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대한다. 회피하기도 하고, 약물 치료로 대응하기도 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헤맬 때, 불교에서의 명상 수행은 명확한 길을 제시한다. 고에 대한 수용과 통찰이 그것이다. 붓다가 제시한 명상 수행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불교 수행의 의미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고득락, 즉 고통의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후 행복을 얻는 것이다. 붓다는 이 열반으로 향하는 과정을 "고집멸도" 사성제(The four noble truth)를 통해 분석하고 체계화했다. 사성제의 수행 절차는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로 구분된다.
고성제는 고통에 대해 통찰하는 수행이다. 고통이란 무엇일까? 고통의 증상은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체적 고통은 근원적 고통으로 생로병사이며, 심리적 고통은 애별이고(사랑하는 이와 이별), 원증회고(미운 이와의 만남 즉 원망으로 인한 미움), 구부득고(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즉 욕망), 오온성고(인식에 의한 식별과 판단이 왕성하여 생기는 고통)으로 나뉜다.
집성제는 고통의 원인을 규명한다. 모든 존재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어떤 원인에 의해서 그 결과로 존재한다(인연생기, 상의상생). 무명에 의해서 행이, 행에서 식이, 식에서 명색이, 명색에서 육입이, 육입에서 촉이, 촉에 의해 애가, 애에 의해 취가, 취에 의해 유가, 유에 의해 생이, 생에 의해 노사가 일어난다(12연기의 구성). 붓다는 이 중 연기법의 첫 번째 고리인 무명에 의해 집착이 생긴다고 보았고, 이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보았다.
멸성제는 괴로움을 극복한 경지(열반, 해탈, 자유)를 밝힌다. '나'라는 존재와 의식의 구성 과정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고, 바라볼 때 존재의 무상과 실체가 없는 무아를 깨달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연기되지 않으므로, 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을 때 닦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도성제는 멸성제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닦음을 완성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때, 팔정도 수행을 통한 열반의 완성을 제시한다. 팔정도는 3가지 수행 원칙인 '계정혜 삼학'을 함축하고 있다. 계는 덕행을 실천하는 계율인 정어, 정명, 정업. 정은 산만한 마음을 고요히 하여 지금 이 순간 자신과 함께하는 정념, 정정, 정정진. 혜는 비판단적으로 있는 그대로 바로 보는 정견, 정사로 분류한다.
요컨대, 불교의 명상 수행은 고통을 대할 때 회피하거나 싸우지 않고, 현상을 분석하고, 수련함으로써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고에 대한 수용과 통찰을 함으로써 깨닫고, 닦는다면 우리는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첫댓글 메타 총무님, 어려운 과제 #2를 잘 이해하면서, 정리를 잘 하여주었습니다.
*****불교의 명상 수행은 고통을 대할 때 회피하거나 싸우지 않고, 현상을 분석하고, 수련함으로써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고 하였듯이,
일상에서, 몸의 감각적 아픔이나, 마음의 생각이 번잡하게 일어날 때, 일어남을 먼저 알아차리고,
명상적 방법으로 호흡 등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멈추어 지켜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몸과 마음의 평온함을
조금씩 스스로의 힘으로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신뢰를 가지고, 일상에서 틈틈이 수행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