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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에 올려야 할 것을 이 깊은 밤에 올리게 된 것이
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 내린 날 바나나 장수에게 덜컥 받아 온
세 박스 바나나 처리 하느라 이 모양이라면 믿어 주실런지....
이날 주제는 '군대와 경찰'에 만연한 선임자의 폭력으로 순직한
한 의경을 생각하면서 잡은 주제였습니다.
왜 그리도 끈질기게, 군대나 경찰 하다못해 대학이나 일반 직장에서도
선임자들 신고식에서부터 그리도 줄창 후임자들을 괴롭히는가?
그 못된 악습은 조선시대 관료사회에 뿌리깊게 전해 왔던
<허참례>와 <면신례>라는 신고식 습속 때문 아닌가 싶어 방송에선
장교의 본분 문제, 위관 장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부하 보살피는 뜻을
이야기 하고 정작 그 신고식과 선임자 횡포 뿌리가 된 '허참례'와
'면신례'이야기는 할 겨를이 없었답니다. 우선 방송글 보시고
그 아래에 율곡선생도 치를 떨었던 관료사회 신고식 폐단에 대한 고사와
그 전통이 현대에까지 상납이란 악습과 선임자 횡포로 이어져 온
유전자에 기록된 그 모진 신고식 전통의 일단을 돌아볼까 합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 군대의 위관 장교의 본분은?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어제도 우리가 함께 이야기 했던 겁니다만, 요즘 군대며
경찰에 선임자 구타사건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초란 아, 오늘 ‘신 명심보감’에서 선임자 구타하고 연관된 고사
돌아보자는거죠. 맞죠 그죠 놀보 선배님?
놀보 아주 선임자를 가지고 잘 노세요. 자 이거 웃고 넘어갈 일
아니거든요. 선임자들이 만든 관습이나 이상한 전통을
후임자가 고통으로 받고, 그 받은 걸 그대로 후임자에게
넘겨주는 이 악습이 군대와 경찰 학교며 운동선수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거든요.
초란 그렇다면 예전에 선임자들, 장교들이 지닌 덕목을 돌아보면서
그 나쁜 악습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뜻이잖아요. 오늘 이야기가?
놀보 그렇죠. 군대에서 요즘도 쓰는 대위 중위 소위 할 때
위자가 가진 뜻이 선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란 겁니다.
중국과 우리 역사에 태위다. 도위다. 위관이다. 그런 직책이
자주 보이는데요. 그 위자가 가진 뜻만 제대로 숙지해도
선임자들 구타 악습 끊을 수 있다는겁니다.
초란 자, 오늘은 아주 간단하군요. 도위 태위 위관이라 했을 때
그 위자가 가진 뜻만 제대로 알면 되겠네요. 무슨 뜻인데요?
놀보 구겨진 비단을 따뜻한 불기운으로 펴듯이
윗 사람이 아랫사람 손을 잡고 다둑이듯이
위로하고 격려한다는 뜻이다 그겁니다.
초란 그럼 군대나 경찰에 모든 선임자들은 후임자 대할 때
기본 자세가 바로 그거라야 한다는거군요.
‘구겨진 비단을 다리미로 펴듯이 ’
놀보 후임자 하급사병들 보기를 무명베나 질긴 삼베로 보고 막
이리 찢고 저리 구멍내고 그런 자세가 아니라
구겨진 비단을 따뜻한 기운으로 펴듯이 그런 어루만짐과 위로로
끌어 안아야 선임자를 존경하고 따르고 명령에 복종하는
진정한 위계질서가 선다는 뜻이거든요.
초란 그걸 무시하고 선임자라고 무지막지하게 후임자 고생 시키고
완력으로 휘어 잡으려는 무관들을 뭐라고 했을까요?
놀보 추사 김정희는 인정도 없고 멋도 모르는 무관을
‘당위의 고주천짐’ (党尉의 羔酒淺斟) 이라고 했죠.
초란 추사 김정희가 말한 그 인정머리도 멋도 없는 무관.
어떤 일 때문에 그런 소리를 했을까요?
놀보 전에 송나라 때 당위란 무관이 있었는데, 힘쓰는 기세만
등등해서 그냥 고기 안주에 기름진 술상 차려 놓고
가가 대소 하면서 아랫사람 힘든거 생각도 안하고
노래나 한곡 쳐라 해댔거든요. 그 안하무인 당위 집에서
노래하던 가객이 도곡이란 고상한 선비집에 지내게 됐는데
눈 쌓인 겨울날 소나무에 쌓인 눈을 받아다 차를 끓여오라
하더란 겁니다.
