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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함께 잠든 유스호스텔 라스 데에사스
산스의 차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청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단지 그의 호의에 감동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한테 건건사사 삐딱하고 모로 가려 하는 팔삭동, 배냇병신에 다름아닌데다 아무 쓸
모 없게 늙기 까지 한 놈이다.
이 놈 뒷배 보아 누리실 영화가 뭐 있겠다고 시공을 초월해 이토록 챙겨주시는 '그 분'!
산스를 내세워 또 한번 확인시키시는 그 분이 이번에는 두려워 꼼짝할 수 없었다.
적극적 추종자 외에는 적으로 분류하시는 분이 왜 내게 이리도 자애롭고 관대하신가.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 당신편이라 함은 한시적 유예를 뜻하므로 두려운 것이다.
그래도 위선(僞善) 보다는 위악(僞惡)이, 면종복배(面從腹背) 보다 면배후종(面背後從)
이 낫다(마태복음21:28-32)고 자위하며 알베르게 문을 열었다.
과다라마산맥 깊은 숲속, 널따란 터에 자리잡고 있는 앙증스런 건물은 마드리드 지방정
부(Comunidad de Madrid)산하 네트워킹 유스호스텔(Red de Albergues Juveniles)
'라스 데에사스'(Albergue Juvenil las Dehesas)다.
북한산록 우이동에 사는 것을 늘 최고의 행운으로 생각하는 늙은이에게 세르세디야의
알베르게는 사도 야고보의 길들에서 최고 행운의 숙소다.
진본 여권을 받아 체크 인(check-in)을 마친 여직원은 초등학교 학생팀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 3층을 배정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채광용 유리지붕이 있으며 1벙크, 1싱글 침대의 3인실 조용한 방인데 저녁식사 시간에
그 까닭을 알고 사려 깊은 직원이 오히려 고마웠다.
초등학교 상급반쯤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 30여명이 교사3명과 함께 식사하는데 어찌나
조잘대는지 식당이 들썩거릴 지경이었으니까.
3층을 독점한 밤이 교교히 흐르는데 이베리아 반도 하늘의 별들이 유리지붕을 통해서
늙은 나그네를 불러내고 있지 않은가.
금방 쏟아져 내 몸을 덮치기라도 할 듯 두렵기 까지 했던 금남호남정맥의 밀목재 때가
생각나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메뉴 '백두대간과 아홉정맥'177번 글 참조)
천체에 대해서는 100%무지한 늙은이가 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치할 만큼 단순하다.
신분도 인종도 지역도,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공평 무사하게 상대해 주니까 좋다.
온갖 공해가 그들과의 관계를 훼방놓지만 고산,심산에서는 거의 밤마다 그들과 짝할 수
있으므로 산에서 밤새기를 좋아하는 늙은이다.
사도 야고보의 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세르세디야의
유스호스텔 데에사스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과다라마 산맥의 품에 안겨 있으며 울창한 송림 숲으로 병풍을 두른 이 곳이 마치 내가
43년째(2011년 현재) 살고 있는 삼각산(북한산) 자락 우이동 같다는 느낌이니까.
요즘 나는 낙원에서 노니는 기분이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면 "몸째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모르지만"(II고린토
12:2,3), 아무튼 낙원에 올라가 있는 느낌이다.
엑소두스(Exodus)때 길을 열어주시고 만나(manna)를 내려주시던 분이 "먹을 것, 입을
것과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마태복음6:25~34)시는 분이다.
한참 지난 일들은 차치하고, 사도 야고보의 여러 길에서 비록 알바가 다반사지만 '그 분'
없이 내 걱정 내 노력으로 된 일이 어디 있으며 될 일이 있겠는가.
믿는 것 외에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고 이해도 되지 않으니까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유스호스텔의 숙박비는 저녁과 아침 식대를 포함해 16.74유로(15.5+부가세8%)다.
15유로 이상 지불하기 3번째다.
프랑스 길 첫날에 저녁과 아침 식사를 포함해 31유로인 오리송, 어제 세고비아의 방값
15e에 비하면 거져나 다름 없는 밤이 평화롭게 갔다.
과다라마 산맥과 세르세디야
사도 야고보의 길에서 최고로 이른 새벽, 4시에 플래시 하나만 들고 숙소를 나섰다.
해발 1.796m인 푸엔프리아 고개(Puerto de Fuenfria)를 다녀오기 위해서.
코카와 세고비아에서 그리 했듯이 어제 산스의 차로 옴으로서 거치지 못한 고개마루를
밟지 않고는 남은 길을 도저히 진행할 수 없겠기 때문이었다.
