 굳게 다짐을 하고 밖으로 작은이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전에 그렇게 흔히 보이던 길가의 걸인들이 도대체 눈에 띄지를 않아 뜨겁게 달아올랐던 주님 현존 체험 시도는 수포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성지를 찾아 철야 기도를 하며, 주야로 성서를 읽고 쓰며 야곱처럼 떼를 썼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응답 대신에 어느 날 나를 찾아 온 정말 너무 지독한 통증과 더불어 완전히 당신 모습을 감추어버리셨다. 온 몸이 땀으로 젖고, 점점 진통이 심해져 나는 하느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성모님조차도 전혀 생각할 수가 없는, 처음 느끼는 지독한 몇 시간의 진통과 사투를 벌였다. 응급실에 실려가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는 별 이상 없으니 입원할 필요조차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단을 내렸다. 그 이후에도 수차례 원인을 알 수 없는 진통이 계속되다 구일기도가 끝나는 날 새벽녘에 꿈에서 깜짝 놀라 깨어 시계를 보니 3시였다. 형체는 알 수 없는데 음성이 너무 웅장하고 명확했다. “생명의 집”, “ 회개, 감사”이는 분명 살아 현존하시는 주님의 음성이셨다. 나는 감실을 찾았다. 성서가 펴져 있었다. “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야43.1-
주님, 저 좀 낫게 해줘요 !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둠의 긴 터널 사이로 부드럽고도 화사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이사야43.4- 자비로우시고 사랑자체이신 주님의 현존을 음성으로 체험한 후 신기할 정도로 몸은 가뿐하고, 마음은 희망으로 벅차 새로운 힘과 용기가 넘쳤다. 이에 힘입어 가장 작은이 안에 계시는 주님현존 체험을 다시 시도하려 나가는데 바로 그날 우리 집 바로 옆방으로 산소 호흡기를 낀 할머니(당시84세, 한 안나)와 장남(62세, 신 디모테오)이 이사를 왔다. 한 안나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데다 심장질환으로 산소 호흡기를 끼었는데 치매 증상까지 있어 간병인이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보내신 천사라는 느낌이 왔다. 장남 디모테오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그의 긴 하소연을 통해 “1남3녀 중 장남이고, 한양대 공대를 나온 수재로, 한 때 자신의 과오로 파산하여 장성한 두 아들로부터도 외면 받는 이혼한 상태며, 세 명의 여동생들조차 돈 문제로 서로 얽혀 얼굴보기가 껄끄러워 세상 살 맛이 하나도 없다”며 서럽게 눈물지었다. 이날 이 후로 디모테오 형제가 근무하는 날에는 예외 없이 홀로 계신 안나 할머니를 찾아가 하소연도 듣고 무릎 꿇고 양팔 기도로 자비심(오후 3시) 5단 기도와 묵주 기도를 드렸다. 초기 방문 때는 나만 보면 울면서 자식들에 대한 원망만 늘어 놓던 분이 한 달쯤 지나면서는 나를 따라 더듬더듬 자식들을 위한 자비심5단 기도를 하셨다. 방문 육 개월 째 되던 성목요일 날에 안나 할머니의 발을 씻어 드리고 손톱을 깎아 드리는데 갑자기 코에 꼽고 계시던 산소 호흡기를 뽑아 던지며, 내 손을 잡아 가슴에 대시고, “ 주님, 저 좀 낫게 해줘요 !”하시며 큰 소리로 흐느끼셨다. 치매 증상으로 가끔 성모님도 예수님도 몰라보실 때는 있었지만 이 날은 평소보다 정신이 맑고 기분도 몹시 좋은 편이었는데 아이처럼 나를 보고 예수님이시라며 손을 놓지 않으셨다. 어쨌든 그 때 이 후로 안나 할머니는 산소 호흡기를 꼽지 않으셨고, 지팡이도 없이 바깥출입까지 하시게 되었다. 성목요일, 그날 분명 주님께서 그 자리에 현존하셔서 안나 할머니를 치유해 주신 것이다. 성체 안에 살아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나의 간절한 소망을 안나 할머니를 통해서 들어주신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디모테오 형제는 오랜 방황을 뒤로하고 주일 미사 참여는 물론 열심한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주님,당신은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멘-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오9.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