초란 전에 당위란 무관댁에서 고생고생 해본 가객이
눈을 가지고 차를 끓여 오란 말에 많이 비교 됐겠네요.
놀보 그래 같이 차를 끓여 마시며 물었다죠. ‘전에 당위댁에선
이런 풍미가 좀 있었더냐?’ 그러자 가인이 나서서 한다는 말이.
초란 (가객--정감있게) 기름진 술상머리서 큰소리나 치고
아랫사람 힘든거 생각도 못한 그런 무관이 어찌
눈을 녹여 차 끓여 함께 마시는 풍미를 알겠습니까?
놀보 자, 추사 김정희도 한마디 거들었던 무관의 정나미 떨어진 모습
힘쓰고 술상치며 아랫사람 힘들줄 모른 사람이
어떻게 눈 녹인 물로 차를 끓여 아랫사람과 같이 마시겠느냐?
초란 자, 선임자, 선임병, 여러분. 후임자를 위해
나무에 쌓인 눈을 받어다 차 한잔 끌여 줘 보세요.
기름진 술상머리서 보인 추태며 온갖 구타 악습
그 한잔의 차로 끊을 수도 있다는 소리 아닌가요?
놀보 군대나 경찰 대학교나 운동선수들 선배 선임자들은
후임자를 구겨진 비단 펴주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존경받고 통솔한다는 거. 후임병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 못된 악습들 끊어 보시라는겁니다.
초란 추사가 말한 그 눈을 받아 차를 끓여 같이 마시는 따뜻함으로
오늘 ‘신 명심보감’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날 주제는 차라리 '선임자 횡포 습속 어디서 부터였는가?' 이렇게
드러내 놓고 접근하는 게 나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
군대 뿐 아니라 경찰이나 대학교에서도 선임자 체벌과 군기잡기 악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이어오고 있는데, 이미 우리 조상님들 유전자에 기록돼 있어
이를 단절하는 것은 한 세기 정도의 유전자 세탁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삼대가 단절해 줘야 유전자 기록에 변화가 생길테니 1세기는 끊어줘야헌텐데
그래서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조선 이전 고려 때도 관리들 신고식은 있었고, 조선시대 와서 조금 더
심해졌다 하겠다. 우리 사회에 선 후배 줄을 세우는 습속을 들여다 볼 수록
조선시대 '허참례'와 '면신례' 악습이 뿌리 깊게 전해 온 탓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율곡은 그놈의 관리생활 '허참례. 면신례' 때문에
못해 먹겠다. 했을까? 비슷한 시기, 퇴계선생과 오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단칠정론'에 대해 정교한 철학문답을 나눴던 고봉 기대승도
그 신참자 신고식 때문에 병이 나서 죽도록 고생한 일을 퇴계 선생에게 말하며
차라리 과거 보기 전에 깊은 산골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 앞길이 막막하니 이 벼슬감투 쓰고 어찌하면 좋겠는가?
기대승의 이 말을 들은 퇴계는 담담하게 지도 편달 하기를 '이 사람아
벼슬길 그런곳인줄 모르고 들어왔더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벼슬감투 쓰고서
이제와 옛날 심산유곡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그립다 하면, 자네 생각이 짧은거
아닌가?' 아주 따끔한 일침을 놓는 편지글을 통해서 관리들 '허참례. 면신례'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관습으로 이어 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서생이 과거급제 한번 해보겠노라며, 모진 고생과 용맹정진으로
뜻을 이뤘다. 급제자 명단에 이름을 확인하고, 어사화 내리고, 말타고 동네 한바퀴 돌고
술잔께나 나누다 소속관청이 정해지면 그 기관 안에 있는 20명 30명 선임자에게
선물 마련해야 했고, (이게 상납의 시원이 된다) 선물 돌리고 술한턱을 내야 했고
(이게 유유상종 향락의 시작이다) 선임자는 선물 받고 술대접 받은 다음 이제
우리 부서 식구들이 너를 받아 준다는 '허참례許參禮)'를 통과 시키고 10일이나 한달 기간 동안
또 무수히 선임자 선배들 사 먹이고 부르면 가서 시키는대로 별짓을 다 해야 했다.
(이 군기잡기가 상명하복의 못된 유전자로 내려오게 됐다. 여성들은 이 시기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라는 모진 악습으로 우월적 지위를 선언하게 되고)
한달여 가까이 선배들이 옷 벗으라면 벗고, 신발에 술을 부어 마시라면 부어 마시고
구정물 통에 머리 박으라면 박고, 그 모진 놀림과 치욕을 참아야 했던 신참 급제자들.
