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 녀석이 4개월이 갓 지날 무렵 외가에 왔을 때 고열에 시달려 부리나케 병원에 달려간 적이 있지요.
별 증세도 없이 고열에 시달리니 병원에서도 해열제 외의 처방은 없어 더 불안해 병원 한 군데를 더 갔고, 밤새 딸아이와 할미는 수건을 적셔 열을 식혀 가며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그러더니 아침 나절에 열이 좀 내려가 안심했지요,
이것저것 검색하던 딸은 젖니가 날 무렵의 증세와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외가에 온 녀석이 평소와 다르게 웃지도 않고 종알대지도 않더니 또 그런 증세가 나타나 온 식구가 난리가 났습니다.
마침 독감이 대유행하여 어린이 병원마다 진료를 몇 시간씩 대기할 정도라 열이 39도에 이르자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딸 친구들의 아기들도 응급실로 가서 입원 치료받고 링거 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였다니 더욱 그랬지요.
동네 병원에 다녀온 딸은 이번에도 못 미더워하며 친구들과 정보를 교환하더니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구로에 있는 어린이 전문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동탄에 있는 병원이 시간이 덜 걸릴 것 같다고 하며 사위와 함께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부모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당황하면 운전이 더 위험하니 할비가 데려가마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병원에 다다라 급한 마음에 서둘러 주차장에 진입하려고 하자 관리인이 다가와 여기 줄 서 있는 차들 안 보이냐고 핀잔을 주더군요. 그러고 보니 불법 주차인 줄 알았던 그 긴 줄이 모두 병원 진료를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던 것입니다.
오래 걸렸지요. 여기저기 아기들 보채며 우는 소리, 기침 소리에 앉을 자리도 없이 모두 서서..,
접수 데스크에선 신생아이니 7층 휴게실에서 대기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검사 결과 독감은 아니고, 요로감염도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감기약과 해열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어제 그 원인을 알았습니다.
딸이 보내온 사진을 보니 첫 번째 젖니 앞니가 솟았습니다!
그게 다 젖니가 나올 때의 증세였던 것입니다.
잇몸의 생살을 뚫고 나오려니 그 아픔이 오죽 하겠습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서도 몰랐어요.(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아셨을까?)
그러고 보니 아들이 그 무렵, 이유없이 울음을 그치지 않아 새벽에 병원 응급실에 달려갔던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잠자던 당직 의사는 “애가 운다고 다 병원에 오냐?”고 핀잔하며 아무 상담도 없이 주사 한 방을 놓았고, 아들(지금은 마흔한 살^^)은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췄었지요.
혹시 녀석도 그때 젖니가 나오려고...
이제 세상은 우리 자녀들이 축적한 정보, 또는 검색 능력이 부모를 훨씬 능가합니다.
애비는 MS-DOS 플로피 디스켓 넣고 부팅할 지언정,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자였고,
삐삐며 컴퓨터며 노트북이며 2G 폰까지 사줘 가며 어얼리 어댑터가 되도록 정성을 기울여 왔건만,
지금은, AI가 등장한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애들을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 아이들 도움 없이는 배달 음식 하나 시키지 못합니다. 택시 하나 부르지 못합니다.
워드며 엑셀이며 파워포인트까지는 가르쳐 주었지만, 영상에 자막을 넣고, 음성을 한 방에 워드로 변환하고,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순식간에 해내니 이제 아이들로부터 배워야 할 정도입니다.
외손자의 첫 번째 젖니 꽃이 핀 것을 보며 지난 40여 년을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