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1화 - 서혜진(정려원), 표상섭(학교국어선생)
학교 교무실 안으로 서혜진 들어간다.
표상섭:네, 제가 표상섭입니다만.
서혜진:안녕하세요 선생님
표상섭:네.. 저 어떻게 오셨는지..
서혜진:저 이번 시험 11번 문제로 연락드렸던...
표상섭:아.. 이거 참.. 일단 여기 좀 앉으시죠.
(앉아 있던 다른 선생들 자리를 비켜주며)
서혜진:여기서요?
표상섭:네, 뭐..못 나눌 얘기도 아니고 투명하게. 앉으세요. (사이) 어머니가 젊으시네요. 문항에 문제가 있다구요?
서혜진:아 문제라기 보단..
표상섭:그게.. 음.. 기초적인 문학 개념어 문제입니다. 모순적인 표현을 통해서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수사법을 찾으면 되죠.
서혜진:다른 국어과 선생님들도 같은 의견이실까요?
표상섭:학년 국어과 교사들이 여러단계로 교차검증한 문제입니다.
서혜진:문제가 출제되는 과정을 여쭤보는 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게 해석하시는지 여쭙는거에요.
표상섭:음..자, (서험지를 보여주며) 11번 문항이잖아요? 이건 신경림의 농무라는 작품입니다.배경이 1970년대예요.
농촌이 무너지던 시절이요. 여기 이 시의 화자는 답답하고 곤란한 상황에 몰려서 소까지 팔아치운 농민이에요.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 심정을 신명이 난다고 표현했습니다. 모순이 있죠? 이게 역설입니다. 이해가 안 되시면 정담을 보시면 됩니다. 여기 5번이요.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있어야 하네' 하는 거 말이죠.
서혜진: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역설법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여기 신명이 난다는 문장 자체에는 모순이 없으니까요.
이 속마음과 표현이 상반 된 수사법으로 본다면 여기 2번도 정답이 될 수 있지 않나요? 반어법이요.
표상섭:(정적) 음.. 어머님이 전공자이신 모양입니다.
서혜진:그건 아닙니다.
표상섭:어머니가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전공자가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서혜진:둘 다 아닙니다.
표상섭:명함 한 장 놓고 가시죠.학원에서 나오신거 아닙니까?
서혜진:여러 학원에서 에상했던 문제입니다.
표상섭:수비 범위 안에 있었따.. 이겁니까?
서혜진:문항에 대해서 건전한 토의를 나눠보고 싶어서 찾아뵌 거예요.
표상섭:듣도 보도 못했는데요. 학교 교사하고 학원 강사가 시험 문제를 두고 토의를 한다는 건.
서혜진:그럼 국어과 선생님들께서 다시 한 번 토의를..
표상섭:애들한테는 충분히 설명했어요. 현실과 시적 표현 사이에 엄연한 모순이 존재란다고.
서혜진:애들이 참담하고 절망적인 화자의 심정을 파악했다면..
표상섭:말씀드렸습니다. 이건 문학 개념어 문제예요.
서혜진:개념어 문제지만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화자의 내면 정서를 추론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이 선지 구성도 그렇고.. 신선했습니다.
표상섭:문제 수준을 평가해달라고 논평을 부탁드린적은 없는데요. (정적) 새로 부임한 교사여서 어떤 문제를 낼지 몰랐다.
저한테는 그렇게 들립니다만. 예측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학교 시험지 몇 년치를 모아서 기출 분석을 하셨는데.
서혜진:매 학기 존경하는 마음으로 분석해왔습니다.
표상섭:(감탄하며 손뼉을 치며) 그게 반어법입니다. 학교에 도전하러 오신 분 입에서 존경이란 말이 나오는거요.
서혜진:하.. 도전이라니요. 지문 선정, 난이도 조절, 수능 연계썽 뭐 하나 빠지는거 없는 찬영고 수준에 저 도절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표상섭:예. 이게 도전이 아니시다?
서혜진:토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표상섭:(한숨) 오늘만 해도 애들이 얼마나 다녀갔는지 아십니까?
서혜진:선생님 의견에 반기를 드는게 아닙니다.
표상섭:적당히 합시다. 부끄럽지도 않아요?
서혜진:제가 틀렸다면 충분히 부끄러워하곘습니다. 다만, 이 역설과 반어 둘 중에 하나만 타탕하다고..
표상섭:애들 시켜 점수 앵벌이나 하고 등급을 교란하는짓 부끄럽지 않냐고요!
(다른 선생: 아니 표선생, 여기서 이러시지 말고 자리를 옮기시는게..}
서혜진:자리를 옮기시겠어요?
표상섭:왜 그래야 됩니까?
서혜진:문제가 이렇게 출제된 이유를 알겠어서요.
표상섭:뭡니까. 그 이유라는게.
서혜진:낡았거든요.
표상섭:뭐요?
서혜진:의인과 활유, 역설과 반어 같은 걸 개념적으로 구분짓는데 목 메는 문제는 수능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낡았으니까요. 하지만 전 아이들에게 이 개념어들을 성실히 가르쳐왔습니다. 어디까지나 여전히 이걸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존재하시니까요. 교단에서요. 근데도 재고를 안 하시겠다는 건 알고 계시기 때문인가요?
어차피 학생부때문에 애들이 문제 제기를 세게 못 할 거라는 거.
표상섭:어디서 공교육을 감히..
(교무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들이 막는다)
애들 앞세워 점수 앵벌이 하는 제가 나쁩니까? 인질로 잡혀 있는 학생부 앞세워 교권을 참칭하는게 나쁩니까?
(다른 교사 말리며, 표선생. 일단 참아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
서혜진: 감히 도전이라니요, 교란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공교육이 지향하는 바야 말로 저희의 지표인걸요.
표상섭: (테이블을 내려치고 일어나며) 이봐!
(다른 선생: 다 , 그쪽도 좀 그만해요 학교에서 논의할테니까. }
논의는 무슨 논의를 해요!
서혜진: 재시험 요청드리겠습니다.
(다른선생: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만 가보세요)
표상섭: 알긴 뭘 알았다는 겁니까!!
서혜진: 가보겠습니다. 지헤로운 논의 부탁드리겠습니다.{다른 선생들을 향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표상섭: 지혜? {돌아서나가는 혜진을 어깨를 잡아 돌리며}{다른 선생, 표선생을 말리며: 표선생 왜 이러 이거 잡으면 안돼}
지혜? (다른 교사들 다 말린다)
서혜진: 또 한가지 더. (표선생 말리는 손들에도 계속 혜진의 어깨를 꽉 붙잡고 있다) 이 문제의 선지는 지금까지
학교진도에 포함되지 않은 중세국어 내용을 포함하고 있던데요. 선생님이야말로 학원에서 이쯤배우지 않았냐 하고
출제하신거 아닙니까? 문제 제기 방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표선생 혜진의 어깨를 거칠게 놓으며)
표상섭: 기생충같은것들..
서혜진: (가벼운 목례를 하며 교무실을 나선다)₩