실록에 보면 가증스럽게 그 신고의식 필요성을 '신참자의 오만을 꺾기 위한 선임자 교육'으로
오도하고 있다. 한달 가까운 기간 동안 과거 급제를 했던 문신이나 무신 초임자들은
참으로 선임자들에게 있는대로 갖다 바치고 (상납 훈련) 하라는대로 하고 (복종 훈련)
주야로 퍼 마시고 (주색 훈련) 속으로 치열한 인내력과 동시에 보복심리를 갈고 닦으며
(폭력 당해보기 훈련과 폭력도발훈련, 왕따훈련과 양심 무뎌지기 훈련--이 과정이 슬프다)
그 모든 신고식을 마친 '면신례免新禮'이후 한축에 끼워 주고 상종하게 허락해 준다.
(동료훈련과 상호보호 훈련) 그런 절차와 과정을 거치면서 신참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빚쟁이가 되고 만다 (부정과 비리의 유혹, 그 시험과 갈취훈련) 그리고 잘 짜여진 조직과 계급
속에서 여지껏 해왔던 놀라운 노하우 전승과정을 밟게 된다 (탐관오리 수습과정)
그렇게 성장한 신참자는 일정기간 근무 후 다른 기관으로 갔을 때 최초의 신고식보다
덜하지만 약식 신고식과 선물상납, 그리고 선임자 복종의식과 서로를 구해주는
공직동맹 틀을 공고히 하게 된다. 이렇게 짜여진 관료 조직은 끼리 끼리 줄줄이
솜씨도 좋게 잘라먹고, 빼먹고, 훔쳐먹고, 등쳐 먹고, 회쳐먹으며 끼리끼리 잘들 사는 꼴로
한 오백년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 깊은 신고식, 신고턱, 선임자 복종과 대대손손
전해 내려 온 유전자 학습이며 기록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렇게 당했고, 그 정도로 되갚아
주려고 발버둥치고, 그 사이 사이 자살도 하고 총도 쏘고 너죽고 나죽고 별의별 사고가
터지고 있더란 것이다. 그 못된 악습을 혁신 시켜 보려고 노력했던 흔적도 여러차례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그 못된 습속은 지켜지고 전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유전자 신호 때문에
중종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잠시 실록에 기록된 그대로 한번 보자.
선배랍시고, 선임자 랍시고 얼마나 신참자들 괴롭히면서 기를 꺾고, 복종하게 하면서
상납훈련 시키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게해서 일심동체 동료의식으로 배신 못하게
조여 맸던가. 잠시 종종 때 실록 기사부터 보자.
중종 9년 갑술(1514,정덕 9)
11월15일 (계유)
조강에서 사간원의 상소를 대신들과 의논하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대사간(大司諫) 최숙생(崔淑生)·지평(持平) 소세량(蘇世良)이 전의 일을 논계하고, 최숙생이 또 아뢰기를,
“새로 급제(及第)한 사람이 분관(分館)되면 반드시 허참례(許參禮)와 면신례(免新禮)를 해야 하는데, 정응(鄭應)은 이 예를 행하지 않고서 갑자기 홍문관 정자로 임명되었으니 미편합니다.”
하였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사신은 논한다. 사관(四館)의 옛 풍속은 비용만 허비하는 외람된 일로서 유폐(流弊)가 습속을 이루어 치화(治化)를 크게 손상시켰으니 간관된 사람은 마땅히 혁파(革罷)하기를 청해야 할 것인데도
최숙생이 이와 같이 외람되게 아뢰었으니,
번세(煩細)한 것만 살피고 대간의 대체는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방송에서 말했던 곳으로 돌아가 보자.
함부로 무장 무관들을 깎아 내려선 안되겠지만
‘당위의 고주천짐’ (党尉의 羔酒淺斟) 이 말에 담긴 뜻은
힘께나 쓰는 장수, 기골이 장대한 사내장부가
한 군사 조직을 이끄는 장교가 됐을 때, 참으로 아래 부하들을
구겨진 비단 펴주는 따뜻한 다림질 처럼 해주는 그 마음이
대위, 중위, 소위, 할 때 위로한다. 격려한다. 힘을 실어 준다.
그런 보살핌의 尉자로 돌아가란 뜻이다.
