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제도
김은중
모친이 욕실에서 넘어져 십 년 전에 다쳤던 고관절을 다시 다쳤다. 늘 조마조마하던 일이 터졌다. 동생에게 119에 연락해 홍성의료원으로 모시라 하고 홍성으로 향했다. 기차가 빠를까 자동차가 빠를까 재다가 기차를 선택했다. 수서역에서 고속철을 타고 천안아산역에서 내려, 연결된 아산역으로 가 용산에서 오는 열차를 타고 홍성역까지 가는 방법이다. 이렇게 가면 용산역에서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 것보다 한 시간 가량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홍성을 가노라면 온갖 상념이 교차한다.
십이 년 전 모친은 외손자를 피해 방바닥에 털썩 앉다가 고관절 골절상을 당했다. 독립문 근처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아 인공 고관절을 시술했는데 그 뒤로는 수술한 다리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그것 때문에 늘 걱정이었는데 두 해 뒤 모친은 서울집을 팔고는 농사를 짓겠다며 아무 연고도 없는 홍성에 터를 잡았다. 나는그런 모친을 만류하지 못했다. 만류한다고 들을 모친도 아니지만 만류하는 과정에서 모친이 행여나 상처라도 입을까 봐 늘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입버릇처럼 사람들에게 나이 먹어서는 절대로 도시에서 시골로 가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모친의 사례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시골로 내려간 뒤 부친은 삶의 생기를 잃었고 그것은 육체의 생기를 앗아갔다.
모친은, 인공 고관절이 부러져 새로운 고관절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이야 이 주일 정도면 퇴원이 가능하지만, 박테리아에 감염되는 바람에 두 달을 병원에서 보냈다. 의사는 항생제 내성이 있다며 이 약 저 약을 바꾸어가며 박테리아를 잡았는데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모친에게 왜 항생제 내성이 생겼는지 잘 알고 있지만 의사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문제는 병원에 두 달 동안 누워 있으면서 근육이 소실되어 걷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수술과 입원 치료에서 노인에게 찾아오는 섬망증까지 생겨나 시골집으로 홀로 모시는 게 어려워졌다. 두 동생과 상의해서 우리는 모친을 김포에 있는 요양병원에 모셨
다. 그곳에서 재활을 하고 섬망증이 호전되면 퇴원을 해서 홍성집이든 서울이나 경기도에 새로 집을 장만하든 하여 모시기로 했다. 사실 나는 모친이 다시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두 동생의 희망을 묵살하고 싶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모친은 재활에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에까지 감염돼 사정은 더욱 힘들어졌다. 여동생은 개인 간병인을 따로 두자고 했고 나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요양병원이다 보니 원장인 의사는 무리하게 약을 처방했고 항생제에다가 신경안정제까지 투여하면서 모친은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정상적이지 않게 되었다. 여동생은 요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고양시에 있는 시설이 매우 좋은, 그러다 보니 요양비도 함께 비싼 요양원을 선택했다. 다행히도 여동생이 장기요양급여를 신청했고 그것이 허가되어 요양원으로 옮기면 매달 백수십만 원의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동생의 연락을 받고 나는 김포의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교육까지 받았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하긴 자격이 되어도 ‘지공거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만큼 복지 혜택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내가 그런 것을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교육을 받으면서는 한국에서 대략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6년부터인가 베이비붐이 일어났고 이것이 대략 이십 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렇다면 이 베이비부머들이 75세가 되는 시점부터 30년 이상 장기요양급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라는 생각만 했다. 천문학적인 그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식들이 아니라 손주들일 것이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자기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처지에 조부모의 장기요양급여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치인들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고령자 선심성 정책을 계속 쏟아낼 테니 청년 세대는 조부모 봉양에 허리가 휘고 그들의 삶이 피폐해지지나 않을까 우려가 되기 시작했다.
모친을 김포의 요양병원에서 고양의 요양원으로 모셨다. 아이가 맡기고 간 자동차에 태워 직접 모시려 했으나 때마침 쏟아진 비 때문에이송 차량을 불렀다. 이송 차량을 따라가면서 7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 75〉를 떠올렸다.
고령화가 일으킨 사회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75세 이상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 국회를 통과한다.
그 제도의 이름은 ‘플랜 75’. 일본은 2025년이면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75세 이상인 후기고령자 사회가 된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한국전쟁을 기회로 부흥의 시동을 켜고 덩달아 출생률도 높아진 게 1950년부터였고, 그때 태어난 이들이 75세가 되는 때가 2025년이다. 국가적으로 의료비와 사회보장비 부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노동력은 반비례해서 부족해질 것이다. 국가는 노인들의 걸음걸이만큼이나 느려질 것이다. 정신이나마 온전한 이들이라면 전동 휠체어에 몸을 맡길 텐데 공공교통시설은 이들을 태우기 위해 시설을 개조해야 하고 타고 내리는 시간으로 인해 속도는 더욱 느려질 것이다. 노인으로 가득한 일본은 활기와 매력을 잃은 나라가 될 것이다. ‘후생성 인구관리국’ 공무원들은 공원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고령자들에게 죽음을 권유한다. 저게 한국이라면 권유가 성공할 때마다 두둑한 수당을 챙기지 않을까 싶다. 텔레비전에서는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럽다.”는 광고가 흘러나온다. ‘플랜75’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국가가 십만 엔의 위로금도 준다. 처음에는 이 제도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잦아든다.
2025년에 일본을 찾아오는 후기고령자 사회는 그보다 5년쯤 뒤 한국을 찾아올 것이다. 좋은 일자리도 부족하고 안락한 집을 마련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지고 있지만, 2030년의 30대들은 한국에 ‘플랜 75’를 도입하자고 외치지 않겠지?
자동차가 이포대교를 지나 고양시로 접어들었다. 나는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첫댓글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플랜 75'가 도입이 되겠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몸과 마음을 잘 추스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