신새벽에 불 없이도 한라산 정상(백록담)에 오를 수 있는 것처럼 불의 도움이 없다 해도
오르는데 지장이 없는 칼사다 로마나(Calzada Romana/로마시대에 건설한 대로)다.
산길이란 샛길이 많기 마련이지만 워낙 뚜렷이 구분되어 눈감고도 갈 만한 길이다.
바윗돌들을 마치 못박듯이 박아놓은, 로마인의 혼이 느껴지는 영구적 돌길과 흙길이다.
로마인의 손이 닿은 것들은 건물이건 길이건 하나같이 견뢰(堅牢)하고 장중(莊重)하다.
5km 남짓 되는 넓고 안전한 숲길, 완만한 고갯길의 왕복을 2시간 반쯤 만에 마침으로서
산티아고 발 마드리드 착의 남은 길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급히 나오느라 배낭안의 디카를 챙기지 않아서 아무 것도 담아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단절(斷切)이 없어서 속도감 있게 다녀온 이점도 있었다.
최고봉2.428m,연장80km,폭20km인 과다라마 산맥(Sierra de Guadarrama)은 아빌라
(Avila)주의 그레도스(Gredos)산맥과 과달라하라(Guadalajara) 주의 아이욘(Ayllon)
산맥 사이에 북동과 남서로 뻗어 있다.
좁게는 세고비아, 아빌라 2주와 마드리드 주를 금긋고 있으며 넓게는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방과 마드리드 자치지방의 경계가 되는 스페인 중앙부의 산맥이다.
지리책이 이와 같이 설명할 뿐 아직 잠을 깨지 않은 여명의 현란한 산세와 푸엔프리아
고개와는 아무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내려오게 되어 유감이었다.
그래도, 내려올 때는 먼동이 터서 해발 1.300m가 넘는 위치의 베르세아스 저수지(Em
balse de las Berceas)와 푸엔프리아 요양원(Sanatorio de Fuenfria)도 확인되었다.
숙소에 도착해 바로 배낭을 챙겨 나온 시각은 6시 45분.
당직(?) 직원이 아침 식사라며 비닐 팩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간밤에 내 아침 출발시간을 물은 여직원이 아침식사 시간(8시)보다 일찍 떠날 것이라는
내 대답을 듣고 고맙게도 준비를 지시해 놓았단다.
방 배정에서 아침식사까지 여직원의 깊은 사려가 늙은이의 상쾌한 아침, 경쾌한 걸음을
배가시켜 주었을 것이다.
아스팔트 솔숲길을 1.5km쯤 내려간 지점에서 마주오는 한쌍의 초로(初老)를 만났다.
짬 날 때마다 하루씩 걸어 산티아고까지 가겠다는 그들이 순례를 마칠 날은 언제쯤?
고개를 넘어 발사인까지 가려 한다는 이 스페인 부부도 내게 길을 잘못 들었단다.
그들의 머리에도 마드리드 길은 "데 마드리드 아 산티아고"로만 입력되어 있는 듯.
조금 더 내려가서 해발1.200m에 위치해 있는 동일 조직망인 유스호스텔 비야 카스토라
(Villa Castora)를 어제는 왜 보지 못했을까.
고도 100여m 더 올라가 있는 데에사스에서 1박하게 된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지만.
노란 화살표가 세르세디야 철도 역(Renfe)을 지나는 사이에 증발해버렸다.
출근길 바쁜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제각각인 대답에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내려온 길을 되돌아 올라가 세심히 살피며 내려오다가 소형 승합차를 세워 다음 마을인
나바세라다 가는 길을 물었다.
백지에 약도를 그리며 가르쳐주던 두 중년남이 무슨 얘기를 나누더니 나를 차에 태우고
세르세디야 마을을 관통해 달렸다.
마을끝 지점에서 손짓과 함께 내리겠다(bajar/get out)했는데도 그들은 듣지 못했는가.
인구7.000여명이라는 대형마을 세르세디야(Cercedilla)는 내 의도와 달리 차로 왔다가
차로 나가도록 점지되어 있었던가.
한데, 그들(이 마을 주민들)은 천혜의 자연에 대해서는 무관심한가.
세르세디야의 자랑으로 편리한 대중교통망(철도와 버스)을 들면서 이는 칼사다 로마나
(Calzada Romana/오늘 새벽에 확인한) 때부터 라고 했다.