그런 끌어 안는 따뜻함이 없이 완력으로, 선임자란 우월적 지위로
억압하고 강제하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송나라 때 당위란 자 처럼 그저 힘 자랑이나 하고
기름진 술상 두들기는 호기로움이나 부렸지
눈 내리는 날, 나무에 쌓인 눈을 받어다가 차를 끓여서
아래 사람과 따뜻한 정을 마시는 그런 그림을 상상이라도 하겠느냐?
한번 그려보자. 눈 내리는 날 소나무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주전자에 담어다가 끓여서 차를 우려내 후배, 후임자와 나눠 마시는
그 곳에 무엇이 피어 나는가를?
한오백년에 또 한오백년도 넘게 유전자 기록으로 주홍글씨 처럼
전해오는 신고식 전통과 선임자 폭력 악습들, 그도 천년의 전통이라고
소중히 받들어야 하는가? 상납전통, 왕따전통. 부정비리전통, 상명하복전통.
조직결사동맹전통, 유유상종향락 전통, 이 모두 다 전통이니깐 그대로
아름답게 이어가자는 소린가 묻고 싶은 날이다. 특히나 선임자들 구타로
숨진 의경이 남긴 일기에 우리는 단 한줄이라도 응답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악습이 한 민족의 유전자 게놈지도에 기록돼
우린 지금까지 그 드럽고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부정비리 온상이 되고
비양심과 비인간의 인생길을 걷게하는 신고식 악습 하나를 못 버리고 산다.
그리고 군대거나 경찰이거나 상아탑 대학이거나 회사거나
그놈의 신고식으로 멀쩡한 생사람 술로 황천가게 하고, 폭력으로 병신되게 하다
자살로 이승을 떠나게 하고 있다. 그리고도 덤덤한 양심들은 오늘도 걸핏하면
한턱 내라고 한다. 그놈의 한턱의 유래가 얼마나 피맺힌 역사를 가진줄도 모르면서.....
조금은 감정적 의도로 달려 온 글을 보니
그래도 조선시대 '허참례'와 '면신례'가 남겨 준 좋은 점들을 잊어선
안될 거 같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역시 비꼬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여러가지 통과의례를 거치게 하면서
첫째--공직자가 버려야 할 오만을 꺾어줬고
둘째--선배, 선임자에 대한 장유유서에 의한 섬김과 배움의 자세를 갖추게 했고
셋째--어떤 조건 속에서도 본분을 잃지 말라는 인내력을 함양시켰고
넷째--전통있는 관습에 도전하려 말고 순응해 살라는 운명관을 전수시켰고
다섯째--조직적인 폭력을 행사해 국가 공권력이 힘을 쓰면 생사가 엇갈림을 알게했다
동시에 어떤 부서거나 선임자에게 잘 비비고 따르면 콩고물 이상의 횡재수가 있다는걸
잊지 않도록 해줬다. 그래서 선임자에게 거역할 수 없는 노예처럼 복종하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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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이런일이 비일비재 했다니 참으로 애석하군요
선현들의 본받아야 할점들을 찾아 헤매는데......
역시 어느시대나 세상사는 모양은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조선시대의 '허참례','면신례'부터
오늘날의 신고식까지 꽤나 오랜 전통이군요.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작용, 참 만만챦군요.
우리들 개개인의 의식도 달라져야 겠고 제도적 장치도 마련이 돼야 할것 같은데...
오늘날의 상납전통에서 향락, 부정비리전통까지 세상사는 모두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네요.
이래서 역사는 지혜의 거울이라고 하는 듯 합니다.
문제는 이게 유전자처럼 인간의 습성에 스며들어 있어서,
단절시키기 어렵다는 것인데...
악습, 악습 쉽게 말해도, 하나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스레 느껴집니다.
무심코 듣고 넘어갈 한 줄 뉴스인데도,
일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네요.
역사가 정치를 말하지요 ...
우리 속담에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했습니다.
저희들이 그 모진 신고식을 당했고, 또 윗사람에게 줄 선물 마련하느라
빚을 지기도 했었으니, 해서 새로 들어온 신참이
신참례때 선물 돌리느라 빚진 것 갚으려고 탐관오리가 된것을
눈감아 줄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 아니냐구요.
줘본 놈이 받을 줄 알고 또 받아본 놈이니 줄줄도 알고...
이렇게 서로 주고 받는 뇌물속에 부패의 연결고리는 더욱 탄탄해지고.....
그 선물값은 죄다 백성들의 피땀 착취한 것이니
죽어나는 것은 백성들이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돌아 가는 것을 보면 거의 같습니다..
작가님 바나나 휴유증이 크셨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