산 세바스티안 교회(Iglesia de San Sebastian),산타 마리아 예배당(Ermita de Santa
Maria) 등도 명물이지만 그보다 알파인 스키(alfine ski)선수 '오초아'가 더 유명하단다.
이 마을이 고향인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오초아(Francisco Fernandez Ochoa/1950
~2006)는 1972년 일본 삿보로 동계올림픽 슬랄롬(스키)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것.
달리는 차 안에서 그의 조각상을 가리키며 말했는데 그의 형제자매도 모두 스페인 국가
대표 스키선수들이었으며 누이도 1992년 알베르빌(Albertville/프랑스)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스키가족이라고.
프랑스 길 트리니다드 데 아레의 사이클리스트 미겔 안두라인도 그렇게 유명한데.
사람 나름이겠지만 오묘한 자연을 사람이 지배하게 한 창조설화(창세기)의 영향일까.
외모는 기인(奇人) 인상이지만 약도 그린 종이의 뒷면이 어떤 학원의 통계표 양식인 것
으로 보아 소규모 학원 관계자인 듯 싶은 그들.
그들은 나바세라다 마을 끝, 마드리드 길이 된 가축 통로Vias de Pecuarias) 앞 노란
화살표가 무리지어 나타나는 곳에 나를 내려주었다.
가축의 이동로를 따라 온 마드리드 길이 M-607도로를 횡단하는 지점이다.
마체수스(Machesus)와 릴브라비데아(Lilvrabidea/그들의 ID)를 디카에 담고 e-메일
주소를 받고(사진보내주려고)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그들도 2~3일 내에 마드리드에 도착할 것이라며 아니모(animo)를 외치면서 돌아갔다.
히치 하이킹이 필요치 않건만
그들이 떠난 후 나는 한참 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국내에서는 히치하이킹(hitchhike/편승)의 제일인자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전혀 없는
대가(大家?)지만 외국에서는 편승 자체를 시도해본 적이 없다.
오죽했으면 도로를 달리는 차들(영업용제외)이 모두 내 자가용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마는 그것(히치하이킹) 자체가 필요치 않은 사도 야고보의 길이다.
왜냐하면 오로지 걷기 위해 왔으니까.
그래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편승의 용이성 여부를 나는 모른다.
그러나, 사도 야고보의 길에서는 운전자에게 길을 물었을 뿐 편승을 바라지 않았는데도
그들 대부분은 나를 태워 내가 원하는 곳에 내려주고 자기 길을 갔다.
심지어 노상의 사람에게 물었을 때도 더러는 주차중인 자기 차를 몰고 와서 그랬다.
그들은 왜 헌신적인 볼룬타리오(voluntario/volunteer)를 자임했을까.
설명해도 이방 늙은이가 알아듣지 못하니까 급한 성미의 그들에게 측은지심 또는 역지
사지의 마음이 발동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국내에서 편승 단골은 염주와 묵주, 십자가가 백미러 또는 차안 어디에 걸려있는 차다.
특정 종교인들의 선의가 단연 돋보이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베리아 반도는 오늘날과 달리 한때는 로사리오(rosario/묵주/가톨릭교) 국가였다.
스페인 사회조사센터(CIS/Centro de Investigaciones Sociologicas)자료(2006년)에
의하면 총인구의 76%가 교회출석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단다.
남은 24%중 특정 종교와 무관한 19%와 2.5%의 이슬람과 유대교 등을 제한 인구 2.5%
역시 가톨릭 외의 기독교도다.(2010년조사는 가톨릭75%,무종교21.3%,기타종교1.6%)
이 통계 안에 정답이 있는 듯 한데 글쎄.....
때로는 그들의 과잉 선의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두 발로 당당하게 걷는 것만이 선이며 유일한 파보리토(favorito/favorite)라고 늘 공언
하건만 그들은 나를 조금이라도 덜 걷게 하려 하니 말이다.
오늘도 내가 원하는 세르세디야 출구지점에서 내려주었다면 나바세라다로 되돌아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걷는 것이 다다익선이니까 더 많이 걷게 하기 위함인 것일까.
사도 야고보의 길에서 터득한 고령사회의 해법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돌기둥이 성실하게 안내하는 순방향 마드리드 길의 행복을 잠시
나마 맛보며 순방향 길따라 나바세라다로 갔다.
해발 1.203m, 인구 2.700명 안팎인 나바세라다(Navacerrada)는 세르세디야 동동남쪽
마을로 구마을 신마을이 선을 긋지는 않았지만 시각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마을이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이 옛 마을의 상징이라면 새 마을의 길은 시원하게 넓고 직선이다.
전자가 무계획, 자연발생적 취락 형성이기 때문에 무질서한데 반해 후자가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질서 정연한 것은 잘 다듬어진 계획의 결과라 하겠다.
특히 주거공간의 개념을 단지 의식주의 건물에서 마을의 전 공유공간을 아울러 다루는
매우 바람직한 발전의 모델이 될 만한 마을이다.
여기에 과다라마 산맥이 운치를 더해 주어 더욱 돋보인다.
북한산국립공원, 삼각산과 도봉산이 내 집 옆정원과 뒷정원이 된지 오래인 내게는 새삼
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M-607도로를 건너면 동쪽으로 7km 남짓 되는 마타엘피노 한하고 목장지대다.
과다라마 산맥이 가지친 지맥의 편편한 계곡들에 조성된 목장인데 가축들의 이동로를
사도 야고보의 다른 루트들과 마찬가지로 마드리드 길로 개방하고 있다.
인권선언에 따르면 사람 위에 사람 없는데 목장지대라 그런지 사람 위에 가축이 있다.
소와 말, 양을 위한 센다를 걸으며 해본 생각이며 한국 늙은이로 하여금 한국 가축들을
연민하게 하는 것은 터지기라도 할 듯 양옆구리가 팽창해 있는 이 곳 가축들이다.
드넓은 초원에서 온종일 파란 풀 먹고 맑은 물 마시기를 자유자재로 하는 이 놈들이.
한국에도 대관령을 비롯해 몇몇 유수한 목장이 있으나 여기만큼 천연적이지 못하다.
사도 야고보의 길들에서 험로(險路)는 도보(pie)와 자전거(bici) 길이 구분되어 있더.
'피에'와 '비시'중 택일하라고 순례방식을 설문하는 알베르게도 있다.
그럼에도 MTB(Mountain Bike/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은 안전한 비시 길을 버리고 굳이
험로를 달리는데 마드리드 길에서는 최초 최후인 유일한 바이커(biker)를 만났다.
짐이 없는 것이 수상쩍어 물었더니 순례와 무관한 MTB애호인이란다.
(마드리드 길에서는 끝내 비시 페레그리노를 만나지 못했다)
과다라마 산맥, 1.000m 상하의 기슭을 돌며 알바 염려 없는 한가한 길을 걷게 됨으로서
사도 야고보의 길 맛을 되찾았다.
긴 앙고스투라 개울(arroyo de la Angostura)을 자주 접하다가 건넌 후 산자락 길에서
염소떼를 몰고 가는 노인을 만났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내가 만난 최고령자다.
노인은 조수인 개 한 마리와 함께 염소떼 돌보느라 나와 얘기할 겨를이 없어보였다.
저 놈들이 자기만 따르니까 어린 손자들 처럼 귀엽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단다.
아침부터 종일 움직이니까 건강에 이상이 없단다.
오첸타 이 신코(85세), 나보다 8세나 많은 이 노(老) 가나데로(ganadero/牧夫)와 함께
걸으며 나는 한 깨달음을 얻었다.
오늘날, 늙은이는 디지털(digital)에 밀려난 아날로그(analogue)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그러므로 고령자 문제를 디지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정답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고령자를 위한 최선의 정책은 연금도 요양원도 아니고 일거리를 주는 것이라고.
생업 또는 마지 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즐겨 하고픈 일(favorito)을.
이왕이면 생산성 향상에 공헌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러면 경로당이 필요 없게 되고 고령자로 만원인 병실이 한가로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로당과 고령자 요양원 대신 고령자의 일거리 조성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되고 고령자는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사회구성원이 될 것이다.
외곽지대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서울시의 새벽버스는 대개 만원이다.
수도 서울의 하루를 열기 위해 출근중인 그들 중에는 고령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폐품 수집에 종사하는 상당수가 고령자들이다.
농어촌에서도 고령자들이 중노동을 하고 있다.
많은 고령자가 무료하고 지겨운 시간을 죽이기 위해 공원으로 집중한다.
모두 병원 단골 고객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 즐겨 할 수 있는 일과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을 병원의 단골고객명단에서
지운다는 뜻도 된다.
목장과 카미노
신흥주택단지 비스타 레알(Urbanizacion Vista-Real)을 지나고 일부 포장차로를 따라
도착한 마타엘피노(Mataelpino)에서 보카디오로 점심을 먹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오늘 마감하려는 만사나레스 엘 레알이 7km쯤 남았을 뿐이며 실거리 2.050km가 넘는
대장정의 종착지 마드리드가 이틀치도 못되는 50km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랬을 것이다.
마타엘피노는 마드리드 자치지방의 서북에 위치한 지자체 엘 보알로(El Boalo)에 속해
있으며 과다라마 산맥의 남쪽 사면 해발 1.080m지대에 들어선 마을이다.
산간마을의 급격한 퇴락 현상에도 고저가 심한 궁산벽촌에 1.000명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임에 주목했지만 확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타엘피노 이후의 가축통로야 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열등감(?)을 갖게 하는 길이다.
이미 말했듯이 사도 야고보의 마드리드 길은 산자락의 너른 가축통로를 빌어 쓰고 있기
때문이며 간혹 나타나 치다꺼리 하는 사람과 주종(主從)이 전도된 듯 하니 말이다.
사도 야고보의 길은 수많은 목장지대로 나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사유지라는 이유로 우회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편하게
통과하도록 길을 내주고 있다.
오늘 거의 종일 목장길을 걸을 때 세계 최대라는 킹 랜치(King Ranch)가 생각났다.
10여년전 견학했던 미국 텍사스 남부 킹스빌(Kingsville)에 있는 광대한 목장이다.
3.340평방km로 서울의 5.5배, 제주도의 1.8배가 넘고 지방도로에서 고속도로까지 통과
하는 이 초대형 목장을 다 견학하려면 차편으로 이동해도 10시간이 걸린단다.
양쪽 목장을 비교하면 대기업과 구멍가게의 차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목장주는 가축이고 사람은 단지 그들을 치닥거리하는 댓가로 이익을 챙길 뿐이라는 것.
킹 랜치가 6.000여명의 목부를 단 45명으로 줄임으로서 목장내의 유치원부터 각급학교
까지 폐쇄했는데 목장이 망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치다꺼리를 기계화, 자동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부가 하던 일을 헬기와 각종 장비가 인수함으로서 미시적으로는 이익 증대를
달성했으나 양산되는 실직자들은 어데서 무얼 한단 말인가.
오래지 않아 우유와 낙농제품, 육류의 소비가 줄고 목장은 침체국면에 들게 되었다.
이 부메랑(boomerang)을 타개하기 위해서 영향권 국가들에 구매를 압박하고 있다.
(이상은 잠 못이루는 심야에 적은 메모를 다듬어 옮긴다)
과다라마 산맥의 남측, 돌출한 돌산 지역에는 마드리드의 수호성인 산 이시드로 예배당
(Ermita de San Isidro)이 있고 그 일대는 마드리드 지방 자치정부 환경부(Consejeria
de Medio Ambiente, Comunidad de Madrid)의 휴양지(Area Recreativa)다.
조금 후 널따랗고 엇나간 4거리에서 잠시 알바한 후 만사나레스 엘 레알 권에 들어섰다.
만사나레스 강의 쿠엔카 알타(Cuenca Alta del Rio Manzanares) 공원은 UNESCO의
생물권 보전지역(Biosphere Reserves)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설악산, 백두산, 구월산, 묘향산과 제주도, 신안 다도해, 광릉숲 등 7곳이다.
2012년 현재 세계 117개국의 610곳이 지정되었는데 스페인은 미국의 47곳에 이어 42곳
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머지 않아서 희소가치가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닌지.
훈장을 주겠다는 정부에 한 노(老)여류 소설가가 사양한 일화가 생각났다.
"하도 많은 사람이 받으니 장차 받지 않은 사람이 희소가치가 있을 듯 하여 거절했다"고.
쿠엔카 알타 공원의 작별인사(hasta pronto/안녕히가세요)를 받으며 마을에 접근할 때
10시 방향으로 먼 산맥의 구절양장 임도를 돌고돌아 오르내리는 차들이 겁을 먹게 했다.
"임도서행"(camino forestal, modere la velocidad) 주의판이 서있으나 아슬아슬하다.
장흥의 천관산에는 비할 바가 못되지만 과다라마 산맥의 한 축인 기괴한 돌산 페드리사
(La Pedriza)의 발아래 위치한 만사나레스 엘 레알(Manzanares el Real)에 들어섰다.
'페드리사'는'돌 투성이'라는 보통명사인데 고유명사로 승차(陞差?)된 셈이다.
카스티요 비에호(Castillo Viejo/古城)를 지나고 만사나레스 강의 중세다리(Puente Me
dieval)를 건넌 후 먼저 관광안내소에 들렀으나 시에스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